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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06 18:46
이랜드그룹이 대표적인 기독교기업인가요?
 글쓴이 : 푸키
조회 : 1,400  

다른 회사들도 기독교기업이 많던데
유독 이랜드그룹이 기독교이미지가 강하던데...

기독교회사중에서 제일 큰 회사라 그런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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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lee 15-03-06 18:50
   
그런거 같음. 90년대초에 이랜드 입사한 선배 말로는 지원서에  종교란에 기독교면
면접때  다니는 교회 이름까지 물렀다고 했던기억
 입사후에는  교육기간에 사회봉사활동도 시킨다고. 했던 기억
당시에도 중견 기업정도는 돼었으니..
개생이 15-03-06 19:13
   
얼마전에 노조탄압하고 비정규직에 갑질해서 홍역 치루지 않았었나요?
     
도미니크 15-03-08 03:20
   
저도 기독교인인데 그거 보니까 저분이 지금 신앙이 온전치가 않다는걸 알겠더군요 초창기 믿음이 좋았지만 지금은 과거에 일요일은 전 계열사가 쉬었는데 그것도 사라지고 신앙적으로도 변질되었음을 느낍니다 노조 탄압 같은게 결코 하나님의뜻이 아니네요
아라알 15-03-06 19:21
   
아직도 비정규직에게 엄청 갑질하는 회사죠
글구 과장 이상 진급시 기독교신앙이 두텁지 않으면 승진도 안되죠
매주마다 기도문 작성해야하고
아마 롤모델이 통일교인듯 함
콜라사탕 15-03-06 19:28
   
기독교 대학 (기독교가 설립해서 만들어진 대학교)

 강남대
 경민대
 경북과학대
 경인여대
 계명대
 계명대
 계명문화대
 고신대
 관동대
 광주보건대
 국제예술대
 남서울대
 동원대
 명지대
 명지전문대
 목원대
 배재대
 배화여대
 백석대
 백석문화대
 백석예술대
 삼육대
 서강대
 서울여대
 서해대
 선린대
 송곡대
 송호대
 숭실대
 숭의여대
 안산1대
 안산공대
 안양대
 연세대
 외국어대
 우석대
 이화여대
 인덕대
 전주기전재
 전주대
 전주비전대
 준장대
 중부대
 중앙대
 창신대
 청강문화산업대
 평택대
 포항대
 한남대
 한동대
 한민대
 한반도국제대
 한세대
 한신대
 협성대
 혜천대
 호서대
 효원대
     
호랭이님 15-03-06 20:10
   
명지재단이 기독교 재단은 아닌걸로 아닌데요?
     
떡하나 15-03-07 00:15
   
한양대 사랑의 실천 할렐루야.
콜라사탕 15-03-06 19:36
   
일제강점기의 기독교

기독교회의 반일성과 애국성을 알고 있는 일본은 경술국치 이후, 조선통치의 장애물이 기독교라 단정하고, 비인도적인 날조와 탄압으로 그 근절을 꾀하였다. 1910년 말 일본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의 선천(宣川) 기착을 계기로 기독교인들이 암살을 음모했다고 날조하였다.

이 때 서북지방의 기독교인 지도자 157명을 검거하고 고문으로 공백서(供白書)를 작성, 더러는 고문치사하게 하고, 105인을 재판에 회부하여 윤치호·이승훈(李昇薰) 등 기독교계 인사와 신민회 인사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일본은 그 뒤 교인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격화시켰다.

그 밖에 일본의 조합교회에 대한 총독부 비밀자금 지급으로 조선에서의 세력확장과 상대적으로 조선교회의 약세화를 도모했으며, 1915년의 포교규칙 제정, 같은 해의 사립학교규칙 강화를 통한 기독교계 학교의 약체화를 계속 밀고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장로교회는 1912년 총회를 조직하여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직을 실현하였으며, 만주·시베리아·몽고에 대한 해외선교도 착수하였고, 감리교회는 기독교의 토착화 신학을 벌써부터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저력으로 3·1운동에 임하였다.

1919년 3월에 이르는 동안 교회는 일본의 식민정치를 통한 조선농민의 토지수탈, 심각한 채권의 행사, 더구나 아편생산과 판매, 도덕적 퇴폐의 조장 등에 의한 민족성 해체공작에 울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총독부의 아편생산은 막대한 양에 달했으며, 도시마다 유곽을 공금으로 건립하여 공창의 수는 한국 남자 60명에 한명 꼴이라는 놀라운 비율에 달했다.

사법 처우나 행정에서의 조선인 차별대우, 총독정치의 무단성, 만주로의 강제이민 등이 또한 3·1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에 교회는 독립선언의 기치를 내걸고 앞장서 이승훈이 천도교와의 교섭을 담당하고, 길선주·유여대(劉如大)·오화영(吳華英)·신석구(申錫九) 등 16명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안세환(安世桓)은 일본 내각 총리대신에게 선언서를 전달했다. 이필주(李弼柱)는 국내 각 영사관에 선언서 전달했으며, 현순(玄循)은 미국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국내 각지로의 선언서 배포 및 연락을 취하여 일제히 3·1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 주도하의 독립시위운동은 경기도 7, 강원도 9, 경상북도 13, 경상남도 10, 전라남도 4, 황해도 24, 평안남도 10, 평안북도 16, 함경북도 11, 함경남도 13회 등 모두 117회에 달하였다.

일본은 군인과 헌병·경찰을 총동원하여 1926년 가을까지 만행을 자행하였다. 1919년 5월 총독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부 파괴된 교회당이 17동, 일부 파괴된 것이 24동, 그밖의 교회당 손해 41동, 교회재산의 손실 3만 달러, 오산중학교의 손해 5천 달러였으며, 1919년 6월 현재 투옥된 사람의 수는 기독교인 2,190명, 천도교·불교·유교인 1,556명, 기독교 교역자 151명, 천도교 직원 72명이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1919년 10월 장로교의 피해만 해도 붙잡힌 자가 3,804명, 사살 41명, 맞아 죽은 자가 6명 그리고 파괴된 교회가 12동이었고, 함경북도에서만도 26명의 학살자가 보고된 점으로 보아, 실제 희생자와 손실은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훨씬 큰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만행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계 여론에 보고되었다.

미국의 교회협의회는 ≪The Korea Situation≫을 간행하여 직접 목격담·사진·보고서 등을 수록하여 그 참상을 폭로하였고, 캐나다교회에서도 일본 정부나 의회에 항의서를 제출하는 등 조선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쟁취, 군국주의의 종막을 위해서 1922년까지 계속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선교사연합공의회에서도 총독 사이토(齋藤實)가 부임하자 곧 행정개혁건의서를 제출, 일본의 총독정치에 정면 대결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독교Ⅱ(개신교) [基督敎(改新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백미호 15-03-06 19:45
   
기독교 ≠ 개신교
캐나다 교회& 미국 교회협의회 ≠ 한국개독

천재가 이런걸 놓치시나.
그리고 정말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신분들은 개신교지 개독이 아니에요.
          
콜라사탕 15-03-06 19:46
   
위의 내용은 다 개신교가 한 일이란 것도 모르는 한기련에서 오신 분 ㅋㅋㅋㅋ
          
콜라사탕 15-03-06 19:47
   
국기련이 = 한국기독교 총연합회라고 떠들어 보시지요 ㅋㅋㅋ
호랭이님 15-03-06 20:09
   
관동대는 원래 명지재단 거였습니다. 엄청난 부실로 골머리를 앓다가 가톨릭교회측이 인수하였습니다.
덕분에 학교도 좋아졌더군요. 학비도 싸지고.
예전에 관동대학교 의대는 의대병원이 없었지만 현재는 가톨릭교회에서 지었다고 하네요.
국제 성모병원이던가? 아마 그럴겁니다. 인천교구에서 인수했으니..
의대 상황만 봐도 역기능만 있는건 아닙니다.

종교대학이라고 해서 타 종교 동아리도 없는 건 아닙니다. 동국대에도 개신교나 가톨릭 동아리도 있고요..
이슈게시판이 이제는 종교게시판으로 바뀐 것 같은데...
종교에 배타적인 분들인건 알겠는데...너무 편견이 심한것 같다능;;
가가맨 15-03-07 01:26
   
친일파랑 종교재단이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양대축이라서...

정치인이 사학재단을 건듦과 동시에 정치생명 끝...

그렇기때문에 어떤 정치인이 사학재단을 건들려는 시도를 하는것만으로도 그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