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본이 패배가 확정된 상태에서 원폭이 꼭 필요했냐는
일부 원폭피해 동정론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당시 일본의 광기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미국이 원폭투하기 전 수차례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당시 '항복하느니 죽겠다'며 자국민들의 죽음을 강요했습니다.
미군이 맨처음 상륙한 오키나와의 예를 들자면
"미군에 항복하면 강간당하고 모두 죽는다.'면서
겁을 주고 자결을 강요했죠. 거부하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때 자결 또는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오키나와 주민수는 14만명이 넘습니다.
(미군에 의해 희생된 숫자가 아니라 자결 또는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숫자입니다.)
만약 원폭 투하 없이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일왕의 명령이란 이름으로 죽었을 겁니다.
미국의 원폭투하는 두 번이 있었습니다.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카사키.
원폭을 쳐맞고도 8월 15일이 되서야 항복을 하죠.
미국의 원폭투하는 수많은 일본인들의 목숨을 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