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각선종석보 복사본의 세로줄에 판심(版心)이 없다. 옛 책에서 책장의 가운데를 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접히는 가운데 부분으로 제목과 페이지(‘엽’이라 함) 숫자 등이 표시된다. 그런데 이 복사본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까만 세로선만 그어져 있다. 위작이라는 증거다.
2. 원각선종석보가 세종대왕 당대의 책이라면 당연히 ‘卷第一’(권제1) 또는 ‘卷一’(권1)이라고 쓰여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식 어법인 ‘第一卷’(제1권)으로 표기돼있다. ‘용비어천가’에는 ‘卷第一’, 신미대사 등이 교정한 ‘능엄경언해’에도 ‘卷第一’(97장 뒷면)로 돼있다.
3. 서체의 시대도 맞지 않다. ‘正統(정통) 3년’은 1438년으로 훈민정음 창제연도인 1443년(정통8)보다 8년이 아닌 5년이 앞선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 나타나는 훈민정음 최초의 서체는 모음에 둥근 점인 속칭 ‘아래 아(ㆍ)’가 쓰였다. 그러다가 필기의 편의를 위해 1447년에 간행된 용비어천가에서는 ‘ㆍ’를 제외하고는 둥근 점이 모두 짧은 선으로 변했다. 1459년(세조5)의 ‘월인석보’에서는 둥근 점조차 변형된 고딕체가 됐다. 따라서 1459년의 나중 서체가 1438년(정통3)에 쓰여 있는 원각선종석보, 그것도 복사본이 진품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 ‘목슴’은 ‘목숨’의 오기다. 세종대왕 때부터 현재까지 우리말에서 ‘목숨’의 바른 표기는 줄곧 ‘목숨’이었다.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법화경, 아미타경언해 모두 ‘목숨’으로 기록하고 있다.
5. ‘주소셔’(give)의 ‘주’자 표기도 잘못돼 있다. 모음 부분에서 짧은 세로선으로 그어져야 할 부분이 원각선종석보 내 다른 글자들과는 달리 ‘ㆍ’자로 잘못 표기됐다. 위작자가 정신이 없었음을 드러낸다.
6. 첫줄 마지막 글자 ‘夭’의 독음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줄 건너 다음 칸에 쓰여 있다. 첫 번째 ‘夭’의 다음 글자에는 그 독음과 전혀 상관없는 ‘애’가 적혀 있고, 바로 이어서 두 번째 ‘夭’자가 나타난다. 읽는 이들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끔 편집이 난잡하다. ‘夭閼’(요알)이란 말은 ‘꺾다’ 또는 ‘일찍 죽다’라는 뜻인데, 이 복사본에는 ‘방울로 떨어지다’라는 뜻의 옛말 ‘처디다’(처딜씨라)가 기록돼 있다. 파탄이 여럿이다.
7-8. ‘化’자 밑에 독음인 ‘화’자가 없다. 또한 ‘良’자 밑에도 꼭지 있는 동그라미(ㆁ)의 독음인 ‘량’자가 보이지 않는다. 원각선종석보 복사본의 설명문 속 모든 한자들은 1448년 편찬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따르고 있는데, 다른 한자들과 달리 ‘化’와 ‘良’자 밑에 독음이 없다. 위작을 하는 과정에서 빠뜨린 탈자들로 보인다.
9. ‘習’자 밑에 세종대왕 당시의 표기음인 ‘씹’(이때의 ㅆ은 된소리가 아니라 긴소리)이 적혀있지만, 입성임을 나타내는 글자 왼쪽의 ‘점 하나’가 없다. 이 또한 위작 과정에서 저질러진 실수로, 다른 입성 글자들(閼, 毒, 惡, 覺)에는 모두 ‘한 점’의 입성 표시가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