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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20 16:09
뉴라이트의 선구자 윤치호 1부
 글쓴이 : 찌짐이
조회 : 2,694  

조선, 동아, 김갑순, 황실…혼맥으로 얽힌 해평 윤씨 친일가계도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8336



 
▲ 윤치호 영정사진

손병휘 가수(이하 손) : 박한용의 라디오 백년전쟁. 역사를 영웅의 관점으로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했을 당시, 예를 들면 이런 얘기가 있었죠. 조선의 3대 천재. 일제시대 때 조선의 3대 천재. 거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계셨죠. 최남선, 육당.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런 신체시 같은 거... 또 역사기행 이런 쪽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중에 친일로 들어섰죠. 벽초 홍명희. 임꺽정의 저자. 나중에 북한으로 가서 부수상까지 하게 됩니다. 대를 이어서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있죠. 현민 유진오라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유행처럼 그도 뭐, 문필가, 소설가로 데뷔를 했습니다만 그다지 주목할 만한 작품은 없었고 나중에 대한민국 초대헌법을 기초하고 야당당수를 지내기도 하고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하셨죠. 뭐 논란은 여기에 뭐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기는 합니다만 보통 그 당시 천재들의 행보가 이랬었습니다만 이완용 같은 천재도 있었죠. 그리고 오늘 다룰 분은 그런 천재급에 해당이 되는 매우 재능이 많은 사람이죠. 윤치호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박한용 실장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하 박) : 네, 안녕하세요?

손 : 네. 그, 평소에 아 요놈 참 재주 좋다, 똑똑하다, 좀 수재급이야. 이런 얘기를 어렸을 때 좀 들으셨습니까?

박 : 저는 없습니다.

손 : 그러세요?

박 : 예.

손 : 아니, 왜 그래도 왜 야 그놈 이게, 덩치는 안 큰데 똘똘하다, 말 잘한다,

박 : 아, 그건 뭐 지나가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죠. 그놈 쓰다듬어 주면서 하는 말이죠.

손 : 하하하...

박 : 별로 현혹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손 : 아이고, 겸손하시군요. 예. 군자의 그런 기미가..자질을...

박 : 하하하..

손 : 갖고 계셨습니다. 예, 오늘 그 저기 손님 한분을 또 모시고 오셨습니다.

박 : 예, 뒤에 한 분 나오셨어요.

손 : 네, 소개 한 번 해주시죠.

박 : 직접 소개 한 번 해보시는 거 어떠실까요?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겸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이하 이) : 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준식입니다. 어, 그리고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좀 길게 소개해도 되나요?

손 : 아, 예. 그럼요.

   
 

이 : 예, 어, 몇 년 전에는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일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일익을 담당을 했구요.

손 : 네.

이 : 지금은 이제 주로 뉴라이트라고 쓰고 친일극우세력이라고 읽어야 되는 무리들 하고

손 : 하하하...

이 : 그 아주 힘겨운 역사전쟁을 벌이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손 : 맛있는 거 많이 드셔야 되겠네요, 그죠?

이 : 예~. 힘을 내야 됩니다.

손 : 하하하하..

박 : 지금 워낙 이렇게 요약을 마지막에 잘 해 주셨는데 어, 역사학자시고 원랜 굉장히 저도 오래전부터 알기 때문에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깊으신 분이에요. 저하고는 달리 내공이 깊으신 분인데

손 : 네.

박 : 최근에 들어와서는 이 워낙에 세상이 희한하게 돼가지고 쉽게 말하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도 계시면서 아까 역사정의실천연대라고 있잖아요? 우리 교과서 싸움 하는데?

손 : 네네네.

박 : 거기 실제 정책위원장으로서 피켓 들고 나가셔요, 지금.

손 : 아니, 학자들은 원래 연구실에서, 연구실과 현장을 오가면서..

박 : 지금 환갑 다 되시는데 피켓 들고 나가십니다.

손 : 조사하고 글 쓰고 논문으로 얘기하고 뭐 논쟁거리가 있으면 글로써, 또는 토론을 통해서 갑론을박하면 되는데 피켓을 들고 나가신다구요?

박 : 물론 그것도 하지만 피켓까지도 들고 나가셔야 될 상황이죠?

이 : 예, 젊을 때 안한 거를 지금 몰아서 하고 있습니다. 하하.

박 : 예, 항상 보면 역사에는 빚이 있어. 그때그때 해야 됩니다.

손 : 하긴 저도 가수거든요?

박 : 하하하하.

손 : 그리고 공대출신입니다, 예. 뭐 이러고 있는데..

박 : 네, 근데 사실..잠깐만요. 아까 좀 빼먹었는데 이런 거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합니다만.

손 : 네.

박 : 친일청산에도 지금 앞장서고 계시잖아요?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조사위원회

손 : 네네네네.

박 : 재산환수할 때 실제로 그쪽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데 사실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외손이세요.

손 : 아~그렇습니까?

   
▲ 광복군 성립식에서 지청천

박 : 예, 그니까 대를 이어 친일파하고 싸우는 셈이 됩니다.

손 : 아~지청천 혹은 이청천.

이 : 예, 아주 잘 아시네요.

손 : 예, 청산리전투에서..예.

박 : 맞긴 맞네요.

이 : 예, 청산리전투에도 관여는 하셨죠.

손 : 관여하셨어요.

박 : 그건 너무 안 알려져서 문제구나.

손 : 이게 그, 아주 젊은 시절이었습니다만.

이 : 예.

손 : 옛날에 장군이라고 하면은 수염 허옇고 뭐 이런.. 그게 아니었잖아요? 젊은 시절에 그야말로 그, 만주땅을 누비면서...예. 그래도 그, 해방 될 때까지 목숨을 부지하시고 끝까지 싸움을 하셨던 그런 민족주의자이면서 무인이었던 그런 위대하신 분 아니십니까?

박 : 광복군 총사령관을 하셨죠?

이 : 네.

손 : 네. 총사령관을 하셨어요. 그 상대적으로 우리 박한용 실장님에 비해서 덩치가 커 보이긴 했습니다.

박 : 장군감하고 차이가 나죠.

이 : 하하하.

손 : 예, 근데 지금 뭐 저 지청천 장군 외손, 뭐 이러시니까, 아우~예 그 풍모가...예. 어, 형광등 백개의 아우라..

이/박 : 하하하하

손 : 예, 오늘 윤치호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 그랬습니다. 이 윤치호는 영어로 그 일기를 썼다고 하는..그죠? 네, 그런 분이었고 또 애국가의 작사자로도 알려져 있고

박 : 예.

손 : 뭐 이렇습니다만. 음..자,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박 : 예, 지금 뭐 일단 보면 윤치호를 다루는 이유는 사실 윤치호란 인물 자체가 워낙 역사적 인물이지 않습니까? 워낙 거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작년에 문창극씨의 참극의 발단이 되었던 인물이죠?

손 : 아~그렇군요, 네네네네. 맞아요 맞아. 어떤 내용이었죠?

박 : 문창극 총리후보자 때죠?

이 : 네.

   
 

박 : 그때 윤치호에 대해서 특별히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이 박사님 기억나세요?

이 : 어, 윤치호를 애국자로 치켜세우면서 윤치호를 그 한국 근현대사가 지금 잘못 기록하고 있다. 윤치호를 갖다가 제대로 평가를 해야 된다. 윤치호는 적어도 교회입장에서 보면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런 발언이었죠.

박 : 비록 친일했더라도 기독교를 지킨 사람이다~. 그래서 뭐 하여튼 강조하기 위해서 하여튼뉴라이트의 특기가 영어 잘하는 사람은 기본점수 50점 이상은 줘요.

손 : 음.

이 : 50점..더 될 거 같은데요?

박 : 더 될 거 같죠? 가산점수가 한 70, 80점 되는 거 같아요?

손 : 한국말 잘 한다고 칭찬하는 것 같진 않던데...

박 : 예, 예. 그렇죠~

손 : 예~ 그러셨구나.

박 : 그런데 뭐 보면 일제 식민지 때 보면 윤치호 개인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대해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일제식민지시대에 대해서도 기억나세요, 이 박사님?

이 : 어, 뭐 일제 식민통치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뭐 더 나가서는 그, 우리민족이 겪은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전쟁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민족이 당연히 겪어야 될 일이었다 라고 얘기를 하면은 그 당연히 겪어야 될 일에 대해서 맞서서 그걸 극복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다.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거죠?

손 : 음...

   
 

이 : 문창극씨의 역사관에 따르면은 독립운동은 잘못된 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제식민통치에 협력한 친일파는 아주 잘한 짓을 한 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한국 근현대사를 갖다가 뒤집어엎으려는 그런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이제 비판을 받은 겁니다.

박 : 예, 그래서 사실은 오늘은 이번에 그런 속에서 꼽았던 인물이 기독교인이고 친일을 한 사람인 윤치호를 얘기하는 바람에 갑자기 한국사회가 윤치호란 인물을 다시 재조명하게 됐는데 해서 이번에 저는 이번 방송코드는 뉴라이트의 원조로서의 윤치호.

손 : 아~뉴라이트의 원조.

박 : 해도 이번 방송에 크게 틀리지 않겠죠?

이 : 예. 그 윤치호의 생각이나 지금 뉴라이트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손 : 아무튼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분의 얘기에 따르면, 어법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문창극의 인용으로 유명해진 분. 아, 일단은 윤치호 이분이 윤보선 대통령도 이 집안 출신이라고 하는데 어떤 그, 가계도를 좀 얘기를 해 봐야 될까요?

박 : 예, 아마 한국 국사교과서에서 가장, 한 집안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나온 집안이 바로 이쪽이에요.

손 : 예~

박 : 쉽게 말하면 해평 윤씨라고 하는데..

손 : 해평 윤.

박 : 이른바 명문가죠? 조선시대에는 명문가 아니에요, 나중에 몰락했기 때문에.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에서 명문가식으로 됐는데

손 : 예.

박 : 해평 윤씨 오음공파. 윤두수라고 있었어요, 임진왜란 당시 선조 때.

손 : 예.

   
▲ 오음 윤두수 영정

박 : 영의정 하던 윤두수 후손 집안이에요.

손 : 예.

박 : 거기에서 이제 바로 이, 이른바 두 가문이 나오지 않습니까? 윤치호 집안 좀 얘기를 해주시죠? 가계도부터 부탁하겠습니다.

이 : 예. 뭐 명문가 출신인 것은 맞는데 이미 조선후기에는 몰락을 해서 할아버지 때에 아산으로 내려갑니다. 아산에서 이제 할아버지가 그 윤치호의 할아버지가 윤치호의 아버지 때, 아 윤치호의 할아버지 때네. 할아버지 때. 아산에서 그 땅을 모으는데 성공을 해서 아산일대에 대지주가로 성공을 합니다.

손 : 예.

이 :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 밑에 아들 둘이 있는데 장남이 윤웅렬이고 차남이 윤영렬입니다.

박 : 예.

   
▲ 윤치호의 숙부 윤영렬

이 : 윤웅렬, 윤영렬 모두 다 서자 출신인데 서자 출신으로서 이제 문관은 못되고 무관으로 입신출세를 했습니다. 나중에 이제 윤웅렬 같은 경우에는 대신급까지 올라가는데

손 : 예.

   
▲ 윤치호의 아버지 윤웅렬(왼쪽)

박 : 국방장관급이죠.

이 : 그리고 이제 윤치호는 윤웅렬의 장남이고 또 이제 윤영렬 쪽 자식들 가운데 거물급 친일파가 또 많이 나옵니다.

손 : 예~

이 : 조사를 해봤더니 그, 윤웅렬, 윤영렬 본인을 포함해서 후손까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파가 무려 여섯 명이나 됩니다.

손 : 하이고~~

이 : 그리고 그 가운데 다섯 명은 국가기구인 반민규명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결정을 한 대상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손 : 예~

이 : 그니까 위원회에서 밝혀낸 중대한 친일반민행위자가 천 명 정도 되는데요.

손 : 네~~

이 : 천 명 가운데 다섯 명이 이 집안에서 나왔으니까 얼마나

손 : 대단한 영광입니까?

박 : 허허허..

이 : 네. 영광스러운 집안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거죠.

손 : 예~ 그렇군요.

이 : 거기다가 이게 나중에 또 얘기가 나올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사돈 또는 뭐 사위, 며느리 가운데 친일파가 또 많습니다.

손 : 어~~

이 : 그래서 인척까지 포함하면은 뭐 열 명이 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박 : 황실까지 연결이 되겠죠.

이 : 예.

손 : 어, 거의 뭐 성골에 가까운 그런 가계를 자랑하고 있는...

박 : 이게 어떻게 성골에까지...진골이겠죠. 왕족은 아니니까.

손 : 예, 그렇군요. 진골...

박 : 한마디로 하면 지금 말씀은 그거죠. 윤웅렬 가에서 바로 장남이 윤치호란 얘기죠.

손 : 네~

박 : 이렇게 되고 그리고 윤영렬 가는 특히 후손들이 친일파가 많았다라는 거죠. 윤치오, 윤치소, 뭐 이런 사람들이죠? 윤치영. 뭐 이런 사람들이 있단 얘기에요.

손 : 그렇군요. 윤보선 대통령은 그러면 어떤 가곕니까?

이 : 그 윤영렬의 차남인 윤치소의 장남입니다.

손 : 아~그렇군요.

박 : 예.

   
▲ 윤보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이 : 그러니까 윤치호와 윤보선의 관계는 이제...

박 :4촌이네.

이 : 아니, 4촌은 아니고

손 : 4촌까진 아니고, 예..그렇죠. 뭐 5촌 정도..뭐, 이렇게 되는데..

이 : 예. 윤치호가 당숙이 되는 거죠.

손 : 네. 장남 윤웅렬 가를 보니까 자, 윤웅렬. 매국수작자. 네. 장남 윤치호. 친일했고 차남 치왕의 장녀 윤선희는 장석윤 즉, OSS 대원이었고 제7대 내무부장관과 결혼을 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3남 윤치창의 부인 손진실은 손정도 목사. 임정 의정원 의장의 큰딸. 손정도 목사는 그, 김일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민족주의자 아니었겠습니까?

박 : 예, 지금 헷갈릴 것 같아서 지금 뭐 다 친일만 얘기하다 보니까...100%는 아니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손 : 아, 네네...

박 : 그건 아니고 가끔가다가 결혼 관계에서 우리가 또 뜻밖의 인물도 있다.

손 : 뭐, 이런 정도가 있다?

박 : 예, 그때 뭐냐면 장석윤이란 사람이 쉽게 말해 사위 집안이 되겠죠?

손 : 네.

박 : 손주 사윈가? 그렇게 되겠죠.

이 : 그러니까 윤치호의 동생의 사위인거죠.

박 : 예예.

손 : 그렇군요. 그러면 저, 두 분께서 장석윤, 손정도 이 두 분에 대해서 잠깐 설명...

박 : 장석윤이란 분은 뭐 이렇게 아까 말하면 윤치왕의 장녀 윤선희의 남편인데 미국에 유학갔다가 그래서 아마 마주치고 OSS 있잖아요? 일제 말기에 광복군...

손 : 그렇죠.

박 : 거기에 참여했었고, 했었어요.

손 : 첩보부대. 예.

박 : 그렇게 했었고 그 이후에는 뭐냐면 무소속이나..또는 하다가 자유당에 참가하죠.

손 : 네.

박 : 그랬던 사람이에요.

손 : 그렇군요. 손정도 목사에 대해서는 이준식 선생께서 한 번...예.

이 : 예. 손정도 목사는 아주 거물급 독립운동갑니다.

손 : 네.

이 : 뭐 감리교 목사 출신이구요 그 다음에 1919년..에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을 할 때 임시정부에 참여를 해서 임시의정원, 요즘으로 하면 이제 국회인 셈이죠?

손 : 예.

이 : 국회의 의장을,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손 : 예.

이 : 그리고 인제 아들은 해방된 다음에 대한민국 해군을 만드는데 주역을 한 손원일 제독이구요~

손 : 그렇습니다.

   
▲ 손원일

이 : 역시 인제 가장 주목되는 거는 손정도 목사와 김일성이 굉장히 깊은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손 : 예, 예.

이 : 그니까 잘 아시는 것처럼 김일성 집안도 원래 기독교 집안 아니겠습니까?

손 : 예, 예.

이 : 김일성이 이제 만주로 이주한 다음에, 아버지가 일찍 죽습니다.

손 : 예, 예.

이 :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도 독립운동을 한 적이 있죠? 아버지가 일찍 죽은 다음에 기댈 곳이 없었는데 이때 마침 그,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손정도 목사가 김일성의 말하자면 후견인 노릇을 한 겁니다.

손 : 네~

이 : 그, 길림의 육문 중학교라는 델 들어가는데 주선을 해 주기도 하구요 육문중학교에 다니면서 김일성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여가지고 학생들한테 사회주의를 널리 전파하는 그런 단체, 조직도 만들고 그러는데

박 : 지하 독서회 같은 걸 만드는데, 사회주의 독서회.

이 : 예, 지하 독서회 같은 걸 만드는데..

손 : (웃음)

이 : 그런 혐의로 이제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서 체포될 위험에 처해있을 때 그것을 인제 빼돌려 준 것도 이제 그, 손정도 목사라고 그럽니다.

손 : 네. 그렇군요.

이 : 김일성으로 봐서는 손정도 목사한테 굉장히 큰 빚을 진 셈이죠?

손 : 네.

이 : 그래서 이제 그, 나중에 죽기 전에 쓴 회고록에서도 손정도 목사를 굉장히 높게 평가를 했구요.

박 : <세기와 더불어>

이 : 예, <세기와 더불어>에서..

박 : 우리나라에서 금서죠?

이 : 예, 한 때는 출간이 됐지만 앞부분은 출간이 됐지만 뒷부분은 출간이 안됐지요.

손 : <세기와 더불어>인데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제목으로 해서..

이 : 예, 다른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손 : 해적판으로..저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 : 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신고를 해야 되나요?

손 : 네? 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겠습니까?

이 : 하하

박 : 아, 그렇습니까?

손 : 예, 그래서 뭐 그...손정도 목사의 자녀들도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이 : 예.

박 : 그렇죠. 이, 손원일이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손 : 해군을 창설했고..

박 : 해방단이죠, 처음에는. 해방단.

손 : 예.

박 : 그, 우리 인사동 들어가는 입구에요. 안국동에서....사실은 정작 김일성하고 관계됐던 손원태씨라고 있지 않습니까?

손 : 네, 손원태.

박 : 그분 미국에 있지 않았나요? 어떻게...

이 : 예, 그렇죠.

박 : 이양반이 아주 김일성하고 친했죠. 친해가지고 나중에 뭐냐면...

이 : 뭐,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랐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죠.

손 : 음..

박 : 그래서 뭐냐면 그, 이야기가 뭐냐면 이, 김일성 자신이 어떤 공식적으로 <세기와 더불어>에서 손정도 목사에 대해서 은인으로 사실 썼다 말이죠.

손 : 네.

박 : 그리고 또 뭐 당연히 북한에서도 다 알고 있지 않겠어요?

손 : 네.

박 : 그래서 이제 그 이후에 뭐냐면 이, 손원태씨가 80세 생일 할 때 평양에서 치러졌답니다.

손 : 흐음..

박 : 평양에서 치러졌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서 손원태란 이름은 오히려 한국사회에선 별로..

손 : 그렇죠.

박 : 안 알려지고..

손 : 아, 해방 전에는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 목사.

박 : 예.

손 : 그의 그 자녀들로 이렇게 있었습니다만 분단되고 전쟁을 치르고 그러면서 각각 그 자녀들이 남과 북에서 큰 역할을 한, 그러한 비극적인,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그런...

박 : 이야기가 사이드로 새 버렸습니다만...하하..

손 : 오늘 윤치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비중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다만, 우리가 무슨 연좌제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그때의 그, 유력 가문들의 자녀들이 어떠한 인생 행보를 보였는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어, 사실에 의거해서 얘기하는 거니까.. 계속 이제 진도를 나가야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윤영렬. 차남집안 얘긴가요? 그니까? 예, 집안은 어떻게 된다는 거죠?

이 : 어, 장남인 윤치오는..

박 : 발음 똑바로 해주세요. 윤치호가 아니라 윤치옵니다.

이 : 예. 윤치오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요

손 : 네.

이 : 그다음에 그 아내가 또 역시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김윤정의 딸입니다. 친일파 집안끼리 결혼한 셈이죠?

손 : 그렇군요.

이 : 차남인 윤치소도 또 중추원 참의를 지냈습니다.

손 : 네.

이 : 그 다음에 6남인 윤치영은 한 때는 이제 독립운동에 관여한 적도 있는데요

손 : 예.

   
▲ 1935년 무렵, 귀국 직전 미국에서의 윤치영

이 : 1919년에 있었던 2.8독립선언에 참여한 적도 있고 그래서 윤치영은 해방된 다음에 1982년인가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서훈을 받은 적도 있는데 2010년에 서훈이 취소가 됐습니다.

손 : 아하~

박 : 윤치영이..

이 : 윤치영이. 친일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실이 사후에 확인이 됐기 때문에

손 : 그렇군요.

이 : 서훈이 취소 될 정도로 6남인 윤치영도 친일반민족행위를 했구요.

손 : 나중에 공화당 윤치영과는...

이 : 예, 맞습니다. 동일인물입니다.

손 : 아~동일인물...

박 : 이승만맨였고 공화당 저,,,

이 : 이승만의 열렬한 추종자였고 이승만이 죽고 난 다음에는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박 : 국회의장도 지내고 뭐...

손 : 친일파였고?

이 : 예.

손 : 참, 이런 일을 우리가 웃으면서 얘기해야 된다는 게 정말 열 받네요 정말. 허허.

박 : 그런데 아까 윤치오 있잖아요?

손 : 예.

   
▲ 윤치오

박 : 윤치오는 아까 그, 마누라도 뭐냐면 중추원 참의였지만 윤치오의 둘째 아들 있잖아요? 그 윤명선이 어떤가요?

이 : 윤명선이요?

박 : 네.

이 : 윤명선은 그야말로 아까 엘리트 얘길 했지만 엘리틉니다.

손 : 예.

이 : 동경제국대학을 나온 엘리트죠.

손 : 와우~~

이 : 동경제국대학을 나와서 어, 어떤 길을 갔냐면은 친일관료의 길을 걸었습니다.

손 : 예.

이 : 그래서 주로 만주국에 건너가서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에 건너가서 만주국의 간부를 지냈습니다. 마지막 직책이 아마 간도성 민생청장인가 그랬을 겁니다.

손 : 예.

이 : 간도성이라는 것이

박 : 민생청장이라는 거죠?

이 : 예. 간도성이라는 곳이 우리 조선동포들이 많이 사는 곳 아닙니까?

박 : 지금 연변...

이 : 지금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해당되는 지역이죠.

손 : 네에~

박 : 민생청장이면 굉장히 높은 겁니다.

이 : 네.

손 : 자, 그러면 지금 윤치호...

박 : 아니, 거기 또 하나 또 있어야 돼요 거기에. 이 윤명선이 있으면.. 있는데 또 윤명선의 또 아내잖아요?

이 : 아내는 유명한 친일갑부 김갑순입니다.

박 : 공주 땅부자, 친일파.

손 : 아하~~~그렇군요?

박 : 부동산 재테크 친일파.

손 : 민나 도보로데쓰~ 뭐 이러면서...

박 : 예.

이 : 결혼 얘기가 나오면 더 얘기 할 거리가 많은데요. 아까 얘기한 윤치영은 동아일보 김성수와 사돈 간입니다.

손 : 그렇군요.

이 : 윤치소는 또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오금선이라는..

박 : 오금선.

이 : 오금선이요. 오금선이라는 세브란스 학교 교장 출신이지만 일제 말기에 친일활동을 한 인물과 역시 또 사돈 간이구요 더 재밌는 거는 윤치영 얘기가 많이 나오네요? 윤치영은 또 식민사학자로 많이 알려진 이병도와 처남 매부 사입니다.

손 : 그렇군요?

이 : 복잡하게 얽혀있죠?

손 : 사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면서도 헷갈리지만 지금부터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이 : 웃음

손 : 지금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면 윤치호, 윤치호 집안에 관한 얘긴데 윤치호의 선대인 윤웅렬, 윤영렬 형제 간인데 그 집안 얘기를 하는 거예요.

박 : 복잡한 친일 가계도를 얘기하는 거예요.

손 : 윤웅렬보다는 동생인 윤영렬, 즉 윤치호의 삼촌, 예. 삼촌..작은 아버지 쪽의 친일이 좀 더 많다. 그리고...

이 : 숫자로는 훨씬 더 많죠.

손 : 혼사, 혼맥으로 엮인 게 많은데 그중에는 공주 최대 부자였던 김갑순의 이름도 나오고 그리고 공화당의 유력자였던 윤치영의 얘기도 나오고 또 뭐 등등등 나오고 있다는 얘기, 예.

박 : 그러다 보니까 김성수니 오금선이니 또 이병도니 친일과 연결되는 한국사의 거물들하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얘긴데 급기야는 이, 황실하고도, 대한제국 황실하고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먼 친척이긴 하지만...

이 : 예. 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처가가 해평 윤씨죠.

손 : 아, 네.

이 : 그니까 굉장히 먼, 멀긴 하지만...

박 : 예, 그래도 뭐 그 당시에는 멀어도 집안이지요. 거, 윤덕영.

이 : 윤덕영, 윤태경.

박 : 윤덕영, 윤태경 다 친일판데 윤태경의 딸이 바로 그 순정효황후 윤비에요.

손 : 아~그렇군요. 순종 비죠.

   
▲ 순정황후 (순정효황후)

박 : 이걸 왜 알아야 되냐 그러면 나중에 윤치호가 출세하는 데 있어서 이런 것도 좀 작용했을 것 같아요.

손 : 네.

박 : 하여튼 뭐 이렇게 대단히 복잡합니다.

이 : 결혼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나만 더 얘기할까요?

손 : 점점 복잡해지네 이거...하하

이 : 윤치호의 증손녀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방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손 : 조선일보에~?예~~

이 : 예, 조선일보하고도 이렇게 얽혀있습니다.

손 : 자, 이상 지청천 장군의 외손이신 이준식 선생께서...아~그렇군요. 지금 혼맥으로 혈연에 얽힌 이런 친일의 가계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군요.

(이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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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맨 15-01-20 18:40
   
이완용이 같은 저급한 인간이었죠.

지식인으로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고민은 않고

자신의 나라 폄훼하고 미개하다고 하고.....

그저 일본숭배에 찬양하느라 바쁜 앞잽이 같은 놈이었죠.

저놈의 사상을 이어받아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었죠....ㅋ
전광석화 15-01-20 19:43
   
윤씨는
파평 윤씨만 있는 줄 알았더니...해평 윤씨라는 것도 있군요.

2000년도 자료를 보니까...국내 윤씨의 총 인구수는 948,600명.
이 중에서
파평 윤씨 : 713,947 ( 윤씨 인구중의 75%를 차지) : 윤관장군, 윤봉길의사, 윤동주 시인, 기타 등등
해평 윤씨 : 26,341 (  윤씨 인구중의 2.7%를 차지)

해평 윤씨...인구수는 얼마 안 되지만...친일파들이 많은 개ㅅㅋ들이구나.
깡신 15-01-23 10:06
   
좋은공부 했습니다. 문대머리 저냥반보니 또 밥맛이 떨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