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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라 고향에 다녀왔는데 저도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제가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님에도 제가 어릴떄는 집안 일을 해주는 식모와 밖에 일을 해주시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저희 할아버지는 부원군댁 도령이란 애칭을 가지고 계셨었죠 ^^
제가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저희집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생신일떄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와서
밥을 해먹었고 집안에 곡식창고에서 하루 식사로 나간 쌀과 보리가 6가마니였습니다 (옛날에는 백미가 귀해서 보리를 혼합해서 밥을 했습니다 )한가마니는 쌀80kg입니다
그때마다 동내 아주머니들이 모두 오셔서 일손을 돕고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머리에 지고 돌아가셨죠
저희 할머니는 마을에서 밥짖는 연기가 나지않는 집이 있으면 자식들을 시켜서 그집에 쌀을 보내주었습니다
방문판매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언제나 저희 동내에 오시면 저희집에 오셔서 밥을 드시고 가셨죠
보리고개로 끼니가 어려운 분들은 저희집으로 오셔서 쌀과 보리를 얻어가셨습니다
저희집 사랑채에는 항상 아저씨들이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았고 아저씨들은 농번기에 논농사며 밭농사가 있을때 저희집일을 도와주셨습니다 저희집은 항상 할머니 6~7분이 말동무하며 지내셨고 사랑채에는 아저씨들 4~5분 정도가 지내셨습니다
집안 어르신들은 마을분들에게 끼니걱정없게 항상 풍족하게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누는 풍습이 갑자기 사라지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아주 우습게도 바로 텔레비젼이 보급되면서 부터 이런 풍습은 사라졌습니다
텔레비젼이 보급되면서 너도나도 텔레비젼에 나오는 서울사람들을 따라하게 되었고
더이상 베풀지도 않았으며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언어도 서울말을 아니면 부끄러워했고
이것은 전염병처럼 무섭게 퍼졌고 일손을 나누던 아저씨들은 서울에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일손을 돕고 자식들 먹일 음식을 가져가시던 아주머니들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더이상 얻어가는것을
하지않았습니다 부끄러울것도 없던 아이들은 가죽신발이 아닌 고무신이 부끄러웠고
물질이 없는것을 불평하며 더이상 나누지도 않고 부를 축적하기에 바빠졌습니다
저희마을에는 김치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김치라는 말은 서울에서 쓰던말이고 저희마을은 짠지라고 했지요 소금에 절여먹던 무 배추 짠지가 텔레비젼 보급으로 순수우리말이던 짠지는 외래종인 고추가루에 버무려 김치가 되었고 그당시 진짜 이름이 김치였던건 백김치 무김치뿐이였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않을것입니다
품앗이라는 풍습을 아십니까? 서로 일손이 필요할때 그집에 가서 일손을 도와주고 베풀고 나누는 풍습입니다
지금은 옆집사람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졌지요 옆집사람이 죽어도 시체를 반년이 넘어서야 발견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이런것들이 과연 좋아진 사회인지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과연 더 발전하고 풍족해진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회가 발전하면서 좋아진것들도 많습니다
저희집 머슴으로 알하셨던 분은 자식들이 모두 연대와 서울대를 졸업해 LG에 취업하고
지금은 아주 잘살고 계십니다 ^^ 머슴이라고 막대한게 아니라 저희할아버지가 자식처럼 대하셨고
결혼도 시켜주시고 결혼후 집도 지어주셨습니다
이런것들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누는 풍습이 없어진것이 아쉬울뿐입니다
- 개인적인 옛생각이지 자랑도 뭣도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