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진 대피한다고 밖에서 찬바람 쑀더니 목감기도 걸렸네요.
하도 스트레스 받아서 이젠 화 낼 여력도 없음.
근데 이게 누구한테도 하소연 못할 천재지변이라 그냥 감수하고 있는데 젤 짜증나는 건 이런 소리임.
"이게 나라다. 이니 덕분에 든든합니다."
->우린 존나 고통스러워서 이게 나라냐고 하는데 어른들이 이 와중에도 정치랑 연관지어서 무조건 지지 표명하고 빠는 부류. 이게 나라다 드립을 칠 유쾌한 상황 아니라서 속 긁힘.
"학생의 안전을 고려한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
->차라리 포항 학생들의 형평성을 위한 결정이라고 하세요. 대부분의 수험생은 안전한데 전혀 안 와닿음. 여기 대구인데 시험장이며 건물이며 멀쩡합니다.
"아니 그럼 니들은 포항애들 생각도 안 하냐?"
->누가 안 한다나? 우린 머리로는 전부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함. 근데 가슴이 답답하고 허탈해서이러는 건데 누굴 문책하는 겁니까? 고3한테 응원하고 조심스럽게 대할 땐 언제고 이젠 막말하네요. 99년생의 피해는 자연 밖에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이런 말 말고 차라리 위로를 해주세요.
"1주일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세요. 주위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네 공부 안 한 사람만 그런겁니다. 잘하는 사람은 이미 한 달전에 기본공부 다 끝내놓고 컨디션 조절까지 해서 어제부로 모든게 종료였습니다. 공부를 덜한 나태한 이에게는 천금 같은 일주일이, 공부를 다한 성실한 이에게는 공부할 거리가 남아있지 않은 고통과 혼돈이 일주일이 주어지게 됐으니 참~ 공평합니다. 입시에서 공평성은 엄청 민감한 사안인 걸 알면서 지역형평만 고려하고 전국적 형평은 싹 제외합니까?
"어차피 상위권은 늘 치던대로 침. 호들갑 좀 떨지마라."
->99퍼의 확률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사람입니다. 그저 관망하다가 얼토당토않은 얕은 관찰로 얻어낸 결론이네요. 배변, 식사, 두통, 감기, 눈피로는 물론 여자들은 생리까지 조정하려 피임약 먹습니다. 잠 규칙적으로 자려고 수면유도제 먹거나 청심환 미리 사서 먹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 날 컨디션에 따라 독해력과 분석력이 달라지고, 집중이 흐트러져 놓친 한 문제에 대학이 갈리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1등급은 4퍼에 불과합니다. 몇 문제 틀려도 등급에 지장이 없는 중위권과 달리 상위권은 정말 문제 하나에 수시면접과 논술 최저기준이 걸리고, 표점 싸움으로 정시로 억지로 대학 갑니다. 수시로 붙는 건 널널한 일반고 얘기고 전국 무수한 자사고와 특목고의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정시파이터 신세입니다. 정시에 목숨 건 상위권 현역, 재수생과 장수생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없는 발언입니다.
"여기서 댓글 달고 글 쓸 시간에 정신 잡고 복습이나 해라."
->포털과 커뮤니티 하는게 나와 같은 처지의 이들과 공감하고 위안을 얻으려는 건데 염장에 불 지르는 유형. 공부는 복습도 이미 어제부로 끝나고 수능고사장 가서 볼 정리노트만 남음. 거의 하루종일 공부하는 고3인데 앞으로 168시간을 복습만 하라는 건 기가 찬 일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 전 4번이나 풀었던 기출을 또 다시 인쇄해서 돌려야 겠네요. 지금 이 시점은 절대 공부할 시기가 아니라 심신을 안정화할 시기입니다. 지금 공부하는 사람은 그 전 3년 동안 뭐하고 이제서야 무언가를 익힙니까? 기본실력은 확정되어 있고 이제부턴 멘탈 싸움입니다. 커뮤니티나 포털에 수험생 신경 건드리는 행위는 자제되어야 마땅합니다.
포항 애들 생각하라면서 공감능력 부족이니 요즘 세대 이기적이니 말들 하는데,
반대로 당사자 입장에서 다 큰 성인들이 고3 시절을 벌써 잊고 감정대입도 못 하는구나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