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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0 11:55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
 글쓴이 : CIGARno6
조회 : 1,735  

일단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해 다시한번 정의 하자면,

타의가 아닌 자의로 일본에 부역을 적극적으로 임한다.
독립군 또는 독립군의 가족을 살해 또는 사상한자.
작위를 받은자(현재 작위는 없으므로 훈장으로 대체 되어도 크게 이상이 없을듯함.)

1941년 12월 30일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자무쓰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1943년2월 간도특설대로 전근, 3년 동안 근무하였다. 1943년 12월 러허성에(열하성)서 간도특설대 기박련[1] 소속으로 팔로군 공격작전에 참가했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12월 1일 기존에 있던 조선인 국경감시대를 폐지하는 대신에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창설된 기구였으며 사령부는 간도성(젠다오 성) 연길(延吉, 옌지) 부근 명원구에 있었다. 보병 기갑 혼성 부대로 출발한 이 부대는 당초 360명으로 발족되었으나 나중에는 800명 가까이 늘어났다 한다. 부대장은 일본인 장교였으나 중대장의 반수와 소대장 이하 전 사병은 조선인이었다.

이 부대는 1938년 12월 창설 직후 간도, 길림, 통화 일대에 출몰하는 안창길(安昌吉), 양정우(楊靖宇), 진한장(陳翰章), 최현(崔賢) 등의 반만 항일(反滿抗日) 세력의 토벌학살에 투입되었다. 간도특설대는일제의 패망으로 해산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에 대해 모두 108차례 토공(討攻) 작전을 벌였다.

백선엽의 간도특설대에서의 구체적 역할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백선엽이 남긴 회고록에 그의 활동 내역이 일부 보인다. 《군과 나》에 따르면,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에서 김찬규(金爛奎), 송석하(宋錫夏), 김석범(金錫範), 신현준(申鉉俊), 이용(李龍), 임충식(任忠植), 윤춘근(尹春根), 박창암(朴菖岩) 등과 함께 근무했다.

백선엽은 일단 자의로 만주군 간도 특설부대의 소위(위관)으로 배속되었다.- 친일행위.
백선엽은 간도 특설부대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 독립군등을 108차례에 걸쳐 학살하였다.-반민족행위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밝혔다.
"간도특설대가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어 커다란 전과를 올린것은 당연한 일이였고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했다. 그는 회고에서 간도특설대를 우리라고 표현하였는데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간도특설대의 활동에 대해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어로 발간된 그의 저서 그의 저서《젊은 장군의 조선전쟁》에서 간도특설대에 대해 "일종의 특수부대로서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의 훈련이 자주 행해졌다"고 썼다.

그는 6.25 당시 큰 공을 세웠다.

1995년 일본은 그에게 일본 제1등 서보장이라는 훈장을 준다.
여기서 서보장이란 :일본의 훈장 가운데 하나이다. 서보장은 1888년(메이지 21년)에 보관장과 함께 제정되었다. 남성에게만 수여되었으나 1919년(다이쇼 8년)에 여성에게도 수여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욱일장의 차위에 해당하는 훈장이었지만, 이후 보관장의 차위로 정해졌다. 국가(일본) 또는 공공에 대해 공로가 있고 공무 등에 장기간 재직하여 성적을 올렸던 자를 수여 대상으로 하였다.[1] 훈장의 모양은 고대 보물인 보경(寶鏡)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16개의 구슬을 배치하고, 4쌍 내지 8쌍의 광선을 부착하였으며, 문채(章)와 수(綬)를 연결하는 꼭지는 오동나무 꽃과 잎의 형상이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연을 맺고 일본의 공무에 재직한 기간은 간도특설대가 유일했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연을 맺고 일본에 공로가 있었던건 간도특설대 기간 항일운동하던 중국, 한국 게릴라군의 토벌 학살 108회이다.
1995년 그는 위의 공무와 공로로 일본에서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저서에 수상내역에 자랑스럽게 서보장 수상내역을 공개합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는 현재 만 95세의 나이로  주한미8군 명예사령관이다.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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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ARno6 15-11-10 11:59
   
1995년 당시 그가 무슨 경위로 일본에서 훈장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친일매국행위에 대한 처벌을 해야한다고 생각함.
독일 나치는 95세가 되도 재판장에 서는데 우리나라는 에잉~~
옷닭서방 15-11-10 12:24
   
박정희 씁쎄끼!!
무얼원해 15-11-10 13:35
   
군시절 화장실에
이 사람 찬양하는 만화책과 서적이 엄청났던걸로 기억
나중에 알고나서 질색했는데
이래서 모르면 교육이 중요
     
넌내게모욕 15-11-10 13:41
   
저두 기억나요..
건달 15-11-10 16:35
   
그것이 알고싶다였나 PD 수첩이었나 암튼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도 나오고...
인천에선 저넘들(백인엽,백선엽)땜에 데모도 극심했죠

인천대, 분쟁사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http://www.bpnews.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30377
http://www.bpnews.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30470

안타까운건 시민의 손으로 비리 사학을 걷어낸건 좋은데...
시자체가 막장이라 돈이 없다는 거
이런거 보면 인천은 참 신기한 동네임
     
건달 15-11-10 16:38
   
아오.. 기사 겁나 기네요 -_-;

http://www.bpnews.kr/news/quickViewArticleList.html
여기에 분쟁사학 검색하면 리스트 쭉 뜹니다.
위대한영혼 15-11-11 00:16
   
백선엽은 친일을 한사람이고 또 대한민국을 위해 공을 세운것도 사실입니다.  공과과가 공존하는 사람이지요.
헬로비녓스 15-11-11 22:00
   
군 명예원수로 삼을려다 반발로 실패하고,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해 원로미군들에게 상을 주고 있네요.
진짜 쩍팔리는 대한민국 군의 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