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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03 21:48
우리나라의 군대 문제
 글쓴이 : 싱끌레어
조회 : 1,832  

한 줄 정리 : 권리 없는 의무 없고, 의무 없는 권리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음. 게다가 국가와 국민의 거래가 없이 의무만 지움.
 
군대는 국가와 국민 간의 거래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유럽을 석권할 수 있었던 건 국민 군대 덕분이었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선 자유와 평등사상이 확산됐다. 평민들도 자격을 갖춘 시민이 되고자 했다. 국가와 국민은 서로 거래를 했다. 국민은 국가가 동원하는 전쟁에 병사로 참전하는 대신 시민권을 보장받았다. 국가는 강력한 국군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봉건시대 왕이 거느렸던 용병 부대나 귀족의 사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규모 군사 조직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군대로 유럽을 정벌했다. 나폴레옹은 패배했지만 국민 군대는 남았다. 프랑스의 깃발 아래 적과 싸웠던 퇴역 군인들은 견고한 국가관을 가진 시민계급을 형성했다. 이때부터 프랑스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게 됐다. “비브라, 프랑세(위대한 프랑스)!”
 
모든 근대국가의 뿌리는 군대다. 대부분의 근대적 제도는 군사 제도를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근대화된 국가는 모두 비슷한 길을 거쳤다. 국가와 국민이 군대와 전쟁을 매개로 거래를 할 때 비로소 근대국가의 꼴이 갖춰진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군대에 간다. 국가는 군대를 다녀온 국민에게 국가 제도가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보상으로 제공한다. 수많은 퇴역 군인들이 시민사회로 흩어지면서 군사 제도가 정치와 경제, 사회 제도와 문화의 밑바탕이 된다. 덕분에 국가 전반에 군대 문화가 넘쳐나게 된다. 수직적이고 효율적이지만, 폭력적이고 불합리하다. 그것조차 근대성의 일부다.
 
20세기 중반에 형성된 국가들이라고 이 과정을 생략하진 못했다.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은 남녀를 모두 징병하는 국가다. 이스라엘도 국민과 거래를 했다. 이스라엘에선 직업 교육도 군대에서 이루어진다. 군대가 이스라엘 창조 경제의 산실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다. 남녀 모두가 징집 대상이라 사회적으로도 남녀평등이 당연시된다. 대신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이스라엘은 사실상 병영국가다. 텔아비브나 예루살렘 거리를 걷다 보면 젊은이들은 대부분 군인이다.
 
한국 군사 제도의 부조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역시 이스라엘처럼 20세기 중반에 건국한 대표적인 후발 국가다. 한국도 예외 없이 군대와 전쟁을 통해 형성됐다. 문제는 앞선 근대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선 국민과 국가가 서로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민에게 병역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퇴역 군인에 대한 혜택도 거의 없다. 2001년 10월 헌법재판소 판결로 군 가산점 제도도 폐지됐다. 사실 군 가산점제는 모순투성이 제도다. 나라를 지키면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논리다. 그나마도 공무원 채용 시험에 응시하지 않거나 사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군필자한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헌재 판결로 이득을 본 건 여성이 아니다. 국민의 병역에 대해 별다른 보상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국가다.
 
한국인들이 지닌 군대에 대한 정서적 반감은 이것 때문이다.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논리와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라는 인식이 충돌한다. 근대국가에서 군역은 시민권을 얻는 통과의례였다. 국가가 국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줬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에선 군 입대를 거부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군대에 가는 게 국민 개개인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상이 없기 때문에 의욕도 없다. 징병제와 에비군 제도 때문에 20대를 군대 문화에 젖어서 보내지만 아무도 군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국가의 방기와 국민의 무책임이 모두 군대를 거대한 자원 낭비로 만드는 셈이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0년 동안 군사 독재를 경험한 나라다. 두 차례의 군사쿠데타도 겪었다. 상명하복과 위계를 중시하며 효율성을 최우선시하는 권위적인 조직 구조와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는 모두 군사독재의 잔재로 여겨진다. 군사독재를 거치지 않았다면 한국이 병영국가화 되지 않았을 거란 뜻이다.
사실 한국 사회가 군대의 영향을 깊이 받은 건 군사독재 때문만은 아니다. 군사독재는 촉매제였을 뿐이다. 근대국가에는 근대화된 국민이 필요하다. 전근대적 국민을 근대화시키려면 개조가 필요하다. 군대가 그 역할을 맡아왔다. 일본의 근현대 사학자 요시다 유타카는 <일본의 군데>에서 일본 군대가 일본인의 시간과 신체와 언어를 개조해서 근대화시켰다고 정리했다. 1930년대 일본에선 시간을 지키며 조직 논리에 따르며 합리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산업화 세대들이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다. 영국에선 1850년대에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과 똑같은 일이 1960년대 한국에서 벌어졌다. 한국은 1950년대 대규모 내전을 겪으면서 군인의 숫자가 폭증했다. 덕분에 1950년대에는 대부분의 엘리트도 군대 조직에 속하게 됐다. 1960년 5·16 쿠데타는 1950년대 사회적 엘리트들이 대거 군대로 흡수됐던 필연적 결과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군대 조직이 사회 조직보다 효율적이었다. 독재 권력이 기대긴 했지만 3허 씨 같은 군 출신 장교들이 잠시나마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군대가 사회보다 아직은 효율적이어서였다.
 
군사독재에 대한 기억은 한국의 군사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어났던 한국 사회의 병영 국가화는 한국이란 국가의 근대화 과정이었다. 근대국가들 대부분이 근대화 초기에 어느 정도 선국 정치를 경험했다. 독재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군대는 근대적인 국민 개조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군대를 다녀온 시골 청년들이 마을 이장이 돼서 새마을운동을 이끌었다. 한국에서도 군 생활은 개인의 경제적 경쟁력에 보탬이 되던 때가 있었단 애기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회 조직의 효율성이 군대 조직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민간 조직은 분명 군대 조직을 기초로 만들어졌지만 군대 조직의 단점까지 보완했다. 효율성만 강조한 채 내부 모순을 억누르는 군대 문화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폭력을 통한 의견 통일은 늘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군대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사회에서도 배울 수 있고, 오히려 사회에서 더 잘 배울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이 기꺼이 군대에 갈 이유가 사라져버렸단 얘기다. 그런데도 한국은 기존의 군사 제도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외부의 위협과 애국 애족 같은 추상적 가치를 국민들한테 강요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과 국가의 계약을 통해 유지돼야 하는 군대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착취로 변질돼버렸다. 그 뿌리는 일본식 근대화에 있다. 일본은 근대적 군사 제도에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이데올로기 체제를 혼합했다. 국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대신 ‘황군’이라는 이념을 통해 국민으로 동원했다. 한국은 천황제 대산에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 국가 개념을 활용했다. 군역은 신성한 것이라고 반복 학습을 시켰다.
 
현실은 신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악순환이 벌어졌다. 군대 생활에 대한 피해의식은 국가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인들은 군대만 다녀오면 “위대한 프랑스!”를 외쳤다. 한국에선 군대만 다녀오면 “조국이 내게 무엇을 해줬다고”를 외친다. 군대가 근대적 국가관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보단 국가관을 훼손시키는 역효과만 낳은 셈이다. 현대사회가 됐는데도 여전히 전근대적인 이념으로 군사 제도를 유지해온 부작용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한국은 이전 시대가 남긴 군사 문화의 잔재를 털어내려고 애썼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사고를 통해 소통하고 타협하는 문화를 추구해왔다. 역시 앞선 근대국가들이 모두 거쳤던 과정이다. 군대는 국가 조직의 뿌리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가 많은 법이다. 현대 국가는 군대식 조직 문화의 모순을 제거하고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확산시키는데 성공할 때 완성된다.
 
성공적인 근대국가가 모두 성공적인 현대국가로 전환하지는 못한다. 일본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일본 역시 제1차 세계대전 퇴역 군인들이 전후 시민사회를 이루면서 효율적인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이 시민사회가 민주적 사고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절름발이 현대사회가 됐다. 일본사회는 여전히 상명하복과 예의만 중시하고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그 증거다.
 
한국 역시 불완전한 현대국가로 진화했다. 군사 문화의 잔재가 크기도 했지만 군부독재에 대한 증오가 군대 조직의 장점까지 무리하게 지워버리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게 사회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고 위계를 무시해서 질서가 흔들렷다. 각종 이해관계와 요구를 저마다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다 보니 균형을 잃었다. 이후 20년 동안 한국은 문민 시대의 부조리를 겪어내야 했다. 한국은 보상 없이 군사 조직을 유지하려고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군대에 안다녀오면 사회생활에 수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다 보니 이 불이익을 피하려는 꼼수가 등장했다.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됐다. 덕분에 대선 때 병역 관련 이슈가 국가관이나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이나 부패와 관련된 이슈로 떠오르는 게 한국 정치의 특징이 됐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새삼 <진짜 사나이>나 <푸른 거탑> 같은 군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진저리쳤던 군사 문화를 한국 사회가 재수용하고 있단 뜻이다. 금융권에선 신입 사원들을 해병대나 특공대의 군사 훈련 캠프에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2년 한 해 동안 국방부가 운영하는 병영 캠프에 입소한 청소년은 74만 명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는 현대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파열도 일어났다. 얼마 전 사설 해병대 캠프에선 고등학생들이 무리한 입수 훈련을 하다가 사망했다. 한국 군사 제도의 병폐가 빚어낸 참극이다. ‘하라면 하라’는 식의 상명하복의 군사 문화가 문제가 아니다. 군사 훈련의 가장 큰 경쟁력은 역설적으로 최고 두뇌의 엘리트조차 결정적인 순간엔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평상시엔 수평적 소통이 가능하지만 유사시엔 수직적 조직으로 일사불란한 결단이 가능해진다. 진짜 병폐는 그런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적절한 보상이 없어서 발생한다.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는 걸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가 알기 때문에 조직을 유지하려면 오직 폭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수십 년째 그렇게 군대 조직을 운영하다보니 폭력성과 불합리성이 군대의 일부가 돼버렸다. 사설 해병대 캠프의 참극은 군대가 아니라 국가에 책임이 있다.
 
한국도 이제 현대국가다. 현대국가는 근대적 군사 조직의 효율성과 민주적 시민 조직의 개방성이라는 두 날개로 난다. 국가의 발전은 군사 국가에서 그 수직적 모순을 어떻게 해소하면서 그 효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한국 사회의 한계는 군사독재의 악몽과 잔재에 얽혀 있는 데다 보상 없이 국민 군대를 유지하려다가 군 자체를 사회가 제대로 껴안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군복무 자체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착취인 이상 국민 역시 군대를 옹호할 이유가 없다. <진짜 사나이> 같은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에 대해 많은 언론과 대중이 한사코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흔히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사회가 군대의 확장판이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조직은 사냥과 전쟁을 위한 군사 조직이었다. 포식자는 무리를 지어 사냥할 때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명령 체계를 짠다. 그만큼 군 조직은 원초적이다. 없앤다고 없어지는 문화가 아니다. 없앨 수 없다면 수용해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게 하려면 그만큼 보상해야 한다. 공짜 군대는 없다. 그래야 한국도 진짜 진짜 사나이들의 나라가 된다.
 
국방 영화들
미국에서도 1980년대부터 갑자기 <탑건>이나 <사관과 신사>같이 군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대거 흥행하기 시작했다. <람보> 같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디어 헌터>나 <지옥의 묵시록>이나 <플래툰>처럼 전쟁이나 군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대중 영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군에 대한 대중 문화적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가 다시 병역 국가화된 건 아니다. 대중이 군을 재수용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현상이다. 군대 문화는 남녀 차이도 아니다. 여자 농구단이나 배구단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대적 특질을 공유한다. 군사 조직은 악한 게 아니다. 다를 뿐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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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발 14-04-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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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14-04-03 21:56
   
현 대한민국

지도자/상류층 - 미필 (정치인,대기업 오너가족, 연예인 등등)

일반국민 - 군필 (당신의 앞집, 옆집, 뒷집 사람들)
probie 14-04-03 21:58
   
교도소 범죄자 한끼식사만도 못한 짬밥먹으면서
감성에만 치우치면서 의무를 강요하는 시대좀 종말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