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의 메갈리아가 이 분노한 남자들의 심기를 어디서 최초로, 또 결정적으로 건드렸는지 보여준다. ‘남성’ ‘성기’ ‘크기’. 무엇이 최초의 격발 스위치였는지를 지도는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담론의 한가운데에는 ‘성기 크기’가 있었다.
보통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신체는 마치 정육점의 소고기처럼 ‘부위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얼굴은 물론 가슴·허리·엉덩이·허벅지·다리 등이 제각각 ‘채점’된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태도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거의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남성들은 정작 자기가 성적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처음 해본 겁니다. 엄청난 충격이 데이터로 고스란히 잡히네요.” 분석을 총괄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학준 미디어분석팀장의 평가다.
여자를 혐오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남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상식적이고,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사실에 충실하다는 자의식이 있다. 그런 이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적나라하고 공격적인 성적 대상화에 직면했을 때, 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나(남자 C)의 정의로움’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니 둘 중 하나는 기각해야 한다. 이 조롱당한 남자들은 여성의 현실을 기각했다. 이제 ‘여성혐오’는 ‘없다’. 적어도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없다.
한국 온라인 공간의 평균적인 젠더 감수성을 고려하면, 성기 크기 발언을 혐오 발언이라고 낙인찍기에는 더한 사례가 많다. 그러니 이 전략은 꽤 위태롭고 지반이 허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남자들은 적진 격인 메갈리아에서 뜻밖의 조력자를 만났다.
전략적 규율이 필요한 미러링,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커뮤니티, 혐오 발화의 놀이코드화, 이 셋의 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2015년 연말, 외줄타기가 파산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며, 성소수자나 장애인 인권을 챙기다가는 실패한다는 주장이 메갈리아 내에서 제기되어 호응을 얻었다. 운영진이 이 흐름에 반대하자 아예 남성혐오를 표방한 커뮤니티 ‘워마드’가 독립했다. 워마드에서 등장한 전태일 열사 비하, 안중근 의사 비하, 한국전쟁 사망자 비하 등의 게시물은 커뮤니티 밖으로 퍼져나가 남성혐오의 증거로 즐겨 인용되었다.
나무위키 담론 지도는 ‘낙인찍힌 약자’의 공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혐오는 약자·소수파를 낙인찍는 대표적인 강자의 무기다. 혐오의 대상이 될 때 두드러지는 감정적 반응이 ‘공포’라는 것은 자연스럽다. 메갈리아 현상이 ‘남성혐오’라는 정의가 성립하려면, (메갈리아를 움직이는 동력이 공포임이 확인되었듯이) 혐오를 당한 피해자의 정본 격인 나무위키 분석에서 낙인찍힘을 당하는 이들의 공포가 포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는 ‘취소선 자료’를 분석했다. 혐오로 낙인찍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감정선에서 공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메갈리아와 IS를 등치시키는 비유는 이 대목에서 파산한다. 남성혐오로 규정하려면 공포가 필요하다.
통계로 확인되는 객관적 실재와 분노한 남자들의 감정적 자의식은 공히 <그림 4-4>를 현실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림 4-4>는 남성 C의 ‘선함’과 ‘정의로움’이라는 자기 이해와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이 현실은 기각되어야 한다. 대신에 구원처럼 등장한 워마드의 혐오 발화에 집요하게 매달려야 한다.
부분 발췌한 것이고 전문은 여기로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