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안티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원죄'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거나 학을 뗀다 더나가 본인이 숨겨왔던 폐부를 들킨것 마냥 과민 반응을 하기도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죄인이라고 심판하거나 강제구속하거나 중세때처럼 인간의 원죄를 씻기 위해 자기몸에 채찍을 가하거나 영혼이 의심스러운자에게 십자가 화형을 하지않는다.
인간의 원죄는 고통을 불러오는 그 어리석음에 있다 각자 다 숨기고 싶은 비밀들 그리고 친구라도 알리기 싫은 자기 죄'가 부지기수가 있을 것이다 그 죄가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수가 있으며,어떻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이익을 얻을수있는가 그런행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낙원에 쫓겨난 인간이란 본디 이런것이다.
인간은 이럼으로서 상처투성이고 죄악의 투성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본디 죄인이다 할때 그 죄인을 지칭하는 인간에게 마음의 심적 고통을 더 얹어주는 것이 아니라 덜어준다
종교를 떠나 인간이 죄'를 저지를수 밖에없는 유한적 존재와 외부의 세계에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는 물질적 존재성을 일께워준다.
신앙인에게 있어 종교적 내면과 외부의 불일치를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주고, 본인이 필연적으로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따라서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런 죄를 짊어지고 사는 인간에게 본인의 처해진 환경에 맞게 죄'를 저지르지않으려는 자기성찰과 노력을 해야한다 만약 원죄가 없음과 동시에 인간이 죄악을 저질렀으면 그 인간인 이미 파멸하고도 남았을것이다.
인간의 원죄는 은혜의 빛이 찬란한 '낙원의 추방' 그리고 최초의 살인이 역사로 이어지고, 후손에게 미치고 그것이 또 미래의 영향을 준다 죄악은 사라지지않는다 죄악자체가 역사철학이다 어거스틴의 '신국론'도 잘 들여다보면 다 죄악사.
쇠사슬로 칭칭감은 '죄인의 몸'을 이끌고 사는 인간은 그래도 아래보다 높은 곳을 향해야하고 비록 '대지'를 밟고 사는 인간일 지라도, 저 하늘높은 '영원성'을 꿈꿔야 한다 죄'를 저질러 죄때문에 파멸하는 것이 아닌 그 죄'스러움을 깨고자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새로 태어남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