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특수한 형태의 발언입니다.
하품 나올 얘기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죠.
그리고 정치란 그 사회 속에서의 인간 간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인간들에게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거나 인간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죠.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사회적인 맥락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은
인간에게서 정치적인 맥락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그러한 인간을 조명하는 예술 또한 사회적, 나아가 정치적인 맥락을 완전히는 제거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저는 예술을 정치적인 맥락과 분리해 미적인 면에서만 바라보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무의미하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다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어떤 예술도 정치적인 면을 떼어내고 미적인 면에서만 볼 수 없을 것이고,
반대로 미적인 면을 떼어내고 정치적인 면에서만 볼 수도 없을 겁니다.
그게 예술이라면요. 순전히 정치적으로만 볼 수 있다면 그건 무슨 구호나 선동일 테니까요.
예술이 정치와 결부되어 해석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싫을 수는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했듯이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예술을 구름 위에 묶어두려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구름 위에도, 구름 아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 건데 말입니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예술을 정치적으로만 다루려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얘기일 테고요.
인간이 구름 아래에 있으면서 때론 구름 위도 보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예술 또한 그러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봉준호 감독처럼, 범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각자에게 배당된 구획 안에서 서로를 이용하거나 배제하려 드는, 진정한 이해나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통렬하게 그려낼 줄 아는 예술가라면 제가 말한 의미를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봉준호 감독이 과거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