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오전 9시15분쯤 학생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제발 모두가 무사하길.” 마음속으로 외치며 급히 차를 몰았다. 순천 도심을 빠져나가는 교차로에서 과속 단속에 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 빨리 달려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몸에 밴 일이지만 더욱 마음이 급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누군가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그 자체도 슬픈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서 평생 들어내지 못하는 무거운
상처와 그리움을 남기게 된다.
현장에 가는 동안 ‘460여명 승선객 가운데 사망 1명’이라는 소식이 차 안 라디오에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을 넘게 달려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사망자가 둘뿐이었다. 하지만 어선을 타고 사고 현장 근처에
다녀온 어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항구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실종자가 300여명에 이른다는 소식에 팽목항은 그대로
주저앉은 듯했다.
이후 실종자 가족들 1000여명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 내려와 눈물바다를 이뤘다. 40여일
그곳에 있었다. 며칠 동안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하고 침과 눈물만을 삼키며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봤다. 일어날 힘도 없어 보였다.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의 사진만 바라보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며 나 역시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먹을 의욕도 잃어버린
그들을 바라보며 혼자 배를 채운다는 것이 미안했다. 늦은 밤 숙소에 들어오면 혼자 가끔씩 울었다.
정부는 사고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전격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일이 지나도록 세부적인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는 해경은
의욕 상실감에 빠져있다. 실종자 가족들만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실종자 수색이 더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없어진 이들에게 수색만
열심히 하라고 독려한들 누가 진정으로 하겠는가.
세월호 사고 52일째인 6일 팽목항의 여름 햇살은 따가웠다. 살랑이는 바닷바람과 긴
파도소리만이 마지막 남은 실종자 열네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온 국민이 실종자 가족의 슬픔을 같이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잊혀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의 비통함을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만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조국 교수 "세월호 참사 당일 기록들, 전면 공개돼야"
단원고 고 안주현군 어머니의 52일 "1000일이 지나더라도 세월호 진상 밝힐 것"
두달도안되었습니다...
잊어서는안됩니다..
잊으면..또다시 누군가가 또다른 세월호를 타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