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말할 수 없는 이유
권력욕의 화신
1945년 해방의 해는 이념을 초월한 혹은 이념을 포괄한 ‘단일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미 국무부는 미·소공동 위원회를 통한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1946년 이승만 자신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해 스스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최초로 주장하며
‘반공(反共)’이라는 주제를 정치 논쟁에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친일파의 친구 이승만
헌법을 뜯어고치고 독재 정치 뿐만 아니라,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었습니다.
친일파를 용납하였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어떻게 전후 처리를 했는지에 비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 정무위원의 상당수, 군의 주요 사령관, 경찰의 거의 전부
그리고 한민당으로 대표되었던 각종 친일 경력의 사회 세력이 모두 이승만 정권과 함께하면서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우선순위로 삼고 권력을
운영합니다. 의형제 사이였던 박용만을 쫓아냈고, 좌우합작운동을 권유해놓고 김규식을 몰락시켰고,
안두희를 통해 김구를 죽음에 몰아넣었습니다.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이범석이 몰락했고, 심지어 민족청년단이나 한민당과 같이
자신의 동지세력까지 무차별적으로 짓밟았습니다. 모든것이 이승만 유일 체제로 운영되던 것이
당시 아닌가요? 학급마다 이승만 초상화가 붙어있고, 이승만 숭배 노래를 불러야 했던 시대.
대체 왜 이 시대를 향수하는 거죠?
45년 광복 아니라 48년 건국?
1948년은 어떤 상상을 가져다 붙여도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나고, 조선이 광복하면서 새로운 현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방과 광복의 의미 이전에 세계사적, 한국사적 분기점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기준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겁니다. 삼국통일, 고려건국, 조선시대, 임진왜란, 강화도 조약. 이렇게 역사의 변화가 총체적으로 일어나는 바로 그 시기를 역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