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의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조선은 어떻했는지 알수있는 내용입니다.
발췌해왔습니다.
높임말이 아닙니다.
====================================================================
(...)
란의학의 출현(1774년)이래 일본의 많은 재래의(한방의)들은 관념 아닌 사실, 즉 과학을 추구하는 란의로 개종했다. 개화기 이전에 이미 여러 명의 네덜란드 의사들이 일본의학 교육에 관여했던 사실도 특기할만하다. 그래서 1858년 동경에 란의의 관립의학교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2백 몇십년전 '란의학'으로 일본 땅에 서양의학의 틀을 잡은 그들은, 명치유신이후 독일의학으로 변신해갔다.
그후 일본정부는 국민의 보건담당을 '서양의 일변도'로 몰아갔던 것이다. 근대화 국제화의 길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즉 1875년 제정된 의사국가시험 과목이 전적으로 서양의학 일색이 됨으로서, 한방의는 기득권만 인정받아 개업하는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의사시험도 국가시험으로 통일했다. 유일한 한방의학교도 1883년 의료법개정으로 문을 닫게되었다.
여기에 한방의는 전국적으로 결속하야 정부의 서양의 편중정책에 저항해 봤지만, 국민보건 근대화에의 의지가 굳은 정부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한방의의 최후의 로비이자 필사적인 청원으로 1895년 '한방의 존속안'이 국회에 상정되었건만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장래를 위하는 그들 국회의원들은 어떤 나라 의원들처럼 로비에 현혹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합법적인 한방의는 19세기에 일본서 영원히 자취를 감춘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조국의 과학입국과 국제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 보건향상을 위한 신념 굳은 정부지도자와 실무자들, 로비에 흔들리지 않고 공부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민을 계몽하고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의료계지도자와 의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과학적인 의학(란의학)으로 씨뿌리고 뿌리내린 일본의학은 그후 독일의학, 미국의학으로 접목되어 현대의학이라는 거목으로 자랐으니 그 혜택은 바로 국민이 차지한다. 일본이 건강수명 최장수국이 된 연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일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일본의학은 탄탄대로에 놓여있다고 할까!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밀릴세 잎이 무성하고 백화만발하기 때문이다. 몹시 부러운 일이다.
200여년 전 우리의 선현 연암 선생은 캄캄한 쇄국 조선의학의 후진성을 한탄하며 낯선 중국 땅에서 야만국 일본의 란의학에 주목하야 그것을 찾아 암중모색하였으니, 국민보건 백년대계를 염려하며 조국근대화에 공헌하고자 했던 그 애국심에 우리는 다만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오늘의 의료대란을 예방하려는 선견지명을 지녔던 우리의 선현 연암 박지원 선생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