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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25 23:15
조지 뮐러 - 기도로 산 사람
 글쓴이 : 화검상
조회 : 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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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쳔이라면 한번쯤은 조지 뮐러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거나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 들어 보았을 것이다.


조지 뮐러,

고아를 살핀 65년간의 기도 그리고 하늘의 응답


오늘의 성도들은 조지뮐러라는 이름을 들으면 ‘5만번의 기도응답 영국 고아의 아버지’ 라는 말을 떠 올린다. 그는 수많은 예화의 주인공으로 오늘도 설교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뮐러는 불우 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한 신앙인 일 뿐 아니라 영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초교파 공동체 운동인 ‘형제단’을 설립해 교회 개혁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뮐러가 5만 번의기도 응답을 받은 주 무대는 영국 브리스톨의 고아원이었다.

뮐러가 고아원을 시작한 데는 고아들에 대한 연민이상의 결심이 있었다.

뮐러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은 인본주의 철학과 자유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이상 신은 필요 없다’ 는 자만이 팽배했다.


뮐러는 이런 불신앙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은 과거와 이 순간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는 것을 증거 하기위해 브리스톨의 작은 마을 애슐리 타운에 고아원을 설립했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뮐러에게 기도 이외에는 의지 할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확신에 차 있었고 힘이 있었다.

그가 기도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곳,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서 응답이 왔고, 애슐리의 고아들은 한 끼도 굶지 않았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의 승리를 직접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뮐러의 신앙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 중에 허드슨 테일러가 있었다.

말년에 유럽 전역과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 등지로 복음을 전하러 다닌, 뮐러의 모습을 보면서 허드슨 테일러도 오직, 기도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갖고, 중국 선교의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조지 뮐러는 1805년 프로이센에서 세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술꾼인 아버지 때문에 가정환경이 평탄치는 않았다.

혼란스럽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뮐러는 교도소까지 들락거렸다. 경찰들도 그를 감당하지 못해 몇 번이나 그냥 풀어주고 심지어 도망치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였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뮐러는 ‘나는 도대체 기독교인이면서도 왜 이렇게 못된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에 남몰래 괴로워했다고 훗날 털어 놓았다.

그의 회심은 갑작스럽고 순간적인 것이었다.

어느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나쁜 버릇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한번 당신의 자녀로 삼은 사람을 절대로 버리는 법이 없다.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죄와 싸우라.”


한번 시작한 거짓말과 절도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밀러는 그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 그 뒤 그는 매일 새벽4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구제 불능의 비행청소년이었던 조지 뮐러는 19세 되던

1824년 할레대학교에 신학생으로 입학 한다. 


할레대학교는 경건주의 운동이 시작된 곳이었다.

조지 뮐러는 그곳에서 경건주의 모범에 참석하면서 훗날 그의 생애를 변화시킨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를 배운다.

뮐러는 할레대 모임에 참석했던 순간을 “마치 내가 한 마리의 새가 돼 푸른 하늘을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고 묘사했다.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한 뮐러는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데번 항에서 잠시 목회를 한다. 그 후 그가 브리스톨로 사역지를 옮긴 것은 1834년 콜레라가 도시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때였다. 브리스톨은 먹지 못하는 허기와 알지 못하는 정신의 허기에 허덕이고 있었다.


뮐러는 그곳에서 기성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 교파와 계급을 초월한 성찬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의 베데스다 교회는 유아 세례와 성직자 제도 국가에서 받는 급료를 폐지하고 철저하게 개인의 고백과 헌신에 기초한 신앙공동체였다.

브리스톨에 교회를 개척한 뮐러는 고아들이 수용돼 있던 구빈원의 실상을 목격하고 고아원을 설립하게 된다. 구빈원의 아이들은 먹지 못해 해골처럼 말라 있었고 병으로 퉁퉁 부어있었다. 당시 뮐러는 이미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학교는 가르치기만 하면 되지만 고아원은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하는데 어떻게 그걸 감당할거냐” 는 비난과 충고가 쏟아졌다.

이미 대학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했던 뮐러였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는 시편 81편 10절 말씀에 그는 다시 힘과 용기를 얻었다.

“하나님 제가 고아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제 마음에 불러일으키신 소원임을 믿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의 종으로만 일 뿐입니다.”


뮐러의 태도에 감명 받은 사람들은 고아원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열고 모금운동을 벌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뮐러는 거절을 했다.

그는 한번에 마련한 물질에 기대어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은 하나님의 듯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 만나와 매추라기에만 의존해 40년간 광야의 식탁을 차렸던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처럼 처음부터 자원하는 사람들의 성금과 성물로 고아원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그의 기도였다.


고아원이 세워진 뒤 어려움은 계속 찾아왔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저녁 식탁을 차리면서 내일 아침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날들이 되풀이됐다. 뮐러는 끊임없는 기도로 고아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간구했다.

그가 기도 했던 물품과 음식은 언제나 어김없이 공급됐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고아원을 찾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아침 고아원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400명의 고아들과 함께 빈 식탁에 둘러앉은 뮐러는 손을 맞잡고 식사기도를 드렸다. 그의 기도가 끝났을 때, 한 대의 마차가 고아원 문을 두드렸다.

그 마차에는 아침에 막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가 가득했다.

인근 공장에서 종업원들을 위한 야유회에 쓰기위해 주문했지만 폭우로 취소되자 고아들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뮐러는 이처럼 고아원을 운영해 온 65년 동안 순간순간 기적적인 주님의 공급을 체험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선한 것으로 주신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고, 그 믿음은 늘 사실로 증명됐다.

조지 뮐러는 말년에 고아원 운영을 제임스 라이트에게 맡기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과 북미 호주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했다.


조지 뮐러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는 교파를 초월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을

한 가족으로 여겼다.

그를 초청하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1898년 3월 10일 이른 아침

조지 뮐러는 평온히 잠든 채 발견됐다.

전날까지 일상 업무에 분주 했고 평상시와 같이 기도회에 참석했던 그는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순간처럼 짧은 시간에 아무런 고통도 없이 조용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애슐리 타운 고아원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뮐러가 헨리 크레이크와 함께 개척한 베다스다교회는 초대 교회의 정신을 실천하는 형제단 운영으로 발전해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과 미국 호주 등에 퍼져있다.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형제단 운영은 갖가지 종파로 분열된 현대 교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의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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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짖는소리 16-03-25 23:19
   
이해가안되는부분 ...
왜 욕먹을꺼알면서 이런글을 올리는지...
조지가 이슈인가요?
화검상 16-03-25 23:20
   
뮐러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은 "인본주의 철학"과 "자유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이상 신은 필요 없다’ 는 자만이 팽배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동일해 보였습니다.
     
식쿤 16-03-25 23:37
   
기독경에서 그려지는 야훼란 작자는 인류가 믿고 의지해도 괜찮을만큼 '안전하고 정상적인' 존재가 아님.

1. 인간을 창조하고 낙원을 꾸며놨으면서 낙원안에 함정-선악과를 배치.
피조물의 낙원과 피조물을 파멸 시킬 수 있는 함정을 함께 배치하는 모순된 모습에서 가학성도착증
정신이상자의 모습을 볼 수 있음

2. 자신이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부여한-의도한 바인지 의도밖의 오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하니 의도적이라고 가정-피조물들이 자유의지에 의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하여
생명체의 대부분을 모조리 익사시켜 살해함.
리셋증후군-뭔가 자기마음에 안드는 상황이 발생했을때 모든걸 갈아엎고 새로 리셋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병의 일종-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음.

3. 언약궤라는 기괴한 돌쪼가리를 담은 관이 있는데 이 관에 손을 대면 그 즉시 죽이겠다 선언함.
그리고 그 궤짝이 떨어지려는 모습을 보고 달려와 쓰러지지 않게 붙잡은 사람을 진짜로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살해함.
야훼란 자의 잔인성과 생명경시 사상을 볼 수 있음. 사람목숨따윈 그에게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함.

4. 대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약속 한 뒤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망시킴.
칼로 찔러죽이지 않겠다 약속 한 뒤 총으로 쏴죽이는 처세의 귀재.

5. 야훼가 모든것의 창조자라 주장하는데 이는 악과 죄도 그가 창조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악의 대거두인 사탄 역시 야훼 휘하의 천사였다.
부하 통솔능력이 전무한 무능한 상사이자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를 아랫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악마 중의 악마이자 가장 더러운 갑질을 수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야훼라는 이름의 사이코패스는 없어져야 하며 인류는 과학과 이성을 갈고 닦아 우주 어딘가에 숨어서 둘려움에 떨고 있을 야훼란 악마를 찾아내어 죽여야 한다.
사막늑대 16-03-25 23:26
   
저희 고모는 아이가 생기지않아 장독대에 물한사발 따라놓고 매일 아이가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5년간의 간절한 기도 끝에 결혼후 14년만에 아이를 갖게되었습니다. 하늘님을 믿으세욥
     
화검상 16-03-25 23:29
   
하늘님은 예수님이 증거되기 전에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하늘님이 현재의 예수님이신 것을 모르시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 잘몰랐던 '신'의 존재가 바로 성경에 나온 예수님이신걸요~
          
사막늑대 16-03-25 23:31
   
조지뮐러도 사발에 물 받아놓고 기도했나보네요
          
coooolgu 16-03-25 23:34
   
증거라니 이 무슨 개에 뿔따구 돋는 소리요? 그딴게 증거라면

아후라마즈다도 실존인물이고 브라흐마도 실존인물이며 가네쉬도 실존인물이 되는구만
          
사막늑대 16-03-25 23:36
   
저 위에 그림보면 뮐러 앞에 사발이 보일겁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지말고 사발을 놓고 기도하세요 그럼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천지신명과 하늘님의 뜻이 함께 하기를
          
포플란 16-03-26 05:52
   
제가 버스에 탔는데 급똥이 마려워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나 배아픔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대상을 바꿔 제우스신께 간절히 기도하니 버스가 곧 목적지에 도착하여
화장실로 달려가 위급함을 모면할 수 있었으니 이는 제우스신의 증거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화검상님도 중동 잡신 예수나 야훼따위 믿지 말고 제우스신님을 믿으셔서 성령됨을
함께 느끼도록 하시지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