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먼저 등재신청하자 "중의학으로 흡수 공작"
"한국이 원조" 맞불 놓기 "사상의학, 中에는 없어"
침구(鍼灸·침과 뜸)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한의학(韓醫學)과 중의학(中醫學)이 격돌할 전망이다. 중국이 중의학의 침구를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한 데 대해, 대한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은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침구는 한국이 원조다. (중국에 맞서) 한의 침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한의학계에선 독자 의학으로 발전해온 우리 한의학을, 중국이 10여년 전부터 '조의학(朝醫學·조선의 의학)'으로 폄하하고 중의학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공작을 계속해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북공정(한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에 이어 '한의학 공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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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침구를 세계무형유산으로 신청한 것은 지난해 우리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에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곤 회장은 "중국의 '한의학 공정'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침구 등 전통의학이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권 전통의학의 기원이 중국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의학은 우리 민족, 우리 땅에 맞는 독자적인 의학으로 발전하면서 조선시대 세종 이후에는 중의학과 다른 학문으로 정착했고, 19세기 말에는 이제마 선생에 의해 '사상(四象)체질의학'이 탄생했다. 이는 중국에 아예 없는 것으로 지난 8월 한·중 학술대회에서도 중의학자들이 사상체질의학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되는 '침구'는 명백하게 우리나라가 원조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나.
"침구의 전신은 '폄석'인데, 한의학의 가장 오래된 고서(古書)인 '황제내경'에 '폄석은 동방에서 온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황제내경 이후 많은 중의학·한의학 서적에서도 같은 내용이 언급돼 있다. 중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동쪽은 연해주를 포함한 만주 일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침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의 침술이 중의 침술과 비교해 기원으로 보나 정통성으로 보나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동방'이 어디냐를 놓고 두 나라 학자들의 해석은 엇갈린다. 중국측은 동방이 중국 내에서의 동쪽, 산둥성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의계는 "중국은 한민족을 가리키는 동이족(東夷族)이 거주하는 지역을 동방이라 불렀고, 설사 중국 주장대로 산둥성 지역이라고 해도 이곳은 동이족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에서 기원했다는 해석이 된다"고 반박한다.
김 회장은 "유네스코에 충분한 자료와 문헌을 근거로 중의 침구 등재의 부당성을 고발하고, 한의계의 중지를 모아 한의 침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원조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한의학이 확실히 유리한 입장에 있고, 만약 중국이 "중의 침술은 별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 "한의 침술 역시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대만 등과 협력해서 대응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김 회장은 덧붙였다.
중국은 정부 부처인 중의학정책국에서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WHO는 전통의학에서 각국의 독특한 특징을 존중하라는 입장"이라며 "한의사협회와 협의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 전통의학 명칭도 '국제적 논쟁'
한의학을 포함한 아시아 전통의학의 또 다른 국제적 논쟁거리는 공식명칭이다. 각종 국제학회에서 중국 대표들은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전통중국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TCM을 아시아권 전통의학의 공식명칭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집요한 물밑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곤 회장은 "우리의 한의학, 일본의 황한의학(皇漢醫學), 몽골의 몽(蒙)의학, 베트남의 월(越)의학,인도의 아유르베다 등 각국이 각자의 토양에 맞는 전통의학을 가지고 있다"며 "아유르베다는 중의학에서 도입한 부분도 일부 있지만 독자적으로 발전해왔고, 몽의학은 러시아에서 넘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명칭은 의학 패권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더 민감하다. 만약 TCM이 공식명칭으로 선정된다면, 우리 한의학도 중국의 용어와 규정에 맞춰 표준화 작업을 해야 하고, 대학에서도 '중의학과'가 따로 생기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인삼이 세계적으로 최고 품질로 꼽히지만, 인삼의 국제 표준어는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일본말인 '진셍(ginseng)'으로 정착한 것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대다수 아시아 국가는 '전통의학(traditional medicine)'이라는 합의만 갖고, 국가별 명칭을 사용하자는 입장이다. 한국은 TKM(Traditional Korean Medicine), 일본은 TJM(Traditional Japanese Medicine)을 사용하는 식이다.
앞서 2008년 WHO가 침구의 혈위(穴位·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 표준을 정할 때도 한·중·일 3국의 전문가들이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365개 혈 자리 중 3개국이 이견을 보인 100여개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으나, 한국 한의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혈위가 다수 표준에 올랐다고 한의사협회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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