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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4 21:23
속국과 조공국은 사실상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글쓴이 : 끠떡갈비
조회 : 2,599  

屬國 [ 속국 ]정치적(政治的)으로 다른 나라에 매여 있는 나라, 종속국(從屬國)

從屬國 [ 종속국 ]①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지배에 구속되어 있는 나라 형식상으로는 독립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제국주의국에 종속하고 있는 나라종주국의 국내법에 따라 외교 관계의 일부를 독립 처리하며, 다른 부분은 종주국에 의하여 처리되는 나라 터키(turkey)를 종주국으로 하는 독립전의 불가리아와 같은 경우
조공 (朝貢)
[명사]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 또는 그 예물.


동,서양간에 관념상 차이가 있었기에 속국이 아니라는 논리에서는 조공관계에 대해서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외교상의 관례였다라고 취급을 하는데.. 사실 이건 동아시아 전통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외교 관례가 아닌가요??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지만, 그런 對중국외교를 <보편적인 범 아시아적 전통외교관례였다. 그러니 조선은 속국이 아니었다>는 논법으로 속단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공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네들의 중화주의에 편입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기원조차도 원래는 천자와 제후들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중국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타국과의 조공관례라는 것은 통일된 중국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게 된 절차로, 소위 남만으로 일컫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중국의 직,간접적인 압력에 굴복해 자국의 안위를 위해서 조공관계를 받아들였던 것으로서, 틈만 나면 반중국의 기치를 내걸고서 기존의 수립된 관계를 백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 움직임은 일시적인 조공국으로 전락했던 미얀마,베트남등지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중국의 침략에 대응했던 독립운동가들이라고도 불립니다. 과연 조공국=속국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들고 일어나야 할 정도로 불합리한 관계였을까요??

토번과 투르크계 유목민족, 몽골계 유목민족들의 경우 중국을 침략하는 과정속에서 유교의 기치를 국가관으로 삼으려는 목적(중국화)과 유목민족의 고질적 문제인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재보(공물)를 취하기 위하려는 목적에 의해 조공관계가 수립됬습니다. 흔히들 이름정도는 알고 계시는 유목민족들(흉노,거란,여진,몽골,돌궐등)은 전부 한결같이 중국과 조공관계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상하간의 우열에서 우리처럼 중국이 우위가 아닌, 자국이 우위인 조공관계를 맺었습니다. 조선처럼 臣으로서가 아닌, 오히려 역으로 君으로서 맞았던 거죠. 이것을 이민족의 왕이 중화에 스스로 숙이고 들어갔다는 개소리가 학계에서 나오고 있긴한데 이건 사실상 동북공정수준의 역사왜곡입니다. (신하국에게 공물진상하느라 국가예산의 1/3이상이 빠져나가나?)

조공은 흔히 중화질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불리웁니다. 왜 그럴까요?? 조공관계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문물교류가 아닌, 한 쪽이 숙이고 들어가야만 성립되므로 수직적 상하관계가 명확합니다.
조선과 중국간의 외교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조공국이 속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말만 그럴듯하지,  빛이 바랜 것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사대로 중화를 종주국으로 받들며 자소로 자국의 안위를 보장받고 꾸준한 전서를 주고받으며 왕위를 이어받는 후대왕들이 신하를 보내 국왕으로 책봉을 받고 왕자리에 대한 명분을 얻습니다. 그리고 조공으로 자국의 특산품을 바치죠. 여기서 조공이라는 특정부분외에도 이것이 과연 국가와 국가간으로서의 정상적인 외교인가라고 평가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조공이라는 개념자체가 국내에서 지방관이 왕에게 토산품을 헌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바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일반적인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와 비교해도 다를바가 전혀 없습니다. 조공을 바치면 회사라는 명목으로 다시 진상한 품목의 곱배기만큼의 물건들을 수여합니다. 이부분에서 실리적인 외교였다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던 중화질서의 유지의 필요로 인해 관계유지명목으로 '바쳤던' 겁니다.
물론 조선과의 관계에서는 북쪽의 위협적인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유목민족들과의 관계에서와는 달리, 적당한 양의 수여품을 건네줄뿐입니다. 유목민족들과 조공관계를 갖게 되면서 차츰차츰 그 관례가 형식으로 고착화되어, 다른 국가들과도 조공관계를 맺을 때에 답례품을 보내는 것으로 변질됬던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중국이 회사품보내는거 부담스러워 했다고요?? 당연한 겁니다. 남송때 요나라,금나라에게 조공 보낼때는 일년에 황금 수백근,비단 수백필등 무지막지하게 헌상했습니다. 조선과의 관계는 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국력의 강약에 따라 회사품이 비례되는 것이니 만큼, 조선과의 조공관계는 딱히 중국으로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이지만, 오히려 조선의 국력이 여타 타국들과는 비교도 안되리만큼 약했고, 전혀 위협이 안되기에(임란같은것만 보면 오히려 짐짝수준) 회사품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손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명나라가 조선의 실리적인 외교의 산물 '조공관계'에 대해서 부담을 느꼇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자아도취적인 생각이 아닐런지 싶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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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이 14-11-04 21:26
   
속국 조선은 종주국 명,청조의 황제의 승인이 없다면 왕도 왕노릇을 제대로 못했죠
괜히 광해군이 명나라 사신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쳤겠습니까
그래도 원 지배하의 고려왕들보다는 상황이 조금 낫긴 하군요
     
토막 14-11-04 21:28
   
그 왕노릇 못한 왕이 누가 있죠?
     
Wdhc 14-11-04 21:28
   
화교로서는 굉장히 자랑스럽겠네요? 세트 메뉴는 뭐죠?
     
굿잡스 14-11-04 22:31
   
속국 조선은 종주국 명,청조의 황제의 승인이 없다면 왕도 왕노릇을 제대로 못했죠
괜히 광해군이 명나라 사신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쳤겠습니까>?? ㅋ 어이없는.

사신에 대한 접대나 그 사이에 염치없이 자기 나라가 기우는 와중에도

자기 탐욕만 챙기려 온 명국의 환관 나부랭이가 뇌물이나 쳐끌어 모운다고

이게 조선이 독자적 왕위계승과 이후 형식상의 통보에 지나지 않는 걸 마치

명에 의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무지한 논리이심?? 쯧.

(뭐 이런식이면 짱국도 현재 미국이나 대한민국에 승인 받는 속국이겠군요.

주석직에 오르기 전에 미국에 가서 미 오바마 방문해서 얼굴 도장 찍고 주석되면

여기 저기 다른 나라에 통보하니. 그런겁니까?ㅋ)
진한참기를 14-11-04 21:33
   
500년전 조공역사 자랑스럽게 여기는 화교 짱꼴라들이나
3000년전 세계를 환국이 지배했다고 믿는 환빠들이나

둘다 병 to the 신.
     
Wdhc 14-11-04 21:37
   
환빠는 자기 세계관이 있습니다. 게임에 세계관이 있듯이... 화교 빙신들은 세계관도 없어요. 국적은 섬짱깨인데 몸은 짱깨 본토에서 제일 가난해서 나온 애들이죠. 호주가 태생이 그렇듯이 화교도 그래서 다른 나라 가서도 더럽고 천한 티를 못 벗죠. 동남아에서 사기 쳐서 돈 번 다고 환골탈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화교는 솔직히 불만도 더 하죠. 그래서 하루종일 넷에서 단무지 적게 가져왔다고 패는 분들에게 분통을 터뜨리죠.

Ps. 단무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제발 좀 때리지 좀 마세요. 가게이 같은 애들이 그러니까 저렇게 삐뚤어 지는 것입니다.
구경꾼 14-11-04 21:43
   
현대 한국과 미국의 관계보다는 덜 종속적입니다.
Ciel 14-11-04 21:46
   
고구려도 전성기때 주변에서 조공을 받았고, 조선도 유구, 여진 등에게서
조공을 받았는데요. 북방유목민족들도 자기들이 강성할때는 한족정권에게
조공을 요구했구요. 동아시아의 외교관례 맞습니다.

조공을 요구하는 측이 구상하는 국제질서에 편입된 것으로
해석하는게 타당하지, 예속된 속국이었다고 판단하는 건...
인조반정후 사대가 심해지고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소중화를
자처하다보니 부정적인 인식이 커져서 그런거지, 동아시아에서
조공관계는 기본적으론 윈윈게임이었다고 봐야죠.
     
끠떡갈비 14-11-04 21:57
   
조공이라는 것 자체가 동아시아의 특수케이스로 분류될 수 있으며 이것은 종속관계가 아니다라고 부정되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횡설수설쓰다보니까 전혀다른 뜻으로 비춰지게 써버린 것같습니다. 그러나 타국의 조공관계에 비해서 중화문화권의 조공절차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구성되고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조공과 비교하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요. 국제질서에 편입=중화질서에 편입=중화문화권에 예속이라는 맥락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인조반정후에 사대가 심해졌다는 것은 그 전에도 지속적으로 사대관계가 수립되어 있었다고도 말해질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단순히 부정적인 인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사관의 한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궁동자 14-11-04 22:22
   
중국한테 바치는 조공은 조공이고 고구려한테 바치는 조공은 조공이 아닙니까? 국제질서에 편입=고구려질서에편입=고구려문화권에 예속이라는 맥락으로 봐도 무방한데요?
               
끠떡갈비 14-11-04 22:27
   
무방하죠. 근데 왜 고구려역사는 조공국들까지 다 포괄해서 속국취급으로 묶어버리고
조선은 명,청에 안묶이는 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갑툭튀 14-11-04 22:39
   
그냥 가볍게 생각해 보아도
고구려와 주변국들의 기원 전후의 사정이
누구 아들 어디 출신이다. 어디 출신이 남하 하여 세웠다.
등등 있지만 국가가 세워지기 전부터 정착한 독립적인 세력권이 존재하였고

물론 건국시조가 외부 또는 신화(하늘)에서 온경우도 있지만
남은 기록에서 형제의 나라다. 아버지의 나라다 이런 표현도 종종 있고요.
속국이라고 하기보단 우리 테두리안의 역사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중국과의 구분은 확실한게 연대와 사대. 그리고 뿌리계승과 적대는
식별 가능하잖아요. 속국이란것도 지배관계를 떠나 관점의 차이라고 봐요.

... 야구보며 맥주한잔 걸쳤더니 횡설수설하네요.
                    
남궁동자 14-11-04 22:39
   
오 그럼 앞으로 고구려역사를 배울때에는 한나라 역사도 배워야겠군요. 한도 고구려에게 조공을 받쳤으니고구려의 속국이니 말이죠. 근데 이놈의 한은 워낙 주변에 조공을 많이바쳐서 역사도 여러나라가 나눠서 가져야 겠네요.
                         
갑툭튀 14-11-04 22:42
   
음... 조공관계는 철저히 힘 국력의 관계지 않을까 싶네요.
그 파워 싸움이라는게 그때그때 정세에 달라지는데
실제로 한무제때에도 부여에게 조공을 바칠때도 부여가 조공을 바치다가도
중국땅을 정벌하기도 하고 왔다갔다하지요.
                         
끠떡갈비 14-11-04 22:43
   
한나라가 조공을 바쳤다는 근거가 있나요?
그리고 한가지 빼먹은게 있는데 조선조의 조공외교는 형식상 발전을 거듭한 것이니만큼
시작은 주나라부터지만 한나라대의 조공정책과 송나라대의 조공정책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Ciel 14-11-04 22:27
   
조공을 요구하는 측의 국제질서에 편입된다는게 어째서 윈윈인지를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조공을 바침으로써 더이상 외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선진문물을 수용하는게 용이해짐으로써 사회발전을 꾀할 수 있었죠.
조공을 받는 쪽에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국제질서를 재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후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죠.

실제로 삼국이나 고려, 조선 초중기까지 저런 점들을 잘 활용해서 문화를 발달시키고 일본에까지
문화를 전파하기도 한 것에서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인조반정후 사대외교의
부정적 요소들이 극대화되면서 국가발전에 지장을 초래한 점은 부인할 수 없겠죠. 하지만
이것 때문에 조공이나 사대외교를 속국이나 다름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봅니다.
               
끠떡갈비 14-11-04 22:30
   
이미 조공외교로 외환을 막고 발전을 이룬다는 발상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요?? 매년 말로는 형식적인 치레라지만 공물이 오가는 관계에, 신하의 예를 다하며 받드는 것이 속국이 아니라면 도대체 뭘지..
                    
Ciel 14-11-04 22:43
   
형식적인 것이지만 상국이 된 이상 조공을 바치는 국가를 명분없이 침공하거나 개입할 수
없으니 외환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이고, 문물을 전수해줄 때 등가교환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끝까지 맞서서 중화중심의 세계관에 편입되길 거부한다면 왕조는
물론이고 민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위정자라면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요?

게다가 무엇보다 조공외교를 속국관계로 파악하는게 무리라는 결정적 증거는 중화가
로마, 페르시아와 교역할 때도 조공외교를 기본으로 했다는 겁니다. 로마, 페르시아가
중화와 조공외교를 통해 무역했다고 해서 속국이었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끠떡갈비 14-11-04 22:44
   
상국=종주국이죠.
                         
Ciel 14-11-04 22:46
   
아니, 그러니까 그게 형식적인 거라구요.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해야 종주국이고 속국인 거지, 형식상 상국이라고
그걸 곧바로 종주국이라 파악하면 안된다 이겁니다.
                         
끠떡갈비 14-11-04 22:49
   
로마,페르시아와 조선이 입장이 같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형식적인게 아니라 실질적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연호도 중국연호에 왕 호칭도 마음대로 못붙이고 국호도 정해준데다가 명나라 멸망하고나서도 제사지내면서 이민족 전통신 사당까지 지어주는 나라인데 딱히 형식적이라고 보기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조선말기에 들어서 외세가 통상을 요구하는데도 중국측에게 떠맡긴거구요. 외교를 할 권리자체를 상국에게 허락맡고 해야되는데 이게 속국이 아니고 뭘까요?
                         
Ciel 14-11-04 22:57
   
조공외교의 기본이 형식적으로 상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겁니다만..
중화의 연호를 사용한다는게 중화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됨을 인정한다는 증거로
쓰는 거지, 속국으로 떠받들겠습니다란 의미에서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명 멸망 후의 상황은 인조반정후 사대외교의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되었을 때의
상황으로써 부인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그것만을 이유로 곧바로 조공=속국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이미 언급했습니다만...
                         
mymiky 14-11-04 22:59
   
연호 대신, 조선은 시호나 묘호를 붙이는 편이고 주로 지금도, 흔히 무슨왕을 칭할땐 이걸 주로 사용하고 있지요- 묘호도 황제국 이외에 못 붙이는거 아니였나?
난 그리 알고 있는데 ㅋㅋ
국호는 엄연히 고려 사대부들이 조선이라고 지었습니다만?  주원장도
형식상 동의해준거고- 이민족 전통신 사당은 뭘 말함인지?
만동묘? 아님 관우묘?
만동묘는 집권 서인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거고, 관우묘는 조선후기 삼국지가 대유행해서, 관우도 무속의 신으로 승화한 것이구요.

글고, 중국측에서 조선을 떠맡아요? ㅋㅋㅋ
오히려, 공친왕이 조선내정은 간섭안하니, 조선일은 그쪽과 처리하라고 하는데요? 거기다, 청나라 본인들도 제 코가 석자였는데;;
조선은 국기 정할때도, 청나라 조언 씹고, 태극기 했어요-.-
                         
끠떡갈비 14-11-04 22:59
   
일단 님이 말하시는 형식적인 선상에서의 조공외교와
실질적으로 조선같이 속국취급하는 수준의 조공외교는 엄연히 다릅니다.
                         
Ciel 14-11-04 22:59
   
조선말기의 상황만 놓고보자면 청이 상국행세를 한 것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이죠. 만약 이걸 주장하고자 했다면 본문에서부터 시기를 국한하셨어야죠.
                         
끠떡갈비 14-11-04 23:00
   
mymiky / 동아시아에선 칭제가 자주 독립국의 기준이라고 저는 봅니다.

시기를 국한한다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뭔가요?
저는 조선 초부터 말하는 건데
                         
mymiky 14-11-04 23:02
   
칭제라고 할려면, 대한제국은 뭔가요?-.-; ㅋㅋㅋ
님말대로, 고종이 칭제했는데-
                         
끠떡갈비 14-11-04 23:03
   
mymiky / 대한제국이 청나라에 조공했나요?
전 조선말하는 건데..


명목상 독립국 맞습니다.
일본의 강제에 의해 괴뢰국화된 거지만요
                         
Ciel 14-11-04 23:06
   
칭제건원은 우리 역사에서도 여러 차례 했었습니다만...
조선도 태종초까지는 명과 상당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며 요동정벌론까지 나왔었구요.
종주국으로 떠받드는데 감히 정벌론 운운합니까?
다시말해 칭제해야만 자주독립국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한 거죠.
                         
끠떡갈비 14-11-04 23:08
   
조선시대때 칭제건원 안했습니다.
요동정벌론은 정치적인 제스쳐라고 보구요.  실제로 시행되지도 않았습니다.
효종때 북벌론주장한거랑 같은 맥락이죠.
                         
mymiky 14-11-04 23:12
   
고종도 조선시대 사람이예요-.- 님하;;
조선 26대왕이시죠..
대한제국으로 발리니깐.. 조선시대 이야기 하고 있넹;;ㅋㅋㅋ
조선(1394-1910)아님?
아따, 그놈의 칭제 ㅋㅋㅋ
일본 천황은 자칭 황제지만, 권력 개쪽도 없었는데 ㅋㅋㅋ
타이틀에 집착할 필요는 없죠.
내 구역에서 확실하면 되지..
                         
끠떡갈비 14-11-04 23:16
   
조선- 명,청에게 사대하며 조공을 바침.
대한제국- 칭제를 한 황제국이므로 동급의 황제국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음.
                         
Ciel 14-11-04 23:18
   
요동정벌론이 정치적 제스처라구요?
실제로 진법훈련도 하고 병력동원까지 한 단계였는데요?

고려가 여러차례 칭제했지만 중화와 교류할 때는 조공외교도 불사했습니다.
조공=속국이라면 조선말고 고려 등도 속국관계라고 주장하셔야죠.
유독 조선만 걸고 넘어지는 건 모순이라 이겁니다. 조선에서도 조선말기로
국한해서 얘기한다면 주장하는 바가 일응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에 시기를
국한해서 주장하면 또 모르겠다 이 얘기구요.
                         
끠떡갈비 14-11-04 23:22
   
요동정벌론이 정치적 제스처라구요?
실제로 진법훈련도 하고 병력동원까지 한 단계였는데요?

고려가 여러차례 칭제했지만 중화와 교류할 때는 조공외교도 불사했습니다.
조공=속국이라면 조선말고 고려 등도 속국관계라고 주장하셔야죠.
유독 조선만 걸고 넘어지는 건 모순이라 이겁니다. 조선에서도 조선말기로
국한해서 얘기한다면 주장하는 바가 일응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에 시기를
국한해서 주장하면 또 모르겠다 이 얘기구요.
=> 고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전 조선에 대해서만 말했지말입니다.
그리고 고려가 칭제했던 시기에는 조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mymiky 14-11-04 23:24
   
아따-.- 조공에 괜한 부심 부리네..
일본, 류큐, 안남국(베트남), 파랑국(이게 필리핀인가? 태국인가?)등
조선실록에도 외국에서  조공바친 기록이 한 무더기구만-
한국인이 그래서, 애네들한테 속국드립 친적있나? ㅋㅋㅋ
어이가 없넹..
                         
Ciel 14-11-04 23:27
   
조공=속국으로 파악하면 조선말고 다른 시기의 왕조도 마찬가지로 파악해야
주장하는 바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다 이말입니다. 그러니 상관이 있지요.
신라, 백제, 고려 등은 속국으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조선만 속국으로 파악하는 건
심각한 논리모순입니다.

신라, 백제, 고려가 사대외교를 했지만 속국이 아니었듯이 조선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끠떡갈비 14-11-04 23:33
   
조공=속국으로 파악하면 조선말고 다른 시기의 왕조도 마찬가지로 파악해야
주장하는 바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다 이말입니다. 그러니 상관이 있지요.
신라, 백제, 고려 등은 속국으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조선만 속국으로 파악하는 건
심각한 논리모순입니다.

신라, 백제, 고려가 사대외교를 했지만 속국이 아니었듯이 조선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 조선시대 전의 상황과 그 후의 상황은 다릅니다.
당나라자체가 신라와 전쟁에서 패해 물러났고
고려때는 북방유목민족에게 밀려서 고려를 어떻게 할 수준이 못됬습니다.
반면에 조선은 임진왜란때 명나라에게 재조지은의 은혜를 입었고, 청나라는 정묘호란,병자호란등으로 직접 쳐들어와서 항복선언까지 시켰던 전례가 있습니다.

위의 신라,백제,고려등이 중국과 대외교류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라면
조선은 선택이 아니라 억지에 떠밀린 강요죠.
                         
Ciel 14-11-04 23:38
   
아니, 그러니까 시기를 국한해서 주장하시라구요.
본인도 지금 임진왜란후와 인조반정후의 상황을 주된 근거로 들고 있잖아요.
조선 중기를 넘어 말기로 오면서 중화에 종속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억지라고 안한다니까요. 왜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속국으로
태어난 것처럼 얘기하냐 이겁니다.
남궁동자 14-11-04 22:19
   
님 주장대로면 일본은 조선의 속국이겠군요? 님이 한 주장이 그대로 일본과 조선의 관계에 해당되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임란 후에도 말이죠?
굿잡스 14-11-04 22:28
   
일단 조공이라는 개념자체가 국내에서 지방관이 왕에게 토산품을 헌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바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일반적인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와 비교해도 다를바가 전혀 없습니다. 조공을 바치면 회사라는 명목으로 다시 진상한 품목의 곱배기만큼의 물건들을 수여합니다. 이부분에서 실리적인 외교였다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던 중화질서의 유지의 필요로 인해 관계유지명목으로 '바쳤던' 겁니다.
>>?? 근데 님의 이글은 님이 뭔가 좀 착각을 하는 듯 보이군요.

우선 조선시대에 지방관이 왕에게 토산품등 공부(貢賦)의 역할은 지방 수령칠사(守令七事) 중 하나로

중요한 수행업무지만 이게 조명간의 공무역 격인 조공무역에서 몇배의 회사(回謝)와 같다는 식의

논조는 대단히 이치에 맞지 않군요. 이건 당시 수령이 이런 수령칠사를 했다고 이에 상응하는 수배의

답례를 받는 식이 전혀~ 아니라 초기 녹봉과 과전(토지)에서 이 과전도 문제가 있어 박한 녹봉에 의지했던

사실만 알아도 전혀 같은 이치 어쩌고 서술해서 이해할 부분이 아닙니다만.

님은 마치 조공을 어떤 세금의 징수같은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거야 말로 국가간의

공무역격인 조공에 대한 해석에 있어 대단한 착각일 것입니다.
     
끠떡갈비 14-11-04 22:32
   
회사는 예시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조공을 받은다음 다시 사례를 주는 형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유일무이하다고 말할만큼 독보적이니까요.
그리고 회사는 아니라지만 녹봉으로 개념이 치환 가능해보입니다.
박하다 어쩌다는 따질문제가 아니죠. 개념자체를 말한거니까요.
          
굿잡스 14-11-04 22:48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유일무이하다고 말할만큼 독보적이니까요.
그리고 회사는 아니라지만 녹봉으로 치환이 가능해보입니다>??

하~ 님 최소한 조명이나 혹은 조왜간의 조공 어쩌고 할시 공무역의 구체적 거래 내역들

함 보시길 바랍니다. 이게 무슨 수령이 도리어 왕에게 업무 평가의 기준으로까지 되는

공부같은 걸 했다고 무슨 수배의 차이를 내는 회사 어저고 개념이나 혹은

세금 바치는 식인지?? 단순히 사전용어 찾아서 어쩌고 보지 마시고

사료나 이 관련 학자들의 서적 관련해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아님 동아시아의

조공이란 무엇인지 논문 한편이라도 보시고 이해 하시길.

그리고 무엇보다 님은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부터도 좀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 보이군요.

이건 동게에서도 이미 나온 이야기이니 함 다시 정독해 보시길.


제발 역사를 말하실때에는 중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5873


그리고 서토사에서 실제 공물을 바친 주체는 다름 아닌 서토 왕조들임.

이들은 북방이나 여러 주변국에 끊임없이 전쟁이나 기타의 물리적 방식으로 패하면

공물을 갖다 바치면서 평화로 연명했던 시기가 반복됩니다.

(자신들은 결코 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바쳐도)

조명간에도 당시 몽골의 세력이 그냥 붕괴된게 아닙니다. 북방유목민들은

청시기까지도 골치거리였고 영락제 기간에도 초기에 몇번 성공을 했지만 북로남왜로

지칭될 정도로 내내 외환거리였고 결국 만주족 청에게도 먹힌 것이고. 조명 초기에도

이런 긴장 관계와 북방 세력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골치거리로써 후방의

조선이 이런 북방 세력과의 연계는 명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해택을 주면서 평화적 동맹 관계를 가져 갈 필요가 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수령의 녹봉은 그렇게 부유하게 주지 않았군요.

무슨 유럽의 봉건제 사회에서 왕과 영주간에 어쩌고면 그나마 이해를 한다고 해도

무슨 조선의 왕과 왕이 능력에 따른 과거제로 등용된 인재들이 파견직

형태의 수령의 업무수행을 보고 조공 무역과 직결하는건 상당한

억측임을 다시금 알았으면 하군요.
               
끠떡갈비 14-11-04 22:54
   
단순한 예시를 든 것뿐입니다. 상당히 비슷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걸 굳이 뜬구름잡는 식으로 제가 했던 말 그대로 붙여서 하시는 저의가 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지적하려면 어디가 잘못된 건지 지적해주세요. 무슨 고견을 하시는건지 잘 이해가 안가서요.
                    
굿잡스 14-11-04 23:06
   
일단 조공이라는 개념자체가 국내에서 지방관이 왕에게 토산품을 헌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바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도 어느 정도 정식 논문이나 서적 한권만 읽어도 솔직히

나올 부분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님이

위에서 언급한 무슨 민족주의 한계?? (민족이 뭔지 뭐가 그리 문제인지도 모르겠

지만) 어쩌고 식에 함몰되어 학문이라는 걸 주변 짱국이나 잽의 극우론자처럼

왜곡질 할 만큼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도리어 민족주의 학자였던

단재 신채호나 박은식등 한계 어쩌고 까거나 비판하는 부류는 봤지만)

정 이해 안되시면 아래 마이님 말처럼 FTA로 보세요.

이게 이해하기 쉰운 말이니.쉽게 말해서 북방 유목민족이 남하해서 휘젖습니다.

그럼 서토왕조는 아 제발 좀 그만 괴롭혀라 그리고 좀 줄게.

이건 북방 민족의 과격한 방식이고(더 달라고 완전 털어 버리는 경우도 존재)

그외 다른 주변국도 전쟁 말고라도 같이 나눠 먹자.

그럼 체면좀 세워줘라. 알았다 뭐 그정도야.  그러면서 (조)공무역을 하려가면

오늘날 비즈니스 외교 어쩌고 하는식으로 대통령이 대기업 오너들까지 데리고

각국 정상 회담하듯(이당시는 임금이 직접 가는 일은 없지만)

그렇게 사신단과 함께 여러 상인들도 대거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주거니 받거니

서로 품목주고 받고 정세도 둘러보고 사는 것도 보고오면서 친목도 다지는

거죠.
                         
끠떡갈비 14-11-04 23:09
   
아..예;;
근데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굿잡스 14-11-04 23:13
   
조명의 국가간에는 (조)공무역(公貿易).

안에 괄호 빼고 이해 하시길.

전 이만.
mymiky 14-11-04 22:46
   
지금의 FTA같은것과 유사함-
     
mymiky 14-11-04 23:10
   
물론, 이런건 있겠죠..

그래- 니가 동네 대빵이구나,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다.
근데, 내 구역에선 내가 짱맡았으니 그리 알고, 내 구역 터치 안하는 조건에서
몇 %는 떼줄테니, 니도 그거 받고 내 뒤 좀 잘 봐달라 - 뭐 그런 관계 아닌가? -.-

그게 이해하기 어려운건가요?
요즘세상에도 별반 다를거 없는데;;
          
끠떡갈비 14-11-04 23:14
   
그게 속국이죠..
               
mymiky 14-11-04 23:18
   
아따 님아ㅋㅋㅋ
중국은 속국은 커녕, 직활 식민지 시대만 수천년 아님?-.-
걍-서토에 무슨 왕조가 들어서든간에,
우리는 그냥 저냥 잘 살았어요.
               
굿잡스 14-11-04 23:20
   
ㅋㅋ

님은 속국이라는 개념을 근대 서구열강시기의 식민지적 개념이나

윗글에도 공무역을 마치 무슨 왕과 영주간의 세금마냥 어쩌고 거듭

혼돈을 하군요.

님이 말하는 속국이 무슨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이 조선의 군사수를 제한 했거나

왕위 계승에 실질적으로 어떤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습니다.(그럴

처지도 못되었고)

이것도 단지 조선 중기 후금시기에 정묘, 병자 호란등을 거치면서 만주족과의 관계에

서 일시에 나타났던 것이고.(그리고 당시도 명과 청국은 엄연히 서로 구분된 명칭들

임)
                    
끠떡갈비 14-11-04 23:23
   
왕위계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행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책봉자체를 안해주면 그만인데요.
                         
모래곰 14-11-04 23:27
   
그렇지만 책봉을 안한 경우도 없죠.(어그로는 끌지만)
책봉을 받지 못하면 좀 입장이 안좋지만
그렇다고 왕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굿잡스 14-11-04 23:27
   
왕위계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행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책봉자체를 안해주면 그만인데요. >??

님 댓글들 쭉 보니 진짜 뭔가를 알고자 혹은 뭔가를 알아서 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어떤 억지적 주장을 하려는 모습밖에 없군요. 쯧
                         
mymiky 14-11-04 23:32
   
책봉? 해주면 좋고,  사실 안해줘도 왕 못하는건 아니예요.
절대적인게 아니란 말이죠-
김정은이 국제사회서 왕따 당하고,주변국에서 아직  정상회담 아무도 안한다고 해서, 김정은이 북한 지도자가 아닌건 아닙니다.
 
중국에서, 책봉 안해준 예도 없지만요. 광해군이 당시 명조정에서도 만력제가 3남 주상순을 더 좋아라해서, 적장자가 쩌리되는 바람에;; 비슷한 환경에 있던 광해군이 좀 힘들게 받은예는 있지만.. 그게 일반적인 일도 아니였구요.
                         
끠떡갈비 14-11-04 23:34
   
그런 결정권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아닌가요?
                         
mymiky 14-11-04 23:40
   
걍- 내가 볼땐
님만 이해력이 딸리니깐 이해가 안되는게 아닐까요?..

결정권이라? 걍- 중국이 자기 위신이나 체면 세우고 싶다는데,
누가 말리진 않아요.. ㅋㅋ 걍-그뿐이였어요.
          
nests 14-11-04 23:41
   
그게 속국이죠...
모래곰 14-11-04 23:16
   
일단 송이 요, 금에게 조공을 보낸 것은 비유하여 전체를 판단하는데 그건 그냥 뜯긴거죠.
마찬가지로 당시 고려도 송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실질적인 이득을 챙겼죠.
한 시대로 모두 판단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그리고 유목민족을 군으로 맞이했다... 도대체 어떤 시대만 본겁니까?

다 떠나서 일단 명나라만 보면 베트남같은 경우 조선과 달리 아예 지배를 당했죠.
그러니 조선과 사정이 다릅니다.
조선 태종은 영락제가 자신에게 너무 후한 대우를 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영락제가 안남처럼 조선을 다루면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
결사항전을 벌여야 한다고 말하죠.
입장이 다른겁니다.

공물진상을 했다기보단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줬다는게 더 맞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허락하는 거래량이 증가해서 힘이 든다는게 더 맞고.
몇번을 제외하고 유목민족들이 역사상 주군으로서 중국에게 조공에 대한 이득을 챙긴 것은 없습니다.
투르크를 박살낸 티므르 제국에서도 조공을 보냈는데 그것도 위협에 못 이겨서 명나라가 답을 준게 아니죠.
자신의 권위를 위해, 자랑하기 위해 사치를 부린겁니다.
한마디로 체면이죠.

조선은 다른 국가보다 대우가 일단 좋았습니다.

서양같이 속국에게 분담금 형태로 돈을 뜯고 그것으로 이자놀이를 하는 것은 없죠.
제가 봤던 흥선대원군 아버지 묘를 팠던? 그 서양상인이 말처럼
서양의 종속국과는 좀 성격이 다르죠.
애즈한 14-11-04 23:17
   
현재 쓰는 '속국'(=부용국,dependent state)이란 용어는 서양사에 기반하여
일정한 요건들이 포함된 정치학적, 국제법적 개념이며
여기에는 지배-피지배의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을 속국이라 칭하면 잘못된 오해를 부를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조공국 또는 제후국으로 칭하는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조선은 명, 청의 '속국'은 아니었고
동아시아사 개념으로 보면 조공국이나 제후국이란 용어가 더 적절한게 맞다고 보구요.

과거 조공-책봉의 문제는 국제외교나 패권질서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힘의 우위가 명확한 패권국의 패권질서를 인정한다는 전통적인 외교 형식이
바로 조공과 책봉, 역법 채용 따위인 것입니다.

(국가 내의 공물진상이나 관리임명과 다른 점은, 조공은 회사를 통해 서로 쌍방향적, 호혜적이었고 -녹봉은 공물진상에 대한 댓가나 사례가 아니므로 적절한 반례가 아님-책봉은 사후적이고 형식적, 상징적인 것에 그쳤습니다. 뼛속까지 사대주의였던 것으로 비판받는 조선왕조에서 중국이 골라서 직접 임명하였거나 중국이 반대해서 왕이 되지 못한 케이스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패권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형태의 특정한 외교 교섭-예를 들어 조선과 여진족 간의 비밀스런 통호와 밀착-는 명시적인 규율이 없더라도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조선 스스로 알아서 자제한 것이죠.

마치 대한민국은 공인된 주권국이지만 - 미국과 동맹, 우호관계를 가진 여타 나라들이 다 그렇듯- 미국과 적대적인 세력과의 외교, 교섭이 자제되는 것처럼요.

저는 과거 조-중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나 절차만 다를뿐-
본질적으로는 현대의 한-미 관계와 똑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끠떡갈비 14-11-04 23:20
   
힘의 우위를 인정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까운 것이죠.
오히려 제후국이라고 불리는게 더 아래취급이라고 보입니다.
조선은 엄연히 독자적으로 탄생한 나라이지.
중국황제가 땅떼어줘서 생긴 나라는 아니죠.
          
굿잡스 14-11-04 23:24
   
하~ 님아 서토사에 제후란

지들 아들들에게 주변 지방영토를 할양해서 나눠 다스리게 한 일종의

행정제도 방식임.

이게 오랜기간 후왕제도방식과 중앙집권적 관리 파견 방식으로 거듭해서 왔다

갔다하다 과거제들 통한 중앙 집권적 관리 파견으로 정착된 것임.


이걸 엄연히 독립적 다른 왕조가 있는 나라와 비교질해서 제후국 어쩌고

소리는.. 쩝.
          
mymiky 14-11-04 23:37
   
중국 제후(중국 내번친왕)들과
외국의 제국(외국 통치군주)들은 다릅니다-.-
둘다,
제후라고 불리니, 그게 같은거라고 생각하시나봐요-.-;; 옴마나~
갑툭튀 14-11-04 23:23
   
그럼 신라는요?

삼국사기에 당황제의 당군에 패한 문무왕은 조칙에 의해 관직과 직위를 빼앗았다가
문무왕이 조공을 하니 회복시켜 주었죠.
신라때도 당과 정치관계에서 조공-책봉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패한 곳에 당나라 대사를 부임시켰다가 조공받고 그냥 물러났을까요?

답은 신라에게 역관광 당하고 쫒겨났습니다.
기록엔 말200필까지 전리품으로 우리가 얻었다고 되어있죠.

당시는 전쟁 중소 전투에 따라 작전상(?) 중국의 화친의 제스춰인 조공-책봉 시스템과
다시 독립적 자주국가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많죠.

신라처럼 고구려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 당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싸우고 이기고
자주국가임을 분명히 하기도 하였지만 때떄로 지기도 하면서 화친하기도 하였습니다.
끠떡갈비 14-11-04 23:41
   
아 진짜 다들 말꼬리잡고 다굴치느라 정신들 없으신데ㅡㅡ  도저히 못당하겠네요.
왜이리 많이들 달라붙음? 제가 링크하나 가져와보겠습니다.
조선이 속국이 아니라면 이거부터 한번 반박해보세요.

http://blog.naver.com/osj1952?Redirect=Log&logNo=100124526794
     
mymiky 14-11-04 23:44
   
읽어봤는데-
뭘 반박해야 하는지?
          
끠떡갈비 14-11-04 23:46
   
속국이 아닌데 왕이 일개 사신한테 절하고 여자바치겠다고 합니다.
               
mymiky 14-11-04 23:54
   
사신에게 절한게 아니라
황제의 칙서에 예를 올린거죠.
조선왕이 일개 관리일뿐인 사신에게 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은 신분차이도 크구요.

영락제가 조선인 후궁을 들이고 싶어하는 내용이란건 알겠는데,
따질려면, 영락제한테 따져야지;;
게다가, 여자 바친걸 깐다면
중국은 흉노왕한테 공주도 바쳤는데 ㅋㅋㅋ
조선은 공주를 바치적도 없어요.
                    
끠떡갈비 14-11-04 23:56
   
分遣敬差官于各道(분견경차관우각도) : 경차관(敬差官)을 각도에 나누어 보내어

選處女(선처녀) : 처녀(處女)를 선택(選擇)하게 하였는데,

除公私賤隷外良家十三歲以上二十五歲以下(제공사천례외량가십삼세이상이십오세이하) : 공사(公私) 천례(賤隷)는 제외하고 양가(良家)의 처녀 13세 이상 25세 이하를

皆令選取(개령선취) : 모두 선취(選取)하게 하였다.

尋下旨(심하지) : 조금 뒤에 전지(傳旨)를 내려

無奴婢兩班及庶人之女(무노비량반급서인지녀) : 노비(奴婢)가 없는 양반(兩班)과 서인(庶人)의 딸은

勿幷刷出(물병쇄출) : 일체 쇄출(刷出)하지 말게 하였다.

旣而又遣敬差內官于各道選揀(기이우견경차내관우각도선간) : 조금 뒤에 또 경차 내관(敬差內官)을 각도에 보내 간택(揀擇)하니,

於是中外洶動(어시중외흉동) : 중외(中外)가 흉흉(洶洶)하게 소동하여

潛相婚嫁者甚衆(잠상혼가자심중) : 몰래 서로 혼인(婚姻)하는 자가 매우 많았다.
                         
mymiky 14-11-05 00:01
   
뺏겨오실 필요 없어요.
한국인들도 다 아는 이야깁니다.
인수대비 고모들이 후궁으로 간건 유명하죠.

근데요?
                         
끠떡갈비 14-11-05 00:02
   
인수대비 고모들이 후궁으로 갔습니까??
그정도면 완전 속국아닌가요??
                         
mymiky 14-11-05 00:08
   
당시, 명황궁으로 시집가면 친정집안도 부귀영화와 권세를 얻었습니다.
나쁜 혼처도 아니구요. 물론, 이국땅으로 가니, 다신 영영 이별이란걸 각오하고 간거겠지요. 조선으로써도, 조선인 후궁이 총애받으면 나쁠것도 없구요.
잘만하면, 명조정에 인맥을 쌓는거니까요.
친조선파 황제? 전혀 손해가 아니죠.
               
Ciel 14-11-05 00:11
   
조선으로 온 사신은 '일개' 사신이 아니라 황제의 대리인, 즉 황제와 동급으로
대우받는 겁니다. 게다가 사신이 돌아가서 괜히 쓸데없는 소리하면 골치아프구요.
그러니 극진히 대접할 수 밖에요.

더군다나 사신을 환대한 건 조선만 유별나게 그런 것도 아닙니다만.
                    
mymiky 14-11-05 00:15
   
지금도,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오면 신경써주는거야 매 마찬가지죠..
어제 네델란드 국왕부부 왔던데ㅋㅋ 대통령과 환담하는 뉴스 나오더군요..

외교사절을 반갑게 맞아주면 좋은 일이지.. 예법에도 맞는거고
그럼 거기서 깽판이라도 부려야 한다는건가?ㅋㅋㅋ
                    
끠떡갈비 14-11-05 00:39
   
형식적인 조공치례라면서 황제가 여자바치라니까 군말안하고
충성맹세하면서 양반집 규수들 잡아가고 그거 때문에 민심 흉흉해지는 꼴이
속국이 아니군요ㅋㅋㅋㅋㅋㅋㅋ
                         
mymiky 14-11-05 00:49
   
송나라때 정강지변의 굴욕에 비하겠습니까? ㅋㅋㅋ
                         
Ciel 14-11-05 07:10
   
한과 흉노, 송과 금의 관계는 어떤 관계로 보나요?
이걸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논리에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갈릴 것 같습니다만?

사대외교의 형식과 실질에 대한 이해 자체가
안되는 것 같군요. 아니면 일부러 안하는거든지.
nests 14-11-04 23:47
   
속국이 아니라  틈새개념(!)인 걍 조공만 바친거다..주장하려면

간단하게 속국인 다른 나라의 사례와 조선의 사례가 어떻게 다른지 말하면 한방에 끝날겁니다
또는 반대로 속국이 아닌 떳떳한 독립국으로 인정받은 나라와 조선이 외교적으로 동일했다는 사례를 가져오던가.
무슨 정신이니 관점이니 이런 말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우고
실제 일어난 현상가지고 사례를 들면 한방에 정리됩니다.
근데 그게 안되네요 지금.아직까진 그런 댓글이 없네요 그쵸?
     
mymiky 14-11-04 23:55
   
그걸 알려줘도, 못 알아먹을 양반이라서-.-
말길을 못 알아먹는데, 이길 자신이 없네요..
          
끠떡갈비 14-11-05 00:00
   
乙未命世子如太平館(을미명세자여태평관) : 을미 일에 세자(世子)를 명하여 태평관에 가서

問安於使臣也(문안어사신야) : 사신에게 문안하게 하였다.

일개 사신한테 세자가 문안인사 여쭙게 함.

世子日至館問安(세자일지관문안) : 세자가 날마다 태평관에 가서 문안하였다.

그것도 날마다 가서
               
mymiky 14-11-05 00:04
   
세자가 사신보다 못해서 보낸건 아니죠.
하물며, 세자가 문안갈때, 사신이 앉아 받았을까요?
제 생각엔,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으니, 신경써준 선의같은데,
이런식으로 후세에 왜곡될 줄이야 ㅋㅋㅋ
끠떡갈비 14-11-05 00:08
   
고려때 임금이 원나라에 공녀바침. -속국
조선때 임금이 종이쪼가리 보면서 절함. 공녀바침. -조공국

???????
     
mymiky 14-11-05 00:14
   
황제가 직접 오는게 아니니, 대신 편지에 예를 표하는거고,
원나라는 애초에, 한족들을 믿지 않아서 대신 고려에서 궁녀를 조달받은거구요.
영락제가 조선여자 좋아한걸 개인취향인데 제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닌거 같네요.
굿잡스 14-11-05 00:12
   
네덜란드, 영국도 다 속국임. 돼스넴 ㅋ
끠떡갈비 14-11-05 00:18
   
上以皇帝北征(상이황제북정) : 임금이, 〈명나라〉 황제가 북정하였으므로,
當遣人問起居(당견인문기거) : 사람을 보내서 문안하여야 하나
而以方在衰絰(이이방재쇠질) : 방금 최질(衰絰) 중에 있으므로
令政府六曹擬議以聞(령정부육조의의이문) :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부와 육조에 명하여 의논하여 올리게 하였다.
皆云(개운) : 모두 말하기를,
不可以私喪(불가이사상) : “사사 상사로 인하여
廢君臣之禮(폐군신지례) : 군신의 예를 폐할 수 없으니,
宜稱王用印(의칭왕용인) : 왕(王)의 칭호와 〈조선 국왕의〉 인(印)을 사용하여
一如常例(일여상례) : 평상시와 같이하소서”하고,
卞季良許遲以爲(변계량허지이위) : 변계량·허지(許遲)는 아뢰기를,
依中朝易月之制(의중조역월지제) : “중국의 역월(易月) 제도에 의하여,
於二十七日後遣使(어이십칠일후견사) : 27일이 지난 뒤에 사신을 보내소서.”하였다.
上曰(상왈) : 임금이 말하기를,
於奏本稱國王用印(어주본칭국왕용인) : “주본(奏本)에 국왕(國王)의 칭호와 인(印)을 사용하고,
於禮部(어예부) : 예부(禮部)에
議政府呈狀(의정부정상) : 의정부(議政府)가 정장(呈狀)하여 해명하라.”하였다.
     
mymiky 14-11-05 00:21
   
어쩌란건지?
이분 참 재미난 분이시네 ㅋㅋㅋ
          
끠떡갈비 14-11-05 00:25
   
上以皇帝北征(상이황제북정) : 임금이, 〈명나라〉 황제가 북정하였으므로,
當遣人問起居(당견인문기거) : 사람을 보내서 문안하여야 하나
而以方在衰絰(이이방재쇠질) : 방금 최질(衰絰) 중에 있으므로
사신이 안옴.

令政府六曹擬議以聞(령정부육조의의이문) :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부와 육조에 명하여 의논하여 올리게 하였다.
안절부절행

廢君臣之禮(폐군신지례) : 군신의 예를 폐할 수 없으니,
宜稱王用印(의칭왕용인) : 왕(王)의 칭호와 〈조선 국왕의〉 인(印)을 사용하여
一如常例(일여상례) : 평상시와 같이하소서”하고,
어이 왕! 조공 끊을라고?? 안되지!

依中朝易月之制(의중조역월지제) : “중국의 역월(易月) 제도에 의하여,
於二十七日後遣使(어이십칠일후견사) : 27일이 지난 뒤에 사신을 보내소서.”하였다.
중국에선 그렇게 한다니까 예의상 그렇게 하죠?
굿잡스 14-11-05 00:23
   
전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재위 5년에 비로소 황제라 칭하고 노관을 연(燕)왕으로 봉한다. 그런데 기원전 201년 노관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방은 흉노가 갓 탄생한 한나라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40만 명의 대군을 동원, 흉노의 시조인 묵특선우((冒頓單于, 기원전 209∼174)를 공격한다. 그러나 기원전 200년 유방은 백등산에서 일주일 동안이나 포위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는 등 온갖 수모를 겪고 난 뒤 흉노와 화친을 맺는다.

당시 흉노와 한이 맺은 화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그에 의하면 한은 거의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첫째,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의무적으로 출가시킨다(이 관례는 문제(文帝, 기원전 179∼157) 때까지 계속되었다).

둘째, 한이 매년 술 비단 곡물을 포함한 일정량의 조공을 한다.

셋째, 한과 흉노가 형제맹약(兄弟盟約)을 맺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넷째, 만리장성을 경계로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



이 합의는 기원전 198년 가을, 중국 종실의 공주가 흉노에 도착함으로써 발효되었다. 특기할 사항은 양 조정(朝廷)에 왕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혼인으로 동맹을 갱신했다는 점이다. 또 중국이 흉노에 내는 조공 액수도 한과 흉노 사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한의 조공액은 매년 늘어났다. 기원전 192년부터 135년까지 적어도 아홉 차례에 걸쳐 한이 흉노에 대한 조공액을 인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이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을 흉노의 속국으로 만든 묵특선우는 흉노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우리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당시 동호(東胡; ‘동쪽 오랑캐’를 의미하는 한자어. 고조선 외에 부여, 예맥, 진번, 임둔, 진국 등 다양한 국가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가 매우 강성하였는데, 동호는 흉노를 경멸하며 묵특의 천리마와 연지(흉노의 후비(后妃)의 칭호)를 요구했다. 부하들이 동호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라고 하자 묵특은 ‘인접한 나라 사이에 어찌 말 한 마리와 여자를 아끼겠는가’라며 순순히 동호의 의견을 따랐다. 당시 두 나라 사이에는 1000여리의 황무지가 펼쳐 있었는데, 동호가 이를 갖겠다고 나섰다. 신하들은 버려진 땅이므로 주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묵특은 ‘땅은 나라의 근본이다’라며 동호를 습격하여 왕을 살해하고 백성과 가축을 노획했다.

패전한 동호를 대신하여 흉노는 유목기마민족의 패자로 떠올랐고, 묵특은 자신의 치세 동안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여 아시아 초원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다.

한족이 이른바 ‘흉노 공포증’에서 벗어난 것은 기원전 141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즉위하면서부터다. 괄괄한 성미의 무제는 고조 유방 이후 60 년간 지속된 굴욕적인 대(對)흉노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무제는 기원전 129년부터 기원전 119년까지 10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기병대를 이끌고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10년간의 한·흉노 전쟁으로 한나라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흉노의 피해는 더욱 컸다. 무제가 죽은 후 한나라와 흉노는 대략 300년에 걸쳐 공존하며 평화롭게 지낸다



후한

후한(後漢, 25-220)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는 중국 남부와 월남의 북부를 다시 정복했다. 기원전 209년에 묵특의 지휘아래 유목제국을 수립한지 250여년이 지난 AD 47년, 흉노제국에 내란이 일어나 몽골초원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요서 초원지대의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제일 먼저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실호기, 후한 명제(明帝, 57-75)는 전한 무제를 본받아 흉노를 다시 한번 통제해 보려 했다.

일찍이 AD 48년에 흉노제국이 남과 북으로 양분되자, 조정관료인 장궁(臧宮)은 흉노의 약세를 틈타 “고구려,” 오환, 및 선비와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자고 주장했었다. 1 당시 광무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신조를 강하게 피력했다. 49년, 광무제는 푸짐한 선물과 국경무역을 제공해 선비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명제가 즉위한 다음 해인 58년 이후에 후한 조정이 선비 부족장들에게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 금액은 년간 2억 7000만냥에 달했는데, 그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남흉노에게 바친 것의 세배에 달하였다.


북위때(남북조)


북위는,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 받은 2원적(二元的)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됐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홍원탁 (서울대 교수)

만주의 여러 부족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 해 가장 유목민적이었던 탁발 선비는, 전연(前燕)이 만들어낸 이원 통치 체제의 장점을 살려, 처음으로 북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이민족 왕조를 수립했다.1 모용 선비족은 탁발의 북위(386-534)조정 내에 주요 지배귀족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변경지대의 한족들은 어느 때고 초원 혹은 삼림지대 출신의 이민족 부족 중 제일 강하다고 생각되는 편에 붙었다. 탁발 선비의 언어는 아마도 거란어의 직계 조어(祖語)이었을 것이다.2

부족 출신 군대 덕에, 보급이 잘되는 기병대를 보유했던 북위는 초원지대 깊숙히 원정군을 보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족들은 부대 단위로 조직되어, 할당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경수비 공동체의 구성원 역할을 하였다.3 부족민과 군사에 관련된 문제는 각 부족 고유의 전통에 따라 처리되었다 정복된 한족 거주지역은 한족 관료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고위직은 대부분 선비 귀족들이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한족들의 이상은 능력주의 사회인데 반해, 유목민족들은 세습적 귀족제도를 고수했다. 북중국 귀족가문들은 대부분 한족이 아닌 이민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정복왕조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대부분 독차지하였다.

중국대륙 북부의 선비족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시베리아와 몽골초원 유목민들의 초기 예술적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뿐만 아니라, 당시 선비족들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했던 옛 박트리아와 교류가 있었고, 로마 통치하의 중동과 교역을 했으며, 초기적 불상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와도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낯익은 사람들은, 섬서성에서 발굴된 (5호16국 시대) 갑옷을 입은 말 모양의 토기를 보고, 고구려 토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특히 호흐호트(呼和浩特)에서 출토된(맨손으로 빚어 만든) 말과 마부의 토기는 신라 토기로 오인될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모양의 토기에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 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받은 2원적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되었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Barfield(1989: 105)는 “한(漢)이 멸망하고 첫 번째 만주족 정복국가(탁발북위)가 등장하기까지는 150년이 걸렸고, 당이 망하고 나서는 75년이 걸렸으나, 명(明)이 망할 때는 거의 동시에 만주족 정복왕조가 들어섰다. 한족왕조가 망하고 나서 정복왕조가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은 점점 단축되었지만, 그 방식은 똑같았다.”고 말한다.


당나라

수나라가 고구려에 대패하고 망하자 체력을 보존하고 있든 돌궐이 남하하여 휘젖자

당나라 이연과 이세민도 위수지맹으로 신하로 칭하면서 돌궐에 조공을 바쳤고

토번에게도 털리자 공주부터 공물을 갖다 바쳤다.




요나라때


거란(요나라)은 송과 적대적인 대치상태를 지속하다가,

결국 1005년에 송나라가 매년 20만 필의 비단과 10만 량의 은을

거란에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었다.

1005년 조약과 1042년에 개정된 조약은 근 백 년간 평화를 지속시켰다.

송나라 조정은 열등한 지위를 수용하고, 계속 공물을 바쳤다.



금나라

송은 금(金)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흠종,휘종 두군주가 만주로 압송되었다.

기어 내라가 세운 남송은 몽골제국(원元)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원나라때

몽고족은 제1신분으로서 통치하고 색목인(위구르인, 아랍인등)이 제 2신분이었고 다음은 서토에 살았던

거란, 선비족등은 3신분을 차지하고 끝까지 원의 지배에 항쟁했던 남송인이(한족) 4신분으로 특히 차별을 받

으며 노예 계층으로 분류했다.. 원은 몽골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했고, 과거제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서토인의 정치진출을 막았으면 사고파는 물건과 다르지 않았다.




청나라때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팔기는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군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때를 보인 것입니다』

청조가 과거제도를 유별나게 중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제를 통해 능력과 장래성이 있는 漢人을 관료로 발탁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사대부와 지방의 紳士(신사) 계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과거 합격자가 관직에 바로 등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生員, 監生, 貢生, 擧人 등의 학위소지자로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상급 시험인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청조는 이들이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만주족의 土風(토풍)을 지키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청조는 발상지(본거지)에 사는 만주족이 한족식 집을 짓거나 한족교사를 초빙해 글을 배우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中原에 들어간 만주족들은 元을 세운 몽골족처럼 한족에게 몰리면 언제라도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 고토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의 얘기입니다만 청조는 대만이나 산동반도 같은 곳은 쉽게 할양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아 청일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본거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임계순교수의 `淸史'

청나라는  만주족은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 시키기 위해 변발을 강요했고 이에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 정사의 실제 기록>

남북조시대의  기마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이-<사기> <흉노전>에는

흉노를 호라 하고, 예맥 조선을 동호라 하였고,- 흉노가 동호를 하

북성으로 밀어내게 되는데 동호 ,예맥, 조선은 사기의 흉노열전,

조선열전, 소진열전에서 다르게 이칭 하지만 그 방향과 위치는 같

다. 즉 동호를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다.이후 후대

< 위지 동이전>에는 동호의(고조선) 후손이 선비, 오환이라 하고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라고 하여  선비, 오환, 부여, 고구려 등을

다르지 않는 갈래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선비 부여 고구려등을 동이 열전에서 함께 분류하고 있다.
끠떡갈비 14-11-05 00:28
   
使臣請以綃子換紬布(사신청이초자환주포) : 사신이 궁초(宮綃) 명주와 베를 바꾸기를 청하고,
又請銅鏡(우청동경) : 또 구리거울[銅鏡]을 청구하므로, .
竝從所求(병종소구) : 모두 구하는 바를 들어주기로 하였다

엥?? 이거 사실상 삥뜯긴거 아닌가요??
설마 조공무역??
끠떡갈비 14-11-05 00:29
   
丁未上遣元肅(정미상견원숙) : 정미 일에 임금은 원숙을 보내고,
上王遣李明德(상왕견이명덕) : 상왕은 이명덕을 보내어
問安于使臣(문안우사신) : 사신에게 문안하였다.
自此(자차) : 이로부터는
兵曹堂上官及諸代言(병조당상관급제대언) : 병조 당상관과 여러 대언들이
各輪日問安(각륜일문안) : 각각 돌려가며 매일 문안하였다.

형식적인 조공치롄데 대소신료들 몰려가서 말동무해줌.
mymiky 14-11-05 00:30
   
웃긴게-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하물며, 서양세력에 청나라가 쌍코피 터지면서
황제놀음도 다 끝난지가 백여년이 넘었구만..
지금와서 아웅다웅 해봤자. 어쩌라는건지? ㅋㅋㅋ

내가 옛날에 잘 나갔다? 외치고 싶은건가-.-;;
우스개 소리로, 왕년에 못 나갔다는 사람 못 봤음.

시진핑 주석이 황제도 아니고,, 시황제라도 되나? ㅋㅋ
중국 공산국가 아니였나?

아이고, 의미없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옜날에 황제놀이 하던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ㅋㅋㅋ
     
끠떡갈비 14-11-05 00:31
   
ㅠ 명나라에요ㅠㅠ
          
mymiky 14-11-05 00:32
   
떡갈비님도 정신차리슈~
님이 이런글 올릴때마다
혹시 중국에서 님 통장에 돈 들어옵니까?
               
끠떡갈비 14-11-05 00:33
   
뜬금포 짱개국알바행ㅋㅋㅋㅋ
국산아몬드 14-12-13 12:33
   
끠떡갈비/ 속국이 될려면 일단 내치와 외교가 간섭받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권행사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으면 속국이라 할 수 있죠. 조선이 내치와 외교에 명나라로부터 간섭받았다는 증거도 없고 오히려 만주 여진족을 두고 서로 패권경쟁을 벌였습니다.
그외에 조선여자가 황제의 후궁이 되었다던지 국가간에 선물을 보냈다던지 사신이 횡포를 부렸다는 것으로는 속국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자존심은 좀 상하죠. 그렇지만 경제적이익은 챙겼으니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지 않나요? 형님한번 해주었다고 선물 왕창 받으면 나 같으면 수십번 하겠네요. 조공보낸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속국운운할 것이 아니라 속국의 정의부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