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것과는 다르다. 언제나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를 예상하여 조치를 하는 사람이나 단체도 물론 있다. 하지만 전자는 그 수가 적고, 후자는 '일'이다.
개인적인 성격상 주변에 뭐가 있는지 두루두루 구경하면서 다니는 터라 덕을 본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두번 모두 화재와 관련해서 고립되었을 때인데, 한 번은 부주의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다른 한 경우는 그냥 빌딩 복도에 있던 한 시설에서 화재가 났었다. 두 경우 모두 큰 탈 없이 마무리 되었는데, 평소 이것 저것 쳐다보며 다닌게 도움이 되었다. 소화기는 어디있고, 소화전은 어디에 있으며, 화재시에는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119 신고는 무조건 바로바로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사실 부주의라고 했는데, 이건 결과론이고(혼자만 관련된 일도 아님). 당시 같이 있던 그 누구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안전조치를 취했다. 단지 그 조치가 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충분하지 못했다. 예상을 벗어난거다. 이걸 안전불감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안전불감증이 되려면 예상할 수 있음에도 무시한 것에 해당하니까. 예상하지 못한걸 어떻게 안전불감증이라고 할까. 판교사고를 예로 들자면, 그럼 모든 관람객이 공연시작 몇시간 내지는 며칠전부터 공연예정장소에 와서 바닥재 하나하나까지 일일히 다 검사해야했을까? 보통 이런 공연에 있어서는 안전과 관련해 주최측, 주관사, 대행사등이 모두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여기는게 당연하다. 이런 상황이면 예상을 한다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빌딩에 불이 났었을 때, 난 놀라운 경험을 했다. 화재를 인지한 바로 그 순간 난 연기유입을 막기 위해 동료랑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에게 119에 신고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반응이 놀라웠다. 상황을 확인하자는 둥(복도에 화재가 났는데, 문을 열어 확인하려 했다. 연기가 이미 천정에 들어차고 있는데!), 119에 신고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둥. 동료와 내가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바로 신고하라고 해서 겨우겨우 했었었다. 이건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었다. 화재신고는 119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일이 닥쳤을 때 화재니까 119에 신고해야지가 아니라 되도 않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119에 신고할만한 건가?'. 이건 막상 일이 닥치면 당연히 신고해야하는게 맞다고해도(결과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훈련 내지는 교육이 적절히 수행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고,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차라리 어린아이들이 더 나은 경우다. 화재신고는 119에 충실해서 무조건 신고하고 보니까. 사실 이게 정답이다.
얘기가 너무 길게 돌은것 같은데. 판교사고를 말하면... 나로서는 주최, 주관사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환풍구에 안전장치가 없던 것도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사람들이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조차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가이드 라인이나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을 거였으면 최소한 철판으로 덮어놓을게 아니라 투명 내지는 반투명 재질로 된 구조물로 위험을 인식할 수 있게 했었어야하지 않나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100명, 200명이 올라가도 끄떡없는 걸로 막아놓는다거나.
사람의 생각, 아니 예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위험에 대비하고 조치를 취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원천적으로 봉쇄한다하는 자세로 틀어막거나, 아니면 최소한 위험성을 현장에서 바로 바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어야한다. 언제나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재난(?)이라해야하나? 이러한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 나 처럼 안전조치를 충분히 취해놓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해 몸에 불이 붙어보고해야 말을 좀 아낄려나? (물론, 몸에 들러붙은 가스가 타는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과 서로 재빨리 꺼주었다. 재수 없이 앞쪽에서 불이 올랐다면 호흡기에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다행히 등뒤쪽이어서 그런 문제는 없었다. 머리카락도 안탄것 같지만 이건 당시에 확인하지는 못했다. 뭐 어디 아픈데도 없었고 하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