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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6 14:12
한국 창녀촌의 역사
 글쓴이 : 콜라사탕
조회 : 6,534  

한국의 창녀촌은 누가 만든 것일까?? 보통 한국의 기생 문화가 발전해서 또는 미군을 위한 창녀촌이 발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창녀촌 문화는 일본이 만든 제도였다. 한국은 일반 서민들을 위한 창녀촌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카고트리뷴》지()는 1919년 12월 26일자 사설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정책을 맹렬히 공격하여 "일본이 조선에서 한 일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해낸 일은 유곽의 증설이었다. 이것은 일본이 고의로 조선인 남녀를 타락시키고자 시도한 것이다"라고 통박하였다. 1947년 10월 미군정청의 공창폐지령에 따라 반세기 만에 폐지되었으나, 집중지역은 상당기간 한국 사회에 후유증을 앓게 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의 남녀를 타락시키고 위안부 문화를 만들어서, 한국이 또 한번 일본을 따라 미군을 위해서 위안부를 창설하기도 했다.


일본의 더러운 문화를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다시 제도적으로 합법화하여, 집창촌을 만드려고 하는데 있어서,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집창촌 문화는 1585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의 게이세이초[]를 유곽지대로 공인한 것이 시초이다.

18세기경에는 전국에 25개소로 늘어났고, 에도[:]의 요시와라[], 교토[]의 시마와라[], 오사카의 신마치[] 등은 특히 유명하였다. 일본이 개국한 뒤 요코하마[]·도쿄 등지에 외국인을 위한 유곽을 공인하여, 1924년 당시 일본의 유곽은 544개소에 이르렀다.

이렇게 어마 어마한 집창촌이 존재했던 것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이 한국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만든 집창촌 문화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한국이 집창촌 문화를 만들게 되면, 앞으로 중국의 성매매 관광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이 한국의 과학을 따라잡게 되면, 국가 경쟁력을 잃은 한국은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업종이 바뀌고, 경제 체질이 중국에 속하게 되는데, 성매매를 공식화 하면, 한국은 중국의 성매매 관광지가 되어, 마치 지금의 태국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라가 된다.

한국은 한국만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국력이다. 우리는 태국처럼 성매매 관광으로 먹고 살거나 마카오처럼 도박으로 먹고 사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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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동자 15-03-16 14:26
   
가장 오래된 직업중 하나가 창녀입니다. 전세계에서 역사적으로 창녀가 존재하지 않은 국가는 없습니다. 대규모였냐 소규모였냐 드러내놓고 했냐 감추고 했냐의 차이죠. 한국은 그동안 감추고 했지만 현재 학술적 연구결과로는 드러내놓고 국가의 관리를 받는게 더 나아서 그렇게 하는것이 전세계적 추세입니다.
     
콜라사탕 15-03-16 14:30
   
한국을 다시 성매매 관광국가로 만들면 안됩니다. 과거엔 일본이었지만, 이젠 중국인을 위한 성매매 관광지를 만든다는 자체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중국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남궁동자 15-03-16 14:38
   
네덜란드는 유럽의 마약, 성매매 관광지인가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시네요.
               
콜라사탕 15-03-16 15:02
   
서로 같은 GDP 국가들은 서로 영향을 들 받지만, 지리학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한국은 한류로 그리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면 당연히 한국은 태국처럼 성매매 관광지가 발전하게 됩니다. 만약 합법화를 하게 된다면 말이죠.
드래곤쥐 15-03-16 14:30
   
일본이 개같은 국가라는건 알지만
이제와서 이런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엔 의미가 없다 라고 이야기 하고싶습니다
지금은 독도와 한국의 바다를 지키고 역사를 지키는게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매매문제도 아무문제가 없다는건 아닙니다 고칠건 고쳐야 하겠지요
     
콜라사탕 15-03-16 14:32
   
나는 성매매가 불법으로 몰래 이뤄지는 것은 놔두지만, 그것을 합법화 하는데는 무조건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콜라사탕 15-03-16 14:33
   
눈에 뻔하듯, 중국과 일본의 성매매 관광국가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드래곤쥐 15-03-16 14:37
   
성매매 관광국가 ? 그게 정확히 뭐죠
일본과 중국에는 성매매가 없나요 ?
               
콜라사탕 15-03-16 14:40
   
중국은 성매매가 불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래 관대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 관광을 검색어로 찾으면 일본 풍속점이나 성매매 관광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반면에 일본에서 한국 관광을 검색하면 "아가씨" 등 성매매 관광에 대한 검색어가 있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성매매가 합법화하면, 성매매 관광특구가 생기고,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 오게 됩니다.
                    
드래곤쥐 15-03-16 14:46
   
외국인에 대해서만 성매매를 제제하면 되는것 아닙니까 ?
합법적으로 관리한다는건 체계적으로 보호한다는것 아닙니까
                         
콜라사탕 15-03-16 14:49
   
님은 왜 성매매에 그렇게 목숨걸어요?? 어차피 성매매 한다고 성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성매매는 인신매매도 이뤄집니다.
                         
얼렁뚱땅 15-03-16 20:54
   
//콜라사탕
음성적인 성매매가 인신매매 확율이 높지요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성매매 비용도 내려가고 인신매매라는 리스크에 비해 벌 수 있는 돈도 적어집니다
                    
드래곤쥐 15-03-16 14:49
   
성매매를 불법으로 한다고 해서 막을수 있는게 아니라는걸 아니까 그렇죠
저도 님같은 입장이였지만 우리나라가 성매매 불법인데 성매매가 존재한다는건
분명 다른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거라고 보니까 그런겁니다
                         
콜라사탕 15-03-16 14:59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막지 않는 것입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신고포상제입니다. 제가 이미 신문고를 통해서 국가에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로 안막는 것입니다.
                         
드래곤쥐 15-03-16 15:01
   
그렇군요 그러면 되도록 막았으면 좋겠네요
신고포상제가 되길 저도 바랍니다
                         
콜라사탕 15-03-16 15:03
   
성매매 파파라치 제도는 100% 막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눈 감아 주는 것입니다.
광극 15-03-16 14:37
   
규모가 커진게  (조)공녀였던 환향한 여성들이 돌아왔지만
시대에 천대 받아
그녀들끼리 생존을 위해 만든걸로
아는데 잘못된 지식인가요?
     
콜라사탕 15-03-16 14:42
   
잘못된 지식입니다.
일본이 일본에서 집창촌 문화가 커지고, 한국에서 유곽을 세웠으나, 쫓겨났습니다. 그러자 편법으로 일본여성들이 유곽에서 일하면서, 조금씩 창녀촌 문화를 구축했고, 성공하자, 그리고 전국적으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콜라사탕 15-03-16 14:43
   
원래 한국은 양반들을 위한 기생시설만 존재하였지, 일반 서민들을 위한 창녀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mymiky 15-03-16 14:47
   
절못된 지식이죠 ㅡㅡ
공녀와 환향녀는 별개의 개념이고
환향녀의 경우 대부분 xx이나 친정집으로 돌려보내지거나 비구니가 되거나
뭐 일부는 매음쪽으로 흘려갔을 경우가 있었을것으로 추측하나 애초에
조선에선 유곽문화가 없어요
대규모 여성들 가둬놓고 얼굴보고 선택받는 시설 자체가 없습니다
기생들 끼고 술마시는 양반들이 사극에서 곧잘 나오는데
양반들은 자기집 후원에 따로 불려서 놀고 뭐 그랬음
남궁동자 15-03-16 14:43
   
주막에서 밥하고 술만 팔았을까요? 무당들은 굿 안할땐 무엇으로 먹고 살았을까요? 양반들이 기생이랑 놀때 백성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요?
     
콜라사탕 15-03-16 14:44
   
양반들을 위한 기생문화만 존재했습니다. 주막에서 많은 여성이 대기하면서, 서민들을 위해서 성매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남궁동자 15-03-16 14:48
   
그럼 백성들은 누구랑 놀았는데요? 말이 안되잖아요? 조선 백성들이 전부 스님이라도 됩니까?
               
콜라사탕 15-03-16 14:52
   
한국은 원래 유교 문화로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입니다. 여자가 몸 팔고 다니는 것은 죄로 여겼습니다. 님은 억지 논리로 한국인들이 마치, 성매매를 과거부터 했다고 생각하시면서 글을 쓰시는데, 한국문화에 대해서 공부하고 오세요.
                    
남궁동자 15-03-16 14:57
   
아무 상관도 없는 소리 마시고 제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세요. 여자가 몸팔고 다니는걸 죄로 여긴 문화는 엄청나게 많지만 그런 문화에서도 성매매 다했습니다. 헛소리는 그만하세요 멍청한거 티납니다.
                         
콜라사탕 15-03-16 14:58
   
일본 공창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0년 초였다. 1876년(고종 13) 부산·원산·인천이 개항된 뒤 상당기간 공인된 매음제도는 없었다. 기생·기녀가 있었으나 예(藝)·기(技)가 필수조건이었으며, 술자리에서 시중드는 것이 본업이었고 매음은 '술에 따르는 부수적인 행위'였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은 처음에 개항지의 일본 여인들이 매음을 하였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강제 추방하였다.

그러나 일본 여인들의 매음행위는 은밀하게 성행하여, 묵인·반(半)공인의 상태가 되었다. 1902년(광무 6)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산재한 이른바 '특별요리점'이라는 창녀업체를 한데 모아 유곽을 만듦으로써, 지금의 부평동(富平洞) 파출소 이동(以東) 일대는 한국 유곽의 발상지가 되었다. 부산에 생긴 유곽이 크게 번창하자, 12월 인천(中區 仙花洞), 1903년 원산, 1904년 서울에 유곽이 생겼다. 서울은 중구 묵정동(墨井洞) 일부지역이 신마치[新町] 유곽의 소재지가 되어 여기에서만 매음업이 허용되었다.

신마치유곽지대는 동·서로 나누어져 동쪽은 조선인이 경영하여 창녀들도 주로 조선인이었으며, '한성대좌부조합(漢城貸座敷組合)'을 결성하였고, 서쪽은 '대화신지(大和新地)'라고 해서 주인·창녀가 주로 일본인이었으며, '신마치유곽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뒤 유곽은 개항지에는 예외없이 먼저 생겼고, 이어 내륙 도시들로 번져갔다. 유곽에서 여자를 사는 사람은 큰 홀의 벽에 기대어 늘어 앉은 여자를 직접 고르거나 번호가 붙은 사진첩, 또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번호를 지정하였다. 유곽이 설치되자 임질·매독 등의 성병도 번져 대개의 유곽에는 그 구내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하여야 하였고, 1908년 처음으로 '화류병예방규칙' 법령도 공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곽 [遊廓] (두산백과)
                         
coooolgu 15-03-17 01:07
   
님은 우리나라 여자가 성매매를 했다 라는 주장에 근거는 하나도 없으면서

다른사람의 한국 유교문화에 의해 성을 억압했다 라는말을 멍청하다는 개소리로 지껄이시네요

어디서 그따위 토론방식을 배우셧나요? 적어도 근거라도 하나 대시던가요.
          
맘마밈아 15-03-16 14:49
   
양반들을 위한 성매매가 더 나쁜거 같은데요. 양반들은 마음대로 양인 노비들 성을 유린했던거고 축첩도 했고요. 이런 차별적인 문화가 더 안좋은건데요.
               
콜라사탕 15-03-16 14:53
   
이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무사가 계급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조폭 두목이 모든 여자를 독식했습니다.
               
콜라사탕 15-03-16 14:54
   
사무라이의 두목을 다이묘라고 합니다. 다이묘는 자신들의 구역을 사무라이(조직들이) 관리를 하면서 농부나 서민들에게 세금을 뜯어내고 여자를 노비삼고, 맘대로 누렸습니다.
     
mymiky 15-03-16 14:53
   
매음이야 알금알금 있었는데
애초에 그런 하급은 2패 3패라고 부르고 1패 기생취급도 안했어요
근데 정식으로 예술교육을 잘받은 기생이라해야 돈을 더 받을수 있으니
지가 기생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많았을 뿐.
구한말에도 기생들은 붉은우산 쓰고 은근짜란 속어로 부르는 매춘부는 파란우산 쓰고 다닐정도로
구분되어졌습니다
          
콜라사탕 15-03-16 14:56
   
일본 공창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0년 초였다. 1876년(고종 13) 부산·원산·인천이 개항된 뒤 상당기간 공인된 매음제도는 없었다. 기생·기녀가 있었으나 예(藝)·기(技)가 필수조건이었으며, 술자리에서 시중드는 것이 본업이었고 매음은 '술에 따르는 부수적인 행위'였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은 처음에 개항지의 일본 여인들이 매음을 하였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강제 추방하였다.

그러나 일본 여인들의 매음행위는 은밀하게 성행하여, 묵인·반(半)공인의 상태가 되었다. 1902년(광무 6)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산재한 이른바 '특별요리점'이라는 창녀업체를 한데 모아 유곽을 만듦으로써, 지금의 부평동(富平洞) 파출소 이동(以東) 일대는 한국 유곽의 발상지가 되었다. 부산에 생긴 유곽이 크게 번창하자, 12월 인천(中區 仙花洞), 1903년 원산, 1904년 서울에 유곽이 생겼다. 서울은 중구 묵정동(墨井洞) 일부지역이 신마치[新町] 유곽의 소재지가 되어 여기에서만 매음업이 허용되었다.

신마치유곽지대는 동·서로 나누어져 동쪽은 조선인이 경영하여 창녀들도 주로 조선인이었으며, '한성대좌부조합(漢城貸座敷組合)'을 결성하였고, 서쪽은 '대화신지(大和新地)'라고 해서 주인·창녀가 주로 일본인이었으며, '신마치유곽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뒤 유곽은 개항지에는 예외없이 먼저 생겼고, 이어 내륙 도시들로 번져갔다. 유곽에서 여자를 사는 사람은 큰 홀의 벽에 기대어 늘어 앉은 여자를 직접 고르거나 번호가 붙은 사진첩, 또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번호를 지정하였다. 유곽이 설치되자 임질·매독 등의 성병도 번져 대개의 유곽에는 그 구내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하여야 하였고, 1908년 처음으로 '화류병예방규칙' 법령도 공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곽 [遊廓] (두산백과)
카르마이즈 15-03-16 15:00
   
성매매 합법인 나라중에  실제로  성매매대국으로 불리는  나라는 없어요.
오히려  성매매가 불법인  태국같은  나라가  성매매관광으로  유명한 나라죠.
관광산업이 발달한데다가  관리가 안되니  무분별하게 관련산업이 팽창해서 그런일이 벌어진거죠.
일정부분 합법으로 지정하면 관리가 더 쉬워질지도 모릅니다.  부분  합법화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게  오히려 나을지도,  당연히 지정된 구역에서만 사업할수 있게 될테고
 업체수를 제한하고  종사자들  근무환경도 관리가 될네니  받을 손님도 제한될테고
그냥 속수무책으로 내벼려 두는것보다  관련산업  팽창속도가  현저히 느려질듯 싶네요
     
콜라사탕 15-03-16 15:05
   
성매매업은 대박업입니다. 만약 합법하 하면, 너도 나도 투자유치를 하려고 하고 정부로 부터 로비를 하게 되어 성매매 관광특구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님이 생각하는 것과 한국의 지리학적 관점으로 볼때, 한국은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남궁동자 15-03-16 15:03
   
님 주장은 기생을 제외하면 공인된 성매매가 없었다는 건데 이걸 누가 모르나요? 어차피 공인되지않은 음성적 성매매는 예전부터 있었고 공식화 하느냐가 문제 아닌가요? 자꾸 논점일탈 하지 마시죠
     
콜라사탕 15-03-16 15:05
   
일본 공창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0년 초였다. 1876년(고종 13) 부산·원산·인천이 개항된 뒤 상당기간 공인된 매음제도는 없었다. 기생·기녀가 있었으나 예(藝)·기(技)가 필수조건이었으며, 술자리에서 시중드는 것이 본업이었고 매음은 '술에 따르는 부수적인 행위'였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은 처음에 개항지의 일본 여인들이 매음을 하였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강제 추방하였다.

그러나 일본 여인들의 매음행위는 은밀하게 성행하여, 묵인·반(半)공인의 상태가 되었다. 1902년(광무 6)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산재한 이른바 '특별요리점'이라는 창녀업체를 한데 모아 유곽을 만듦으로써, 지금의 부평동(富平洞) 파출소 이동(以東) 일대는 한국 유곽의 발상지가 되었다. 부산에 생긴 유곽이 크게 번창하자, 12월 인천(中區 仙花洞), 1903년 원산, 1904년 서울에 유곽이 생겼다. 서울은 중구 묵정동(墨井洞) 일부지역이 신마치[新町] 유곽의 소재지가 되어 여기에서만 매음업이 허용되었다.

신마치유곽지대는 동·서로 나누어져 동쪽은 조선인이 경영하여 창녀들도 주로 조선인이었으며, '한성대좌부조합(漢城貸座敷組合)'을 결성하였고, 서쪽은 '대화신지(大和新地)'라고 해서 주인·창녀가 주로 일본인이었으며, '신마치유곽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뒤 유곽은 개항지에는 예외없이 먼저 생겼고, 이어 내륙 도시들로 번져갔다. 유곽에서 여자를 사는 사람은 큰 홀의 벽에 기대어 늘어 앉은 여자를 직접 고르거나 번호가 붙은 사진첩, 또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번호를 지정하였다. 유곽이 설치되자 임질·매독 등의 성병도 번져 대개의 유곽에는 그 구내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하여야 하였고, 1908년 처음으로 '화류병예방규칙' 법령도 공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곽 [遊廓]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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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오세요^^
          
남궁동자 15-03-16 15:10
   
저 내용은 조선 백성들이 음성적 성매매를 하지않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아닙니다. 논점일탈은 그만하시고 님이나 공부하고 오세요 독해력도 좀 많이 키우시고요.^^
               
콜라사탕 15-03-16 15:12
   
공부하고 오세요 ㅎ
               
하늘나비야 15-03-17 01:29
   
남궁동자님 그렇게 따지만 일본은요? 일본은 음성적으로 성매매가 없었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런식으로 근거 아닌 근거를 내 세워 주장하시는 것도 아닌거 같네요  음성적이다 역사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추측하는 거죠? 잘 못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수 있단 소립니다 전혀 엉뚱한 결론이 날수도 있고 .. 음성적으로 조선백성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기록이나 근거를 제시 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콜라사탕님은 어디에 나와 있다라고 근거를 제시 하고 있는데 반해 남궁동자님은 그냥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mymiky 15-03-16 15:06
   
교방을 유곽이라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은데 ㅡㅡ;
교방이란건 일종의 예술쪽으로 특화된 관련 학교?부서? 뭐 비유하자면 그런겁니다
연회쪽이나 접대 등 필요한 인원을 뽑고 관련 기술을 배울수 있는 그런데죠
기생들은 천한 직업이긴한데 특수직입니다
지금에 연예인이고 배우고 가수고 그렇죠
     
콜라사탕 15-03-16 15:07
   
한국 기생과 비슷한 것이 게이샤입니다.
mymiky 15-03-16 15:13
   
윗분 ㅡㅡ 누누히 말하지만
인간사에 성이란 본능이 있으니 매춘없는 나라없죠

다만.
조선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매춘이야 나라가 개개인을 다 못잡지만
그렇다고  매춘을 공식적으로 허가해주거나
부녀자들을 일종한 장소에 모아 가둬두고
동물원에 원숭이 구경하듯 얼굴보고 몸 매보고
포주에게 돈주고 성사는.. 그런 문화는 오백년 역사상 없었어요
근대에 일본상인들이 들고온 퇴페문화지
     
미쳐 15-03-16 15:34
   
사당패  있습니다
낮에는 탈춤추고 밤에는 몸팔고
          
mymiky 15-03-16 15:41
   
? 유곽이 없었다는 글에 왠 뜬금없는 유곽과 상관없는 사당패가 나오는지;;
사당패도 낮엔 묘기부리고 밤에 은밀한 매춘에 들어가지

언제 떠돌아다니는 사당패가
유곽처럼
부녀자들을 모아두고 구경시키고 매춘했다는건지ㅡㅡ

사당패 개념을 모르시나요?
          
하늘나비야 15-03-17 01:30
   
저기 사당패라고 다 그렇진 않았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구분이 있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남사당 여사당 으로
     
미쳐 15-03-16 16:27
   
좀더 정확히  하자면
낮에 줄타기 탈춤  등으로
우리가 왔다 광고하고 밤에는 매춘을  했습니다
          
mymiky 15-03-16 16:37
   
누가 그걸 모르나요? 동문서답 하시는데;;
사당패랑 유곽은 아무 관계가 없는거죠
미우 15-03-16 15:21
   
한국 개독 집성촌의 역사가 더 궁금합니다.
     
콜라사탕 15-03-16 15:2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우촌에 대해서 알려드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혤로가생 15-03-16 18:40
   
반개독 여우 한마리가  미쳐서 방방 뛰고있네요

퍼드득 퍼드득
     
미우 15-03-16 18:44
   
인지력 낮음도 경쟁 하는 시대가 도래한 건가요?
아니면 새로운 여우교 탄생의 예고인가요?
제닉 15-03-16 18:05
   
합법화하면 성매매관광국가가 된다? 별 해괴한소리다듣겠네.. 
지금 불법인데 이미 성매매관광잘만 오는구만.
제닉 15-03-16 18:08
   
성매매합법하고 불법차이는 뭉터기로 모아놓을수 있느냐  가루처럼 온갖구석에 다 뿌려놓느냐 차이일뿐
성매매하는사람들은 예전집창촌때보다 지금이편하지..  예전에는 어디어디 찾아가야했는데 지금은 아무데나 눈만 잘뜨면 다 존재하는걸
관성의법칙 15-03-16 21:59
   
별 뭣같은 논리네요...
Irene 15-03-17 05:41
   
조선 시대를 현대식으로 말하면 룸싸롱 아가씨는 있었으나 집창촌은 없었다 그건가요?
끄으랏차 15-03-17 12:00
   
이거 의미를 잘못 이해한 분들이 좀 보이는데
매춘이 없었단게 아니라 집창촌이 없었다는거예요

그리고 기생이 매춘한건 사실입니다.
흔히들 기생에 대해서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기예만 팔고 살던 기생 뭐 이런 착각을 하시는데
이는 시대상의 반영이예요
양반이 매춘을 하기 위한 핑계를 댄겁니다.
마누라랑 동침도 자주 못하던게 당시 예법이예요
그러니 자연히 기생을 불러 놀아도 음심이 동해 불렀다 라고 할수 없다는거예요
그래서 기생이 기예를 배운거고 양반은 기예를 본다는 핑계로 기생을 부른거고요
실상은 그건 단지 부차적인거고 핑계일뿐이고 매춘이 주예요
정말 기예를 볼 목적이면 관인이나 전문 악사를 청하죠.
조선은 악사에게 관직까지 줘가며 후원해서 평생 음악하라고 할 정도로 나라에서 신경 쓴 나라예요
세종이 직접 음악작업에도 관여했을정도로 이를 천하다 여기지도 않았고요.
그러니 정말 그걸 보려고 부른거면 평생 한 우물만 판 장인들이 버젓이 있는데
기생을 부를 이유가 없어요. 결국 기생의 기예를 청한건 단지 핑계일뿐이라는겁니다.

실록만 봐도 근거가 다 있습니다.
세조가 조선 4대 기생이라고 칭할정도로 당대 최고급 기생이며 기생의 정점에 있던
초요갱 이란 기생이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왕자끼리 돌려가며 합방했을 정도입니다.
최고 위치의 기생도 매춘했었습니다
기생에 대한 이상한 판타지 가지지 마세요.
멍굴년 15-03-18 08:46
   
창녀촌은 필요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