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에 한 가문이 다 해처먹던 세도정치가 등장해서 확실히 조선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그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작농으로 비참함 삶을 산 사람들은 많기는 많았어요. 하자만 이에 반해서 농민항쟁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이것이 근대화, 만민평등화가 되어가던 과도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요. 즉 이 과정에서 왕정이 전복되는 것이 당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밟아왔던 전철이고 조선도 그 과정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이 과정에 일본이 무단 개입해서 국가주권을 강탈하고는 자국 자본을 이용해서 공장과 철도를 세워 놓고는 이걸 근대화라고 하는 헛소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일본이 식민지 덕을 많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차별까지 더해져서 조선인 노동자 임금은 엄청난 차등분배가 있었는데...
아래쪽에 있는 게시글 말씀하시는 거죠? 아직까지도 조선인 인구 증가나 평균 신장 성장을 들먹이면서 식민지 수혜론을 주장하는 종자들이 있을 줄이야...
대정봉환 이전의 도쿠가와 막부만 하더라도 농민 항쟁이 빈번하고 존왕 양이 운동 같은 한국의 위정척사 운동 수준의 보수 운동이 있었는데 말이죠...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들도 비슷한 수준에 그쳤으면서 조선인은 고대 노예 체제에 머물러 봉건체제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상한 정체성론 식민사관이나 남발하고 있고...
분명 페리 제독이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먼저 통상을 요구했다거나 흥선 대원군이 신미양요나 병인양요의 승리에 취해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 일본이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라면서 떵떵거리는 꼬라지를 볼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임노동자라고 일컬어지는 부류가 있었지만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기식하던 것도 있어요.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그게 신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자립할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님 도련님 거리는 사람들은 70년대 박정희 정권대까지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있고...
양란을 치르면서, 조선의 인구가 빡-준데다가,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고아나 부랑자들을 거두면,
나라에서 그집 양자로 삼거나, 노비로 삼거나 터치안했음.
일단, 생존이 더 중요했으니까..
드라마 추노가 딱 그때가 배경입니다. 드라마 전반부에 당시
조선 인구의 반이 노비였다는식으로 설명도 나올껄요.
그러다가, 차차 안정기에 들면서 나라에서 공명첩 발급도 하고, 노비중에서도 재산모아
면천하는 경우도 나옴. 국가도 세금 얻을려면 양민들이 많을수록 좋았기에
후기로 가면서 오히려 노비의 수는 줄어들어요. 나중엔 더이상 유명무실해진 공노비 해방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