屬國 [ 속국 ]정치적(政治的)으로 다른 나라에 매여 있는 나라, 종속국(從屬國)
從屬國 [ 종속국 ]①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지배에 구속되어 있는 나라 형식상으로는 독립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제국주의국에 종속하고 있는 나라 ②종주국의 국내법에 따라 외교 관계의 일부를 독립 처리하며, 다른 부분은 종주국에 의하여 처리되는 나라 터키(turkey)를 종주국으로 하는 독립전의 불가리아와 같은 경우
조공 (朝貢)
[명사]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 또는 그 예물.
동,서양간에 관념상 차이가 있었기에 속국이 아니라는 논리에서는 조공관계에 대해서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외교상의 관례였다라고 취급을 하는데.. 사실 이건 동아시아 전통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외교 관례가 아닌가요??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지만, 그런 對중국외교를 <보편적인 범 아시아적 전통외교관례였다. 그러니 조선은 속국이 아니었다>는 논법으로 속단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공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네들의 중화주의에 편입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기원조차도 원래는 천자와 제후들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중국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타국과의 조공관례라는 것은 통일된 중국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게 된 절차로, 소위 남만으로 일컫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중국의 직,간접적인 압력에 굴복해 자국의 안위를 위해서 조공관계를 받아들였던 것으로서, 틈만 나면 반중국의 기치를 내걸고서 기존의 수립된 관계를 백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 움직임은 일시적인 조공국으로 전락했던 미얀마,베트남등지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중국의 침략에 대응했던 독립운동가들이라고도 불립니다. 과연 조공국=속국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들고 일어나야 할 정도로 불합리한 관계였을까요??
토번과 투르크계 유목민족, 몽골계 유목민족들의 경우 중국을 침략하는 과정속에서 유교의 기치를 국가관으로 삼으려는 목적(중국화)과 유목민족의 고질적 문제인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재보(공물)를 취하기 위하려는 목적에 의해 조공관계가 수립됬습니다. 흔히들 이름정도는 알고 계시는 유목민족들(흉노,거란,여진,몽골,돌궐등)은 전부 한결같이 중국과 조공관계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상하간의 우열에서 우리처럼 중국이 우위가 아닌, 자국이 우위인 조공관계를 맺었습니다. 조선처럼 臣으로서가 아닌, 오히려 역으로 君으로서 맞았던 거죠. 이것을 이민족의 왕이 중화에 스스로 숙이고 들어갔다는 개소리가 학계에서 나오고 있긴한데 이건 사실상 동북공정수준의 역사왜곡입니다. (신하국에게 공물진상하느라 국가예산의 1/3이상이 빠져나가나?)
조공은 흔히 중화질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불리웁니다. 왜 그럴까요?? 조공관계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문물교류가 아닌, 한 쪽이 숙이고 들어가야만 성립되므로 수직적 상하관계가 명확합니다.
조선과 중국간의 외교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조공국이 속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말만 그럴듯하지, 빛이 바랜 것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사대로 중화를 종주국으로 받들며 자소로 자국의 안위를 보장받고 꾸준한 전서를 주고받으며 왕위를 이어받는 후대왕들이 신하를 보내 국왕으로 책봉을 받고 왕자리에 대한 명분을 얻습니다. 그리고 조공으로 자국의 특산품을 바치죠. 여기서 조공이라는 특정부분외에도 이것이 과연 국가와 국가간으로서의 정상적인 외교인가라고 평가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조공이라는 개념자체가 국내에서 지방관이 왕에게 토산품을 헌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바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일반적인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와 비교해도 다를바가 전혀 없습니다. 조공을 바치면 회사라는 명목으로 다시 진상한 품목의 곱배기만큼의 물건들을 수여합니다. 이부분에서 실리적인 외교였다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던 중화질서의 유지의 필요로 인해 관계유지명목으로 '바쳤던' 겁니다.
물론 조선과의 관계에서는 북쪽의 위협적인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유목민족들과의 관계에서와는 달리, 적당한 양의 수여품을 건네줄뿐입니다. 유목민족들과 조공관계를 갖게 되면서 차츰차츰 그 관례가 형식으로 고착화되어, 다른 국가들과도 조공관계를 맺을 때에 답례품을 보내는 것으로 변질됬던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중국이 회사품보내는거 부담스러워 했다고요?? 당연한 겁니다. 남송때 요나라,금나라에게 조공 보낼때는 일년에 황금 수백근,비단 수백필등 무지막지하게 헌상했습니다. 조선과의 관계는 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국력의 강약에 따라 회사품이 비례되는 것이니 만큼, 조선과의 조공관계는 딱히 중국으로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이지만, 오히려 조선의 국력이 여타 타국들과는 비교도 안되리만큼 약했고, 전혀 위협이 안되기에(임란같은것만 보면 오히려 짐짝수준) 회사품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손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명나라가 조선의 실리적인 외교의 산물 '조공관계'에 대해서 부담을 느꼇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자아도취적인 생각이 아닐런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