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반 소설이 재미있느냐고 물으신 분이 계시던데,
이 글은 그에 대한 제 나름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는 것 반 재미없는 것 반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것도 모두에게 재미있을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한바탕의 지적 유희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분에게만 재미있을 겁니다.
그걸 전제로, 제가 읽은 것들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1. 장미의 이름 : 에코 소설 가운데 맨 처음 나온 거죠.
사실 거기 등장하는 윌리엄 수사는 그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
(진중권 말대로라면 후기 비트겐슈타인)
사실 이 소설 자체가 맹신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하고 있는지라 그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도원 도서관 지도를 보는 순간 '그래, 당신 천재다!'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ㅎ
결론 : 그런대로 재미있음. 재미=<흥미
2. 푸코의 진자 : 음모론 애호가의 필독서.
특히 카발라나 그노시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 그런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 하실 것 같은데,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정말 읽는 도중에 에코 멱살을 붙잡고
'그래, 지구의 배꼽이 대체 어디야!'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기억이 ㅎㅎ
결론 : 꽤 재미있음. 재미=흥미
3. 전날의 섬 : 읽기는 했는데 대체 뭔 얘긴지 모르겠네요.
일단 배경은 '경도 찾기'(근대 항해사를 지배한 문제였죠)와 관련한 탐험인데
그건 정말 배경일 뿐이고, 거의 주인공의 내적 의식만 이어진달까... 그런 느낌.
결론 : 지금까지 나온 에코 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제일 지루했음.
4. 바우돌리노 :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어느 허풍선이가 주인공이고,
시대적 배경은 대략 3~4차 십자군 전쟁 사이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중세 특유의 환상을 재미있게 녹여냈습니다.
추리소설적인 장치도 좀 있구요... 요리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게 특징.
결론 : 에코 소설 가운데서는 제일 대중적인 스타일. 아주 재밌었음. 재미>=흥미
5.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 자전적인 성향이 제일 강한 소설.
양차 대전 사이의 이탈리아 대중문화사는 이 소설 하나로 재구성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드네요.
윗줄 그대롭니다. '내가 이걸 알아서 뭐하게?'라고 생각하신다면 읽지 마세요.
결론 : 재미없는 편. 재미<흥미
6. 프라하의 묘지 : 19세기 반유대주의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합니다.
정말 이 주제와 관련해 벌어진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을 건드리고 있거든요.
내용은 한 마디로 '어느 반유대주의자의 뒤틀린 인생 역정'.
풍속사적인 측면도 꽤 들어 있고, 요리 얘기가 진짜진짜 많이 나오는 게 특징.
결론 : '재미있음-없음'의 중간 정도. 재미=<흥미
이 양반은 소설뿐안 아니라 에세이도 꽤 많이 썼는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은 일독을 권합니다.
세상의 다양한 어리석음에 대해 에코 특유의 방식으로 일침을 가하고 있죠.
머리 좋은 녀석이 삐딱선을 타면 이런 글이 나오는구나 싶어지더군요.
책 전반에 걸쳐 기발하지만 웃기지만은 않는 조롱이 넘쳐납니다.
이게 재미있다면 '미네르바의 성냥갑'을 그 다음으로 읽고
'작은 일기'나 '가재걸음'으로 갈수록 유머는 적어지고
시사 비판적인 성격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