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때였는데. 현종이던가? 서희의 지략으로 요새를 삼고 그 요새를 뚫고 무리하게 들어오던 거란족이 수도 앞에 섰을때. 맨날 죽지 않기 위해 도망다디던 고려 현종이 직접 군을 이끌로 백설들과 함게 거란에 맞아 싸우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연이은 주행과 노동으로 말들이 지쳐 마지막 공격을 하지 못하고 도망가자가 감강찬 장군한테 개터지게 맞고 돌아간 역사.. 이게 제가 봣을때 우리시대 가장 멋진 전쟁전이 아니었나 싶네요.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장문휴는 732년(인안 13) 무왕의 명령을 받아 수군을 이끌고 산둥 반도에 있는 당의 국제무역항 등주를 공격해, 당의 동방정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발해 무왕의 대외팽창에 위협을 느낀 동북만주의 흑수말갈이 발해와 우호관계를 단절하고 당과의 연결을 꾀하여 발해를 위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무왕은 흑수말갈의 정벌을 결정했으나 무왕의 동생 대문예가 발해와 당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흑수말갈의 정벌을 중지시키려다가 실패하고 당으로 망명했다.당에 대한 강경책으로 돌아선 발해는 수군을 동원하여 등주를 공격 초토화시켜버리고 육지로는 요서로 밀어버림.
흑수의 땅은 모두 발해에 복속되었다.
-발해고 무왕-
발해가 점차 강성함에 따라 흑수 역시 그 소속이 되었다.
-당회요 말갈-
'고려국왕대흠무언(高麗國王大欽茂言)'
≪속일본기(續日本紀)≫ 천평보우 3년 경오 (남북국시대 발해 문왕(文王) 대흠무가 왜국에 보낸 국서에)
이후 200년간 만주에 발해유민들의 나라가 있었는데
고려가 발해 유민을 제대로 통합하지 못해, 국내성, 상경용천부를 수복하지 못한 탓에
중국과 역사문제에서 크게 불리해졌습니다.
고조선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2천년 이상 한민족의 터전이던 만주땅을 다른 민족에게 넘겨주고나니 다시 회복하지 못했듯
한국이 지금 추세대로 외국인 대량이주를 통한 다민족국가 되면 북한과 이질감 심화로 통일 원동력 잃고 영구분단될 뿐 이니라,
몇 세대 뒤 중남미, 티베트, 내몽골처럼 소수 원주민 + 다수 이주민의 나라가 될 위험이 큽니다.
도리어 우리 고구려가 통제하고 있든 만주일대의 거친 북방전투민족 즉 거란의 요,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 및 몽골에 서토 한족 송나라는 본격적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수백년간 지배받게 되는 역사로 이어짐(우리 고구려는 태왕을 중심으로 4방 즉 동서남북을 지배하던 천하관의 도시문명은 이후 발해 5경 체재로 다시 요의 5경에 영향을 주면서 금이 요,송까지 멸망시키고 북경에 오늘날 국무총리격인 고구려계 장호의 지휘 아래 중도를 건설하면서 본격 서토 지배.
이후 이 강북의 기반에 몽골의 쿠빌라이가 칸에 등극하면서 남송까지 멸망시켜버림.
근세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이런 동북삼성 일대의 여진족 대다수를 휘하 부하로 거닐고 있든 고려군벌 가문으로 이를 기반으로 근세 조선을 창업(후대 청제국을 세우는 서토 정복왕조 만주족으로 개칭된 누루하치의 선조 역시 이성계의 휘하 부하였음)
누르하치의 선조는 누구입니까.
『建州左衛(건주좌위)의 開祖(개조) 몽거테무르가 바로 누르하치의 직계조상입니다. 아하추는 建州本衛(건주본위)의 개조가 되었지요. 태조 이성계는 조선왕조 창업 후 여진족의 대소 추장들에게 만호, 천호의 직첩을 새로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창업 초기의 조선왕조는 두만강 하류 孔州(공주 )에서 상류 甲山에 이르기까지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태조는 여진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즉 우리 고조선 고구려의 오랜 정주 도시문명과 기마문화를 공유한 멀티형 반농반목 동방문명권과 전형적 전투북방유목 문화, 그리고 전형적 서토 내륙 황하의 하한족 농경문화권으로 크게 나뉘는데
고대쨉이야 근대 이전까지 동북아에서 별영향력도 없든 미개 지역이니 딱히 논할 필요 없고
앞서도 언급한 이들 3개의 문화권은 이른 시기부터 중앙집권적 수십만의 대군에다 탁월한 기병운용등 전투력도 막강하면서 본격적 철기시대의 도래속에 수많은 난립 국가들과 전투민족들간에 피튀기는 통폐합과 세개의 문명권간의 거대 슈퍼파워게임을 거듭하면서 살아 남아 지금에 이른 국가들이군요.
유럽도 이런 서진한 동북아의 흉노쪽 고작 수천기병에 털려 신의 재앙 어쩌고 하며 로마제국도 붕괴되기 시작했고
유럽을 제패한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로마를 상회하든 도시규모 체재를 우리 동방문명권만 봐도 삼국시대 이미 고구려 3경 신라 서라벌 해양대국 백제 사비성(열도 아스카 건설)등에 이후 남북국시대에 발해 5경과 신라 서라벌을 수도로한 5소경등 역시 로마 대도시를 상회하군요.
그에 반해 영국은 로마제국이 식민지배하기 위해 건설한 요새인 론디니움 현 런던도 근대 산업혁명시기에 가서야 겨우 고대에 만든 도시 크기를 채우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파리도
아래 링크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우리쪽 중세 고려의 도시규모가 거대한지 알 수 있을 것이군요(프랑스는 파리 외곽만 벗어나도 중세에는 이들이 프랑스민 이라는 자각이 희박)
중세 고려도 4경의 거대체재로 조선도 한양과 평양등 5개의 대도시 체재로.
고대는 지역별 제국들이 존재하니 그렇다고 쳐도 지금은 그나마 남아 있는게 신생 미국 외에는 짱국 인도 정도.
근대 대영제국 어쩌고 하든 영국이지만 고대 영국 정도의 수준이 동북아에 있었다면 고대에 이런 이른 중앙집권화와 슈퍼파워게임에 쓸려나가서 이미 오늘날 국명도 없었을 거군요.(쨉이야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세우고 수천년 선진문화를 전해주고 방패막이 해준 덕에 섬에서 커서 그나마 살아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