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작성한 인물들이 다 이승만 계파 ㅋ
이거 작성할때 시대적 배경은 남북통일정부 수립 따위 모르겠음 힘들것 같음. 우리끼리 따로 놀꺼임.
날치기로 헌법 만들고 미국에게 가서 허락 맞고 질러 버림.
당시 다른 독립운동가들 전부다 야이 쌍 머하는 짓이나?
근데 북한에서도 이지랄하는거 보고 같이 질러 버림.
어...쌍...어버버...하다가 현재까지 옴
이승만 계파이외의 독립운동한 사람이 대우 못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음.
우리가 정통임 니들다 반동.
대한민국의 제1대 국회인 대한민국 제헌 국회(大韓民國 制憲國會)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 국회를 뜻하며 1948년 5월 31일 구성되고 1950년 5월 30일까지 활동한 국회를 말한다.
국회의장: 이승만, 국회부의장: 신익희
국회의장: 신익희(申翼熙, 자는 여구(如耉), 호는 해공(海公)·해후(海候), 별칭은 왕방평(王邦平)·왕해공(王海公), 왕방우, 임방호(壬邦乎), 1892년 6월 9일 ~ 1956년 5월 5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중국의 군인으로도 있었다.
국회부의장: 다가 해방 뒤에는 한민당 조직에 가담했으나, 한민당 정치노선에 싫증을 느껴 1946년 10월 탈당. 김규식계열 정치노선에 활동하여 좌우합작운동에 투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헌국회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나 뒤에 국회프락치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과 월북하였다. 경남 동래군 출신. 본명은 김두전(金枓全).
국회부의장:윤치영
국회부의장: 김동원(金東元, 일본식 이름: 金岡東元 가네오카 히가시모토, 1884년 2월 1일 ~ 1951년 3월 20일[1])은 구한말기 애국계몽운동가, 일제강점기 교육인, 사업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구한말기 교사로 지내면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에 투신하여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평양YMCA 지회등 활동하여 민족주의자로 교육활동 및 사회활동등 전개하여 실력양성 및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전시체제)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로 친일파로 변절했다. 광복 이후 고당 조만식과 평남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했으나, 곧바로 월남하여 한국민주당에 참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납북되었다.
전원위원회
전원위원회 구성
국회는 특별한 안건을 부탁하기 위하여 의원전원으로 전원위원회를 구성한다. 전원위원회는 의원 10인 이상의 발의로 국회의 결의로 개의한다. 전원위원장은 회기 초에 선거토록 되어있다.
사악한 개종자들은 항상 왜곡을 하지.. 당연히 님이 개종자라는 뜻은 아니야. 그럼 아래 내용을
보고, 님이 왜곡을 했는지 안했는지 생각을 해봐요~~
[앵커]
팩트체크, 오늘(17일) 조금 민감한 내용을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인식이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도 정부수립을 '건국'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그런 주장인데, 팩트체크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깊게 살펴봤습니다.
오대영 기자, 이 논란때문에 오늘 하루종일 아주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낸 보도자료 때문인데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첫 번째로 "1948년을 정부수립일이자 건국의 시점으로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건국론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인식·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저희가 인식과 발언이 다르지 않은지 여부에 대해서 체크했습니다.
[앵커]
'건국론'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했네요?
[기자]
그래서 전·현직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한 쟁점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단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여부에 대해서 확인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정부수립 50주년을 '건국'이라고 표현한 것 맞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경축사에서 "그로부터 3년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2007년에도 "3년 뒤 나라를 건설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정부수립과 건국을 구분 없이 사용한 사례는 더 많습니다.
[앵커]
아주 과거까지 올라갔군요.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하여간 얘기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오늘 얘기가 나오고 있는 두 전직 대통령들이 거의 다 썼고, 발언도 다 비슷비슷하니까, 새누리당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내놓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기자]
물론 그럴수도 있는데요. 역으로 저희 팀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동안 문제가 안 되던게 최근에서야 뜨거워 졌느냐 라는 건데, 결국은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문제점에서 생긴 건데, 두번째 체크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조사해봤습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당시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던 시기였습니다.
취임 첫 해 < 제2건국추진위원회 >를 만들었는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이 발전시켜 제2건국을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민주주의'와 '제2건국'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주도의 '정부수립'을 뛰어넘는 민주 정부의 탄생을 강조한 겁니다.
특히 김구 선생을 기리는 백범기념관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이에 맞서 당시의 보수진영에서는 이승만 정부의 수립을 높이 평가하는 < 건국 50주년 기념사업회 >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김 전 대통령이 말하는 '건국'이란 것이 이른바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하는 최근의 '건국절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용태 의원이 주장하는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게 사실과는 조금 달라보이는…
[앵커]
인식은 다르다, 그런 얘기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또 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역사적 사실을 보겠습니다.
취임 직후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에서 벌어진 의문사와 과거사를 쭉 정리했는데, 특히 제주 4·3사건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현직 대통령 최초로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죠.
[앵커]
아시는것처럼 4·3사건은 1948년에 일어났는데, 이승만 정권의 탄생과 무관한 사건이 아니죠?
[기자]
그렇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에, 2008년 '건국절' 논란이 일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노무현/전 대통령 : 굳이 광복절을 죽이고 건국절이 그 위에 올라선다는 것이…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문제 제기 많이 하는 것 같지요.]
[앵커]
저 얘기가 나올때가 바로 이명박 정부에서 '건국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그런 시기였죠?
[기자]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부차원에서 '건국 6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위원장이 한승수 국무총리였고, 출범 목적이 "건국 60년의 현대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미래를 향한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후 여당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법안이 추진됐습니다. 그러면서 '건국절' 논란에 불이 확 붙은 겁니다.
[앵커]
네, 기억 납니다. 그때 논란이 10년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기자]
그 뒤에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교과서 문제로까지 번졌는데, 지난해부터 교과서가 어떻게 개정됐는지 보시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 표현이 바뀌기 시작했는데요, 2014년까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었는데, 2015년부터는 "대한민국 수립일"로 바뀌었습니다.
[앵커]
그러네요. '정부'가 빠졌네요. 다시 말해서 오른쪽은 건국의 뜻을 더 담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정부 수립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논란 속에서 3번의 광복절 경축사를 합니다.
4번 중에서 3번을 기념식에서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누리당에서는 이런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들어보시죠.
[심재철 의원/새누리당 : 우리나라 생일이 언제입니까, 바로 1948년 8월 15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8월 15일이 건국절이고 광복절이자 건국절입니다.]
[앵커]
엄밀하게 보자면, 건국절이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법으로 정해진 것처럼 얘기하는 그런 느낌을 주네요.
[기자]
네,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저희가 이틀 전에도 다뤘지만 다시 다룰 수밖에 없는게 '건국'이라는 표현을 같이 썼다고 해서 건국에 대한 인식이 같다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1919년 임시정부와 1948년 정부수립은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틀이라는 것, 부인하는 분들 없습니다.
이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헌법도 모두가 인정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누가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느냐, 안 썼느냐에만 매몰돼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건국절'에 있습니다. 8월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건 아직 합의가 안 된 사안입니다.
그런데도 단정짓는 주장까지 나오면,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설명과 건전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물론 모두가 합의하에 건국절로 하자면 그건 그 다음부터 모두가 따를 수 있는 것이지만, 분명히 그 단계는 아직 아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건국이란 단어 자체에만 이렇게 매달려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제기 인 것 같습니다.
1919년 건국절을 베충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1948년 이전의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의 의의를 폄하하고
일본의 조선 근대화라는 뉴라이트식 역사관 강조를 위한 것이며
일본의 침략사를 시혜사로 왜곡하는 일본우익들의 괘변과 같은 맥락을 가짐.
거기에 왜 악착같이 임정에 대한 악의적 거부를 하느냐?
1919년 임정은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처음으로 채택했고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이승만의 독단적 의사 결정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거세어지자 1925년 이승만을 탄핵함.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된 인물은 박근혜가 아닌 이승만임.
그렇기에 이승만정권하에 임정에 의한 독립운동사는 폄하되고 악의적으로 축소되었고
임정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탄압을 받음.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절 논란은 간단한 것임.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보면 간단히 정리됨.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 헌장과
1919년 9월 11일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뿌리로 하여,
1948년 7월 17일에 제헌 국회에서 헌법이 제정됨.
한마디로 1919년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헌법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는
족보없는 ㅄ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