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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14 00:42
오드리 헵번 부친이 나치출신이었나 보네요.
 글쓴이 : 어흥
조회 : 1,15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3/2014041300600.html


	‘서프라이즈’ 오드리 헵번, 봉사하며 산 이유 ‘나치 출신 아버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던 이유가 나치 출신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13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오드리 헵번의 생전 이야기가 공개됐다.

헵번은 1950년대 한 편의 영화를 캐스팅 받은 후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영화는 ‘안네의 일기’였다. 이 영화는 1958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한 영화로,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헵번이 캐스팅을 받은 역할은 모든 여배우들이 원하던 역이었다.

헵번이 이 역을 거절한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악몽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자란 헵번은 당시 나치 독일 세력의 확장과 함께 자신의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는 아픔을 겪었다. 헵번의 아버지 안소니 헵번은 나치에 적극 동조, 가족으로서의 입장보다 나치의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집을 나갔다. 헵번이 6살일 때의 일이었다.

당시 헵번은 나치세력에 의해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 끔찍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와의 소식은 완전히 끊어졌고 헵번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헵번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나치 출신인 아버지가 헵번의 인기에 악영향을 줄 것을 걱정한 어머니가 편지를 모두 숨기고 있었던 것. 아버지는 자신이 헵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영국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안네의 일기’ 역을 고사한 헵번은 1960년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헵번은 그의 죄를 대신해 남은 여생을 구호운동을 위해 봉사했다. 헵번은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 사망했던 헵번은 언론에서 클린턴보다 더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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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순간 광기에 휩싸여 참혹한 짓을 벌일 수도 있죠.
물론 그 기억은 영원히 머리에 남아 자신을 괴롭히고요.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해피엔딩이었길.. 바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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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기동대 14-04-14 00:44
   
사진상으로는 관계가 좋아보입니다
     
어흥 14-04-14 00:45
   
그렇네요..
긴양말 14-04-14 00:49
   
오히려 햅번이 유태인일꺼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냄비우동 14-04-14 00:54
   
역대 최고의 자연미인 1위의 주인공...
버킹검 14-04-14 00:55
   
헨리포드도 유태인 혐오해서 나치에 돈댓다는 얘기가 있음...^^;;
고프다 14-04-14 09:50
   
한편 731 부대의 간부였으며 전범 혐의로 6년간 복역한 놈의 딸이라는 의혹을 잔뜩 받고 있는

왜구섬 요코 가와시마라는 할망구는 '대나무 숲 저 멀리서(요꼬 이야기)'라는 개구라 공상소설을 실화라 우겨서 떼돈을 버는데...

참 종특이 다르니 삶이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는구나.
지해 14-04-14 11:46
   
왜넘을 어디다 비교를 하나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