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에 항상 '잠깐 몇 시간 앉아있다 올 거면 뭐하러 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날밤 새다 첫차 타고 집에 오곤 했죠.
근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집회 내내 회의감이 일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겁니다. 특히 청와대 쪽 갔다가 다시 광화문 돌아왔을 때는 뭐에 홀린 듯이 잰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호프집에 들러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광화문에서 누가 분신을 했다더군요. 벌어진 시각을 보니 제가 지하철로 향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런말 하면 개소리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꼴 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빨리 집에 가고 싶었었나 생각 되네요. 한 편으론 내심 이런 생각(못 볼 꼴 안 봐서 다행)하는 제가 너무 한심스럽고요.
술을 마시는 내내 괴로웠습니다. 왜 죄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빌었습니다. 제발 무사해달라고..
그리고 잠깐 댓글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는데.. 그쪽 알바들의 인간같지도 않은, 정말 사람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그 댓글들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진짜 이 인간들(수구)과는 화해는 할 수 없겠구나..
지금 뉴스 메인에 보니 이런 기사가 있네요.
경찰 "촛불 2만4000명, 맞불 3만7000명"…퇴진행동 즉각 반발
그저 기가 찹니다.. 내가 도착한 시각(7시 20분 즈음) 기준, 동아일보 건물쪽까지 사람들이 들어찼는데 이게 고작 2만 4천..? 반면 도로 전체도 아니고 편도만 점령한 박사모는 3만 7천..?
전 솔직히 두렵습니다. 이렇게 경찰부터 언론까지 다 맛이 가버린 상태에서 나같은 사람 하나 가서 촛불 든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이 자꾸 듭니다.
특히나 언제부턴가 '헌재가 탄핵안 인용 안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 사회에 정나미가 완전히 떨어질 것 같거든요.
솔직히 제가 지금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광화문 분신에, 매몰 사고에, 경찰 개짓거리에, 회의감에, 이런 저런 사건과 감정들이 마구 얽혀서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요..? 자꾸만 슬퍼지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