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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14 18:59
(스뷁) 조선전기 우산도 인식 - 사서,지도 교차검증
 글쓴이 : 김민지
조회 : 3,288  




이 글은 아래 논쟁에 이어서 쓰는글이므로 아래 논쟁을 이해하지 못하신 분은 패쓰하시는걸 권유드립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6&wr_id=306193&page=0

 

아래논쟁에서 제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관측지, 망견한 지점은 울릉도가 아니라 육지다.

 

댓글에서 밝힌것과 같이 저는 그 근거를 당대 울릉도에 관측자가 모두 육지에서 울릉도를 망견하고 있으며 그 묘사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우선 신증동국여지승람입니다. 본 지리서 울진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우산도는 무릉도를 말하고, 울릉도는 우릉도를 말한다. 두 섬이 고을 정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으로서 땅의 둘레는 백 리 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일한 구성으로 우산,무릉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며 어디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청풍명일이면) 봉우리, 수목,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는 지점(즉가망견)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종실록지리에서처럼, 동국여지승람만 봐서는 관측한 지점이 육지인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독도에서 울릉도를 상호 관측한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궁금증에 대해서는 다른 사료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본도(울릉도)봉만과 수목이 육지로부터 역력하게 바라다 보이고, 무릇 산천의 굴곡과 지형이 넓고 좁음 및 주민의 유지와 나는 토산물이 모두 우리나라의 여지승람 이란 서적에 실려 있어, 역대에 전해 오는 사적이 분명합니다” – 숙종실록, 남구만의 발언


남구만은 봉만과 수목이 역력하게 바라다 보이는 곳이 육지라고 명백히 밝혀줍니다.

 

또한 이는 박세당의 서계잡록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개 두 섬이 여기(평해,울진)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한번 큰 바람이 불면 이를수 있는 정도이다. 우산도는 지세가 낮아 날씨가 매우 맑지 않거나 가장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울릉이 조금 더 높아 풍랑이 잦아지면 예사로 볼수있다.” – 서계잡록, 박세당

 

서계잡록에서는 울진에서 관측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지세가 낮은 곳을 우산도, 지세가 높은 곳을 울릉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국여지승람과 동일하게 두 섬이라고 표현한 것이 주목할 내용입니다.

 

아울러 김시습 역시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본 관측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동으로 발길을 돌려 풍악산ㆍ오대산에 올라 동해 끝까지 다 구경한 다음 월송정(울진)에 노닐며 울릉鬱陵 우산于山을 바라보았다. 성종 때에 이르러서 속세로 돌아왔는데, 어떤 이가 벼슬을 하라고 권유하였으나 듣지 않고 발길 내키는 대로 떠돌면서 세상을 희평하며 유유자적하였다.”-기언 제 11, 김시습

 

위의 내용에서 보시다시피 조선 전기 울릉도를 망견한 기록 중 울진에서의 기록은 공통적으로 육지에서 관측하고 있으며  그 관측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봉만과 수목이 역력히 보인다는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주목할 것은 울진에서의 관측 기록은 공통적으로 우산, 울릉 두개의 섬을 보았다고 관측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박세당의 서계잡록에 나와있는 바와 같이 지세가 낮은 곳(가까운곳)은 우산도, 지세가 높은고 먼곳은 울릉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울진에서는 울릉도의 세 봉우리에 의한 착시 현상 때문에 울릉도라는 하나의 섬을 마치 두개의 섬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울진에서 보인다는 두개의 섬에 대한 관측 기록이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또한 여기서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언급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이도상거불원" 즉 "두섬은 서로 멀지 않다" 라는 문장입니다.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는 200리, 90킬로미터로써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대전에서 대구까지의 직선거리로 한반도 허리의 절반 수준이죠. 하지만 우산도 울릉도라는 것이 울릉도 하나의 섬을 착시현상으로 두개의 섬으로 인지한 것이라면 이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설명 역시도 이해가 됩니다.


또한 이 사실을 인지한다면, 조선 전기 지도에 표시된 우산도의 비밀 역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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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조선 전기 지도를 보면, 동해바다에 큰 두 섬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른쪽에 있는 섬을 울릉도, 왼쪽에 있는 섬을 우산도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산도가 울릉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울릉도 서쪽에는 저런 섬이 없는데 조선 전기 고지도의 미스테리 중 하나죠.


이에 대해 전통적인 학계의 입장은 이를 독도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산도는 곧 독도이기 때문에 위 지도들은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근거다.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저렇게까지 크게 그려진 것은 단순한 착오일 뿐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아무리 고지도라고 하더라도 동쪽을 서쪽으로 표기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죠. 게다가 울릉도의 면적은 73km2로 독도 면적 0.188km2의 400배 크기인데 한두개가 아니라 대부분의 지도가 저런식으로 그러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 설명한것과 같이 울진에서 울릉도를 관측하면 두개의 섬처럼 보였으며 그 중 가깝고 지형이 낮은 섬은 우산도, 멀고 지형이 높은 섬은 울릉도라고 생각했다는 당대 인식을 고려하면 왜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는지도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것입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이도상거불원... 맞습니다. 저 지도들은 당시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반영한 지도라는 것입니다.


,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분명한 관측 지점은 당대 관측자들의 기록 및 지도를 교차검증해서 판단한다면 여러가지 의문점이 풀리게 됩니다.


 한편, 위에서는 울진에서 울릉도의 관측기록을 정리해서 기재했습니다만 강원도 현지인이 바라본 울릉도 관측기록을 살펴보면 또다른 재미있는 공통점이 나타납니다여기까지 보시면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비밀 해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신이 옛날에 강원도사가 되었을 때, 해상에 이르러 거주하는 사람에게 울릉도를 물었더니 섬을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신이 일찍이 일어나 멀리 바라보니 세 봉우리가 역력했는데, 해가 뜰 때에는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영암의 월출산에서 제주를 바라본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가까운 편입니다."- 숙종실록, 김만귀의 발언



“절은 좌측으로 창해滄海를 굽어보고 있어 해와 달이 돋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구름이 걷혀 바다가 맑으면 멀리 울릉도를 환하고 똑똑하게 볼 수 있다.- 아계유고, 이산해



김만귀는 강원도지사였으며 이산해는 강원도에 유배 갔을 때 위와같이 울릉도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남구만, 박세당 등에 비해 강원도 거주 기간이 길었으며 울릉도에 대해서도 더 잘알았겠죠. 이들 역시도다른 이들 처럼 와 달이 걷히면 역력히 볼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주목할 것은 울릉도에 대한 얘기만 하고 우산도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죠.



이는 강원도 삼척지사였던 허목의 글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우산, 울릉 한 섬인데, 세 봉우리가 높고 험준하게 솟아 있는 것이 바라다 보인다. 바다가 맑으면 산과 나무를 볼 수 있고 산 아래 흰 모래는 아주  멀리 있다. 옛 우산국이다”


보시다시피 강원도 현지인들은 울릉, 우산이 곧 한 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두개의 섬으로 보이는것은 단순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죠.


 

.. 이제 다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읽어보겠습니다.


“우산도는 무릉도를 말하고, 울릉도는 우릉도를 말한다. 두 섬이 고을 정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으로서 땅의 둘레는 백 리 라고 한다


 

눈치채셨나요? 우리 조상님들은 관측자들이 얘기하는 울릉,울릉의 두가지 모습 - 어떤이는 두개의 섬으로,,, 어떤이는 한개의 섬으로,..- 모두이라고 기재하신것입니다. 즉, 명백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양설을 종합해서 지리서를 편찬하셨던 것입니다.



제 설명을 잘 이해하셨다면, 조선 전기의 지리서, 관측기록, 지도는 울릉도,우산도에 대해 모두 일관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산도를 독도로 끼워맞추기 위해 당대 관측자들의 수많은 관측기록을 관념적인 표현이라며 폄하한다던지.. 우산도를 울릉도 서쪽에 그린 수많은 지도들을 하나같이 방향을 착각한 지도라고 폄하하는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ㅎㅎㅎㅎ



한편 이러한 우산도에 대한 인식은 안용복사건 이후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여러 우산도 논쟁에서 짤방으로 올라오는 우산도 = 죽서도설은 안용복 사건 이후부터 자리잡게되죠.


이러한 조선 중기 우산도에 대한 인식은 기회가 되면 업로드하도록 할게요 ㅎㅎ어차피 관심 가지시는 분도 없을것같아서 ㅎㅎ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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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공부 14-12-14 22:04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지 14-12-14 23:26
   
가생이 분들은 전반적으로 독도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던데 관심 가지시는 분이 있다니 반갑네요 ^^
종훈이당 14-12-15 03:25
   
역사 전공이 아니지만 님이 제시한 논리에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전기에는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울진이나 강릉 포항 등에 오가며 교역도 하였는데 과연 그곳에 섬이 몇개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랐을까요? 물론 관리도 가고.
수목도 모래도 보인다 그것이 인용되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보일리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도 안보입니다. 망원렌즈 사용해서 찍은 사진도 형태만 보이지.
종훈이당 14-12-15 03:33
   
제가 보기엔 지리서 편찬자나 관리가 들은것과 본것을 혼용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울릉도 출신이나 가본이에게 물었을 테고 여러개의 섬이 있다는 것을 가장 동쪽이나 남쪽 섬에 대해 물었을 테고 당연 어떤섬 이야기를 했겠지요.

지리서 편찬자가 들은 그 두섬을 직접본 봉우리로 구분하였겠죠. 본인 혼자서... 들은것을 유추로 바라보니 저것이 두섬이라 생각한것 아닌지.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안맞는 문장이죠. 당연 그림도 그렇게 되고.. 

왜냐면 최소한 울릉도 사람이 독도를 인지 못할 확율은 없습니다. 이유는 보이니까. 섬에 살아보면 보이는 섬은 다 이름이 있습니다. 가보든 아니든 희미하게 보이든 아님 일년에 한두번 보이든 간에..

하늘에 별도 보이면 이름이 생김니다.  즉, 울릉도 사람이 독도를 인지 못할 확율은 없다. 수세기에 걸쳐 아무도 못봤을리 없고. 누가 보면 사람들 보고 보라 하고 이름을 붙임니다.

다만, 본것은 섬사람들이 기록하지 않고 물어 보는 사람에게 구전으로 전하고 실제 기록하는 사람은 엉뚱하게 하는 것이죠.
종훈이당 14-12-15 03:46
   
1. 울릉도 사는 사람은 모를수가 없다 왜냐 보이니까.(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울릉도에서 보이는가) 당연 민화 설화 전설 속에 답이 있을겁니다. 보이는데 인지를 못했다는 말이 안되죠. 보통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을 나라라고 생각하죠. 고대갈수록.. 그래서 국이 붙은것이고 울릉도를 우산국의 하나쯤의 섬이라 생각했겠죠
2. 그 이야기를 듣고 책에서 읽은것을 바탕으로 가보지 않니한 자가 인용하고 기록했을 것이고
3. 그럼 우리 생각과 다른 지도가 나오는 것이고 즉, 관념을 기록했다고 해도 그 기록이 있는 것이죠.

중요한건 독도에는 대나무도 소나무도 없습니다. 보이는데로 기록하는게 고대인인데 그런 이름을 붙일리 없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보였다 안보였다 희미한 섬은 국으로 표현되기 쉽고 우산이란 이름의 어원을 찾는게 급한문제고 그건 고대 울릉도 언어에서 찾아야 하죠.
삼국시대 들은 말을 한자로 표현했을 뿐이니..  독 돌 우산
     
김민지 14-12-15 05:53
   
1, 제가 올린 대부분의 관측문은 실제로 가 본 사람이 기행문을 올린것을 발췌한것이구요, 저 수많은 디테일한 관측기록 (울릉도는 평범한 날에도 보이나 우산도는 날이 아주 맑을때 높은데서만 보인다..  아침에는 보였으나 해가뜰때는 잘 보이지 않더라...)을 모두 허위 기록이라고 주장하시는건 님 자유인데요.. 설령 그렇게 판단하시더라도 이 관측기록들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관측지를 검증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자료들입니다.

즉, 당시 관측자들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육지에서 울릉도를 바라본 것을 기록한 것이고, 따라서 해당 지리지의 관측지가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본것이라고 주장하는 현 학계의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는것이죠.

2. 저는 여기서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의 정체를 몰랐다는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울릉도에 살던 주민은 독도를 알긴 알았겠죠. 일본 어민들도 독도를 알았는데 울릉도 주민들이 몰랐던것은 당연히 말이 안됩니다. 근데 그것은 본문과 아무 상관없는 내용같구요..

본문에도 언급돼있다시피 울릉도가 하나의 섬인지 두개의 섬인지 햇깔려했던것은 조선정부나 타지역 사람들의 입장이고 강원도(울진) 사람들은 울릉도가 하나의 섬이며 울릉, 우산이 같은 섬이라는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3. 우산도의 옛이름은 우리뫼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우르뫼란 이름이 울릉도, 우산도로 바뀐것이죠(뫼 山).
종훈이당 14-12-15 08:56
   
제 주장을 이해를 못하는 군요.
1. 울진에서 섬을 두개로 착시할만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에요. 다만, 섬이 두개라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여행객이 혼자 보면서 봉오리를 보고 섬이 두개가 겹쳐 있다고 생각할수는 있습니다.  섬이 몇개다 나무가 백백하고 모래가 있다 할 정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2. 님의 주장요지가 조선시대 섬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잖아요?  인지 여부의 핵심은 가시거리란 이야기입니다. 가시거리에 있는데 인지 못할수가 없고 사료 유무는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모든 바위섬을 사료로 남기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우산이란 용어는 울릉도 사람이 독도를 가르켜 사용하던 용어란 이야기입니다.
그게 내륙에서 구분한 못한거 아닌가하는 왜냐면 과거 울릉도 사람과 일한적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김민지 14-12-15 10:33
   
1.  님이야말로 말뜻을 이해못하시네요.  울릉도는 하나의 섬이니 당연히 어떤식으로 착시를 했겠죠. 근데 저런 기행문을 쓴사람은 더 많구요 이렇게 많은사람이 착시했다는것은 착시할만하니까 한겁니다.  백번 양보해서 저들이 모두 신기루를봤거나 허위의 사실을 쓴거라고해도 중요한것은  저들이 지리서를 육지관측으로 해석했다는겁니다

2. 제 주장 요지는 우산도가 지금의 독도는 아니란말입니다. 
굳이 인지여부를 물으신다면 울릉도 주민이 독도를 인지하고있었다고 생각하나 조선정부는 인지하지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숙종실록과 고종실록을 보면 확실해지는데 울릉도 관련 일이 터질때마다 조선정부는 우산도 울릉도 송도 죽도로 불리는 울릉도의  명칭에 서조차 혼란스러워하며 울릉도에대해 알아오라며 사람을 파견합니다.

숙종때 울릉도에 감찰나간 장한상은 독도로 추정되는 섬에 대해 발견은 하나 그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달고있지 않았구요, 고종시대때 마지막으로 보낸 감찰 이규원에 의하면 우산은 곧 울릉도의 별칭이라하여 울릉도 주변엔 죽서도 등 외에 섬은 없다고 말하죠
     
띠로리 14-12-15 11:29
   
'숲과 나무, 모래들이 보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관념적 표현일 것이다.' 라고 다른 글에서 댓글을 달았지만, '그냥 기록이니 사실이다.' 라고 꽉 막힌 주장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글에선 분하다와 아쉽다가 별 차이 없다며 어그로 끌고, 칭제의 사전적 의미가 스스로 황제임을 선언하는 것임에도 대상을 개인이 아닌 백성들 전부로 확대시켜 고문헌을 왜곡하고, 식량 부족을 식자재 부족과 혼동하며 조선이 식자재가 부족한 국가였다는 어이 없는 주장을 하던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걸 하나하나 지적해줘도 끝까지 우기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이렇게 설명해도 자기 주장 굽히지 않을 겁니다.

참, 그리고 섬의 크기와는 상관 없이 바다에서는 해무로 인해 거리가 멀면 멀수록 관측이 힘든데도 불구하고 울릉도와 독도의 섬의 규모를 언급하며 단순 비교하기도 했고요. 더더군다나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는 채 90km도 안되는데, 100km미터라고 뻥튀기 함.

이런 사람은 그냥 주장의 모순만 알려주고 끝내는 게 좋아요. 괜히 힘쓰지 마시고, 일일이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종훈이당 14-12-15 11:47
   
최소한 전 님의 주장을 이해했습니다. 지금 님이 제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겁니다.
일본에서 독도가 보인다구요? 오늘 첨 알았네요.

제 주장이 기존 학설인지 아님 새로운 주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울릉도에서 본것인지 내륙에서 본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님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독도 증빙 자료로 휼륭하다 생각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1. 울릉도는 사람이 살고 왕래가 있었고 심지어 관리가 주기적으로 다녔다면 울릉도가 하나의 섬인지 둘이지 구분을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2. 당연 새로운 관리나 지리서 편찬자가 작업을 하기위해 울릉도 출신 사람이나 과거 관리를 불러 울릉도를 물어 보았을 겁니다. 님 주장대로 가보지 않았다면

3.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다 보면 설사 울릉도가 2개의 섬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로 보이는게 맞을겁니다. 그런데 굳이 보이지도 않는 내용을 2개로 그렸죠.

4. 종합하면 2개의 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거 고증자료를 봤다면 당연 가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똑같이 그릴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봉오리 개수를 보고 섬이 겹쳐져 저렇게 보이는 구나 하고 생각했겠죠. 하나로 보인다고 해도 사서에서 본 것이 있으므로 혹은 들은 것이 있으므로 둘이라 생각했겠죠.

5. 결국, 울릉도는 하나의 섬인지 알면서 섬 두개를 그리려 했다는 것으로 그림에서 작은 섬이 북에 있던 남에 있던 서쪽에 있던 관념적인 면을 고려해야지 위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당시 우리나라 지도 자체가 현대 지도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니까요.

6. 죽도를 그리려 했다면 당연 더 많은 부속섬을 그려야 했고 더욱이 동쪽에 있는 섬이 더 작아야 합니다.

7. 종합하면 울릉도는 섬이 하나인데 둘을 그리려 했고 둘이라는건 알았지만 실제 어떻게 있는지는 내륙에서 알수가 없으므로 봉오리를 보고 섬이 저렇게 생겼다 하고 그렸을 것이고 그 후대에도 섬이 두 개라는 것은 가본자가 혹은 살았던적이 있는자가 이야기 하니 맞다고 보고 계속 인용을 했을 확률이 많습니다.

8. 님의 주장이 맞기 위해서는 울릉도가 섬이 하나인지 둘인지 조차 구분을 못하고 사람이 안살아야 말이 됩니다.

9. 지도가 정확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섬을 인지하고 그것을 그려 넣으려 했다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지 얼마나 정확했냐는 둘째문제입니다. 수백년을 착각했다고 하려면 관리들이 완전히 울릉도를 몰라야 하는 겁니다.
     
김민지 14-12-15 11:56
   
우선 저는 일본에서 독도가 보인다고 한적이 없습니다만.

1~5. 울릉도에 마지막으로 관리가 방문했을때는 태종때였으며 태종 이후 왕래를 않다가 숙종때 가서 부터 3년에 한번씩 정기 감찰을 하기로 했엇습니다. 위 기사는 모두 태종때부터 숙종 사이에 있었던 기사들입니다. 한편 태종 당시 우산도를 방문한 사신 김인우는 우산도에 사람이 산다고했으며 대나무 등이 특산물이 있다고 한 바 당시 김인우가 말한 우산도는 곧 울릉도입니다.

6. 죽서도를 그리려하지 않은것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산도 = 죽서도 인식은 숙종 이후부터입니다.

7. 당연히 울릉도는 하나이며 우산도, 울릉도로 구분했던것은 착시현상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당연한 얘길 왜자꾸 하시는지 -0-

8.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건 안살고있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조선정부 및 내륙국민들은 울릉도를 한개의 섬인지 두개의 섬인지 혼동하고 있었다는거죠.

9. 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자유입니다만, 사료를 보면 실제로 수백년간 착각했습니다. 조선전기에는 우산도가 울릉도가 아닐지 착각했었고, 숙종 이후에는 현재의 독도 그리고 죽서도와 착각흘 했으며 고종 때는 또다시 울릉도로 돌아갑니다.


이러니까 이랬을리가 없다고 현재의 기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시기보다는 사료를 근거해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종훈이당 14-12-15 12:00
   
그건 님 생각이구요. 관리가 갔다는 기록이 그때죠. 그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왕래를 했습니다. 신라때 이미 사람 살았다는게 증명이 되었죠.

울릉도가 하나란것을 다 아는데 무슨 착시를 말하는 겁니까? 하나로 보이지만 섬이 두개라니  두개인가보다 하고 그린것이라니까. 섬에 사람이 살고 안살고 왕래가 있고 없고는 아주 중요합니다...... 정보를 주기 때문이죠.
               
종훈이당 14-12-15 12:01
   
수백년가 사람이 왕래가 없단 말입니까? 최소한 님의 논리는 허구 투성이에요
                    
김민지 14-12-15 12:39
   
제 논리가 허구가 아니라 저는 사료에 기반한 설명을 드리고 있는겁니다.

거듭말씀드리지만 반박하시려면 사료를 반박하시거나 사료를 제시해서 반박하시는게 어떨까요? 막연하게 조선시대 지리서 및 영토 확인 체계에 대해 님 혼자의 상상속으로만 그랬을것이다라고 하지마시구요.

역사를 판단할때 상상을 근거로 대화하면 대화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김민지 14-12-15 12:02
   
정정하려는 사이에 댓글을 다셨네요 1번 우산도 마지막 방문 기록이 태종이며 울릉도 방문기록은 간간히 있습니다(한 왕조에 한번꼴) 정기방문 기회는 안용복 사건 후인 숙종때부터 있었으며 숙종때 부터 우산도 인식은 현재의 죽서도로 바뀝니다
종훈이당 14-12-15 12:12
   
기록이 더 있다면 논쟁거리도 못됩니다. 안타깝게 기록이 부족하죠.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삼국시대 이후 1000년이에요 울릉도가 섬이 몇개인지 몰랐다는게 말이 안되죠.. 그런데도 두개를 그렸고이름도 달라요 울릉 우산  그건 안가본사람이 두개라는 이야기만 듣고 두개를 그린것이라는게 설득력 있고 당연 독도를 표시 하고자 한겁니다 몰라 그렇게 그렸을 뿐이지...  1000년을 몰랐다 주장은 좀 상식 밖입니다
     
김민지 14-12-15 12:33
   
상식밖이라는게 님 상식밖이라는것일뿐, 사료에서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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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사 이규원을 소견하였다. 사폐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울릉도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때나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와 우산도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그대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가려 차임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하라. 그리고 앞으로 읍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단에 자세히 적어 보고하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는 바로 울릉도이며 우산이란 바로 옛날의 우산국의 국도 이름입니다. 송죽도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와 떨어진 거리는 30리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과 간죽이라고 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산도라고도 하고 송죽도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죽도라고도 하는데 우산도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라.

울릉도는 본래 삼척 영장과 월송 만호가 돌려가면서 수검하던 곳인데 거의 다 소홀히 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있었다. 그대는 반드시 상세히 살펴보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검찰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와 죽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으나 대체적인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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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고종 조차도 "송죽도와 우산도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감찰 이규원은 "송도와 죽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송도와 죽도가 일본이 울릉와 독도를 칭하는 명칭인지조차도 몰랐으며 울릉도의 주변 섬에 대한 인식은 죽서도(울릉도 30리 거리의 단향과 간죽이 특산품인 섬)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것이 구한말기까지의 울릉도에 대한 인식입니다.
          
종훈이당 14-12-15 12:51
   
아직 이해를 못하시네요. 당연 신임 관리나 왕은 모르죠. 그러나 울진, 강릉, 포항 사람은 다 압니다. 1000년동안 오갔으니.. 서울사람이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알까요. 그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당연 와서 물었을 것이고..  그 기록이란게 정부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니 없는 것이고
               
종훈이당 14-12-15 12:53
   
님은 전라도 모섬에서 보이는  최 남단 섬을 압니까?  당연 그 지역 사람 아니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관리가 가면 관심을 가지고 물어 보게 된다니까. 이해력이..
               
김민지 14-12-15 12:53
   
님이야말로 제 논리를 이해 못하시는데 저는 본문과 댓글에서 거듭해서 강원도 사람들은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높았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삼척지사 허목, 강원지사 김만귀, 강원도로 유배간 이만해의 기록 등을 본문에도 제시하고 있구요.

하지만 저는 조선 정부에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 근거는 울릉도를 두개의 섬으로 착각한 각종 지리서와 수백년간 울릉도의 주변의 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하고있구요.

같은 말을 몇번씩 반복하는지 모르겠네요
                    
종훈이당 14-12-15 13:01
   
제말이 그말이잖아요.. 울릉도는 명확하게 안다고.. 그런데 둘을 그려 넣었다고 그것도 이름을 달리하여
                         
김민지 14-12-15 13:04
   
그니까 결론적으로 조선왕조는 울릉도 주변의 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원도 사람들은 제대로 알고 있었을것이다.

여기에 대해 동의하시는겁니까? 그렇다면 님과 저의 견해는 같은것입니다.
종훈이당 14-12-15 13:00
   
아직 요지를 이해 못하셨는데 최소한 사서에 보는 바와 같이 울릉도에 대한 인지는 명확합니다. 섬이 하나인지 아는데도 굳이 두개를 그려 넣었다니까.. 그게 이해가 안되나 보네요.
     
김민지 14-12-15 13:02
   
울릉도에 대한 인지는 당연히 했죠. 울릉도가 울진에서 보이니까요. 하지만 섬이 하나인지 두개인지 조선 정부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박이라고 하시는걸로 봐선 님은 지금 논리에 혼동을 겪고계신듯 한데 님의 논리를 차분히 정리하셔서 글을 한번 써보시는게 어떨까요?
          
종훈이당 14-12-15 13:07
   
아참 어떻게 모를수가 있습니까 당대 엘리트 들인데.. 울릉도가 하나의 섬이란건 1000년 세월 교류로 그 지역 사람들이 다 알고 정부에서도 울릉도는 잘압니다.

그렇게 교욱받은 사람이 착시로 보인다고 국가 문서를 맘대로 두개로 그려 넣었다 ? 말이 안되죠..

그리고 울진에서 보면 설사 2개 섬이라도 하나로 보인다니까.. 착시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데 울릉도 말고 섬이 있다니까. 두개를 그린 것이고 가보지 않았으니 봉우리를 보고 겹쳐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 거라고..

중요한건 두개를 인지해서 기록할려고 했다는 게 중요하다니까.
               
김민지 14-12-15 13:14
   
1. 국가 문서를 맘대로 두개로 그려넣었다? 말이안되죠? -> 실제로 그렇게 표기했다니까요. 울릉,우산이 육지에서 보이는 두개의 섬이며, 일설에 의하면 한섬이라고 기록하기까지합니다.(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참조)

2. "그리고" 이후부터 님이 하고자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안되는데 억지로 이해해보면, 님은 두개의 섬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 중 하나가 독도라는 얘기를 하고싶은건가요? 그렇다면 님의 논리는 잘못됐습니다. 울릉도 주변에는 독도만 있는게 아니라 죽서도와 관음도도 있으니까 울릉도 이외의 섬을 독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없는 끼워맞추기입니다.

3. 그리고 우산도의 정체에 대해서는 님도 인정하시다시피 당시 울릉도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강원도 동해 사람.. 삼척지사 허목이 말해주잖아요. “우산, 울릉 한 섬인데" 한섬이래잖아요.
                    
종훈이당 14-12-15 13:21
   
참나. 님이 죽도는 아니라면서요. 그건 님의 논리가 만들어낸 허구를 믿는 겁니다.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울릉도 주변 부속섬을 그리려고 했다면 수십개를 그려야 한다고 큰것만 그려도 서너개를 더 그려야 해요.

인근섬이 어떻게 한섬입니까.. 관할상 한섬이라 해석 가능한 부분이고.. 사서 자료중 100개가 일치하고 1나가 틀린면 오기록 일수도 있지 모두 맞다고 가정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김민지 14-12-15 13:24
   
제가 죽서도가 아니라고 한건 제 논리상 조선 전기때 울릉도가 곧 죽서도가 아니란건데요. 님은 제 논리를 부정하시고 있는것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한섬이냐고 저한테 묻지 마시구요, 허목이 "우산, 울릉 한 섬인데"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님 멋대로 다르게 해석하는지요?  뿐만아니라 동국여지승람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설에 의하면 한섬이라고 얘기하고있는데요?
                         
종훈이당 14-12-15 13:27
   
그럼 어느섬과 어느섬이 한섬입니까? 또 잘못 봐서 그렇다? 울릉도에 삼국시대 이래 조선초기 까지 1000년을 살았다니까.. 왕래 횟수며 그런것 생각하면 모를수가 없다니까. 나참..
                         
김민지 14-12-15 13:28
   
전 울릉도와 한섬이라는 것을 사료를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을 드렸구요, 님 주장이 울릉도가 아닌 다른 섬과 한섬이라면 님이 사료를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세요.
                         
종훈이당 14-12-15 13:32
   
님도 어느섬과 한섬인지를 모를 내용을 내가 어케 해석 합니까. 내가 학자도 아니고 중요한건 부속섬 조차 한섬인적도 없고.. 추정컨데 관할을 의미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자로 그대로 해석이 안되고 한자 해석문제로 한일간 논쟁중인게 한두건이 아닙니다.

중요한건 님의 논리는 상식밖이라는 거에요
                         
김민지 14-12-15 13:39
   
저는 밝혔잖아요. 사료에 근거해서 우산 울릉은 한섬이다.

동국여지승람 :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
허목 : 우산, 울릉 한 섬인데
태종실록 :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 수우피(水牛皮) 생저(生苧) 면자(綿子) 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사료를 밝히며 한섬이라고 하는 중인데 뭐 자꾸 딴소리세요.

여기서 말하는 한섬이라는게 관할을 의미하는게 아닌가-울릉도가 관할로 승격된 것은 고종때 이야기입니다만-라고 주장하시고 싶으면 근거를 갖고 오시요.  님은 지금 하나의 근거도 없이 제가 제시한 모든 사료를 배척하는 중이잖아요. 단지 님의 생각과 다르다고해서요.
                         
종훈이당 14-12-15 13:41
   
아 진짜.. 그럼 한섬을 왜 두개로 그렸냐는 뭐로 말할래요. 세종실록지리지에 한섬이라 하고 두개로 그립니까?
종훈이당 14-12-15 13:23
   
우리섬이라는건 일단 울릉도에서 보입니다. 그럼 인지 못할수가 없습니다. 한해 한두번만 보여도 이름이 있어요.  일본은 안보인다면서요.
누구 것인지 당연한 것을 사서로 논하자.. 우리 조상이 이럴줄 알았다면 수백권 저서 했을 겁니다. 당시에는 조그마한 섬이 중요성을 몰라 기록을 안한 것이지.. 사람많이 사는 울릉도가 중요했겠죠..
그런지만 영토의 끝자락에 대한 관심은 있어서 독도가 들어간거라 봅니다. 섬은 수천개이고 그걸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정도면 휼륭한겁니다.
     
김민지 14-12-15 13:28
   
결국 님의 논리적 결론은 당대 지리서, 지도 및 울릉,우산에 대해 관측한 수많은 관측자들과 삼척지사 허목의 기록을 싸그리 의미 없다고 폄하해야지만 나올수 있는 결론입니다.

영토의 끝자락에 있어서 독도가 들어간것이다?그렇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됩니다. 초기 조선 정부가 독도를 우리 영토의 끝으로 인식한 기록을요
          
종훈이당 14-12-15 13:33
   
무슨 근거요. 님의 논리는 더 근거가 없다니까 심취해서 님의 논리는 아주 논리적이란 착각을 하고 있네요.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님의 논리부터 더 다듬고 오세요.
               
김민지 14-12-15 13:39
   
저는 밝혔잖아요. 사료에 근거해서 우산 울릉은 한섬이다.

동국여지승람 :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
세종실록지리지 :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한다.
허목 : 우산, 울릉 한 섬인데
태종실록 :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 수우피(水牛皮) 생저(生苧) 면자(綿子) 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근거가 있는데요?
                    
종훈이당 14-12-15 13:49
   
똑같은 이야기  반복 한섬으로 인식했다면 지도에 하나를 그리고 이름을 연서하지 크기도 서로 다른 섬 두개를 그립니까? 글거오면 다 논리인지..
                    
종훈이당 14-12-15 14:11
   
물론 제 추정일 뿐이지만 여기서 한섬은 물리적 한섬이 아니라 한 관할구역 혹은 한뿌리 개념으로 통계를 같이 잡고 토산물도 같다는 의미의 한섬이라 추정됩니다.  물리적 한섬이라는 근거도 없는데 가지고 와서는 한섬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과거 용어의 쓰임새화 현재 용어의 쓰임새 혹은 어감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종훈이당 14-12-15 14:13
   
물리적 한섬이라는 근거가 없다는데 글자만 글거 와서는 우기기만 하네요. 근거없이..
일본하고 칠지도 부분 한자 해석으로 아직도 서로 우기는데.. 무슨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 한네요
                         
김민지 14-12-15 15:19
   
사료를 판단할때 자기 추정으로 말한다면 끝도 없어요.
사료에서 분명히 우산도라고 말하는데 멋대로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하나의 관할구역으로 우산도라고 불렀다고 우기시면 곤란합니다. 적어도 조선시대 행정명칭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요~

근거 없이 주장하는것은 님이고, 저는 계속 사료를 제시하고 있네요.
                         
종훈이당 14-12-15 15:54
   
사료대로 현대 문구로 해석하면 일본 역사는 완전 난장판 됩니다. 당시 의도 쓰임새 등을 고려한느 겁니다. 한섬이 왜 물리적 한섬이라 생각하는지 ? 지도에 그럼 하나를 그려야 한다니까 엉뚱소리를 하는지.
                         
김민지 14-12-15 16:14
   
전 일본 현대사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우산도에 대해 얘기하는데요

그리고 지도를 만든 사람이 강원도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두개를 그릴수밖에요. 지리서에서부터 두개라고 착각하는 마당에
종훈이당 14-12-15 13:37
   
제가 서두에 말했죠. 제 논리가 학계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다만, 내가 급조해서 만든 논리만도 못하단걸 말하고 싶은 거에요.. 님은 마치 이정도면 완벽하지 싶겠지만 전혀~
제 논리하고도 상대가 안되고 있는 겁니다. 내논린의 맹점을 논하기전 님의 허구를 이야기 하는 거에요. 혼자 심취하지 마시고 더 명확한 근거를 가져 오세요. 저도 일이 많이 이만 하렴니다.
종훈이당 14-12-15 13:52
   
님 말이 논리가 되려면 울릉도 조차 사람이 살지 않고 교류도 없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임자 없는 섬이 되어야 논리가 맞아 들어 갑니다.

독도 이전에 울릉도가 먼저 문제가 되는데 울릉도 부분은 명확히 일본이 인정하잖아요.. 그럼.. 앞뒤하 하나도 안맞게 됩니다.
     
김민지 14-12-15 15:22
   
앞뒤 완전히 맞아요ㅇㅇ 울릉도에 대해 강원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으니

허목 : 우산, 울릉 한 섬인데
동국여지승람 :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
세종실록지리지 :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한다.


이라고 울릉 우산도는 한섬이라고 밝힌것이구요,

그에 비해 조정은 제대로 모르고 있었으니 두섬이랬다가 한섬이랬다가 오락가락하다가 고종때까지도 거기 섬이 몇개있는지 알아보라고 해서 감찰이 알아보러 간겁니다.

사료가 그렇게 설명하고 있잖아요. 정부는 몰랐는데 동해바다 사람은 알았다. 제 글은 그 사료에 기반해서 주장하는 것이구요

조선 초기 정부가 당시 우산도 = 독도라는것을 알았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숙종 이후 자료는 이후 안용복사건에 대해 제가 쓸 글을 참조해주시구요 ^^)

 자기의 혼자만의 생각을 우기기 위해서 우리 조상님들이 오랜세월 기록해둔 사료를 실수,착오로 주장하시면 곤란합니다.
          
종훈이당 14-12-15 15:53
   
무슨 소릴 하는지 이랬다 저랬다. 동해바다 사람들 알았으니 지도에 반영된것이고 그것이 말만 듣고 잘 모르니 독도가 울릉도 인근에 그려진 것인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에요? 그럼 지금 현재 지도랑 고지도랑 일치합니까?
그리고 한섬을 맘대로 해석하고 있는 겁니까?
               
김민지 14-12-15 16:16
   
이제보니 님이 사료를 모르시니까 계속 이해를 못하시네요.
이랬다 저랬다 하는게 아니라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사료에 두개의 섬이랬다가 일설에 한개의 섬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
고지도랑 지리서는 일치해요. 실질과 일치안해서 문제죠. 이는 곧 조선 정부의 울릉도에 대한 인식이 무지했음을 반증하죠

남의 주장을 반박하시려면 기초 지식을 쌓은 뒤에 반박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
                    
종훈이당 14-12-15 16:28
   
그러니까 님 말이 울릉도가 하나인지 둘인지를 몰랐다는 말이잖아요. 모를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을 무시한 거라 봅니다.
첨에는 울진에서 착시였다고 하더니 상식적으로 착시가 힘드니... 이제는 한섬이라 했다가..  일설에 본시 한섬이다? 여기서 일설에 부터 한섬의 의미를 맘대로 해석하고 밀어 붙이는 겁니다.
여기서 두가지 설이 있을수 있는데 독도가 우산인데 우산과 울릉을 혼용해서 사용한 경우(독도도 우산 울릉도도 우산)으로 혼용 기재한 경우
우산과 울릉이 같은 뿌리라는 의미의 경우 경웅의 수는 많은데.. 단순휘 본시 하나다를 그냥 하나로 묶어버리면 당시 고지도는 뭐 때문에 둘을 그렸을까요.
                         
종훈이당 14-12-15 16:33
   
지리지에서는 무릉과 우산이 있고 두섬이 날이 맑으면 보인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그럼 이구절하고도 안맞죠. 지도도 우산이 따로 그려져 있죠.. 뭐가 앞뒤가 하나도 안맞는데 혼자 우기니..
                         
김민지 14-12-15 16:53
   
하나인지 둘인지 몰랐으니까 육지에서 바라본 섬이 두개였다는 기록을 남기죠 -_-; 알았으면 왜 이런 기록을 남깁니까;;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무릉과 우산이 날이 맑으면 보인다는 문구와 왜 안맞습니까? 제가 올려드린 다른 자료들과 다 일치하는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시라니깐요 자꾸 흥분하셔서 말꼬리만 잡지 마시구요
                         
종훈이당 14-12-15 16:59
   
몰라서 둘을 그린다고요? ㅎㅎ 둘인지 하나인지도 모르는데 날이  맑으면 서로 보여요? 본인 생각에 일치하죠. 좀 상식에 맞게 하세요.
                         
김민지 14-12-15 19:51
   
아니 지리서랑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써놓은걸 저한테 자꾸 말이 안된다고 따지시면 어쩌라는거에요ㅎㅎㅎ

지금 님은 아무 근거도 없이 우리 조상님들이 수백년간 써내려온 기록들을 폄하하시는 중인데 ;;;;

아무리 역사도 모르고 토론방법도 몰라도 그렇지..  참 큰일이네요;;;;

저를 이기고 싶고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으면 아무 근거도 없이 우길 시간에 독도와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보는것이 어떨까요? 님이 이해 안되는 그 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아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님도 배우고 저도 배우는게 있지 이건 무작정 우기고만 잇으니 시간 낭비밖에 안되네요;;;
띠로리 14-12-16 10:16
   
종훈이님, 위에 제가 쓴 글 대로지요?

자기 주장에 모순이 뭐가 있는지를 이해 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막무가내로 우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자기 생각을 절대 굽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봤자 종훈이님 시간만 아깝습니다. 일일이 반박하고 반응하지 말고, 잘못된 부분을 한 번만 지적해주고 적당히 무시하는 게 답입니다.

참고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한다.' 라는 내용은 없지요.

亘出道山 北準三陟 可谷山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地方百里, 恃險不服,
智證王十二年, 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 謂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
乃多以木造猛獸, 分載戰船, 抵其國詐之曰, 汝若不服則即放此獸, 國人懼來降.
高麗太祖十三年, 其島人, 使白吉土豆獻方物.
毅宗十三年, 審察使, 金柔立等回來, 告島中有泰山, 從山頂向東行 至海一萬餘步
向西行一萬三千餘步, 向南行一萬五千餘步, 向北行八千餘步
有村落基址七所, 或有石佛像鐵鐘石塔, 多生柴胡蒿本石南草
我太祖時, 聞流民, 外入其島者甚多, 再命三陟人金麟雨, 爲按撫使
刷出空其也, 麟雨言, 土地沃饒, 竹大如柱, 鼠大如猫, 桃核大於升, 凡物稱是

우산무릉의 바로 위에는 간략하게 항출도산에 대해 설명하고 곧장 우산무릉에 대해 서술함. 대략적인 내용은 두 섬이 현의 정동 방향에 있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부터 태조 때까지의 이력. 끝

여기 어디에도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한다.' 라는 내용은 없음.

아래 글에서 二島相去不遠 앞에 '육지와' 란 내용이 생락되었다고 김민지씨는 주장하였지만, 본문을 다시 보면 그 이전 문장에는 '在縣(현에서)'이란 말을 적시하였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문장 전체에서 육지, 혹은 현이 전체적으로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해석이 가능하지만, 세종실록지리지는 앞 문장에서 생략하지 않고 '현'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그 뒷문장에서 '현'을 생략했다고 할 근거 또한 없음.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육지와', 혹은 '현과'란 말이 생략되었을 것이란 것 또한 김민지씨의 추측이지만, 이것을 거의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써내려갑니다. 종훈이님의 추측은 추측이라며 지적하지만, 정작 자신의 논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추측은 추측으로만 두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요.

이렇기 때문에 종훈이님이 아무리 말을 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습니다. 그냥 이 정도에서 그만 두시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김민지 14-12-16 13:16
   
아~ 이 부분은 제가 착각한게 맞아요 ㅋ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일설 기록이 없어요. 근무시간에 댓글 달다 보니 체크를 못했네요 ㅎ

일설에 의하면 한섬이라는 기록은 허목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ㅇㅇ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쓴 이유 자체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이 관측지가 육지라는것에 대한 지도와 사서의 교차검증이며 저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애매한 관측지를 육지로 보는 근거를 당대 관측자들이 청풍명일에 망견한 관측지가 하나같이 육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가설에 불만이 있으시면 논리전개에 테클을 걸어주시면 좋은데요 ㅎㅎ.

아........ 그러고보니.... 님이 테클을 거셨었나? 육지에서 울릉도를 봤다는 저 많은 조상님들의 기록이 다 망상에 의한 기록이라고 그러셨었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반박은 하고픈데 할수 없는 없고 어떻게 꼬투리 잡아보고 싶은 그 마음!!! 제가 모르는바가 아니지요 ㅎㅎㅎ 이 교차검증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기존 우리 논리를 부수거나(동국여지승람만 따로 해석해야한다는..) 우리 조상님의 관측기록이 단순히 관념적인것이다고 폄하하는수밖에 없으니까요 ㅎㅎㅎ

 독도 논쟁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종훈이당 14-12-16 17:30
   
무슨 착각 말입니까 아무생각 없이 글거 온거지.. 바로 수준을 보여준 내용 이구만. 어떻게 전문가 행세하면서 헤깔릴수 있다는 말이에요.  일본이 만들어낸 논리에 이미 같은 글이 많더군요.  토시 하나 안틀린것도 있고..그것에 조목 조목 적언 놓은것도 있던데 직접 찾아 보네요.
다른 사람들을 검색도 안하는지 아시는지...

세종실록지리지에 내용으론 관측지가 섬인지 육지인지 정확히 예측할수 있게 써 있는데 무슨 육지 타령입니까. 두섬이 서로 맑으면 보인다는데 어떻게 육지 관점이 될수 있습니까.

모든사서? 그리고 모든 사서가 같은 레벨도 아니고.. 하나를 전체로 해석하는지.
정신승리하느게 기가 차서 답글을 안다는 겁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고  저처럼 전 비전문가 입니다. 하던지... 내가 다 부끄럽네..
띠로리 말씀 따나 상대 안하는게.. 혼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으니..
               
김민지 14-12-16 18:23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아무도 저의 논리에 대해 반박을 못하네요 음핫 ㅋ

세종실록지리지를 정확히 예측 할 수 있었다면 왜 저들이 즉가망견한 곳은 육지일까요? 저분들은 세종실록지리지를 잘못 해석한것일까요? ㅎㅎ

제 주장에 대한 반박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직접 찾아보고 숙독하여 저한테 반론해보시는게 어떠실까요? 그러면 님 입장에서 공부도 되고 제 콧대도 꺽어줄수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ㅎㅎㅎ
                    
종훈이당 14-12-16 18:41
   
반박이 없는게 논리적이어서 혹은 수긍해서가 아니고 그럴 가치가 없어서예요.. 댁이 무시 당하고 있다고요.. 정확히 상황 파악을 하세요.. 아니 오히려 안하는게 좋을지도..

그래도 전 댓구를 해준것이데.. 구제 불능이란 것을 제가 느낀겁니다. 본인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뭐가 틀린지도 모르고  혼자 비웃다가 혼자 논리랍시고 적었다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이슈 게시판에서 이 처럼 외면 당하는게 말 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거에요.

여기 역사적 사료에 거의 전문가 수준인 분이 한 두분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가만이 있는게 답의 가치를 못느낀다는 거에요.

좀 정확히 상황파악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을 이기려고 공부하고 싶지도 않아요. 필요성을 못느낌니다. 전무가 수준의 분들이 왜 가만이 있다고 보세요? 맞는 말이라서?  제가 관심이 있다면 님보다는 더 합리적으로 풀었을 겁니다.

아무튼 얄팍한 지식으로 여럿사람의 공분을 사지말고 겸험한 자세를 갖추던 물어보던 하세요. 그리고 점점더 상대에 비하는 듯한 말로 더는 말을 잇기 힘듭니다. 외골수를 설득하고 싶지도 않고 더더욱 소양이나 인품또한 느껴져서 그만 하는 겁니다.

제대로 호기심을 느낀다면 당연 찾아보겠죠. 전혀 못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종훈이당 14-12-16 18:45
   
제가 세종실록지리지만 몇번을 되물었는데 계속 한섬이야기를 우기더니 이제 착각했다라...
착각이라면 제가 되물은 첫구절에 대번 그건 아니라고 했어야 합니다. 지금 한섬이야기만 댓글이 몇개인지 보세요.  완전 모른다는 이야기에요.

남보고 아니 모르니 공부를 하라니 이런 이야기 하기전에 본인을 되돌아 보세요. 참고로 전 공부 할만큼 한 사람입니다. 다만, 분야가 다를 뿐이지.
          
띠로리 14-12-16 17:50
   
20대 때, 친구들과 정동진, 동해시 등지로 스키 타러, 해수욕장으로 바캉스를 즐기러, 해돋이 보러 자주 갔었고, 갈 때마다 밤에는 별자리 찾아보고, 아침에는 혹시나 해서 쌍안경으로 울릉도 찾아보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음.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2&docId=58340750&qb=7Jq466aJ64+EIOuztOydtOuCmOyalD8=&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1&pid=S4/VRwpySEZssuDAklssssssssZ-019610&sid=VI-n-woUU08AAE00u-M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9&dirId=90102&docId=104270964&qb=7Jq466aJ64+EIOuztOydtOuCmOyalD8=&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1

그 때 사진 찍어서 기록으로 남긴 것도 없고, 하 답답해서 인터넷 좀 뒤적여봤더니 이런 글이 있군요^^

또한 지난 번에 구글링 해보라고 해서 한번 해봤는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울릉도에서 동해안, 강원도는 보인다는 것만 나옴.

http://if-blog.tistory.com/2770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8637
http://blog.daum.net/asg0001/15652312

(울릉도에서 태백산맥이 보이니 강원도엣도 성인봉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반박도 할 수 있지만, 해무의 영향으로 산맥과 봉우리 하나를 동일 비교할 수 없음)

반박은 하고 싶은데 하진 못하고 꼬투리만 잡는다라... 그래요. 그게 김민지씨의 정신승리지요. 나라면 구글링해보라는 말 하기 전에 스스로 직접 찾아서 보여줬을 겁니다. (그렇게 찾아온 자료라도 광원렌즈에 의한 촬영이라면 의미 없겠지만.)

참고로 구글로 검색해서 나온 글 중 하나에서 강원도와 울릉도에서 서로 관측 가능하다. 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김민지씨가 딱 좋아할 글인데, 문제는 글쓴이가 출처로 언급한 경북일보의 기사에선 강원도에서 관측됐다는 글은 없을 뿐더러 올린 사진 또한 울릉도에서 태백산맥을 찍은 것 뿐(위 링크 중 하나).

백 보 양보해서 섬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강원도에서 숲과 나무, 산 밑의 모래까지 보인다는 기록들을 진짜 믿는 건가요? (뭐, 이 내용도 사서 어쩌구 하면서 말 돌리기 하겠죠?)

말 장난은 여기까지~

새로운 주제의 새로운 발제글이 올라오면 또 놀러오겠습니다.
'분하다/아쉽다'가 크게 다른 뜻이 아니다.
'식량/식자재' 혼동
칭제의 사전적 의미를 무시하고 칭제의 대상을 일본인 전원으로 확대 해석.
육안으로 나무까지 관측 가능하다.

다음엔 또 어떤 어거지를 부릴 지 내심 기대됩니다.
               
김민지 14-12-16 18:25
   
결국 님이 못봤으니까 저 많은 우리 조상님의 관측기록은 다 구라다... 이게 결론인가요?ㅎㅎㅎ

논지 파악도 못하고 어떻게 꼬투리 잡아보고자 ㅎㅎㅎㅎ

제 글의 논지는 모래톱에 수목까지 자세히 봤다는게 논지가 아니에요. 이부분에 대해서는 고서 특유의 과장이 있을수도 있겠죠. 가장 디테일한 관찰기인 김만귀의 경우에도 일어났을때는 보이나 해뜰때는 안보인다고 했으며 특히 우산도는 높은곳에서 아주 날이 좋아야만 보인다고들 얘기하죠. 수목과 모래톱이 자세히 보이는것 자체가 과장이거나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겁니다.

하지만 제 논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게아니라,.,, 조상님들의 관측지.... 망견하여 역력하게 봤다는 지점이 육지였다는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세종실록지리지등을 읽을게 아니라 당시 조상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실제 우리 조상님들이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을 어떻게 받아들인지 관측기를 통해 검증해본거구요.

그리고 관측기에서 공통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섬을 두섬으로 봤따는 증언들이 나오니 그렇다면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및 괴상한 지도들까지도 설명이 가능하니 이를 보완해주는것이구요

대충 보니 모래톱 수목 운운하며 논지와 전혀 상관도 없는 반론 외에는 역시나 힘든건가요? 하긴 유미림교수도 최근에 와선 동국여지승람을 포기했더라구요 (보니까 님도 어제오늘 열심히 검색해서 유미림 교수 논문 보고 오신듯)ㅎㅎㅎ
청실홍실 14-12-21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