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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8 17:18
(펌)발해는 중국의 역사 [이건 저의 글이 아닙니다]
 글쓴이 : 짜장백숙
조회 : 6,603  

발해는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러한 발해를 국내 역사교과서나 많은 학자들은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의 역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여러 사료를 참조해봤을때, 발해는 말갈족의 역사로 보는 견해가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학계에는 실질적으로 발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및 러시아의 연구를 따라가는 경향이 크며


발해가 말갈족의 나라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저 국내 교과서에서만 한민족의 역사라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1.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의 출신.


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高麗滅,率衆保挹婁之東牟山,地直營州東二千里,南比新羅,以泥河爲境,東窮海,西契丹。築城郭以居,高麗逋殘稍歸之。 

『新唐書』

신당서에 나와있는 대목으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붙은 이들이며 성은 대 씨다" 라며 말갈족이며 그리고 고구려에 붙은 이들이라고 명기되어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중국 역사서 구당서에서도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渤海靺鞨大祖榮者 本高麗別種也 

 "발해말갈의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구려[高麗] 별종이다."

고구려의 별종이라함은 고구려인이 아닌 다른 부족민으로 해석하는게 옳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인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다음은 최치원의 기록입니다.

臣謹按渤海之源流也。句驪未滅之時。本爲疣贅部落。靺羯之屬。寔繁有徒。是名栗末小蕃。嘗逐句驪內徙。其首領乞四羽及大祚榮等。至武后臨朝之際。自營州作孼而逃。輒據荒丘。始稱振國。

최치원은 발해의 원류에 대해 "발해(渤海)의 원류(源流)는 고구려(高句麗)가 망하기 전엔 본시 사마귀만한 부락(部落)으로 말갈(鞅鞨)의 족속이었는데..." 말갈의 족속이었던 부락이 발전하여 발해를 이루게되었다고 기록해놓았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말갈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소수의 지배층 고구려인과 다수의 피지배층 말갈족


만약 대조영이 고구려인이고, 지배층 역시 고구려인들이라고 쳐도, 이는 매우 이상합니다.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서, 한민족의 역사라면


고조선 중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의 경우 


  - 기자는 은의 왕족으로써, 주왕에게 간언하다 옥에 갇혔다 : 기자의 무리가 지배층이고 중국인인 기자의 나라이므로 중국의 역사?


- 또한 위만 역시 연나라 사람이었다. 이에따르면 후기 고조선은 중국의 역사?


이러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취국사의 내용을 보았을때


又傳奉在唐學間僧泳忠等所附書, 渤海國者高麗之故地也. 天命開別天皇七年, 高麗王高氏爲唐所滅也. 後以天之眞宗豊祖夫天皇二年大祚榮始建渤海國, 和銅六年受唐冊立. 其國延? 二千里, 無州縣官驛, 虛虛有村里, 皆靺鞨部落. 其百姓者, 靺鞨多, 土人少, 皆以土人爲村長, 大村日都督, 次日刺史, 其下百姓皆日首領, 土地極寒, 不宣水田,俗頗知書.


.....  그 나라는 사방 2천리이며, 주.현과 관역이 없으며, 곳곳에 촌리가 있는데 모두 말갈 부락이다. 그 백성은 말갈인이 많으며, 토인은 적다. ......



대부분의 국민이 말갈족이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갈족의 역사로 보는게 옳은 것 같습니다.





3.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




대조영의 아버지인 걸걸중상에 대한 내용을 보아도, 애매하고 모호한면이 많습니다.


본디 신당서와 구당서는 당나라때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당서에는 언급조차 없던 걸걸중상이


신당서에서 갑자기 고구려의 별종으로 튀어나옵니다.


이 경우 대조영의 성이 大씨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걸걸중상은 乞乞씨인 문제점도 생겨납니다.


이러한 의문에는 말갈의 성씨인 乞乞은 "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대조영이 大로 바꾼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따라서 말갈족인 걸걸중상의 자손인 대조영이 나라를 세웠으므로, 이 경우에도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4. 당나라 건축방식과 매우 유사



중국은 발해를 말갈의 나라로 생각하며, 당의 지방정권이라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한 입장을 지지해주는 하나의 예로


유사한 건축 양식 및 도시 설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상경 용천부가 있습니다. 상경 용천부의 모습을 보면 당시 당나라의 주작대로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경용천부와 주작대로.JPG 




http://www.fmkorea.net/index.php?mid=humor&page=2&document_srl=674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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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열받는 글이 있어서 퍼옵니다.

혹시 누가 조목조목 반박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안녕하세요. 짜장백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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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14-09-28 17:22
   
저거 제가알기로 말갈족이 애초에 고구려 국민이었고 별종도 무슨 고씨안쓰는 귀족성이다 이런말도들은거같은데...
숨바꼭질 14-09-28 17:40
   
소수의 지배층 고구려인과 다수의 피지배층 말갈족이라는 것은 역사시간에도 배웠었는데..
SHL5 14-09-28 17:52
   
조선조에 들어와서 소중화를 표명하며 북방을 오랑캐로 단정한 결과입니다.
중국은 한족만이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소수민족 포용정책으로 주변을 모두 중국에 포함시키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구려도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판이고 동북공정에서 만주 전체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포함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에 비해 자신의 역사 영역까지 오랑캐라는 표현을 해 가며 작아 빠진 민족,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학계도 만주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환원하도록 다양한 연구와 국민정서를 함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쓸데 없는 근현대사 논쟁으로 국사를 혼란에 빠뜨리는 국사교육을 지양하고 상고사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민족의 역사 교육정립이 절실합니다.
TheCosm.. 14-09-28 17:58
   
:3 이슈게시판에 가져오시기보다는, 동아시아역사게시판으로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znxhtm 14-09-28 18:02
   
이래서 국사 의무교육이 필요하다니깐.
숲속의신화 14-09-28 18:13
   
1. 고구려 별종이라 했으면 고구려의 다른 종인 것이지...그게 어떻게 말갈족이 되나요??  그러면 말갈이라고 하든지 말갈 별종이라고 해야지요. (말갈이 고구려의 경계쯤으로 여겨지거나 고구려에 복속되었다면 그렇게 표현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대조영은 이러나 저러나 고구려 사람인 것입니다. 김유신 또한 금관가야 사람이나 결국 신라 사람인 것이죠.)  글고 중국의 나라이름은 한글자로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발해,고구려, 부여, 백제, 숙신, 말갈, 여진 등  우리 역사의 시작인 (고)조선이나 부여 계통의 국가들은 이름이 두 글자입니다.

2. 속말말갈이든 고구려든 사실 동이의 역사이지, 한족의 역사는 아니지요.
(한족 중심의 역사가 아닌 다민족의 중국사라면 충분히 발해에 대하여 말갈족을 내세워 중국사로 포섭할 여지는 있지요.  역사라는 것은 이건 니들 역사, 이건 우리 역사라고 구분짓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존재합니다.  말갈이 여진과 그들의 나라인 금과 청의 전신이니 끝까지 발해를 중국사로 가져가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한국사의 시각만 조금 변화시킨다면 그들 부모의 나라인 고려가 존재하고, 신라가 존재하는 이상 발해는 통일 신라와 남북국 시대로,  말갈과 여진은 한국 부속사나 주변사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3. 걸걸은 성씨가 아니고 그냥 위대하다, 크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도 지금 '걸걸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요.또 다른 걸걸씨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시죠??  대조영도 그런 의미에서 대자를 성으로 사용한 것이지요. 걸걸이나 대자나 그 의미는 같은 것이며 표현양식만 바꾼 것이죠 . 당연히 말갈족 구성원이 많은 만큼 그 사람들이 알아들을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4. 지금의 청와대를 보고 판단하자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미국사입니까?

5. 일본에 보낸 국서에는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했으며, 일본에서 발해로 보낸 국서에는 발해왕을 때때로 고(구)려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6. 발해 멸망 후 대부분이 고려로 망명해 왔으며, 고려 역시 고구려와 발해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어모장군 14-09-29 03:52
   
1번 마지막 글 조선이나 부여 계통의 국가들 이름이 두 글자라는 원칙에 몇개 예외국가가 있죠.
1. 스스로 조선을 이었다는 거란의 요나라
2. 고려(신라)에서 나옸다는 여진족 금나라
3. 금나라를 이었다는 후금의 개명인 청나라
4. 흔히 발해라고 알고 있는 진(震)나라
요, 금, 청이야 현재 논란이 있으니 제외하고
진나라 경우 대진국 태조 대조영은 국명을 발해라 한 적 없습니다.
스스로가 지은 국명은 진(震) 1자 입니다.
그외에 외교문서에는 고려라 표기 했습니다.
발해라는 명칭은 원래 지역명칭인데
당나라 측전무후가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 渤海郡王 忽汗州都督) 이라
책봉을 하면서 발해라 불러준 것 입니다.
진나라에서 스스로 쓴게 아니죠.
우리 조상은 발해라 하지 안았는데
후손은 발해로 배우고 있으니 이것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고쳐야 할 것 입니다.
          
숲속의신화 14-09-29 20:08
   
상당한 역사 지식 넘 감사합니다.
찌짐이 14-09-28 18:17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은 수정하세요
브리츠 14-09-28 18:18
   
고대사의 자료는 많지도 않고 중간에 나오거나 해석차이가 있죠
그래도 중국사임에 유리한 사료보다 고구려사임에 유리한 사료가 확실히 훨씬 더 많다는것은 부정 못하죠
상격융천부의 건축 설계가 당시 대국의 건축물을 참조한건 부정 못하지만
성의 축성 방법이나 성안의 도시계획은 고구려의식이죠 특히 출토에서 나온 유물도 고구려식이고요
토막 14-09-28 19:01
   
발해가 말갈족의 역사라서 중국 역사라고 한다면.
중국 역사중 말갈족의 역사를 아닌건 다 빼면 됩니다.
그럼 중국 역사중 뭐가 남을까요.
북창 14-09-28 19:06
   
말도 안되는 개소리라 하세요. 고구려가 700년을 이어 내려왔는데 그 땅 그 주민 그대로 멸망한지 30년만에 나라가 세워졌는데...우리 역사가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일제 35년 핍박 받다가 들어선 우리나라는 그럼 조선의 후예가 아닌 일제의 후예입니까?
나와나 14-09-28 19:07
   
총장(摠章) 원년(문무왕 8년, 668) 영공(英公) 서적(徐勣)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깨뜨리고 안동도독부를 두었습니다. 의봉(儀鳳) 3년(678)에 이르러 그 사람들을 하남과 농우(隴右) 지방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서로 모여 북으로 태백산(太白山) 아래에 기대어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하였습니다.


總章元年, 命英公 李勣破高勾麗, 置安東都督府. 至儀鳳三年, 徙其人於河南·隴右, 高勾麗殘孽類聚, 北依太白山下, 國號爲渤海. 

<상태사시중장(上太師侍中狀), 최치원(崔致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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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최치원은 고구려 유민이 발해를 세웠다고 말하고 있는 데...
나와나 14-09-28 19:17
   
고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계승하였다.

復高麗之舊居 有扶餘之遺俗

<속일본기(續日本紀)>,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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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공식 외교문서에 지 입으로 고려와 부여를 계승했다고 말했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있나...
임진강 14-09-28 19:18
   
닉값하네. 웃기는 짜장
     
짜장백숙 14-09-28 22:19
   
저 글은 펌글입니다. 제가 출처도 적었는데;;

혹시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나와나 14-09-28 19:19
   
그리고 유취국사에 나온 기록의 허구성은 이미 동아게에서 굿잡스님이 반박하신 바 있죠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4852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C%A0%EC%B7%A8%EA%B5%AD%EC%82%AC&sop=or
하린 14-09-28 19:20
   
애초에 발해국왕의 국서에... "고(구)려 국왕" 이라고 자기들이 직접 썼는데요...
저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죠...
질질이 14-09-28 19:21
   
에휴 ~~ 이래서 역사교육이 필요하나 봅니다.
회도남 14-09-28 19:21
   
말갈족도 사실상 예맥족과의 뿌리가 다르지 않는데 그리고 거란족이면 모를까 말갈족이면 고구려의 수하에 수백년을 있어왔는데 말갈족의 나라라고 우겯도 우리나라의역사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와나 14-09-28 19:33
   
3년 가을 9월에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범하였다.왕은 정예군을 이끌고 재빨리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적군 중에 살아 돌아간 자가 열 사람 중에 한두 명이었다.

三年秋九月 靺鞨 侵北境王帥勁兵急擊大敗之賊生還者十一二

<삼국사기(三國史記), 온조왕, BC.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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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온조왕 치하의 백제가 말갈과 붙는 기록이 보이는 데요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말갈은 한강 상류에 위치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이 백제와의 세력 다툼에 패하고 북상한 것이죠

말갈은 한반도에 살던 우리 민족의 한 지파였습니다
nathan 14-09-28 19:3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athan 14-09-28 19:35
   
ㅉㅉ
kuijin 14-09-28 19:37
   
개소리...아니...못 배운 소리 좀 하지마시길.....
Gemini 14-09-28 20:17
   
중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거네요.
역사라는건 입장에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고 나라가 힘이 있으면 그걸 뒤집을수도 있음.
그게바로 짜장들의 역사공정.
북창 14-09-28 20:24
   
글 쓰신분이...펌 글이라고 마지막에 두줄 달랑 써놔서인지...본인 글로 오해하게 되네요 ㅋㅋ
개소리라 다들 초반 조금 읽다가 스크롤 내리게 되는걸 생각 안하신듯...
아니면 그걸 의도하신 건지...
꿀잼 14-09-28 20:39
   
발해의 말갈족은 중국인? 말 같은 소리 하세요.
중국에서 말갈족이란 말 자체가 폄하하는 의미로 말갈족이라 부른겁니다.
당연히 말갈족 스스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요.
중국인이 자기자신을 낮춰 부르겠습니까?
금주 14-09-28 21:02
   
고구려 역사도 짱개역사라고 우기는게 짱개들이니;;; 어찌 생각하면 역사교육이 필요한건 일본도 그렇지만 중국이 제일 필요한듯;;; 완전 한반도역사를 지네들한테 편입시키려고하고있음
Ciel 14-09-28 21:04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보면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 라고 밝힌 바 있고,
문왕도 일본에게 국서를 보낼 때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고 칭하며 천손(고구려 역대 임금들이 해모수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천손을 자처했죠)임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피지배층, 즉 백성의 주 구성원이 말갈족이었으니 발해의 역사가 말갈족이라는 주장 역시 고대사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식한 소리입니다. 지금과 같은 철저한 민족개념이 없었기도 하거니와 고대사에서 계승 여부를
따질 때는 문화, 사회, 정치 등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떤 민족의 것을 승계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발해는 지배층이 고구려인이었고 문화, 사회, 정치 등에 있어서 고구려의 전통과 사회 시스템을 계승했습니다.
당나라의 제도나 문물을 수용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도 주체적으로 변용해서 수용했지,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3성 6부제를 수용함에 있어서도 6부의 명칭과 기능을 발해의 실정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한 것을 들 수 있겠군요.
게다가 예랍시고 든 위만 조선의 경우도 위만이 고조선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귀화, 다시 말해 고조선의 기존
지배계층에 편입된 것이지요. 더군다나 위만세력의 경우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 조선의 복색을 하고 있었고
상투를 트는 등 고조선의 습속을 따랐다는 점에서 연나라 지역에 살던 고조선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보는 견해도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장안성을 본 뜬 것을 가지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온돌 장치, 와당, 고구려 양식으로
만든 불상, 굴식 돌방무덤의 모줄임 구조 등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부분이 훨씬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되묻고 싶네요.


저따위 글을 쓴 인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인이라면 국사교육도 받지 못한 무식한 인간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매국노로밖에 안보이는군요. 중국인이라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저런 헛소리를
하는 것일텐데 중국의 논리가 허점투성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구요.
성운지암 14-09-28 22:12
   
글 게시 한 분이  열받아서 퍼 오시고 반박좀 해달라 하는데, 글쓴이를 욕하시는 성질 급한 분들이 좀 계시군요.
웅구리 14-09-28 22:16
   
중국의 근처에 있으면 이리저리 엮어서 중국사라고 한다면 한국일본몽고베트남 모두 중국 역사가 되는 논리인데... 적당히 엮어야지... 그냥 보기에는 지금 국경을 기준으로 일어난 역사를 모두 자기 역사로 주장하는 역지에 불과함.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 25사중 반은 중국한족의 식민지 역사인데 그걸 받아 들이겠냐
발해혈통 14-09-28 22:19
   
발해 대조영 할아버지 후손입니다. 발해 멸망후 태자 대광현 할아버지가 발해 황족과 유민들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하였고 지금도 후손들은 할아버지의 나라 발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씨에서 태씨로 바뀌어 1만여명의 후손들이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사 역사왜곡을 할때마다 우리 태씨 종친들은 어이가 없으며 억울한 심정입니다. 전에 KBS대하드라마를 촬영할때도 영순태씨(저는 협계태씨)의 족보를 참고하여 촬영하였다고 하네요. 지금 후손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ㅠㅠ
아사이베리 14-09-28 23:05
   
당나라의 건축방식과 유사하다고  당나라 지방정권이라고 하다니~최소 이 원글 작성한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건 확실하네요. 당나라의 장안 기본 구조와 유사한 건 발해 상경성 뿐만이 아닙니다. 일본 헤이죠쿄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신라 금성도 영향을 받았죠. 이건 그저 당시 장안이 국제 도시이고 문화적 집결지였기 때문이죠.  교류가 가장 융성한 시대였기에 동아시아사 각국에 영향을 준 것일 뿐이지, 지방정권이었다는 근거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일본도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겠군요..... ㅎㅎ 또 발해는 주변 말갈 부족들에게 복속을 강요했습니다 (말갈의 나라였으면 그랬을리가있나요?ㅎㅎ발해 안에서 말갈족은 철저히 피지배층이었죠). 당나라와 대등함을 과시하려고 독자연호도 사용했었고요.
고프다 14-09-29 01:36
   
고구려 별종이면 그걸로 끝인거지

당나라 별종도 아닌데 무슨 중국 역사?
번개총알 14-09-29 13:35
   
당나라도 중국역사고, 당나라와 끊임없이 싸운 발해도 중국역사고? 어이가 없을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