1983년 미국의 정치평론가 밥 블랙(Bob Black)은 페미니즘이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언급하였다가 페미니스트 단체들에 의해 곤욕을 당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드러내는 여성우월주의적인 견해와 남성에 대한 적개심, 역차별 조장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 왔다.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아빠 없는 아이 운동, 낙태 합법화 운동, 모계사회 정착 운동,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구 질서를 권위주의로 몰아 비난하는 형태 등으로 미국과 프랑스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나타났고, 이후 전투적 페미니즘, 남녀 역차별주의와 전체주의를 비교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1992년 미국의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러시 림보는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페미나치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낙태를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지목할 때 이 용어를 동원하였으며, 미국 내에 최대 25명의 진짜 페미나치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성정책센터, 페미니스트 재단의 단체 조직원 및 낙태허용 입장의 운동단체인 여성생활행진 등의 회원 등을 페미나치로 지목하였다.
1994년 커밀 팔리아(Camille Paglia)는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여론, 음반, 게임, 영화, 영상물 등에 대한 검열 정당화 및 목적 달성, 이견 분쇄를 위해 뇌물과 돈, 인사 개입, 압력, 성 로비 등의 각종 이권행사를 하는 형태를 파악하고 이들을 스탈린주의자라고 묘사, 비판했다.
이후 미국사회에 나치라는 폄하적 표현을 사용하여 특정한 사람들을 범주화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표현인가에 대해서 논쟁이 일다가 논쟁은 프랑스, 영국, 독일로 확산되었으며 2000년에 들어서 미국사회에서는 언론과 홍보물, 저서 등에 되도록 페미나치라는 용어의 사용을 회피하였으나, 2003년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