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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8 00:15
일제 강점기의 한국 교회
 글쓴이 : 지나가다쩜
조회 : 642  

일제시대 불교는 친일 판이었고 개신교는 문제 없었다는 망상을 가지신 분들이 몇 분 계신 듯 하여...

자료를 가져와 봅니다.

참고로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될 정도로 악질인 종교인들은
2010년 이전 기준으로 개신교 51명, 천도교 29명, 불교 54명, 천주교 7명, 유림 41명 입니다.

원본 링크(교회와 신앙)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22


상략

3. 한국교회의 변질·개편과 부일협력 - ‘죄책고백’에 무엇을 포함시킬 것인가?

1) 우상숭배적 신사참배와 신도의식을 공인하고 실행한 죄
조선총독부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관공립학교는 물론 기독교계 사립학교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다시 적극적인 신사정책과 종교 통제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중일전쟁 이듬해인 1938년 초부터 일제는 일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경찰력을 동원하여 신사참배와 국가의식을 강요하고, 개 교회는 물론 장로회 노회와 총회에 압력을 가하여 신사참배를 결의․ 실행하도록 강요하였다.

가장 먼저 노회적 차원에서 신사참배 실시를 가결한 곳은 1938년 2월 3일부터 선천읍남예배당에서 열린 제53회 평북노회에서였다. 이 노회에서 종교교육부가 제안한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요, 국가의식임을 시인하기로 한 일”을 여타 제안과 함께 가결하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같은 해 8월 31일 사이에 국내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신사참배 결의 날짜를 알 수 있는 노회는 평북노회(1938.2.9), 용천노회(1938.4.17), 순천노회(1938.4.25), 제주노회(1938.4.27), 전남노회(1938.5.6), 경성노회(1938.5.6), 충청노회(1938.5.8), 전북노회(1938.6.8)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 경찰의 치밀한 각본에 따라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장로회 총회에 평양, 평서, 안주 3노회 연합 대표 박응률이 “신사참배 결의 및 성명서 발포”를 제안하여 당시 총회장 홍택기 목사가 선교사들의 반대 발언을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가결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회장과 각 노회장들이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평양신사에 참배를 하기로 가결 실행하였다. 그리고 그해 12월 12일에는 장로회 총회장 홍택기와 부회장 김길창이 감리교 총리사 김종우와 전 총리사 양주삼, 성결교 이사장 이명직과 함께 일본의 이세신궁, 메이지신궁, 가시하라신궁, 아쓰다신궁, 야스쿠니신사 등을 두루 참배하려고 일본으로 떠났다.

하략

신사들을 찾아서 참배여행을 떠난 일제 치하의 기독교인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지나가다...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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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 15-04-08 00:18
   
일제에 빌붙어서 살아남은 개독 DNA가 그대로 해방후에도 전이되어 독재 정권에 기생하여 지금의 대형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헬렐루야 아멩
     
혤로가생 15-04-08 15:43
   
일제에 빌붙어서 살아남은 무교와 개불교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지요..
헤밍 15-04-09 02:47
   
개독은 읿본뿐만 아니라 언제나 정권을 잡은쪽에 빌붙어 살아왔습니다.
그냥 쓰레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