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끝이다"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어떤 학자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말하는 사람치곤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본 사람없다"
말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인생 절반을 허무하게 보낸 사람이 말하는 변명이다'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무신론자이면서 안되는 일만 있으면 조상 탓을 하거나 그게 알라 이든 하나님이고 부천님이건 언제나 탄핵을 일삼는다.
일상에서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안되는 사람들 대부분 하나님이거나 어떤 초월자를 욕한다.
그러나 언제나 세계는 침묵속에 공평하게 돌아간다
부자도 죽음이 찾아오고 가난한 자도 죽음이 찾아 온다 '죽음의 사신'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모양이다.
도올 김용옥은 사람이 죽으면 기'가 되어 하늘로 올아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니 그 일부로 돌아 간다는 것이다.
또 인기있는 법륜스님은 불교에서 윤회는 없으니 현실에 치중하라 말한다.
이런말 하는 스님이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애초 불교는 윤회를 중심을 두고 출발한 것이다.
윤회개념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인간이 환경 일부를 바꿀수 있으나 전부를 바꿀수없다 세상을 못바꾸는 인간이 자기 환경을 완벽하게 바꿀수는 없다.
불교도 본디 완벽하게 내적 피안의 중교임을 알아야한다
군주론을 썻던 '마키아벨리'도 운명의 여신이 정해놓은 틀을 바꾸지못하지만 그중 30% 노력만 한다면 운명을 약간 변경할수 있다고 한다.
운명을 믿었으며 비참하게 살았던 '마키아벨리'도 '운명의 여신'의 포로였던 셈이고 후대의 역작 '군주론'은 그중 30% 노력으로 일구어난 그의 작품인 것이다.
나또한 운명이 개인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어진 운명 근본은 바꾸지 못한다 생각한다.환경자체를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쉽게도 불교의 윤회 개념밖에 없다
악행을 일삼는 자가 평생 법의 심판도 안받으며 '대지의 복락'을 누린다.
거기에 '대지'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아둥바둥 티격태격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처주고 살아간다
악' 한이의 복락을 부러워 하면 "그런 삶이 행복할수 없다"위안 삼는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부러운 감정을 억제 하기위한 도덕적 윤리적으로 치장한 자기위안의 소리다.
이렇게 보면 죽음만 빼놓고 완전 불공평하다.
그래서 생겨난게 윤회개념이 아니 던가 이것은 초월적인 희망이다 "운명을 거스를수없는 거지가 희망이있다면 동료 거지의 동냥그릇을 걱정한다."
어떤이가 타인에게 선을 배풀때 나는 천국가기 위해 한다.하거나 나는 다음 생애에 천상계에 태어나 돈'걱정 없이 살기위해 덕'을 쌓는다 하는 사람 분명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갖고 타인에게 덕을 행하거나 자기일 처럼 돕는것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선 다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남을 도울수는 있으나 오래못가고 선한 행동을 무가치로 만드는 일이다.
천국을 목적으로 남을 사랑할수는 없다 사랑을 사랑을 목적으로 사랑할수없다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종교적으로 표현할수 없는 그 무엇이다.
기독교가 천국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아가페는 사라지는 역설이 생기게된다
천국이 목적이 되지 말하야 하고 불교는 극락이 아닌 모두의 극락을 염원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본인의 운명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개선될수있으며 불교인들은 다음 생애에 좀더 좋은 환경에 테어날수 있을 것이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만 부자집에 태어나는 것은 정해진것이며 그자가 악한이 더라도 그는 전생에 덕을 쌓은 것을 지금 타 막는것이다.
불교의 윤회는 허무맹랑하고 비 과학적이라 하고 지금 유행하는 불교가 과학적이다'하는데 솔직히 부적절하다 종교나 교리 종파를 떠나 보자면 초월론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실존에서 시작해서 초월로 끝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