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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18 11:25
인류지혜의 총합, 인류경험의 정수
 글쓴이 : 만년삼
조회 : 1,224  

출처 : http://m.egloos.zum.com/azuremaya/v/4932641

그러나 법학은 특히 '법적 삼단논법'(juristischer Syllogismus)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방법상 다른 모든 학문과 구별된다. 법적 삼단논법이란 위와 같은 일반적인 삼단논법을 법학의 영역에서 구체화한 것이다. 대전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반적 법률이 있고, 소전제로는 사안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결론으로 판결이 나온다. 이러한 법적 삼단논법의 구조에 들어가는 '사안(소전제)은 법규범(대전제)에 포섭된다'고 표현하고, 반대로 이때 '법규범은 사안에 적용된다'고 표현한다. 법적 삼단논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① 일반법률(대전제) :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제250조 제1항).
② 사안(소전제) : 甲은 乙을 살해하였다.
③ 판결(결론) : 그러므로 甲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인 일반명제는 항상 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이 참일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삼단논법에서는 일반법률이 과연 참인가가 문제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결론에 해당하는 판결 또한 참이고 정당한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러한 법적 삼단논법을 사용하는 법학에 대해서 법물신주의(法物神主義)라는 비판이 있다. 물신이란 우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법이라는 우상을 신봉하는 사이비종교가 법학이라는 말이다. 앞에서 든 형법 제250조 제1항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에서 보듯이 살인한 자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의 태도는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사형은 인륜에 반하는 형벌이기도 하고, 하필이면 형량이 3년이 아니라 5년 이상의 형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이란 것을 인류지혜의 총합, 인류경험의 정수(精髓)로 이해한다면 위와 같은 입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물론 실정법 중에는 정의롭지 못한 법, 즉 악법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법을 정의로운 법으로 고쳐나가는 것(법정책학)도 넓은 의미의 법학의 과제에 속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실정법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법학에 입문하여 실정법 체계를 이해하려는 법학도의 입장에서는 법정책학을 우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다. 그러한 한에서 법학도의 법전에 대한 태도는 신앙인의 경전에 대한 태도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성방, [법학입문], 신론사, 2007. 29~30쪽.

…그러니까, 법학이란 현대 사회에 있어 일종의 신학인 게로군.

중세에 성경이 진리의 근원이었듯이, 현대사회에는 법전이 정의의 전범이라는 소리다. 법학도란 그 경전을 해독하며 정의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유스티티아의 사제들이 되는 셈이고. 이건 서구에 한정해서는 어느 정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을 보아도 프랑스를 보아도 영국을 보아도, 헌법을 정초하는 것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민주국가로 남아있는 한, 그들의 법에는 그들 자신의 정의가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도 법을 인류지혜의 총합이나 인류경험의 정수로 보지 않는다는 것.

사실, 우리네 법질서는 문제가 꽤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법치국가답게 잘 짜여진 질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게 자기 손으로 정초한 게 아니라 외국의 입법례를 학자들이 종합하여 완성한 것이다보니 아무도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법"이라고 받아들이질 않는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법은 민주주의적인 질서에 기반하여 만들어져있는데, 법치를 운운하는 이들이 법을 수용하는 방식은 오히려 권위적인 경향이 있다. 이러한 뭇사람들의 태도는 그냥 권력에 대한 숭배일 뿐이지 법질서의 수용이 아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서양에서 법은 장대한 전통이 축적된 결과물이지만, 우리에겐 그냥 서양에서 수입된 선진문물에 불과하니까. 이걸 두고 법학계는 지식수입상이냐, 학계가 독일에 종속되었느니, 사대주의니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우리네 자체 개발품이 아니니 민주주의에 걸맞는 법질서를 우리가 독자 개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네 민주화의 역사를 대며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민주주의를 얻기위한 싸움의 역사이지 민주주의를 낳은 창조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네 민주화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독재와 싸운 역사일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뭔지 깨닫기도 전부터 그걸 되찾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얻은" 것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자연히 하나의 비관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게 된다.

이제와서 법질서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새로 짜는 것은 무모한 짓이고 되지도 않는 일이다. 우리 법의 전통은 박물관에나 장식될 물건이 된 지 오래다. 어디서 뿌리를 찾을 것인가. 경국대전? 결국 우리에게는 주어진 길은 기존 서양의 경험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에게 법이 어떤 의미에서 "인류 지혜의 총합, 인류 경험의 정수(精髓)"이 되는지를 파악한 뒤, 이것이 "인류 역사가 도출해낸 정의"임을 스스로에게나 국민들에게나 억지로 납득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 "자, 이것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정의다. (선진국의) 역사가 말해주고 (선진국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산지직송 진품 정의다!"

+α 안 그래도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다. 자국에서 만들고 자국에서 규율되는 법질서를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가서 독일인들이 만든 독일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이건 위에서 얘기한 이유 때문에 실제로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긴 하다. 우린 우리 법의 미래를 찾아 알렉시의 이론을 공부하고 하버마스를 읽고 라드부르흐의 말들을 되새겨야 한다. 그러나 이건 꼭 법학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는 "민주적"이면서 "주체적"이 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냥 민주주의에 대한 할부금을 마저 갚으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또 언제가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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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우리들의 경험으로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진 않은거 같긴 하네요. 현재 법들은 순수하게 우리가 선조들이 직접겪은 유산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진정으로 법의 정의를 믿는다는게 이런거 아닌가 싶네요. 단지 어떤 조항이 진리임을 믿는다는 것 보다도 경험이고 지혜임을 인정하며 그것이 맞을 것임을.. 그 경험은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기에 꼭 고정된 것 아닌 바뀔수 있다는 것도 믿는 것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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