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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22 10:10
가난의 상징 청계천 70년대
 글쓴이 : 포물선
조회 : 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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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일본인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안녕요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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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스타일 16-04-22 10:17
   
일본놈들이 의도적으로 어려운 곳 사진을 많이 찍어놨었죠.

70년대만이 아니라 흔히 인터넷에 떠다니는 일제시대때 사진도
도성 안 기와집들은 배제하고 성밖 빈민촌 초가집들 사진만 찍어서
미개해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wjs76 16-04-22 14:44
   
오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놈들의 의도는 알만 하네요.
분명, 봐라 이게 그당시 한국의 미개한 모습이다 낄낄.. 이러려고 했겠죠.

근데, 사고방식이 쪽바리와 달리 편협하지 않은 타국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여주더라도, 쪽바리들이 기대하는 반응과 상반되는 반응이 나올 상황이죠.

대부분 와~ 미개하다가 아니라, 이런 발판에서 이만큼 성장한게 굉장하군 이런 반응..
또, 우린 우리대로 쪽팔려 하게 아니라 수십년만에 이만큼 발전했다고 뿌듯해 해야 할일입니다.
쾌도난마 16-04-22 10:36
   
당시를 떠올리면 청계천 뿐일까요? 가난의 상징 청계천이라고 하니.. 왠지 지금은 부의 상징 청계천이라고 불러야할것만 같습니다.
해동한국 16-04-22 11:16
   
진짜 청계천이랑 버스 환승 도입은  명박이형  업적

그걸로 대통령까지 됬지만서도..
     
스랜트 16-04-22 12:40
   
          
좀비스타일 16-04-22 13:42
   
까려고만 하면 한도끝도 없습니다. 청계천은 누가 뭐래도 이명박의 업적 맞아요.
자기 시장할때 무리하게 끝내려한 것도 이유가 없지는 않고요.

제가 매일 그쪽으로 다녔었는데 정말 3.1고가도로 아래는 완전 쓰레기장보다도
더 더럽고 어두침침 했습니다. 교통체증도 엄청 심했고요. 그리고 청계천 복원
안하면 위험하다고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거의 10년은 떠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상인들과 일부 시민들 반대에 부딪혀서 매번 공사는 무산됐죠.

천천히 계획 잘세워서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 누가 시장됐어도 그렇게 못했을겁니다.
또 반대에 막혀서 아예 안했겠죠.

아마 이명박이 밀어부치지 않았으면 아직도 그대로일지 모르고 결국 무너져서 대형사고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입으로만 나불대는건 누구나 다 합니다. 반대만 하는 것도 쉽고요.

그런데 정말 80년대 중국 같은 분위기로 썩어가던 서울 시내 모습이 그나마 바뀌기 시작한게
언제부터일까요?

심지어 서울숲 개장한다고 할때 넓은데 오는 사람이 없어서 범죄소굴이 될거다.
라고 까는 기사까지 떴던거 기억하시나요? 지금 서울숲 없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 바글바글
하게 이용합니다.
               
친일타파 16-04-22 15:53
   
업적이라....

청계천에서 피땀으로 일하다 자리 잡고 일하시는 분들 다 내쫓은건 어찌 생각해야할지..

강제적으로 한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제값쳐주고 다른곳 보내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

까? 보상액이 형편없이 낮았고 다른곳에 장사하기도 힘들었는데...그분들은요?

왜 그분들이 필사적으로 반대를 했는지에는 관심없죠? 강제적으로 다 내쫓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관광객들 많이오면 업적이 되나보네요...10년이 걸리던 20년이 걸리던 원주민

분이나 장사 하시는 분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겁니다..강제가 아니

구요..
                    
친일타파 16-04-22 15:56
   
http://ybpress.tistory.com/86

이거한번 보시죠..

업적....절대 아니죠..
                    
좀비스타일 16-04-22 17:17
   
그 청계천 원주민들 때문에 계속 복원 못하고 나중에 다리 무너지고 대형 인명사고라도
낫어야 속이 후련하실까요? ㅉㅉ

누군가는 욕먹더라도 했어야만 하는 일입니다. 다들 100%만족은 못하겠지만
보상도 했고요.

일제시대 일본 놈들이 철도깔고 건물 지은거랑 서울시민 세금으로
서울시민들 살기 좋게 꾸민거랑 비교하는게 제 정신으로 할수 있는 말인지가 더 궁금하네요.

정신 좀 차리세요.
          
친일타파 16-04-22 16:02
   
     
친일타파 16-04-22 16:01
   
http://ybpress.tistory.com/86

일제가 우리나라 쳐 들어와서 철도 깔아 줬고 건물 지어 줬으니 그건 일본의 업적인가??

청계천 원주민 다 내쫓고 깨끗하게만 만들면 업적이 되는가?

이거 보시면 그런소리 못합니다.
          
좀비스타일 16-04-22 17:21
   
일제시대 일본 놈들이 철도깔고 건물 지은거랑 서울시민 세금으로
서울시민들 살기 좋게 꾸민거랑 비교하는게 제 정신으로 할수 있는 말인지가 더 궁금하네요.

정신 좀 차리세요. ㅉㅉㅉㅉ

고가도로 무너져서 대형인명사고라도 났었으면 또 서울시장이 빨리 복원 안해서
무너졌다고 떠드실게 눈에 훤하네요.
               
븟새 16-04-22 18:26
   
거 ㅉㅉ 좀 안하시면 안되나요? 자기 할 말만 하면 되는 것을 ㅉㅉ 거리면서 비아냥대는 모습 굉장히 거슬립니다만
나즈굴 16-04-22 11:40
   
저때가 한 전후 15년 정도 되나.  복구가 덜됬나. .ㄷㄷ
sky하늘 16-04-22 12:04
   
70년대면 불과 40년전인데 마치 5~60년대 같은데....
70년대 초반에 이미 세운상가가 있었다는...대부분 70년대가 아닐듯
hihi 16-04-22 12:09
   
저곳이 청계천이라면 60년대 사진입니다.

이미 60년대말 70년대초에는 청계천에 불나서 사람 많이 죽고

강제철거및 이주가 시작되었지요.

그때 그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킨게 지금의 성남입니다.

산비탈에 땅 조금씩 주고 집짓고 살게....
     
포물선 16-04-22 12:20
   
사진작가 노무라 모토유키 :1970년대 서울 청계천 선교는 세계 기독교계에서 빈민선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역사적 사역이다. 이 사역은 전 재산을 팔아 헌신했던 한 일본인 목사의 피와 땀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hi 16-04-22 12:34
   
1970년대에는 이미 사진과같이 온전한 모습의 청계천은 존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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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66~68년 도시 미화와 정비라는 명목으로 청개천 복개공사를 결정하고 무허가 판자촌 일소 대책을 밀어부쳤다. 서울 전역 판자촌을 대책없이 강제 철거했다. 무려 4만3천동이나.
 
그리고 철거민 50만명(후에 35만명으로 변경)을 수용해 정착시킬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계획을 세웠다. 그 후보지로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20Km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을 선정하여 이를 ‘광주대단지’라 명명하였다. 이 지역에 경기도 광주군 성남출장소를 설치했다.
 
광주대단지 조성계획의 경우도 발표 당시에는 집없는 빈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의 서울시내 무허가 판자집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이 사업은 "시내 18만 채의 무허가 건물 중 우선 5만채를 헐어 옮겨 수도 근교에 새로운 위성도시로 개발을 촉진해 나가겠다"는 구상 아래 1970년까지 3년 동안에 경기도 광주군의 약 200만평의 땅에 50만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개발하여 이곳에 불량주택 주민 약 55,650 세대 278,000명을 이주시킬 예정이었다.
 

 (초기 천막촌)
 
그러나 신도시 개발 계획과는 달리 그 곳 산기슭 구릉지에 대충 나무만 베어내고 토지도 다듬지 않은 채 택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969년 5월 2일 첫 철거민 48세대 154명이 트럭으로 이곳에 실려 왔다. 이를 시 발 로 정부는 광주대단지에 연이어 철거민들을 이주시켰다. 이렇게 무모한 ‘선입주 후건설’ 이주계획을 단행하며 허허벌판에 냉동이쳐진 철거민들에게 정부는 임시로 천막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정부는 청계천변과 영등포, 용산 등지의 철거민들을 대규모로 성남에 이주시켰다. 당시 1971년 8월까지 2년 남짓 동안 성남으로 강제 이주당해 온 철거민 수만 해도 약 12만 5천명에 달했다. 토지 분양과 일터를 약속하고 막무가내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당시 상황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청계천변에 살던 판차촌 사람들을 하루에 수천명씩 차에 싣고와 정비도 안된 언덕에 실어다 놓았다. 기반시설은 텐트가 전부였다. 심지어 당시 상당수의 사람들은 하나의 텐트에서 두 가족 이상이 살 정도로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이렇다보니 천막촌도 극도로 과밀화되었다.
               
TimeMaster 16-04-22 15:26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청계천이라고 하면 지금의 인공적으로 만든 청계천 주변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청계천이 흐르는 부근은 다 청계천주변이라고 했고 청계천을 따라 여러 판자촌이 있었죠.

성남등으로 이주시키는 작업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거라 몇년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70년대초중까지는 청계천주변에 아직 판자촌등이 남아있었습니다.

1973년 노무라씨가 찍은 답십리쪽 청계천 사진입니다.( http://www.museum.seoul.kr/exh2/foreigners/html/content/con_sub06_35.html )

1975년 개봉했던 '춘자의 사랑 이야기' 포스터가 붙어있는 청계촌 판자집의 모습입니다.( http://www.museum.seoul.kr/exh2/foreigners/html/content/con_sub06_52.html )
개팔복 16-04-22 12:17
   
전국토가 전쟁으로 불바다가 된 시점에선 정말 힘들게 사신분들이죠 ..나라의 경제를 일으킨분들임
쾌도난마 16-04-22 12:27
   
나라의 경제를 일으켰으나, 그들의 해석에 따라 그들의 영광은 IMF때 끝났지요. 지금은 그 영광에 축복받아 편히 쉬시면 되는데..
알탕 16-04-22 12:41
   
전쟁직후~60년대초 사진같네요.
청계천 고가도로 완공년도가 1969년이니깐 저사진이 70년대 일리가 없죠.
나무와바람 16-04-22 12:44
   
50~60년대인가 했는데....70년대라니 이상한데요...어디서 제목까지 퍼오신 건지 모르겠지만....수정을 하셔야 할 듯..
cungurum7 16-04-22 13:08
   
70년 대가 맞네요. 중간에 전농배수펌프장이 73년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오세아니아 16-04-22 13:12
   
방금 점심시간때 청계천 산책로로 걷기운동 했는데....사진을 보니 안타깝네요. 비라도 오면 계천 주변집 온저하지 못할 듯
Banff 16-04-22 13:30
   
사진 중간에 지하철 차량 기지 건설 간판이 있는거 보니 70년대 초 맞을듯합니다.  검색해보니 서울지하철 1호선은 71년 시공, 74년 완공이군요.

그리고, 사진찍은 노무라 목사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구제활동 하신 분이군요. 

청계천 빈민 돌본 일본인 목사 명예서울시민 선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562698
하얀그림자 16-04-22 13:44
   
전쟁 직후부터 60년대 중후반 까지의 사진 같네요 70년대 사진이 포함되 있는지는 몰라도 70년대 초반을 조금이라는 아시는 분이라면
저 사진의 대부분이 70년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ggggbaby 16-04-22 13:57
   
영화 강남 1970 이랑 비교해봐도 70년대가 아니라고 딱히 부정할 이유가 없어보이네요.
80년 중반까지도 미개발 지역들이 많았는데, 그런거 가지고 쪽팔릴거 없잖아요. 못산 건 맞고.
Banff 16-04-22 14:18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20623

노무라 목사가 68년에 처음 한국와서 70년대 초중반에 청계천 구제활동했다고 하니, 적어도 68년 이후일듯하고, 저도 처음엔 아니겠지 했는데, 아래사진보니 맞다고 판단되는군요. 1969년 3월 청계천 판자촌 화재사진.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6&contents_id=2450
TimeMaster 16-04-22 14:58
   
요새 어린분들은 안믿으시겠지만 7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70년대는 맞아요. 다만 70년대초중반 사진인거죠. 중간중간 철거된 집들이 있는 사진을 보면 성남으로 강제이주시키며 철거중인때인것 같구요. 제가 가봤던 70년대 후반은 저 사진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저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가 다 저랬다식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일부 지역일 뿐이고 청계천 근처였던 서울역 근방은 이미 제법 괜찮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을때였습니다. 제가 78년 서울역앞에서 현재 대우빌딩방향으로 찍은 사진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정도입니다.

노무라씨는 1968년도에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고 하니까 60년대 사진도 섞여있는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를 가서 보시면 이 사진들과는 다른 당시 노무라씨가 찍은 서울의 모습들을 보실수 있습니다.(이 사진들에도 1968년때 찍었던 사진들이 있습니다.)

http://www.museum.seoul.kr/exh2/foreigners/html/content/con_sub06_01.html
포링로크 16-04-22 21:22
   
지금 청계천하고 비교하니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