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Print.html?idxno=5043장로교회의 변질과 부일협력 활동은 신사참배 수용에서 시작되었다. 1938년 초부터 일제는 일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경찰력을 동원하여
신사참배와 국가의식을 강요하고, 개 교회는 물론 노회와 총회에 압력을 가하여 신사참배를 결의 실행하도록 강요하였다.
가
장 먼저 노회 차원에서 신사참배 실시를 가결한 곳은 1938년 2월 3일부터 9일까지 선천읍남예배당에서 열린 제53회
평북노회에서였다. 당시 노회장 김일선 목사 사회로 열린 노회에서 노회 종교교육부가 제안한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요, 국가의식임을
시인하기로 한 일”을 여타 제안과 함께 가결하였던 것이다.
(「기독교보」1938년 5월 10일자, “평북로회 제53회 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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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분만 긁어왔습니다.
링크 타고 가보시면 아주 자세히 나와있고 찾아보면 감리교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