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같이 조선 전기 지도를
보면, 동해바다에 큰 두 섬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른쪽에 있는 섬을 울릉도, 왼쪽에 있는 섬을 우산도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산도가
울릉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울릉도 서쪽에는 저런 섬이 없는데 조선 전기 고지도의 미스테리 중 하나죠.
이에 대해 전통적인 학계의 입장은 이를 독도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산도는 곧 독도이기 때문에 위 지도들은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근거다.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저렇게까지 크게 그려진 것은 단순한 착오일 뿐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아무리 고지도라고 하더라도
동쪽을 서쪽으로 표기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죠. 게다가 울릉도의 면적은 73km2로 독도 면적 0.188km2의 400배 크기인데 한두개가 아니라 대부분의 지도가 저런식으로 그러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 설명한것과 같이 울진에서 울릉도를 관측하면 두개의 섬처럼 보였으며 그 중 가깝고 지형이 낮은 섬은
우산도, 멀고 지형이 높은 섬은 울릉도라고 생각했다는 당대 인식을 고려하면 왜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는지도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것입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이도상거불원... 맞습니다. 저 지도들은 당시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반영한 지도라는 것입니다.
즉,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분명한 관측 지점은 당대 관측자들의
기록 및 지도를 교차검증해서 판단한다면 여러가지 의문점이 풀리게 됩니다.
한편, 위에서는 울진에서 울릉도의 관측기록을 정리해서 기재했습니다만 강원도 현지인이
바라본 울릉도 관측기록을 살펴보면 또다른 재미있는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비밀 해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신이 옛날에 강원도사가
되었을 때, 해상에 이르러 거주하는 사람에게 울릉도를 물었더니 섬을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신이 일찍이 일어나 멀리 바라보니 세 봉우리가 역력했는데, 해가
뜰 때에는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영암의 월출산에서 제주를 바라본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가까운 편입니다."- 숙종실록, 김만귀의 발언
“절은 좌측으로 창해滄海를
굽어보고 있어 해와 달이 돋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구름이 걷혀 바다가 맑으면 멀리 울릉도를
환하고 똑똑하게 볼 수 있다.”- 아계유고, 이산해
김만귀는 강원도지사였으며
이산해는 강원도에 유배 갔을 때 위와같이 울릉도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남구만, 박세당 등에 비해 강원도 거주 기간이 길었으며 울릉도에 대해서도 더 잘알았겠죠. 이들 역시도다른 이들 처럼 와 달이 걷히면 역력히 볼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주목할 것은 울릉도에 대한 얘기만 하고 우산도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죠.
이는 강원도 삼척지사였던 허목의
글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우산, 울릉 한 섬인데, 세 봉우리가 높고 험준하게 솟아 있는 것이 바라다
보인다. 바다가 맑으면 산과 나무를 볼 수 있고 산 아래 흰 모래는 아주 멀리 있다. 옛 우산국이다”
보시다시피 강원도 현지인들은 울릉, 우산이 곧 한 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두개의 섬으로 보이는것은 단순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죠.
자.. 이제 다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읽어보겠습니다.
“우산도는 무릉도를 말하고, 울릉도는 우릉도를 말한다. 두 섬이 고을 정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으로서 땅의 둘레는 백 리 라고 한다”
눈치채셨나요? 우리 조상님들은 관측자들이 얘기하는 울릉,울릉의 두가지 모습 - 어떤이는 두개의 섬으로,,, 어떤이는 한개의 섬으로,..- 모두이라고 기재하신것입니다. 즉, 명백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양설을 종합해서 지리서를 편찬하셨던 것입니다.
제 설명을 잘 이해하셨다면, 조선 전기의 지리서, 관측기록, 지도는 울릉도,우산도에 대해 모두 일관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산도를 독도로 끼워맞추기 위해 당대 관측자들의 수많은 관측기록을 관념적인 표현이라며 폄하한다던지.. 우산도를 울릉도 서쪽에 그린 수많은 지도들을 하나같이 방향을 착각한 지도라고 폄하하는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ㅎㅎㅎㅎ
한편 이러한 우산도에 대한
인식은 안용복사건 이후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여러 우산도 논쟁에서 짤방으로 올라오는 우산도 = 죽서도설은 안용복 사건 이후부터 자리잡게되죠.
이러한 조선 중기 우산도에 대한 인식은 기회가 되면 업로드하도록
할게요 ㅎㅎ어차피 관심 가지시는 분도 없을것같아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