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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3 12:54
중국이 부러울때
 글쓴이 : 소보로0
조회 : 2,692  

중국 미세먼지주범에 표절국가라서 싫어해지만
여자와 남자평등은 한국보다 나은거 같아서 부러움 직장근무도 마찬가지고
중국은 맞벌이안하는 집안이 이상한거임. 왠만해서는 다 맞벌이함 
혼수는 남자가 지참금까지 줘야할정도로 에바지만 혼수는 빼고 근무로만 본다면 
아침은 대부분이 외식으로 해결 우리나라에 아침식당 거의안하는거와 달리 중국은 아침에여는 식당이 굉장히 많음 거의대부분이 식당에서 해결 저렴함
그리고 6시에 퇴근 사회주의국가라서 그런지 야근하는 문화가 아님
업종에따라 다르지만 5시 6시땡하면 집에가서 밥해야한다고 퇴근함
부부가 되서 번거롭게살지말고 6시땡하면 집에가서 같이 저녘한끼 만들어먹고 애키우는거 얼마나 좋냐. 
여자도 남자도 같이일하고 같이퇴근하고 한끼만 같이먹고 주말에는 푹쉬고
근무환경은 낙후되있을지라도 만족도는 큰거같아서 이건부럽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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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쥬스 18-06-03 12:59
   
개인적으로 이런 만족감을 한국내 중국인 노동자들이 알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유수8 18-06-03 13:05
   


님은 걍 시황제가 던져주는 떡밥이나 쳐 드시면서....  중국에서 만족하며 사시길...
난 대한민국이 만의 하나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가 될지라도 내 나라에 긍지를 느끼며 어떻게든 살아갈테니..
ㅉㅉㅉㅉㅉㅉ
     
linglol 18-06-03 13: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럽다니 ㅋㅋ 짱개를 부러워하는뇌가어찌된건지 ㅋㅋㅋㅋ
          
유수8 18-06-03 13:1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보로0 18-06-03 23:10
   
짱깨라고 해도 본받을건 본받아야 하지않나요?
결혼하는순간 대부분 남자들이 외벌이 +여자들은 가사노동에 전념하는데
남녀모두 맞벌이+ 야근문화없는건 부러워할만 하지않나요?
그럼 님은 결혼해서 애가지면 부인이 일그만두고 집에서 놀고
6시퇴근인데 정시퇴근못하고 회사에.잡혀있는게 좋으신건가요?
중국의 본받을점은 본받아야한다고 봅니다
               
merong 18-06-04 09:49
   
우리나라가 이상한거지, 외국은 많이들 그래요.
좋은데 다 놔두고 굳이 중국 본받아서 뭐하게요.
♡레이나♡ 18-06-03 13:08
   
네 다음 중국인
로켓토끼 18-06-03 13:08
   
중국가서 사세요~~ ㅋㅋㅋ 별..
스랜트 18-06-03 13:12
   
저런건 다 필요없고..굳이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등산, 여행 좋아하는데 중국의 천혜의 자연환경(?)은
부럽다..
su수 18-06-03 13:13
   
그리 부러우면 중국 가세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아! 중국에서 싫어할 수도 있겠군요.
갱스타 18-06-03 13:14
   
중국이 그렇다고요? 하하하!
아마르칸 18-06-03 13:15
   
위구르족 여자를 볼 수 있겠군요.
화난늑대 18-06-03 13:18
   
살림을 죄다 남자가 함ㅋㅋ
그리고 남자가 처 맞고 삼
     
linglol 18-06-03 13:20
   
어여 글쓴이 보내야죠 ㅋㅋㅋㅋㅋ
칼까마귀 18-06-03 13:20
   
진핑이 황제로 등극하는 순간에 중국은 서서히 몰락
할것입니다. 진핑이 사후에 자식이 그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면 피의 숙청이 당연한것이고 그 끝은 분열지도...
고구려의혼 18-06-03 13:21
   
ㅋㅋㅋㅋ 살다살다.. 짱궈들을 찬양하는 사람이 나올줄이야.... 참... 기가찬다...
에테리스 18-06-03 13:21
   
뿌직
블랙커피 18-06-03 13:22
   
123ㅁㅁㅁ 18-06-03 13:32
   
요즘은 국제화 시대이고 중국 이민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쉬운편아닌가요?
부러우면 떠나면 됩니다. 굳이 국적에 얽매이지 마세요.
저는 님이 중국이민가는거 좋다고 생각합니다.
Doflamingo 18-06-03 13:32
   
짱깨가 부럽다...  너님 짱깨가서 짱깨랑 결혼해서 사세요

ㅋㅋ 여기서 개그하지 말고
5000원 18-06-03 13:45
   
스크레치 18-06-03 14:41
   
더럽게 못사는 후진국

이거 하나만으로도 중국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홍만두 18-06-03 15:48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공산주의 국가에선 노동자가 우선이죠
현실이 어떤가든간에 노동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기때문에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거죠 
즉. 노동력이 있어야 노동자로 보기때문이죠
다른 나라에서 기술력으로 앞서 나갈때
개방전인 중공은 봉건시대마냥 모든걸 인력으로 해결할때라
노동력하나 하나가 부족할때입니다.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려면 농사를 어마어마 하게 지어야하나
비료 등등 농업기술도 1000년전이나 같은 기술로 짓다보니 농업 생산력도 형편이 없는 상황이고
공산주의 특유의 비효율이 더해지다보니
1960년대 대기근을 초래했고 수천만명의 인구가  굶어 죽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이때가 어느 정도 였냐면  중국의 곳곳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식인으로 기근을 버텨 낼 정도로 심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정도의 굶어 죽는 사태에서 더욱더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해진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남녀가 어딨습니까?
공산주의 사상자체가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을 없애 버렸기때문에
가부장 사상도 자연스럽게 없어져야 했습니다.
남녀 똑같이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남녀 생산목표도 똑같습니다.
이 상황에선 일도 죽어라 해야하고
가정에서 별도의 노동을 또 해야 하는건 물리적으로 할 수가 없죠
자연스럽게 남녀 가정의 일을 같이 하는 수 밖에 없는거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남녀의 생산 목표달성을 남녀 차이 없이 주어졌다는게 중요합니다.

여자니까 너네는 여기까지만 일해 이런게 없었음
수렵생활 이후 농경생활을 해온 이래로 남녀가 같은 양의 노동력을 해야 할 상황은 처음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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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듬해인 1950년 5월 1일 중국에서는 농민들의 염원인 토지개혁과 더불어 ‘하늘의 절반인 여성들의 해방’을 가져다준 새 혼인법이 공표됐다. 혼인법은 부권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천명하면서, 일부다처제나 매매혼 같은 봉건적 혼인제도를 폐지하고, 혼인의 자유, 일부일처, 남녀평등의 원칙을 확립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2인자인 저우언라이의 부인이자 전국부녀연합회*의 부위원장이었던 덩잉차오는 “여성해방은 여성에게 최우선의 과제”라고 강조하며 공산당 간부들에게 혼인법을 학습시키고 남녀 교제의 자유와 미혼 남녀의 연애의 자유를 강조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회적으로는 남녀평등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오히려 이 조직은 붕괴 상태에 있었다.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여기는 태도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1978년 부녀련은 여성 권리의 옹호자처럼 비치며 재건됐고, 1995년에는 제4회 국제연합 세계여성회의의 NGO 포럼을 주관했다. 부녀련은 <중국 부녀>를 발간한다.

신중국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강력한 국민국가를 서둘러 건설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더욱이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보며 마오쩌둥은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결과가 1955년부터 시작된 인민공사 추진과 1958~60년의 대약진운동이었다.

1955년 마오쩌둥은 ‘”여성의 노동전선 진출”에 부쳐’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여성 대중을 생산 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생산에서는 반드시 남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 한다. 참된 남녀평등은 사회주의 개조를 위한 전체 과정에서 제일 먼저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진정한 관심사는 남녀평등이나 여성 해방이 아니었다. 여성 노동력을 생산성 향상 과정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1958년 대약진운동을 시작할 당시 “사람의 입은 한 개지만 손은 두 개다” 하며, “생산 향상에서 6억의 인구는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인구 증가를 위해 여성들의 출산이 장려됐다.

1959년 인민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전국 여성의 95퍼센트가 인민공사에 소속돼 농업, 어업, 목축업, 임업 등에서 남성 노동자들과 큰 구별 없이 노동을 했다. 당시 가사노동을 줄여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동 식당, 공동 세탁소, 공동 탁아소 등이 설치됐다. 또, 여성을 끌어내기 위해 “시대는 변했다. 남녀는 평등하게 됐다. 남성 동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성 동지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됐다. 이런 배경에서 ‘철의 처녀’나 ‘맨발의 의사’ 등 영웅적·헌신적 여성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인민공사 내에는 여성차별이 구조화돼 있었다. 인민공사에는 ‘노동점수체계’가 시행됐는데, 여성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하루 7~8점밖에 벌 수 없지만 남성들은 9~10점을 벌 수 있었다. 마오쩌둥이 말한 세 가지 격차(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농민) 외에도 또 다른 격차가 있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여성 차별적 노동점수체계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남성보다 약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됐지만, 남녀평등의 구호 하에 중공업 육체노동 일자리에 여성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것과는 모순됐다.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저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이 차지했고, 국유기업에서 해고할 때도 여성이 우선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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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결코 여성 인권 우대 등등을 노린게 아니란거죠

남녀 모두 같이 일하고 노동 생산성도 똑같이 취급했다는 것이
중국의 수렵생활 이래로 내려온 가부장적 습관을 벗어나게 됐던 핵심 포인트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녀가 하는일을 따로 정해져 있고
여자를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때문에
가혹하게 노동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없죠

당시 중국에선  도로를 닦을때나 중공업 공장에서 무기를 생산 할때나
남성의 전투 병력 유지를 위해
오히려 여자가 더 가혹한 환경에 내몰린 적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남자 여자 따로 일한게 아니라 섞여서 일했기때문에 무거운 돌을 옮길때
더 무거운쪽은 남자가 덜 무거운쪽은 여자가 드는식으로 같이 일했다는게 포인트입니다.

대기근 이후로 여성의 노동력이 절실한 상태에서
이 과정 없이는 만년이상 내려온 가부장적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요
즉, 하루종일 부부가 중노동을하고 저녁에 와서 여자만 일할 수가 없었다는거죠

중공의 개혁 개방이후로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60~70년대식 무차별적인 노동생산은 점차 줄어들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거죠
그당시 일했던 부모세대가 있었기때문에 그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남녀 일은 같이 하는걸로 배웠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게 된거죠
중국도 대기근을 겪어내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인구제한 정책을 실시하게 되죠
이때 중국은 남아 선호사상때문에 성비가 무너져서
평등은 물건너 가고 남자가 지참금을 내야할 정도로 오히려 중국 여자가 득을 보는 상황입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핵심은...............

대기근 --->여자노동력 필요---->똑같은 노동(동임금 동노동)---->가부장 탈피---->중국 여성인권과는 별개문제

---->중국이 남녀차별없다 ?

----->개방이후  중국식 자본주의하에  남아선호 인구성비 붕괴로 현재는 여성상위시대


이렇게 되겠습니다.

남녀평등 차원에서 중국이 부럽다 중국을 본받아야한다?
즉 대기근을 우리도 겪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도 IMF를 겪으면서 비정규직이 비약적으로 늘어남으로서 사회적으로 몸살을 앓는것 처럼
외부적 충격이 오지 않는 이상은 서서히 변화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강운 18-06-03 15:49
   
아침에 밥해준다라 ㅋㅋ
호오 호강 받는 남편분이네요
쥬스알리아 18-06-03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