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유교와 유학이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별 차이 없습니다.
유학은 한자로 儒學으로 유가의 내용을 배우는 것이고, 유교는 儒敎로 유가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훈(敎訓)도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敎를 쓰고 있습니다.
유교와 유학은 유가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배우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유가의 시조인 공자도 religion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religion은 '재결합하다'란 뜻에서 유래해서 '신과의 합일'이란 뜻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religion은 신과 신의 세계(내세)가 동반되기 마련인데, 공자는 신과 내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공자의 제자 자로가 내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살아 생전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세를 알겠느냐?"고 대답을 합니다.
원래 제사는 조상신을 섬기는 제의로 주나라 시절까지 행해져왔지만,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조상신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졌습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킬 때에는 상나라의 조상신을 두려워 하는 생각에 상나라의 후예들이 종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땅을 줬습니다.
이렇게 상나라의 후손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가 '송양지인'으로 유명한 송나라입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조상신에 대한 경외는 사라지고, 나라와 가문의 씨를 단절시키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공자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중간시기에 살다간 인물로 이런 사상의 변화에 따라 제사를 조상신을 섬기는 제의에서 조상에 대한 효행과 공경을 표하고 가족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의식으로 변화시킵니다.
공자의 귀신에 대한 인식은 그의 생전 일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역시 자로가 귀신에 대해 물어보자 공자는 "사람 섬길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는 것을 물어보느냐?"고 답합니다. 또한 귀신에 대해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해야 한다(敬鬼神而遠之)."라고 말하며 귀신을 부르는 짓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점복이나 강령술과 같은 술법은 존재하지 않고, 민간에서 이루어지던 점복 등은 도교에서 온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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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한자가 본문과 상관이 없으므로 그 부분을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