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21-02-03 08:53
하버드 램지어 교수 논문 분석 (피꺼솟 주의..)
 글쓴이 : akmara
조회 : 1,940  


램지어 교수의 주장

1) "매춘부" (논문에 sex-slave 라는 표현이 아닌 prostitute 즉 매춘부 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더군요.) 들은 게임이론적인 논리에 기반해 집창촌 업주들과 계약을 했고, 그들은 이미 업주들이 계약을 위반할 위험을 감안하여 높은 선불 지급을 요구했다 (높은 선불 지급을 요구했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들이 일반 공업 노동이 아닌 성매매 행위임을 알고도 계약서에 동의한 숫자가 꽤 많았다고 은근히 주장하는것 같습니다.)

==> 논문 뒷부분에 

"Korean police records counted 247 Japanese and 2,720 Korean recruiters. To be sure,these men and women (and they included both men and women)recruited workers for factories as well as brothels (Nihon, 1994:51; Yamashita, 2006: 675). But throughout the prewar decades,newspapers reported recruiter fraud related to the sex industry.Back in 1918, the Japanese language daily in Seoul (Keijo nippo,1918; Senda, 1973: 89) complained of ̈a massive increase in the number of cases where a delinquent entices a woman to Seoul and,after playing all sorts of tricks on her, sells her off to one of the ’dubi-ous restaurants.’ ̈In the late 1930s, Korean newspapers reported a ring of 11 recruiters who attracted over 50 young women into pros-titution (Toa, 1937)." (Ramseyer, 2020)

"한국 경찰의 기록에 따르면 집창촌 모집자직에 종사하는 일본인은 247명이었고, 한국인 모집자는 2720명이었다. 이 남/여 모집자들은 공장직 노동자들과 집창촌을 두 곳을 위한 노동자들을 모두 모집했는데, 전쟁전에 이중 굉장히 많은 모집자들이 성 산업관련 사기에 관여된것으로 보고됐다. 1918년에 특히 서울로 여자들을 불러낸 후 각종 트릭 등을 동원해 '의심쩍은'레스토랑으로 여자들을 팔아 넘긴 케이스가 많이 보고됐다. 1930 후반 11명의 모집자들이 50명 이상의 소녀들을 성매매로 끌어들인 사건을 한국 신문사들이 보고했다." 

"Note, however, what this problem was not. It was not that the government – either the Korean or the Japanese government– forced women into prostitution. It was not that the Japanese army worked with fraudulent recruiters. It was not even that recruiters focused on the army’s comfort stations. Instead, the problem involved domestic Korean recruiters who had been tricking young women into working at brothels for decades."

"하지만, 주목할 점은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매춘으로 여성들을 끌어들였다는 점이 아니다 . 일본 군대가 협잡꾼들과 협업했다는 것도 아니다. 모집자들이 군대의 comfort stations에 집중했다는 것도 아니다. 주목할점은, 국내 한국인 모집자들이 수십년간 어린 소녀들을 집창촌에 보냈다는 사실이다"


2) 만약 "매춘부"들이 강제로 업주들에 의해 감금당하거나 불합리한 계약 위반으로 묶여있었던 것이라면 30세까지 고용된 숫자가 일정해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감소하는 추세가 확실하다  ( 논문 읽으면서 이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30세가 되면 "접객" 능력이 떨어지니 시장논리에 따라서 빠져나가겠지만 강압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고용된 숫자가 각 업소별로 일정할 것이라고 가정. 그러나 나이가 증가함에 따라 피고용인 수가 줄어들었으니, 강압적인 요소가 없었을것이다라고 주장)
==============================================
A) 고증학적 문제점
논문 읽으면서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게, 이런 종류의 논문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어서 위와 같은 내용을 주장하려면 굉장히 많은 주석이 각 문장마다 많이 달려야합니다.. 근데 정말 하버드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필요한 곳에 사료 인용을 제대로 안합니다...

3척동자도 알만한 사항.. 

B) 
1) 아니 진짜 화나는게, 전시 상황에서 외국에 노동하러 가는 리스크가 있는데 (굉장히 많은 소녀들이 "노동"이라는 단어에 속아서 갔다고 하죠.)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계약서에 높은 선불 지급 요건을 안답니까.. 그리고 외국에 노동하러 가는 소녀들이 부유한 가정에서 게임이론 같은 것을 알만큼 고등 교육을 받았겠습니까? 진짜 상아탑에 앉아서 방구석 철학자 같은 사람이 논문을 쓰니 원..

2) 이것도 진짜 말이 안되는게 당시 강한 유교 신념을 가진 국가에서 온 소녀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던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라는 개념만큼은 확실할 소녀가, 미쳤다고 임금이 높다고 해서 타지에, 그것도 전시 상황에 집창촌에 계속 있고 싶겠습니까? 진짜 너무 어의없는 논문이어서 한번 읽어봤는데 화만 나네요..

3) "일본인은 247명이었고, 한국인 모집자는 2720명이었다." 사실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배때 친일파 앞잡이들이 일본인보다 더 잔혹했다는 소리도 많죠.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들의 성 노예화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 "주목할 문제점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이게 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일이고 일본군에 제도적으로 위안부가 설치됐다는 사실 자체가 군(일본 정부)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셈인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밧데리 21-02-03 09:07
   
21세기 니뽕국은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데려온, 외국인에게도 불리한계약, 임금 삭감 밥먹듯이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20세기초 식민지배중엔 사람에게도 공정한 계약관계 같은게 존재 했다고 생각하나?
mymiky 21-02-03 09:26
   
일단 그 교수는 일뽕맛에 들린 사람이고, 자길 교수까지 시켜준 일본을 위해서
일본측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기 이름 내걸고 은혜 갚기 한 것이지

저 교수 자체가 전공이 역사학도 아닙니다ㅡ 이게 제일 웃긴거 ㅋㅋㅋ

저 사람 전문이  일본 회사 경영 법 입니다

ㅡ 일본은  공창제가  전국시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나라고
그 시절부터 국가가 공인한 유곽에 업자들끼고 매춘업을 사업화 한 나라임

근대기엔 외국에까지 매춘부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근대화에 종잣돈을
마련한 나라라는걸 알아야 함

일본은 그러고 오래 살았기 때문에ㅡ 자기들은 그런 문화가 배경에 있으니

위안부 제도라는게  그리 희안한 일도 아니고 잘못되었단 인식 자체를 못함

일본인들도  한국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워함

에도시대 다루는 컨텐츠에 요시와라  유곽 같은 이야기 엄청 나옴

성노예라는거 자체가 일본문화에서는 좀 자연스러운 것임
자기들은 그게 흠이 안됨;;;

가난한 집에 딸은 유곽에 부모가 팔고,, 딸은 몸팔아 빚갚고
매독같은 성병걸려 앓다 죽으면  그걸 효녀라 칭송하는게 일본문화예요

각종 미화질 엄청 합니다

자기들이 그리 살았기 때문에ㅡ 남들도 그리 사는줄 착각함;;;;
     
밑져야본전 21-02-03 10:41
   
저 교수 자체가 전공이 역사학도 아닙니다ㅡ 이게 제일 웃긴거 ㅋㅋㅋ

저 사람 전문이  일본 회사 경영 법 입니다

// 이 내용을 알고나니까 어째 더 졸렬하게 느껴지네요.
mymiky 21-02-03 09:43
   
일본 특유의 유곽제를  군대문화에 합쳤고

처음엔 자국의 일본매춘부를  보내다ㅡ 성병이 심하고,  일본군의 점령지가 넓어지면서  수요가 증가하자

일본국내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역 여자들까지  데려가기 시작하는데

조선여자의 경우  젊고 성병 위험도 없고 식민지라 만만했기도 해서
그랬던거고

또,  점령지마다 그곳에 여자들을 약탈,징발해서 위안소에 충당하기도 했음
mymiky 21-02-03 09:54
   
조선의 경우 총독부가 관여한건 팩트로 확인된거고

총독부가 지령을 내리면 각 도에 명령이 하달되고

각 지역 일본군 헌병과 마을 면장이나 학교에 교장들이

애들한테 ㅡ  일본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거나 취업알선이나

일본학교에 유학 보내주겠다거나 달콤한 말로 꼬셔서  보내는 일이 비일비지

당시에는 정신대라 해서 여성 징발령이 있어서

일본 군수공장으로 가는것도 있었는데 공장간다하고

가보니까 정작 위안소였다는 사례도 많음

아베는 계속 강제성을 부인하지만
밧줄로 꽁꽁 묶여가는 것만이 강제적인게 아님

엄연히  말로 꼬셔가는 것도 다 유인 ,납치행위로 인정됨
     
akmara 21-02-03 09:59
   
옳은 말씀입니다.
중국인 21-02-03 10:14
   
https://youtu.be/BmyU2N_9yoY

베네수엘라의 현 서민여성들 상황인데... 그때 한국상황이 현 베네수엘라보다 좋았을리 만무하고, 포주(sex trafficker)가 한국인이었다 는게 저 교수의 발췌내용인듯 한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거라고 봄...  지금처럼 여건이 좋은 상황에서도 몇몇 한국여성들 현해탄을 넘어, 황해, 메콩강까지 넘어 자기발로 들어가는 세상인데 말이죠. 물론 한국인들 입장에선 모두가 유인되었고 납치 되었다고 믿는것도 이해가 가고, 또한 그런쪽으로 가는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건 맞습니다.
     
mymiky 21-02-03 10:19
   
그 포주를 한극인들은 친일파라고 하죠

실제로  친일파  중에  총독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간 실무자 역활들

그리고 이득을 받아 챙기는 사람들  있었고ㅡ 그런자들을 친일파라고 해요

일본인은 진왜/ 국내 친일파를 토왜라 부르는 이유

근데ㅡ 한국인 포주가 문제의 핵심은 아님

한국인 포주도 결국엔, 당시  일제가 만든 시스템 속에 있는거
          
중국인 21-02-03 10:21
   
그럼 지금도 열심히 sex trafficking을 하며 한국여성들을 일본, 미국, 호주, 심지어 중국과 태국에 실어 나르는 포주분들은 모두가 토왜 국내 친일파들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아, 지금은 안되겠군요. 우한코로나 덕분에 이런 친일스런 행동들이 사라지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군요)
          
mymiky 21-02-03 10:28
   
그리고 뜬금없이 베네수엘라랑 비교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당시 조선의 관념으론ㅡ 해외매춘이 돈이 된다는 개념은 없었음

그건  지극히 일본적인 개념임 ㅡ  일본은  실제로  외국에 자국여자들을 많이 팔아넘겨본 경험이 많이 있었음  그 돈으로 무기도 사고 총도사고 화약도 사고 했던 나라임

조선? 가난한 하층민 여자들이 매춘을 하더라도 몰래 1:1로 했지
중간업자 끼고 하는건 없음

특히  외국에 나가 몸판다는 개념도 없었고  심지어 외국인과 간통은
조선법에 사형임

기본적으로 조선과 일본은 성문화가 많이 다른 나라임
               
mymiky 21-02-03 10:31
   
일제시대때는 조선이 망한지 얼마 안된 시점임

구세대들이 많이 생존해있고 관습적으로 여전히 유교가 남아 있던 시대임

여자 순결이 중요했던 때

지금이랑 비교하면 곤란함

지금은 여자도 혼전에 남자도 사귀고  동침도하고 자연스럽지만

솔직히 우리 부모님 세대만해도 부인이 처녀가 아니면 이혼당했음
                    
mymiky 21-02-03 10:36
   
혼전임신하면 부모님들 뒷목잡고 졸도함

현대 한국인들은 서구문화를 접하고 시대가 바뀌어서 동거도 하고 하는거지

옛날에는 꿈도 못 꿀일이죠

게다가  태국  메콩강을 건너는게 뭔 뜻인지 모르겠네요;;

한국 매춘부들이  해외매춘 하러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 같은데?

태국부자를 만나면 모를까?  뭔 한국여자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남아가서
돈번다고 하는지??

아마 한국 위조여권 들고 다니는 중국 매춘부랑 헷갈리신듯??
                         
중국인 21-02-03 10:58
   
한국 위조여권 들고 다니는 중국 매춘부랑 헷갈리신듯...

아뇨, 한국인 여성 맞습니다.  북한출신이든 조선족이든 그건 차후 밝혀봐야할 문제지만, 일단 Korean Prostitute 는 맞음.
               
중국인 21-02-03 10:50
   
딱히 조선의 정조관념이 깨끗하다고 말할순 없는게...

"조선 초부터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기생이 시침(侍寢)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에 따르면 평안도 의주에서는 청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에서 기생이 정재를 추었으며, 이러한 연회는 서울까지 가는 동안 거치는 여섯 고을에서도 마찬가지로 베풀어졌다고 하였다."

"인조 초에 청나라 사신이 노골적으로 수청 기생을 요구하기 시작하여 한때 큰 폐단이 되었는데, 이때 연로(沿路)에서는 관기로써 충당하였고, 서울에서는 의녀와 사창(私娼)으로써 충당한 바 있었다"

"청나라 사신이 연로의 각 고을에 수청 기생을 요 구하였을 때 기생들이 죽음으로 항거한 바 있었고, 용강의 기생 한 명은 목을 매어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하였다."

그동안의 조선은 상국(그러니까 자신을 속국으로 삼은 나라)에 여자를 알아서 받치는 요상한 문화아닌 관행이 있었던걸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들어서 계급체계가 무너지고 상업적인 사고방식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냥 양반이니까 천민들의 여성들을 겁탈해도 되고, 중국인이니까 약소국 조선의 여성들을 성욕구의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의식이 조선시대때 팽배해 있었던걸로 보입니다. 이게 일제시대를 거치며 위안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이는데, 앞서 말했듯 국익적인 측면에선 일본에 강하게 어필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은 듭니다. 꽁씹을 인정 안하는 나라들에겐 (안아픈것도 아프다고 과장해서라도) 좀 더 강하게 나가 보상을 더 타내야 맞는거죠.
                    
mymiky 21-02-03 10:57
   
저기요

궁금해서 그러는데ㅡ 혹시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

그 책 읽고 오셨어요? ㅋㅋㅋ 그 사람의 주장과 비슷해서요

기생은 원래 조선이  공인한 국가 공무원 입니다

직업적으로 연회하고 접대하고 그런거 하는

사신들은 국가로썬 손님들이죠 외교관들이니

중국이나 간혹 일본사신이 올때 기생들이  접대함

근데 위안부랑 뭔 상관이 있는지??
                         
mymiky 21-02-03 11:00
   
저도 이영훈 ㅡ 어차피 한국에선 역사학자도 아니고

걍 관심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일본에선 ㅡ 우익들이 귀여워해주죠 ㅋㅋ

이영훈이 기생과 위안부랑 연결시키는 논리를 펼치면서

일본 잘못이 아니거든요!!!  주장하는건 알겠는데

이 사람 주장은 걍 한국에선  상대도 안 합니다

택도 아닌 말만 해서요
                         
중국인 21-02-03 11:01
   
일패기생: 오직 임금 면전에만 노래와 춤을 하는 기생이다. 매춘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개인에 따라 유부녀도 존재했다.
이패기생: 관기와 민기로 나뉘며 관기는 문무백관을 상대하며 민기는 일반 양반을 상대하며 노래와 춤을 춘다. 원칙적으로는 매춘을 하지 않지만 음지에서 매춘(내지는 성접대)을 한다.
삼패기생: 일반 평민을 상대하는 기생으로 노래와 춤, 매춘을 병행한다.

기생이 국가공무원이란 얘긴 첨 듣습니다. 집창촌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고나와 합법화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저도 가지고 있지만, 국가공무원 씩이나... 추대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음.
                         
mymiky 21-02-03 11:04
   
일본도 과거에 외국 사신오면

게이샤들이  춤도추고 샤미센 연주도 하고
대화도 이끌면서  접대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거랑 비슷한거죠

조선에서도
사신들 상대하는 기생들은 기생들 중에서도 최고급들 입니다

원래ㅡ 기생은 일패기생만 기생이라고 함

이패 삼패는 그냥 지들이 몸값 올릴려고 기생이라 자칭하는거고

일패들은 관기라서 ㅡ 국가에 속한 공무원 신분 맞음

나라에서 월급 주는 기생들임
                         
mymiky 21-02-03 11:09
   
시진핑 마누라 팽려원

이 여자가 가수출신인데 ㅡ

중국은 공산당 소속 가무단 출신이 따로 있음

중국 퍼스트 레이디는 거기 가수출신임

직접 비교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조선시대 일패 기생과 비슷합니다ㅡ 국가 소속 가무단?  그런 것임

인기는 지금 연예인들과 비슷함
                         
중국인 21-02-03 11:13
   
중국에 그런 최고급 기생들을 갖다 받치는게 정상적이었다고 생각 드신다면, 그런 계급제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 시기가 바로 일본의 조선 병합, 한일병합 시기였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뒤바뀐것 뿐이었죠. 이래서 약소국에 사는 국가는 매우 힘든것이고, 특히 젊은 여성들이 제일 힘든겁니다. 지금 베네수엘라 상황을 보시면 그때 조선의 상황을 어렴풋 알수 있는것이죠.
                         
mymiky 21-02-03 11:17
   
신분제 사회는 동서양 다 있었던거고

일제시대?? 

관노비  해방령ㅡ조선 순조 1800년에 폐지
노비세습 폐지 ㅡ 조선 고종 1890년
신분제도 폐지ㅡ조선 고종 1895년

뭐가 일제에 의해 신분이 폐지되었다는건지요??

오히려 일제는 조선 화족들 공작 후작 백작 이런 작위내리고 

그랬는데??
                         
mymiky 21-02-03 11:20
   
일제시대땐

일본인들이 1등 국민
친일 조선인들이 2등 국민

일반 조선인들 3등 국민 이랬어요 ㅋㅋㅋㅋ

관습적으로  신분제 아예 없어지진 않음

왕공족 / 조선 화족들은  잘 먹고 잘삼

친일파도 콩고물 받아먹고  잘 먹고 잘 살았고

조선의 특권계층들 약 30% 안에 속한 사람들은  잘 삼

나머지  등꼴 빠짐

그게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
                         
중국인 21-02-03 11:21
   
"1909년 일제에 의해 새 '민적법'의 시행으로 누구나 모두다 법적으로 성과 본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성이 없던 사람들이 새 성을 갖게 되자 호적담당 관리나 경찰이 임의로 성을 지어주기도 하고, 노비의 경우는 종전 주인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다. 그 결과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쉬운 인구가 많은 흔한 성씨로 편입되면서, 특정 성씨에 인구가 치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누구든 왕족인 전주이씨, 김해김씨등 성씨를 가질수 있는 시기가 이때였죠. 그래서, 진짜 왕족들은 누구인지 상놈집안인지 양반집안인지... 그냥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시기였습니다. 말그대로 한국판 노예해방이 된것이죠.
                         
mymiky 21-02-03 11:30
   
노비가 전주이씨라 칭한다고 누가 왕족이라 하나요;;
왕실족보가 따로 있는데;;;

김해김씨라고 한다고 왕족이라니 ㅋㅋㅋ
종가집이나 집성촌 출신 아니면 그냥 의미없음

그냥 조선후기 족보위조 활발했을때도 돈만  많이주면
족보에 친척인양 끼워 넣어주기는 계속 있어왔고

그리 따지면 업적은 김일성이 더 크죠

625로 모든 신분제도 개박살 내었으니
                         
중국인 21-02-03 11:30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년 8월 20일 ~ 1692년 2월 12일)은 네델란드인으로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해 그 후 1666년까지 13년 동안 주로 전남지역에 살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썼고, 이는 서구 사회의 이상한 나라 풍경으로 널리 소개됐다. “조선남자는 이미 아이를 몇 낳은 아내라도 내보내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있다. 처첩을 몇이라도 떳떳하게 거느릴 수 있다. 자기 여인을 여종처럼 취급하다 버리면 아이들까지 내버린다. 양반들은 토지와 노예에 의해 수입을 얻는다. 개중에는 2,000~3,000명의 노예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 한 여인이 남편을 죽였다. 관아에서는 이 여인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한길 가에다가 어깨까지 파묻었다. 그 여자 옆에는 나무 톱을 놓아두었는데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그 톱으로 한 번씩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목을 잘라야 한다."

"윌리엄 그리피스 (William Elliot Griffis 1843-1928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여자들은 항상 규방에 감금되다시피 되며, 바깥주인의 허락 없이는 거리에 못나간다. 이러한 율법은 너무도 준엄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아버지가 그의 딸을 죽였고,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

"프랑스 선교사 ‘샤를 들레’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굶주린 주민들은 중국의 밀수업자들에게 자신들의 어린 딸들을 한사람 당 쌀 한말에 팔았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양반들은 아주 비열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결혼을 한 후 3일 동안은 부인과 산다. 그런 후에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다. 자기 첩들하고만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가엾은 본부인에게는 정절을 강요한다. 만약 그녀가 도망가거나 정절을 버리면 관리에게 데리고 간다. 그러면 관리는 그녀를 매질한 후 자기 종에게 줘버린다. 양반의 부인들은 평소 혼자서 집 밖으로 외출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에휴, 찾으면 찾을수록 한국인으로써 자존감 극 낮아짐. ㅠ 조선시대 1910년쯤은... 이 중인과 상민(평민) 비율이 65%, 노비가 35%, 양반의 비율은 5% 혹은 10%이하(물론 이 비율도 늘어난 것이고) 그 전 양반 비율은 1.9프로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전은 1%도 안될듯 싶음. 이 1% 남짓의 양반들의 성씨가 뒤집혀 뒤바뀐 시기가 좋든 싫든 일제강점기 였던건 확실함... 이때문에 일본 원숭이들에게 넙쭉 절하고 싶지도 않음... 주고 받은게 있기에.
                         
mymiky 21-02-03 11:37
   
성씨가 뒤집힌게 문제가 아님

일제시대때도  여전히 잘 사는 상류층과

못 사는 백성들은  양분되었기에

패악질 부리던 양반들이 일본군으로 체인지 했을뿐

최상류층 양반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삼

기본적으로 지주들은 향촌사회 땅을 기반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음

일제에 협력하는  부류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뭔 일제타령임 ㅋㅋㅋ

이분은 창씨개명은 일본인과 동급이였다고 착각할듯;;;;
                         
mymiky 21-02-03 11:39
   
조선인 다나카가

일본인 다나카와 같지 않습니다;;;

성씨 같다고 갑작히 평민이 양반되고 왕족 됨?

아이고 ㅋㅋㅋㅋ 지 혼자 망상을 쳐하고 자빠졌네
                         
중국인 21-02-03 11:40
   
최소한 (자기가 날고 기고 뛰어도 어쩔수 없이) 신분제의 벽에서 좌절할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조국을 배반 하든 뭘 하든 본인이 부지런하면 성공할수 있고 또 돈을 모아 신분상승이 가능한 사회가 만들어진것은 사실이죠. 이건 부정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토왜가 싫어도 말이죠.
                         
mymiky 21-02-03 11:42
   
그러니까 그런 세상을 고종이 대한제국때 만들었잖아요? ㅋㅋㅋ

신분제 폐지해

과거제도 폐지해

상업 허용해줘

심지어 여학교도 세워

다 조선이 이전부터 하던 일인데??

왜 뜬금없이 일제가 한거처럼 이야기 하는지??
                         
mymiky 21-02-03 11:44
   
일제는 조선보다도 먼저 근대화를 시작하고도

자국의 부라쿠민이나 천민들 차별의식도 못 버렸는데

뭔 일제가 쌩판 남인 외국인인 조선인까지 신경을 쓴다고 ㅋㅋㅋㅋ

참 어이가 없네;;;;  니나 잘하지
                         
중국인 21-02-03 11:47
   
고종을 조선왕조 최악의 친일파 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던데... 참 놀랍습니다. 어쩔땐 추앙하고 또 어쩔땐 미친* 소리를 하고 (i.e. 민비 aka 명성황후)
                         
mymiky 21-02-03 11:50
   
뭔 친일파 왕이요? ㅋㅋㅋ 누가요?

역사시간에 잠이나 잤던 놈들이겠죠

고종이나 민비나 개화파예요

동도서기론의 입장에서 서구문물 수입에는 찬성하나

왕권은 지키겠다는 입장이였을뿐
                         
중국인 21-02-03 11:51
   
고종 민비에 대해선... 할말하않...
                         
mymiky 21-02-03 11:54
   
어떻게든 조선이 식민지되는 꼴을 막아보고자 노력했던 고종을

뭔 친일파 ㅡㅡ;;;

헛소리 작렬하네 ㅋㅋㅋㅋ

결과적으로 고종이 실패한 왕으로 남아버린건

그의 운명이겠지만

그렇다고 왜곡은 하지 말아야죠!
                         
중국인 21-02-03 12:01
   
아직도 이 땅에는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못했다. 과거 친일을 논할 때 한일합방에 앞장선 소위 박제순, 이완용 등 매국에 앞장선 을사오적을 혹독히 비난했다. 친일 인명사전 발표 후 친일의 범위는 대폭 확대됐다. 백선엽이 등장하고 ‘토착왜구’가 회자되는 오늘의 현실이다. 을사조약 전야의 고종의 무능과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있다. 한말 고종의 일본정부의 뇌물 수뢰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말의 고종의 친일 행적을 찬찬히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 왕의 책무를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한일합방 전후의 고종의 정세 판단 능력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임란 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을 막지 못한 선조보다 못한 그의 처신이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에 이어 러일전쟁 초 일본군의 창덕궁 진입까지 허락했다. 일본의 노일 전쟁의 승리는 미일간의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이어졌다. 고종은 이 밀약대로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분할 통치하는 사실도 몰랐다. 고종은 당시 일본과 미국이 조선을 보호한다고 믿었으니 정말 무능의 극치다. 고종은 당시 밀약의 추진자 미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의 조선 방문 시 극진히 대접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고종이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 일주일 전 일본 공사로부터 뇌물 2만원을 받았다. 현재 우리 돈 25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수뢰 명목은 대사 이토오 히로부미 접대비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친일 관료 박제순 1만5천원, 이완용은 1만원, 관료들도 친일 행적에 따라 3천원에서 5천원 씩 받았다. 일본 왕실의 주한영사 기록 24권(1905년 12월11일)에 기록된 내용이다. 고종은 그해 3월 31일 일본 특사로부터 당시 경부선 철도 지분과 함께 뇌물 30만 엔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1904년 당시 영국 외무부 자료) 모두가 충격적인 사실이다. 당시 왕실의 뜻있는 관료들은 고종의 친일적 행위를 반대했다. 당시 의정 참정 한규설은 고종의 을사조약 체결을 적극 반대하다 파면됐다. 고종은 매국노 박제순을 그의 자리에 앉혔다. 당시 의정부 참찬 이상설은 박제순의 의정 서리 임명에 울분을 참지 못해 연해주 망명길을 택하였다. 원로대신 조병세는 왕에게 읍소하다 파직되고 민영환 역시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했다. 고종은 갑신개혁의 김옥균의 시신까지 찾아 응징했다. 매국관료들은 승승장구하고 이를 상소한 충신들이 파직되는 상황에서 나라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는 을사오적은 비난하면서도 이들을 비호한 고종만은 비판하지 않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에 대한 동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해외의 애국지사들은 멀리 망명지까지 고종을 모셔오기로 결심했다. 해외 연해주에서도 상해 임정에서도 고종의 구출 작전까지 세웠다. 일본 총독부의 엄격한 감시로 모두 좌절됐다.

고종 장례 일에는 한성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성통곡하는 행렬이 이어져 3·1 만세 시위로 변했다. 고종의 친일 행적을 모르는 순진한 민초들의 눈물이었다. 무정한 역사는 숨겨진 비밀만은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출처 :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59468

짤막한 기사 하나 올림. 아직도 고종과 민비를 빠는 사람이 있다는것이 놀라울뿐.
                         
mymiky 21-02-03 12:10
   
아이고 ㅋㅋㅋ

고종이 미국ㅡ 일본이 밀약하는걸 어찌 압니까?

지들끼리 몰래한걸??  고종이 귀신도 아니고

제3국에서 벌어진 일을 어찌알수 있나요?  그 시절에 인터넷이 있어요?

물론 뇌물은 고종이 드신건 사실임

근데 당시 관습상 조정에 받치는 조공품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임
                         
mymiky 21-02-03 12:19
   
고종은 전통 유교식 교육을 받고 성장한

전근대적인 봉건 왕정제의 한계가 있는 인물인건 맞으나

그렇다고 친일파는 아님

시대를 좀 잘못 태어나 고생한거지

워낙 시대가 혼란했고  일생동안  다양한 일을 겪었는데

왕으로써 여러 선택들을 했지만  결과에 따라

무능하다 욕을 먹기도

어떤 부분에선 잘했다고 하는 등 다양한 면이 있는거

난세에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인물임
                         
중국인 21-02-03 12:25
   
열심히 고종과 민비 빠십시오. 보니까, 중국에 최고급 기생 창녀 (님의 기생의 의미대로면 양반집 규수 딸래미들중 선별하고 선별하여 늙은 중국인 짱꼴라의 액받이로) 대령하는것 문제 없고, 고종이 이완용보다 더 많은 뇌물을 받아 쳐 먹었다는 것도 당시 조선이 썪었으니 이상없단 식으로 말하시는데... 선생같은 분들의 뇌의식을 들여다 보면 그분들이 자주 쓰시는 '반일종족주의'란 단어도 결국 중국을 사대하는 '의식' 에서부터 시작된듯도 보입니다. 모든 퍼즐이 짜맞춰지는 느낌입니다 ㅋ 좋은 하루 되시길.
                         
mymiky 21-02-03 12:30
   
기생들은 일본사신이 와도 접대를 한다니까요 ㅋㅋㅋ

고종과 이완용의 차이는ㅡ 이완용은 자기 재산 불리는데 뇌물받아 사용함
자기랑 아들이랑 손자ㅡ 자기들이 잘 먹고 잘삼

고종은  그걸로 근대화에 씀 ㅡ  인프라 구축에  왕실이 투자

나중에 고종의 거액이 독립군 자금으로도 흘러감

그래서 고종은 망국의 군주라 무능하다 욕받는 동시에

친일파란 소리는 틀린 말임

시대를 잘타고 났으면 나름 괜찮은 왕으로 남을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쇠퇴하는 왕조말기에 왕이되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임
                         
중국인 21-02-03 12:33
   
도대체 중국에 사대질 하는걸 논하니, 느닷없는 일본 원숭이들과 비교질은 뭔지. 기생은 공무원이라고 하신분이 뉘신지. 외국사신들이 오기만 하면 이 고급(?) 공뭔들을 맞겨 기꺼이 액받이가 되었다면 그 사회가 굉장히 썪어 있었다는 얘긴데... 왕이 (당시 천문학적인) 뇌물을 받는것도 정당화 되고... 그런 사회라면 어차피 망할거 빨리 망한게 낫지 않았을지... 그리고,  이완용 근대화 란 키워드로 검색좀 해 보시길... 님 주장대로라면 이완용도 그다지 비판의 대상이 되선 안됨 ㅉㅉㅉ
                         
mymiky 21-02-03 12:37
   
이완용의 젊은시절 개화파로써 활동한건 알겠는데

친일과 함께 빛을 바랬죠;;; 

인물의 인생 전체를 보고 총합을 결정하니까

젊은시절의 이완용과 노년시절 이완용은 평가가 달라질수 밖에요

기회주의자로써 재능이 있었던 인물이죠

덧붙여)  일본도 게이샤들이 외국 사신들 오면 접대하고 그랬는데요?

심지어 사신도 아니고 네델란드 상인들한테도 게이샤들 옆에 붙여준게 일본임

나가사키 데지마 모름? 

액받이  하는 썪은 나라 = 일본?  지들  과거는 잊어버렸나?

니나 잘하세요~~
                    
밑져야본전 21-02-03 11:12
   
여기서 정조관념을 따지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아니라, 감성적 영역에서 합리화를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보통 뉴라이트 애들이 이런식으로 물타기를 많이 함.
                         
중국인 21-02-03 11:17
   
그런식으로 인식되었으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의 보수에도 할말 많은 사람입니다. 뉴라이트? 와 같은 인식이라면 꼭 한번 그분들과 토론해보고싶습니다... 얼마나 그 선생들이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롱기누스탕 21-02-03 11:55
   
중국인 21-02-03 11:17
  광고글 신고 
그런식으로 인식되었으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의 보수에도 할말 많은 사람입니다. 뉴라이트? 와 같은 인식이라면 꼭 한번 그분들과 토론해보고싶습니다... 얼마나 그 선생들이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그냥 거울이구먼 뭐
     
neutr 21-02-03 10:23
   
애초에 자발적, 유인, 강제 모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정확한 수치가 불명확할 뿐.

저 논문의 문제는 위안부를 모집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개입이 없었다는 것임. 그냥 민간 모집자들과 자발적 매춘부들이 군을 따라다닌 것으로 보는 것인데 거기에 동의하심? 참고로 저 논문은 군의 개입 증거를 반박한 것도 아님.
          
중국인 21-02-03 10:34
   
당연히 일본 정부 차원의 개입이 없었을리가 없었겠죠. 지금도 공무원체계가 답답할정도의 문서위주인데 그 당시엔 더 심했을테죠... 일본은 군의 보상 차원(?)에서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렸을테고... 이를 본 (돈 냄새 맡은) 일본인 포주들은 자국내에서 일본인여성을 구해봤지만, 생각만큼 돈이 안된다고 판단 그당시 일제강점기(속국)이던 조선이나 다른 나라들에서 위안부를 물색했을지도... 보니까 위안부중 네덜란드인 백인들까지 포함될정도로 다국적이란걸 봐도... 뭔가 당시 포주의 구색에 맞출려는 의도가 강하단 느낌... 어쨌든 일본 정부측의 오류로 몰고 가는게 국익적으로도 상식적으로 옳은 판단이 맞습니다. 다만, 여자들이 자발적인가 아닌가는 논외라는 얘기.
               
mymiky 21-02-03 10:39
   
자발 / 비자발은  문제가 안 됩니다

핵심은 일본정부의 개입이 있었냐? 에 있는거예요

일본은 계속  개인일탈ㅡ 민간업자의 잘못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저 논문도 마찬가지임

일본 우익들은 절대 일본정권의 개입은  부정함

그게 문제

자발ㅡ 비자발은  물타기
               
neutr 21-02-03 10:43
   
모두가 자발적이라면 자발적이지 않은 모집 사례가 없어야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조선 내가 아니라 외부로 나갈 때도 강제성이 없었는 지도 별개의 문제고.

물론 그걸 지금 와서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증언이나 정황, 상식 수준의 판단은 싸그리 무시하고 실증주의랍시고 오직 통계나 수치로만 들여다 보면서 문제가 없었다고 하거나 저 교수처럼 거의 뇌피셜에 가까운 연구를 하는 것을 정답으로 여기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네요. 물론 님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요.

게다가 이 문제는 그냥 먼 과거의 역사 문제가 아니라
실제 재판까지 열리는 생존자들의 법적 다툼이기도 하니까요.
               
수퍼밀가루 21-02-03 12:26
   
뭔가 잘못 알고 계시네요...

그 네덜란드 여성들을 제네바 협정 위반으로 포로로 잡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든 짓은
그야말로 전쟁범죄니까..네덜란드 정부가 이 논문에 직접 반박하게 만들어야죠.

참고로 네덜란드 다큐 작가분이 이 사실에 대해 책으로 내신답니다..
그리고 그 책은 이미 영문으로 나와 있고, 아마도 이번 논문 수작질은...

이 책에 대한 반박형 논문으로 일종의 물타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피해 국가가 너무 많아서 우리만 상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생강 21-02-03 16:51
   
근거없는 가정을 하면서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본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이신지? 일본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걸로 몰고가는게 일본한테 유리하겠죠?
방랑기사 21-02-03 10:37
   
일본군 상대로 몸파는 일을 한다고 알면 자발적으로 갈 사람 얼마나 있을가요?
     
mymiky 21-02-03 10:48
   
자발적으로 해서 모집이 저조하니까

결국엔 사기쳐서 데려가는거죠 ㅋㅋㅋㅋ
     
밑져야본전 21-02-03 10:53
   
거의 대부분이 감언이설 그리고 강제연행이나 납치.
어느 상식적인 여성이 전선에서 뛰노는 냄새나는 왜놈들 밑에 깔리고 싶어하겠습니까
쥐로군 21-02-03 11:19
   
무슨소리하세요.

이사람 정식직함이 미쓰비시 대학 법학교수에요.

거기서 끝 아닙니까??

ps. 자기소개에 일본서 자라고 일본서 학교다녔다고했어요. 하버드 홈피에 쓰여있음.
초록냥이 21-02-03 14:32
   
옜날과 지금은 가치관이 상당히 다름.
인신매매는 1900년대 초 상당한 사회문제였음.
당시 만연한 인신매매를 비판한 사설이 있는데 욕하는 대상이 인신매매업자들 그리고 딸을 팔아넘기는 부모들.
한번은 여성들 수십명을 매춘업소에 팔아넘긴 인간 하나가 잡혔는데
잡힌 이유가 딸을 팔아넘긴 부모들이 돈을 못받았다며 그 인간을 사기죄로 고발하는 바람에..
가난은 사람을 추악하게 만듬.
이렇게 자기의사가 아님에도 강요당한 경우도 많았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없을수가 없음.
옜날 농촌 여성들 일과는 새벽부터 밤까지 중노동이 쉬는 날없이 반복되는 생활임.
옜날 농촌 여성들은 30대에 이가 빠지고 머리가 희게 쐴 정도로.
여자직업이 얼마 없는 시대에 이런 생활에서 도망치려면 선택할수 있는 직업은 매춘 외에는 거의 없었음.
     
mymiky 21-02-03 14:37
   
그게 구한말 일본이 들여온 일본식 유곽문화예요
1900년 초에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시작된  문화임
도굴꾼과 유곽  ㅡ 일본이 조선에  뿌린  신종 악덕 업종

농사일이 힘들어서 도망을 쳤는데, 매춘은 뭐 쉬운줄 암?
유곽이란데 가면,  빠져 나오지도 못 합니다

빚에 빚이 쌓이는 구조 ㅡ 거기서 할매로 늙어죽기 전에
몇년안에 성병 걸려 죽는게 더 빠름
          
mymiky 21-02-03 14:53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곽제를 국가가  기업형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세금도 걷어가고ㅡ 영주들이 그걸로 정치자금으로도 쓰고

총도 사고 그랬던 나라입니다

자국민들한테도  인권유린이 기가 막히던 나라임

그런게 수도 도쿄부터 곳곳에 각 지역마다 있었던게 일본임

일본은 각 지역마다 다이묘들이 통치함 ㅡ한 쿠니마다 그 지역 유곽이 있는거

자기들이 그러고 쭉ㅡ 살아서

자기들한테는  그게 당연한 문화예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위안부 문제에 별로 공감을 못 합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거든요 ㅡ 일본 문화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