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만에 가생이에 글을 쓰는거같음.
거의 눈팅으로만 일관하다가 한번씩 글을 쓰기는 하는데,
이슈게시판에 쓰는건 또 처음인거같기도 하고.
이렇게 글 쓰는 이유는 아래 글과 댓글들을 보니 생각보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와 반감같은게 있어서
그냥 이 동네가 벌이랑 상황이 대충 어떻고
사회 현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해서 글 써봄.
글 길어질테니까 관심 없으면 읽지 말고 뒤로가기 하면 됨.
의대를 졸업하면 크게 환자를 안보는 루트와 환자를 보는 루트로 나뉨.
기초의학의 경우 학교 내 연구진으로 남아 연구를 하는 쪽인데,
해부학, 기생충학,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등이 여기에 속함.
기초의 특성상 의대 내부에서 진학자가 없으면 타 과에서 연구진을 받기도 하는데
덕분에 기초쪽은 생물학과나 약대 등 출신들이 제법 다양함.
...이라고 해도 연구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음.
지방으로 갈 수록 더더욱 고인물 판이고.
그렇게 대학교수 루트 타게 되는데,
각 교실에서 교수 타이틀 달면 대학마다 다르지만 대강 월 500정도 선을 수입으로 보면 될 것임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를 비롯한 일부 과들은 환자를 안보지만 일단 병원 내에 위치하고,
임상과의 연계가 매우 활발함.
이쪽이 대강 월급 700만원대 선임.
이런 루트들을 택하는 사람들은
1. 환자를 보는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2. 순수한 학문적 흥미를 택하거나
3. 집안이 받쳐줘서 수익을 포기해도 되는 환경이라 나만의 길을 가던가
4. 워라벨을 보는 케이스.
100일당직서고 수술방에서 시달리는 병원생활에서 반쯤 자유로운 대신
다른 과 전문의들에 비해 월급은 적게 받음.
당연하지만 취직처도 제한적임.
병원가서 유심히 본 사람들은 알텐데,
피검사를 하거나 영상 찍는다 하면 그걸 그 병원 내부에서 돌리는게 아님.
진검이 있는 병원에 외주로 의뢰해서 따로 결과를 받게 되고
그런 이유로 검사 한번 한다 하면 환자는 수시간에서 며칠 뒤 결과를 받게 됨.
그리고 실제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를 이야기해보자면-
최대 18%까지 치솟는 의대 내 유급률(올해 시사저널 8월호 보도),
3년의 군의관/공보의 복무, 거진 2년의 펠로우까지 합쳐
제대로 필드로 진출하는 의사들은
전문의를 땄다 치면 수도권 기준 최저 월 800만,지방 기준 월 1천만 정도를 받게 됨.
의대 내에서도 현역으로 원큐에 입학해서 중간에 막힘 하나 없이 졸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따라서 로컬 의사는 35세 넘어서,
거진 40이 되어야 강호에 진출하게 됨.
월급 잘 받으니 좋지 않느냐 싶지만
일단 남들이 빠르면 20대부터 돈 벌 때 이쪽은 40대 가까이까지 쏟아부은 시간의 매몰 비용이 존재함.
또한 과에 따라서 롱런할 수 있는 과도 있지만
나이들고 손떨리면 그만둬야 하는 외과계열은 남은 미래가 좀 더 짧음.
그래서 해외의 경우 외과의사 페이를 더 세게 주게 되는거.
게다가 예전처럼 개원하면 개나소나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병원이 망해서 다른 병원서 페이닥하며 빚갚는 의사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음.
문제는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거친 뒤 과의 선택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의 과 선택이 사실상 평생을 가게 된다는거임.
그런데 이 20대 중후반 - 30대 초반 정도의,
무슨과를 선택할지 고민인 학생들에게
[국가를 위해 너의 미래를 팔아줘야겠다. 산부인과, 흉부외과를 가라.]
라고 이야기하면
[이 한몸 바치겠습니다] 하고 갈 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민족반역자 다카키 마사오가 잘한 일이 딱 두개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전국에 나무심은거랑
전국민 의료보험만든거.
현재 형태로 의료보험을 만드는 거는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자유민주국가였으면 꿈도 못꿨을 형태임.
완벽한 의료정책이라는건 있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전 국민의 의료접근성이 이만큼 높아진 나라에서 살게 된 데에는
다카키의 역할을 뺴놓을 수 없음.
여튼 이 전국민 의료보험체제 내에서
임상의사의 수입은 환자의 자가부담금과 정부에서 받는 포괄수가 금액으로 이루어지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정부가 의사에게 주는 보험급여가 제법 낮은 수준으로 묶인 지 십수년이 넘어감.
물론 국민들 입장에서는 적은 돈을 내고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일임.
문제는 그 십수년간 [돈이 안되는 과]들의 지원자가 뚝 끊겼다는 거임.
단순히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
최근 들어 GP - 즉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의들이
바로 페이닥터로 활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음.
이러한 일반의들이 얻는 수익은 전공의보다는 적고 교수들보다는 좀 많은 수준으로,
사람마다 수완에 따라 케바케는 있지만 대략 월 500-800선임.
몸을 좀 혹사시키면 1천만 단위도 일단 벌 수 있음.
즉 흉부외과, 산부인과 이런과 전공하는 대신
전공의 자격 없이 그냥 워라벨 지키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거나,
같은 시간 일하면 그만큼 페이를 많이 받는 길이 열려있다는 것임.
이번에 공공의대 설립의 골자는 이런데,
10여년간 의대의 정원을 늘리되 공공의대는 졸업 후 10년간 지방에서 강제 근무시킨다는거임.
문제는 그 뒤임.
의무근무기간을 채우고 난 의사들이 과연 지방에 남을까?
의대생들의 학업 일체를 정부가 지원하고 대신 군에서 10년간 근무하게 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친 의사들 중 의무복무기간이 끝난 뒤 군에 말뚝박은 의사들은 거의 없음.
당연하지만 도시 가서 피부과는 고사하고 건강검진 알바를 뛰는쪽이 수익도 더 나고 생활하기 좋기 때문임.
그렇다고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무근무기간을 평생으로 늘리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고.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리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위 예시만 봐도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오히려 공공의대 졸업자들이 필드에 나오게 되면
지금도 망하는 병원들이 속속 나오는 개원가는 박터지는 전쟁터가 될꺼임.
현재도 특정 과를 가느니 그냥 의대 졸업하고 인턴만 한 뒤 바로 사회에 진출해버리는 판국에
비인기과들은 그때가도 의료수가가 해결 안되면 여전히 비인기과로 남을 것이고,
이대로 가면 결국 동남아나 동유럽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때가 오게 될 것임.
이번 전공의 파업 사태는 이같은 예정된 미래를 막기 위한 몸부림인데,
내가 보기에는 아마 의학계가 질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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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라고 하는것도 좀 웃긴데,
의대생은 수업거부, 인턴은 시위날 연차쓰고,
전공의는 정시출근 정시퇴근 하는게 '파업'임
현재 의료공백이 일단 생기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전공의의 정시출퇴근에 따른 의료공백을 대학교수가 커버치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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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의학계는 구성원들 수도 적지만
그 구성원들 상당수가 워라벨을 챙기지 못하고 바쁘게 살고 있고,
따라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음.
일정시간 이상 수련을 금지하고 인권을 챙겨주겠다는 전공의 특별법이 생긴지가 몇년 되지 않았음.
시간남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보니 정치를 할 시간이 적고
그러다보니 최X집같은 인간이 전체 지지율 5%로 의협 회장에 당선이 되는 촌극이 벌어지는거.
그럼 대체 해법이 뭐냐?
당연하지만 십수년간 비정상적으로 묶여있던 수가를 올려주면 됨.
펫샵에서 강아지 출산하는 비용이 대학병원에서 아기낳는 비용의 3배임.
이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잖슴?
문제는 그 어떤 정부도 의료수가를 올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임.
고정 지출이 늘어나니까 그 예산을 어디선가 땡겨와야 하고,
결국 부처간 돌려막기하다가 안되면 남는 선택지는 증세임.
그리고 민주국가에서 증세는 곧 지지율 하락과 동일한 이야기임.
지금 사태는 결국 알고보면 특별한 일이 아님.
시대가 어느새 지나고 지나고 지나가다가
의약분업으로 약사들이 의사보다 많이 버는 시대가 오고
건강보험공단이 파산직전까지 가기도 하고 하면서
의료수가를 억제해온 대신
기피과에 사람들이 안간지 십수년이 넘어간 지금
이제 한계가 온거임.
특정 과를 택한 극소수인원의 사명감이 빛나고
이국종교수같은 영웅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 필드가 시스템적으로는 파탄이 났음을 의미함.
저수가 초고강도 노동이 강요되는 과에 사람들이 하도 안가다 보니
이제 결국 남은건 두가지 초이스임.
일본처럼 해외의사수입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의 자원을 추가로 배분하여 비인기과의 의료 수가를 일정이상 끌어올릴 것인지.
공공의대로 일부 의사들을 촌구석에 10년 묶어두거나
강제로 특정 과로 보내면 이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 본다면 너무 나이브한 생각임.
그렇게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군병원은 지금 최상급의 의료진들이 가득 메우고 있어야함.
덧붙여 언어와 문화적 동질감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질 좋은 한국 의사가 굳이 국내에 남아있을 이유도 사라져가는 추세.
실제로 미국 뿐 아니라 일본에 국내 의사들이 진출하기 시작한지 사오년 되었고,
동남아에서는 미국의사자격증이나 현지 의사 자격증 없이
국내 일부 의대 졸업자들에게 현지 의사 자격증을 주고 끌어들이기 시작했음.
올 한해는 코로나때문에 주춤하겠지만
이대로 가면 앞으로 의료자원의 해외유출이 심각해질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