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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4 17:57
덕혜옹주와 티파니
 글쓴이 : 고지호
조회 : 2,029  

덕혜옹주를 봤다.
잘 만든 상업신파역사팩션이다. 관객은 눈물 흘렸고 몇몇은 자기 블로그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슬로건을 올린다. 그리고 티파니가 일장기와 욱일기를 올린 것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되새김하기도 한다.

전가의 보도, 역사 잊은 민족, 그래서 이 칼날로 어린 연예인 하나 쳐죽이는 것은 당연 한일, 왜냐? 전례를 남기면 안되니까.

같은 날, 대통령은 광복절을 건국절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했고, 일본과는 위안부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그런데 왜 그 말은 미국적의 어린 연예인에게만 해당 될까?

민비(이 이름을 멸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사공부를 하기 바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명성황후라고 온 갖 말도 안되는 역사 왜곡을 자행 할 때 그들은 어디 있었을까?

고종이라는 작자가 민비와 함께 매관매직을 자행하고 나라의 이권을 곶감 빼먹 듯 빼먹으면서 주권을 팔아먹는 짓거리를 했는데도 "그림자 살인"등 대중매체에서 자애할 뿐 아니라 독립을 도모한 현군으로 묘사되곤 했을 때 그들은 어디 있었을까? 

덕혜옹주는 다시 역사왜곡을 시행한다. 이번에는 고종뿐 아니라 왕실 대부분의 자손들이 독립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영친왕과 대부분의 왕손들은 일본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지냈건만)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역사 왜곡에 대한 발언은 시끄럽지 않다.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민비라는 작자가 얼마나 나쁜 년인지, 그 여자를 미화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얼마나 크나 큰 수치인지, 고종이 얼마나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이었는지, 조선왕실 대부분이 사실은 친일파나 다름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바로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왜곡하는 세력에게는 단호한 비판을 퍼부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민족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니.

그런데 이 단호한 역사 의식은 엉뚱한 곳에 가서 꽂히곤 한다. 멋 모르고 들고 올린 욱일문양의 도꾜 아이콘, 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도 못하는 한 골프 선수의 취미로 그린 욱일 문양 등. 누군가는 말한다. 이들이 무지한 것이 서양의 기본 시각인데 너그러워야 하지 않냐? 그러면 외친다. 무지도 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래, 무지도 죄다. 대중매체에서 이토록 역사왜곡을 하고, 그걸 일반화 시켜도 그게 왜곡인지 모르고 가만히 있는 무지, 그건 죄다.

그런데 그 잣대를 왜 엄한 곳에 들이 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라를 팔아먹다 시피 한 구한말 왕실, 민비일족, 그리고 일본에서 호위호식하던 영친왕........ 이들에 대한 이런 왜곡과 미화가 과연 재미교포의 욱일문양 사용보다 가벼운 죄일까? 그리고 이들에 대한 무지가 재미교포의 무지보다 덜 한 무지일까?

덕혜옹주를 보면서 떠 오른 단상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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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도아닌 16-08-24 18:03
   
잘 읽었습니다
내일을위해 16-08-24 18:07
   
고종이 매관매직?  민비의 오래비들이 전횡을 일삼은건 알겠는데 고종이 매관매직?  첨듣는군요.  난  역사를 바로 알자면서 조선의 멸망을 민비나 흥선군,  고종탓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됩니다.  조선의 멸망은 정조이후로  가속화된것이죠.  되려 흥선군은 세도가들의 전횡으로부터 나라를 바로잡고자했고  고종또한 다 망해가는중에도 이준열사파견등 어떻게하든 독립을 유지하려했지 척신들과 같이 나라 말아먹지는 않은거로 압니다.
     
고지호 16-08-24 18:23
   
서상욱(徐相郁)은 민영환(閔泳煥)의 외조부이다. 민영환은 오래 전부터 고종에게 말하여 군수자리 하나라도 주기를 원하니 고종이 말하기를, "자네 외조부가 아직도 군수 한 자리 못했느냐?"하였다. 조금 지나서 또 그 말을 고하자 고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잊었었군. 그럼 내가 곧 글을 내리지." 하였다. 이에 광양군수에 제수하니 민영환은 집에 돌아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오늘 상감께서 외조부님을 군수로 임명했으니 천은에 가히 감동하였다."고 하자 그 모친이 웃으며 말하기를, "네가 이처럼 어리석고 무디고서도 어찌 척리(戚里)라 할 수 있느냐? 상감이 어찌 일찍이 한 자리의 은제(恩除 : 은혜를 베풀어 벼슬자리를 내림)를 베풀어 너를 편애하셨겠느냐? 내가 벌써 5만 민(緡 : 꿰미)을 바쳤느니라."고 하였다.

                    - 매천 야록 -

민비일파 뿐 아니라 고종 역시 개인치부를 당연시 했고(하긴 왕이니 자신이 곧 종묘사직이자 국가라고 생각했을 테니 지금과 같은 윤리적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헤이그밀사 사건 역시 자신의 자리에 대한 보존이 더 중요한 문제였을 거라고 짐작 됩니다.
          
객관자 16-08-24 23:25
   
매천야록이 무슨 왕조실록도 아니고 본인이 그 옆에서 들은것도 아닐진대 그 얘기들이 절대 사실이라고 믿고 접근하는 게 좀 이상합니다.  말그대로 야록으로서 시중에 떠도는 얘기들을 모아둔것에 불과해요.  요즘 용어로 번역하면 '찌라시'입니다.

찌라시에도 진실은 있을수 있겟습니다만 거짓이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찌라시의 '카더라'에 기초해서 특정인물을 정치적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요.
               
magic 16-08-26 18:15
   
맞습니다. 매천야록이 정사를 적은 책이 아닌데 맹신한다면, 선데이서울, 레이디경향도 정사입니다.
사드후작 16-08-24 18:48
   
썰전에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었죠..

http://tvcast.naver.com/v/1059731

대를 이은 한일관계 이면의 불편한 진실..

https://youtu.be/MFyg9NMV6_8
mymiky 16-08-24 18:58
   
덕혜옹주 제대로 봤나요? -.-

영화중에서, 독립운동은 하는 사람은 이우였을뿐..
물론, 이우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만.. 일단 주인공은 아니니 패스하고-

덕혜옹주랑 영친왕은 독립운동 안하는데요;;
상해 망명계획이 나오고, 결국 실패한 것으로 나올뿐입니다.
     
고지호 16-08-24 21:31
   
ㅎㅎ 물론 제대로 봤습니다.
조선 왕실의 분위기 - 고종은 분기탱천, 친일파를 누르고 독립을 꿈꾸다가 독살,
덕혜옹주 - 민중을 위하고 일본에서도 일본에 맞서 자국민위한 봉사 활동에 독립모임에 참석, 망명 기도
이우왕자 - 역사적 사료와 전혀 상관없이 독립운동에 주체적 참여 묘사
영친왕 - 의지박약하지만 망명을 시도하고 독립 후 조선왕실의 이익이라는 미래지향적 사고가 그 기반에 깔려있는 인물로 묘사

위 모든 묘사가 사실은 친일적인 생활을 하며 그 시기 세계유람을 다니던 영친왕일족에 대한  왜곡이 되겠죠.
객관자 16-08-24 23:22
   
개인적으로 덕혜옹주 영화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덕혜는 독립운동을 한적도 그에 관심을 가졌다는 근거도 없어요.  그냥 일본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얌전히 순응한게 전부입니다)

명성황후 얘기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감이 생기는 군요.  명성황후는 당시 대부분의 왕족들이 일본에 굴복하여 그들과의 분쟁을 피하려 할때 거의 유일하게 일본에 대항할 정치 외교적 수단을 준비햇던 인물입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일본에 의해 암살당한 유일한 인물이지요.

일본은 덕혜도 죽이지 않았고 고종도 죽이지 않았고 이우왕자도 죽이지 않았죠.  명성황후만 죽였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녀를 죽여야만 할만큼 강하게 일본에 저항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평소에는 아무리 사치해도 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에는 이에 맞서 싸워야하는 존재가 왕족이라고 했을 때 자신의 의무를 다한 인물이라는 거죠..
다른 왕족들은 평소 사치는 똑같이 하다가 정작 외적이 오자 굴복해버린 데 반해서 말입니다.

 조선말의 내정에서 명성황후가 실패했다는 얘기도 동감하기 어렵습니다. 황후는 내전회의에 참여하는 인물도 아니고  내정의 실패는 진짜로 본인과 무관해요.  그것은 고종이 책임져야할 몫이죠.

그렇지만 왕족들중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건 명성황후지요.  아이러니입니다.

저 역시도 이씨왕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만 그중에서 가장 나은 인물인 명성황후를 제일 먼저 비하하는이런 시각 식민사관의 영향이라고 의심 안하기 힘들군요.
     
국산아몬드 16-08-25 11:03
   
명성황후가 죽은 뒤 시작된 광무개혁로 조선은 급속한 근대화가 됩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작으로 일본에 의해 끝내 좌절되죠. 왜 민비가 죽은뒤 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민씨 일족에 의혼 부정비리가 그만큼 심각했단 겁니다. 부패만 없었다면 임오군란이 일어났을까요? 자기아들 세자로 만들려고 허수아비 청에 얼마나 굴종하고 뇌물바쳤는지. 외세의존의 전형이 민비입니다. 일본에 아부하다가 청으로 대상을 바꾸니. 일본이 죽었지 외세에 대항하다 죽은게 아닙니다. 외세에 빌붙다가 줄 잘못서서 죽은거예요
          
객관자 16-08-25 13:30
   
이는 궤변이군요.  일본의 명성황후 암살은 그 자체는 성공이었지만 국내 정치적 상황에서는 일본에의 역풍으로 이어졌습니다.  왕비를 죽인 적국의 뜻대로 갈수 없다는 조선 전체의 의지였지요.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여  생전 명성황후의 뜻이었던 러시아를 활용한 일본견제에 나섭니다.
1897년이 되면 러시아세력이 조선내에 진출하면서 일본입장에서는 조선을 마음대로 할수 없는 그런 상태가 열립니다.  러시아와 일본의 긴장상태가 열린거지요.

이 공간에  고종은 자주적 개혁 즉 광무개혁을 선포하고 일을 추진합니다.  일본과 러시아가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조선으로서는 몸의 운신폭이 커진거지요. 조선으로서는 마지막 기회였지요.  물론 일본의 조선 침략 의도가 그리 강해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단행하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개혁은 단명으로 끝납니다.

무슨 개뿔의 명성황후가 죽었기 때문에 광무개혁이 진행되요?  역사 날조 수준입니다.
               
libero 16-08-25 13:43
   
당신이 아는 얄팍한 지식과 다르면 다 궤변입니까?

민비가 자신의 할 책무를 다했다?

ㅋㅋㅋ ㅋ

진심으로 귀하의 무식한 역사관과 또 현실감에 웃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