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려고만 하면 한도끝도 없습니다. 청계천은 누가 뭐래도 이명박의 업적 맞아요.
자기 시장할때 무리하게 끝내려한 것도 이유가 없지는 않고요.
제가 매일 그쪽으로 다녔었는데 정말 3.1고가도로 아래는 완전 쓰레기장보다도
더 더럽고 어두침침 했습니다. 교통체증도 엄청 심했고요. 그리고 청계천 복원
안하면 위험하다고 공사 시작하기 전에도 거의 10년은 떠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상인들과 일부 시민들 반대에 부딪혀서 매번 공사는 무산됐죠.
천천히 계획 잘세워서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 누가 시장됐어도 그렇게 못했을겁니다.
또 반대에 막혀서 아예 안했겠죠.
아마 이명박이 밀어부치지 않았으면 아직도 그대로일지 모르고 결국 무너져서 대형사고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입으로만 나불대는건 누구나 다 합니다. 반대만 하는 것도 쉽고요.
그런데 정말 80년대 중국 같은 분위기로 썩어가던 서울 시내 모습이 그나마 바뀌기 시작한게
언제부터일까요?
심지어 서울숲 개장한다고 할때 넓은데 오는 사람이 없어서 범죄소굴이 될거다.
라고 까는 기사까지 떴던거 기억하시나요? 지금 서울숲 없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 바글바글
하게 이용합니다.
1970년대에는 이미 사진과같이 온전한 모습의 청계천은 존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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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66~68년 도시 미화와 정비라는 명목으로 청개천 복개공사를 결정하고 무허가 판자촌 일소 대책을 밀어부쳤다. 서울 전역 판자촌을 대책없이 강제 철거했다. 무려 4만3천동이나.
그리고 철거민 50만명(후에 35만명으로 변경)을 수용해 정착시킬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계획을 세웠다. 그 후보지로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20Km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을 선정하여 이를 ‘광주대단지’라 명명하였다. 이 지역에 경기도 광주군 성남출장소를 설치했다.
광주대단지 조성계획의 경우도 발표 당시에는 집없는 빈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의 서울시내 무허가 판자집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이 사업은 "시내 18만 채의 무허가 건물 중 우선 5만채를 헐어 옮겨 수도 근교에 새로운 위성도시로 개발을 촉진해 나가겠다"는 구상 아래 1970년까지 3년 동안에 경기도 광주군의 약 200만평의 땅에 50만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개발하여 이곳에 불량주택 주민 약 55,650 세대 278,000명을 이주시킬 예정이었다.
(초기 천막촌)
그러나 신도시 개발 계획과는 달리 그 곳 산기슭 구릉지에 대충 나무만 베어내고 토지도 다듬지 않은 채 택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969년 5월 2일 첫 철거민 48세대 154명이 트럭으로 이곳에 실려 왔다. 이를 시 발 로 정부는 광주대단지에 연이어 철거민들을 이주시켰다. 이렇게 무모한 ‘선입주 후건설’ 이주계획을 단행하며 허허벌판에 냉동이쳐진 철거민들에게 정부는 임시로 천막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정부는 청계천변과 영등포, 용산 등지의 철거민들을 대규모로 성남에 이주시켰다. 당시 1971년 8월까지 2년 남짓 동안 성남으로 강제 이주당해 온 철거민 수만 해도 약 12만 5천명에 달했다. 토지 분양과 일터를 약속하고 막무가내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당시 상황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청계천변에 살던 판차촌 사람들을 하루에 수천명씩 차에 싣고와 정비도 안된 언덕에 실어다 놓았다. 기반시설은 텐트가 전부였다. 심지어 당시 상당수의 사람들은 하나의 텐트에서 두 가족 이상이 살 정도로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이렇다보니 천막촌도 극도로 과밀화되었다.
요새 어린분들은 안믿으시겠지만 7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70년대는 맞아요. 다만 70년대초중반 사진인거죠. 중간중간 철거된 집들이 있는 사진을 보면 성남으로 강제이주시키며 철거중인때인것 같구요. 제가 가봤던 70년대 후반은 저 사진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저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가 다 저랬다식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일부 지역일 뿐이고 청계천 근처였던 서울역 근방은 이미 제법 괜찮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을때였습니다. 제가 78년 서울역앞에서 현재 대우빌딩방향으로 찍은 사진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정도입니다.
노무라씨는 1968년도에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고 하니까 60년대 사진도 섞여있는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를 가서 보시면 이 사진들과는 다른 당시 노무라씨가 찍은 서울의 모습들을 보실수 있습니다.(이 사진들에도 1968년때 찍었던 사진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