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 여자의사도 독일 혼혈
정정합니다! 일본 최초 여의사의 딸이래요~
은하철도 999 메텔의 모델이라고...
치밀한 인종개량정책으로 서구화된 일본인들.jpg
이렇게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던것도 정부의 정책하에 시도된 이미지 쇄신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모리 아리노리는 그가 남긴 언행이나 행적 그리고 드라마틱한 가정사와 암살된 인생을 살펴 보면 일본인의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가장 먼저 표출하여 일본에 자학사관을 남긴 사람 중의 하나로 보인다.
모리 아리노리가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초대 문교상을 역임하면서 주장한 영어공용화론은 일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공감을 받았는데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인 개조론을 주장했다.
그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파혼하고 유학생 출신의 여자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가 신식여성과 결혼하고 외교관으로 부임한 영국에서 그는 깊은 열등감을 느낀다. 그가 영어 공용론을 내세우고 일본인 개조론을 주장한 것은 영국에서 경험한 서양인을 보고 받은 신체적 정신적 문화적 열등감 때문임은 불문가지이며 그의 결혼생활과도 관련이 있다.
영어가 유창한 부인이 영국사교계에서 이넘 저넘과 놀아 난다는 소문이 들렸고 급기야 서양인을 닮은 애비없는 딸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국의 키크고 잘 생긴 남자들에게 부인을 빼앗기고 나서 서양인에게 열등감과 복수심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추정가능하다.
혼혈인 그 딸의 미모는 보통이 아니어서 모리 아리노리가 계속 키웠는데 여기 얽힌 추문은 확인이 안되므로 생략... 그는 자기 부인과 서양인 사이에서 낳은 그 딸이 워낙 미모가 뛰어나서 인지 그는 그후 일본인 개조론을 주장한다.
" 일본인은 체력, 지능, 언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양인에 비해 열등하다. 그러니 일본 청년들이 미국에 가서 미국여성과 결혼한 후 일본으로 돌아와 체력과 지력이 우수한 백색 혼혈자식을 낳아 그를 바탕으로 일본인을 인종적으로 개량해야한다"
이런 어이없는 주장이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초대 문교상이 했으니 당연히 추종자들이 있었으리라. 당시 다나카 사나에 와세다 대학 총장과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주장에 동조했다.
우리는 차라리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수모를 당했더라도 서양인과 맞서 싸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저 따위 어이없는 주장을 한 일본인을 비웃어야 마땅하다.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말하는 민족은 일본인 외에는 단연 없으리라.
과거 중국문헌에서 섬나라 개구리들은 왜인이라고 했으니 다 연유가 있을 것이고 이에야스나 히데요시도 150cm로 기록되어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에서 "영어못하는 키작은 노란 원숭이"라고 놀림받았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이고 보면 키가 작아서 일본인을 개조해야한다고 했을까?
그래서 예수가 일본인이라고 무덤까지 조작했을까?
모세가 일본인이고 로마를 건국했다고 십계명 바위까지 조작했을까?
양귀비도 일본이 당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보낸 스파이라고 조작해야했을까?
키 작은 미나모토 요시쓰네를 징기스칸이라고 주장하고 그에 열광했을까?
이런 것이 다 그 당시 나온 조작이니 진정 일본인의 조작은 단연 세계 최고다. 그러니 이들에겐 요즘도 북한관련 뉴스조작 쯤은 식은 죽먹기다.
물론 모리 아리노리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장한 서양을 본받자는 멍청한 말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일본인을 미국여자와 결혼시켜 개조해아한다니... 재미있는 사실은 고이즈미가 모리 아리노리의 복수를 하느라 그랬는지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를 만났을 때 영국여자와 자보니 끝내 준다고 자랑했다나?
미국여자들이 일본남자를 거들떠 보기나할까? 일본인 2세 로버트 쓰치가네는 "일본남자는 유머감각이 없고 명령적이어서 플레이보이 기질이 없다" 고 혹평했다. 여자를 애낳는 기계라고 아직도 말하는 일본 남자들에게는 미국여자를 유혹할 능력도 기질도 없고 여성을 깔보고 게다가 키작은 일본 남자들을 미국 여자가 좋아할 리도 없다. 떡줄 놈은 생각치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고 있는 격이다.
정작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을 본받은 모리 아리노리의 일본인 개조론에 가장 신나게 놀아난 것은 일본 여자들이다. 일본 여자들의 서양인 선호는 쇄국정책을 쓰던 시절 유일하게 개항된 나가사키에 서양인 상대의 공창이 번창했을 정도였고 미국에 패전후 미군부대 앞에 정부가 솔선해서 차려준 미군위안소에는 일본여자들이 넘쳐나 전후 일본경제는 여성들이 떠받쳤다는 일본수상의 발언도 있지않았는가? 그래선지 서양인 거부감도 없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외국인 남자친구와 데이트 경험이 있는 여성이 30%가 넘고 미국군인들이 탄 배가 들어오면 수많은 일본여성들이 몰려든다는 전여옥의 얘기를 보면 참 어이없다.
서양인들은 순종적인 일본여자를 좋아하고 일본여자들은 여성을 애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일본남자보다 여성을 위해주는 매너좋은 서양인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인이 일본인 개조를 시도한 것은 미국 여자가 아니라 동남아 여성들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동남아 여성과의 결혼은 60년대 후반부터 7,80년대 일본 농촌에서 대 유행이었지만 인종차별만 부각시켰는데 요즘 일본연예인을 잘보면 동남아 혼혈들이 많다.
인종 개조론과 열등론, 우월론은 참 이상하다. 일본인들은 열등과 우등을 가르고 자신을 열등하다며 굳이 서양을 본 받아 일본인을 개조하자는 말에 집착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전해준 문화로 살면서도 아시아 문화권임을 부정하고 3국중 가장 열악한 체격과 용모를 지니고도 조선민족과 중국민족이 자신들보다 열등하다며 짓밟으며 살인을 즐겼다.
이 세상에는 우월한 민족도 열등한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민은 평등하며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자유를 향유할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 우리도 조선족이나 동남아인들을 차별하면 안된다. 아프리카에 태어났던 동남아에 태어났건 미국에 태어났건 동등한게 인간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은 서양인이 우월하니 일본은 동양에서 벗어나 유럽을 본받자는 것으로 모리 아리노리의 영어공용화론이나 일본인 개조론은 결국 서양이 우월하다며 주장한 동양지배 논리에 속아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가 오늘날의 일본인들을 그 속에서 허덕이게 만들고 아직도 아시아 중심이 아닌 서양추종 외교를 펴며 아시아에서 왕따를 당하니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의 죄가 진정으로 크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 개조론은 참 일본인스러운 것이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우리는 저렇게 유치한 일본에 침략당해 망해야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열등 민족이라고 자책하며 자학적으로 인종을 개조하여 우등민족이 되자던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당한 치욕은 두고두고 곱씹으며 우리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결국 모리 아리노리는 대부분의 일본 유명인사들이 그렇듯이 반대파의 암살로 43세를 일기로 열등감에 찬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언행은 아직도 일본에 긴 그림자로 남아있다.
모리 아리노리가 일본헌법을 기초할 때 "신민의 권리에서 신민이란 천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가질 뿐이며 권리는 아니다. 그래서 신민의 책임을 분수로 바꾸어야한다" 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는 국수주의자였을 뿐이다.
이란 그가 어째서 서양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서양을 본 받자고 했으며 나아가 일본인을 개조하자고까지 했을까? 그 열등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왜 자기 민족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고 개조하자고했을까? 나는 이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역시 칼로 백성들을 억압하던 일본무사들이 자기보다 더 강한 서양인의 힘과 큰 체격과 총과 대포를 만나고 보니 자신들이 억압하던 백성들처럼 자기들도 똑같이 서양인에게 당할거라고 느꼈던 본능적인 공포심과 함께 강한 힘에 너무 쉽게 제압당하던 일본 백성들을 보며 한심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의 일본남자들은 미국에 패전한 후 미국에 대한 공포심과 복수심이 얽힌 복잡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일본여자들은 서양인에 환장한다는 평가를 받는 현대 일본을 보며 지하에 누워있는 모리 아리노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이지만 일본을 달구었던 백 수십년 전의 일본인 개조론은 성공했는가? 우리도 일제 35년과 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데 동양은 정말로 서양보다 열등한가?
그런 것을 날로 草食男이 늘어간다는 현대 일본인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글의 댓글:진짜 개화기 전에 살던 일본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였다고는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