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김구가 주석으로 있을 당시 제정한 건국강령은 1948년 8월 15알을 건국이라고 규정했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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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1941년)
제1장 강령
1,2,3,4,5,6 항 생략
7. 임시정부는 이상에 근거하여 혁명적 삼균제도로써 복국하고, 건국을 통하여 일관한 최고공리인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과독립, 민주, 균치의 3종방식을 동시에 실시할 것임.
제2장 복국
독립을 선포하고 국호를 일정히 하여 행사하고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을 세워서 임시약법과 기타 법규를 반포하고 인민의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행하며 군력과 외교와 당무와 인심이 서로 배합하여 적에 대한 혈전을 정부로써 지속하는 과정으로 복국의 제 1기라 할 것임.
일부 국토를 회복하고 당 정 군의 기구가 국내로 옮기어 국제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취득함에 충족한 조건이 성숙할 때를 복국 제2기라 할것 임.
적의 세력에 포위된 국토와 포로된 인민과 침점된 정치, 경제와 말살된 교육과 문화 등을 완전히 탈환하고 평등지위와 자유의지로써 각국 정부와 조약을 체결할 때는 복국의 완성기라 할 것임.
복국기에서 임시 약헌과 기타 반포한 법규에 의하여 임시의정원의 선거로 조직된 국무위원회로서 복국의 공무를 집행할 것임.
복국의 국가주권은 광복운동자 전체가 대표할 것임.
삼관제도로서 민족의 혁명의식을 환기하며, 해외의 민족역량을 집중하여 광복운동의 총동원을 실시하여 장교와 무장대오를 통일훈련하여 상당한 병력의 광복군을 곳곳마다 편성하여 혈전을 강화할 것임.
적의 침탈세력을 박멸함에 일체 수단을 다하되 대중적 반항과 무장적 투쟁과 국제적 외교와 선전 등의 독립운동을 확대, 강화할 것임.
우리 독립운동을 동정하고 원조하는 민족과 국가와 연결하여 광복운동의 역할을 확대할 것이며 적 일본과 항전하는 우방과 절실히 연락하여 항일동맹군의 구체적 행동을 취할 것임.
제3장 건국
적의 일체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도를 정하고 중앙정부와 중앙의회의 정식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여 선거와 입법과 임관과 군사, 외교, 경제 등에 관한 국가정령이 자유로 행사되어 삼균제도의 강령과 정책을 국내에 추행하되 시작하는 과정을 건국의 제1기라 함.
삼균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시행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며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전국 학령아동의 전수가 고등교육의 면비수학이 완성되고 보통선거 제도가 구속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전국 각 동, 리, 촌과 면, 읍과 도, 군, 부와 도의 자치조직과 행정조직과 민중단체와 조직이 완비되어 삼균제가 배합, 실시되고 경향 각층의 극빈계급에 물질과 정신상 생활정도와 문화수준을 높이어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의 제2기라 함.
건국기의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리와 의무는 다음 원칙에 의거하고 법률로 따로 정하여 시행함.…….
건국시기의 헌법상 중앙과 지방의 정치기구는 다음 원칙에 의거 함.…….
건국시기의 헌법상 경제체계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함과 민족 전체의 발전 및 국가를 건립, 보위함과 민족 전체의 발전 및 연환관계를 가지게 하되 다음에 열거한 기본원칙에 의거하여 경제정책을 추진, 실행함.
일제부역매국노들이 반역정신으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세워서 1948년으로 역사 도둑질을 하려 하지만
정작 이승만은 1919년이 3.1 만세운동을 계승한 건국일이라고 못을 박았죠
왜냐? 이승만 자신이 초대 임정 대통령이었거든요
독립운동의 방법론이 달라 무장항쟁보다 외교를 우선하자고 주장하던
이승만이 독립자금 갖고 미국으로 튀어서 탄핵되기는 했지만
이승만 자신은 임정수립과 임정의 정통성에 기여한 바 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