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교육의 대가
이제 서서히 잊혀갑니다. 움직이지 마라, 가만히 있어야 살 수 있다, 이 거짓말에 대한 혹독한 대가
말입니다. 눈앞에 물이 차오르는 걸 보며 유리창을 긁었던 아이들, 발을 동동 구르며 끝내 자리를 지켰던 그 마지막 말입니다. 온 나라가 그토록
분노했지만, 참사 60일 가까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이제 일상을 원합니다. 대한민국 재난사의 한 획을 그은 세월호 참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잔혹합니다.
하지만, 성찰 없는 분노는 염치없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며 드러낸 건
대한민국의 밑바닥입니다. 적나라한 치부는 온데간데없고, 몇 명 구속시키고 마는 겉치레가 아이들에게 미안해 미치겠습니다. 이제야 묻습니다.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 얼토당토않은 거짓을 그대로 믿게 만든 건 누구인가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교육에 대한 적나라한 은유입니다.
우리 아이들, 어떻게 교육받아 왔나요. 멋 좀 부리겠다고 머리 좀 길러도, 좀 튀는 잠바를 입어도, 교복 좀 줄여 입어도, 모자를 써도, 모든
게 다 일탈입니다. 규정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신체까지 통제했습니다. 머리 좀 기르는 게 어떠냐고 따져 물으면 버릇없는 녀석이
됩니다. 선생님의 말은, 어른들의 말은 무조건 옳았습니다. 그 말을 의심하는 게 반항이라고 치부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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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출간된 독일 전문가 박성숙의 ‘독일 교육 이야기’는 세월호 이후 우리 교육에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20세기 초반, 독일은 주입식
국민 교육제도의 수출국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그 교육이 키운 건 전쟁과 인종 우월주의란 괴물이었습니다. 전후 독일
교육은 다시 시작했습니다. 경쟁은 필요 없다, 한 두 명의 뛰어난 사고보다 모두의 깊이 있는 사고를 원한다는 해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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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부러운 건 경쟁이 없는 교육만큼이나, 참사의 원인을 교육 때문이라고 과감히 인정하고 개조해나가는 시대정신과 그 출발점부터 고민하는
철학입니다.
참사 이후 우리 권력의 해법은 어땠나요.
수학여행 전면 중단과 안전 교육 강화입니다.
권력에게 되묻습니다.
수학여행을 중단하면 정말
참사가 예방될까요.
그건 참사 예방법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혹시 모를 참사에 대한 교육 당국의 책임 모면책 아닌가요.
안전교육은 또
어떻게 할 요량인가요.
침몰하는 배에 타면 가만히 있지 말고 무조건 나가서 물에 뛰어들라고 교육시킬 참인가요.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방식대로라면,
차는 차대로,
배는 배대로,
비행기는 비행기대로,
지진은 지진대로,
홍수는 홍수대로
아이들에게 매뉴얼을 보급해 암기시키고 시험까지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었습니다.
우리 교육이 천진난만한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영악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왜 그러냐고 따져 묻고, 의심하고, 비판하는 존재로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사육하고,
1점 단위로 서열을 매기는 우리 교육은 이런 아이를 키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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