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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29 11:23
출애굽 시기의 중근동
 글쓴이 : 띠로리
조회 : 1,466  

제 글에 달린 댓글에 히타이트, 이집트, 히브리 민족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올라와서 이에 대해서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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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이 셈족계 이집트 힉소스 왕조시절 이집트로 이주 했고  다시 햄족 계열 이집트 왕조가 들어서자 핍박을 받았지요 뭐 당연한 일이지요 적이니깐.  그러다 람세스2세 시기 오리엔트시기에는 햄족계열의 이집트와 셈족 계열의 히타이트의 2강체재 기간 이었습니다.  히타이트는 헷족으로 이스라엘 민족과는 거의 동족입니다.
 
-> 기독교의 민족 구분에 햄족이 없습니다. 셈, 함, 야벳 계통으로 나뉘고, 셈족이 메소포타미아 계통이고, 함족이 아프리카쪽으로 가서 이집트 및 기타 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의 가나안이 되고, 야벳 계통은 유럽 계통으로 나뉜다고 되어있습니다. 함족을 햄족으로 단지 단어만 잘못 안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히타이트는 셈족이 아닙니다. 셈족 언어는 아카드어를 비롯해서 메소포타미아를 기반으로 한 세력이었는데 반해, 히타이트는 인도-유럽어족을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민족이었습니다. 인도-유럽 어족 중에서 지금은 사멸한 아나톨리아계의 하위인 히타이트어(네샤어)로 셈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셈족인 만큼 메소포타미아 영역권인 갈대아 우르에서 나왔습니다. 지역적으로도 히타이트와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습니다.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을 거의 일통하고 이집트를 압박하였고 이집트는 오리엔트의 패권 장악을 위해 히타이트와 격렬히 대립중 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집트는 내부 결속을 위해 잠정 적인 이스라엘을 핍박 하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히타이트로 도망 갔을거란 것은 뻔히 보이는 상황이지요.
 
-> 히타이트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그 지역의 제왕이 된 적은 있으나 메소포타미아와 관련해서는 무르실리 1세 시절(BC 1600년 경)에 바빌로니아를 단 한 차례 침략하고 약탈했을 뿐입니다. 이 때, 해외 원정에 군사력을 대거 동원하다보니 국내가 치안 공백이 생기고, 그 틈을 타서 내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무르실리 1세는 처남에게 살해되고 히타이트는 이후 오랜 시간동안 국력이 점차적으로 쇠약해집니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 사이에 위치한 미탄니 왕국이 외세의 견제 없는 와중에 급성장을 하고 히타이트의 경쟁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긴 시간동안 제 힘을 못 발휘하고 심지어 투트할리야 2세 시절(BC 1380년 경)엔 수도인 하투샤마저도 전소하는 피해까지 입던 히타이트는 수피룰리우마 1세(BC 1350년 경)에서야 다시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고, 그 손자인 무와틸리 2세 시절에 이집트와 격톨, 카데시 전투(BC 1286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남기고 레판트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성기 역시 100년도 못되어 셈족 계열인 앗시리아(앗수르)에게 패배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아니, 어쩌면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앗시리아에게 패배하게 된 건지도...)
 
 
 
이스라엘의 이동로을 보면 이집트의 영향권을 벗어나서 사우디 아라비아 지방에서 에돔 에서 모압으로 해서 히타이트로 이동 하고자 하는게 보이시지요.  당시 가나안은 이집트의 속령이었고 카데시 지방(현 다마스커스 근방으로 추정)에서 히티이트와 이집트는 세기의 결전을 펼칩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고 쌍방의 평화협정 체결로 끝내고 대립관계 로만 지속 됩니다. 결국 가나안 지방은 이집트의 영토로 남씁니다.  이동 경로를 보세요 가나안 지방이 맨 마지막 이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침공했다는 것은 이집트를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거지요 이때쯤 이스라엘이 어느정도 세를 불렸고 실제 이집트 사정이 어지러웠습니다.
 
-> 히브리 민족과 히타이트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건 위의 글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 카데시의 위치는 다마스쿠스 근처이긴 하지만 좀 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가면 남쪽부터 두로, 시돈, 비블로스가 있는데, 가나안 점령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두로까지만 점령했고, 카데시는 위도상으로 비블로스보다 약간 더 위에 있는 도시입니다(오론테스 강의 발원지 근처). 즉, 이스라엘 민족이 히타이트 영토 안으로 가고자 했다면 여기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갔어야지요.
 
-> 람세스 2세의 계승자는 메르넵타인데, 이 시절 메르넵타는 가나안 지역을 침략, 약탈하고 이를 기념하여 메르넵타 석비를 만듭니다. 지금까지 출애굽이 실존한다면 그 시기는 아멘호텝 2세, 혹은 람세스 2세 시절이라고 하는데, 이 메르넵타 석비는 '람세스 2세 시절 출애굽 설'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1. Bible의 기록(아멘호텝 2세 시기 가설)을 따른다면,
솔로몬의 제위가 BC 960년 경부터 920년까지인 것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윗의 통치기간 40년, 사울의 통치기간 40년, 그리고 바로 그 위에 사사 시대가 대략 400년이 됩니다. 사사 시대 이전에는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가나안을 점령하는데 35년을 바치고, 그 이전엔 40년의 광야 생활이 있습니다.
 
이것과 별도로 열왕기상을 보면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왕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전자의 연도 계산 역시 출애굽기, 민수기, 여호수아, 사사기에서 뽑아낸 것이고 후자는 보이는 대로 열왕기상의 기록이기 때문에 이 두 기록의 충돌은 성경무오설을 반박하는 한 예로 쓰일 수도 있지만, 이건 지금 다루는 문제와는 거리가 있으니 잠시 접고 다시 이집트 연대기와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왕위에 오른 게 BC 1040년 경이고, 카데시 전투는 1286년,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평화조약은 1269년, 메르넵타가 가나안을 침공한 것은 기록의 차이가 있지만 BC 1215년, 혹은 BC 1207년입니다.
 
사사 시대를 사사기의 기록에 맞춰 400년으로 보든, 열왕기상의 기록에 맞춰 330년 정도로 보든 위의 세 사건은 사사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사사기에는 이 큰 사건들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메르넵타 석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씨가 말랐다라고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2. 람세스 2세 시기 가설을 따른다면,
람세스 2세 시절에 출애굽이 있었다고 하면(람세스 2세의 통치시기의 가운데인 BC 1250년 경에 출애굽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솔로몬의 제위 기간은 대략적으로 BC 700년~660년, 혹은 BC 770년~730년 정도가 됩니다.
BC 720년 정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 BC 600년 경에 남유다가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을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하여튼 람세스 2세 시절 초중반에 출애굽이 있었다면, 메르넵타의 가나안 원정은 히브리 민족이 가나안에 막 입성했을 시절이나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이 평정되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이집트에 의해 이스라엘의 씨가 말랐다? Bible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일절 언급이 없고, 맥락적으로도 욱일승천하던 히브리 민족이 절멸했다는 게 되니 말이 안됩니다.
 
람세스 2세 말년에 출애굽이 있었다고 한다면 BC 1210년 경엔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에 입성도 못합니다. 그런데 메르넵타 석비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 진술이 모두 참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씨를 말렸다는 말이 됩니다. 상호 모순되죠.
 
 
 
결론 : 예전에 노아의 홍수의 시기에 관해서도 Bible의 기록과 고고학적 연대를 비교하면서 성경무오설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설명한 적이 있지만, 출애굽기~사사기 역시 모순 투성이입니다. 이걸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히브리인들의 이주의 목적지가 히타이트였다는 것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글로는 잘 납득이 안 되신다면 종이에 이집트의 연대기를 쭉 나열하고 그 밑에 Bible에 언급된 기록들을 역순으로 첨가해보세요. 글보다는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ps. 대략 10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조금씩 써내려가서 문장이나 순서가 약간씩 어색할 수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에 지장이 되지 않는 한, 적당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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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oolgu 15-06-30 01:30
   
음 그분들이 논리적이었으면 자신의 경전을 파고들진 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