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의 제조 기원에 대하여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까지도 두부는 한나라 시대의 회남(淮南) 왕자 유안(劉安, BC 179-122)에 의하여 처음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의 근거는 송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팔공산두부(八公山豆腐) 전설에 기인한다. 그 내용은 유안은 도가(道家)에 심취한 도인(道人)으로 오랫동안의 수행 끝에 지쳐있었는데 산을 오르다 8명의 신선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불노장생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니 두부를 먹으라 하고 콩을 갈아서 두유를 만들고 응고시켜 두부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와서 Yuan Han-Chhing이 회남자(淮南子)를 철저히 읽고 분석한 결과 이 책에는 두부 또는 두부를 뜻하는 옛글인 여기(黎祁)나 래기(來其)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더 나아기 송대 이전의 문헌에서 두부가 당대(唐代,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11세기말에 저술된 본초연의(本草衍義)에서라고 밝히고 두부는 당나라 시절에는 없었고 11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송대(宋代, 960-1279)에 널리 사용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성제집(誠齊集)에 두로자유전-두부(豆盧子柔傳-豆腐)라는 글이 있다. 여기에서 두부의 옛 고향이 하남(Honan) 동북방의 외황(外黃)이라고 한 것과 그 조직감이 유제품과 유사하다고 한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장지현(1993)은 한반도에서 처음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BC 57-AD 668) 말 또는 통일신라시대(668-918) 초기라고 결론지었다.세종실록(世宗實錄) 권 66 갑인(甲寅) 16년(1434) 기록을 보면 중국 황제의 친서 내용 중에 조선에서 중국 황실로 보낸 부녀자들이 음식을 규모있게 잘 만들고 특히 두부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므로 이들을 더 보내달라는 구절이 있다 여러 문헌들에서 보면, 중국과 한반도에서의 두부제조 기술 발전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콩의 발상지이며 콩을 식품으로 사용한 시기가 앞서 있고 락(酪), 요구르트, 치이즈 등 유목민의 식생활에 익숙했던 남만주와 한반도의 동이족에 의하여 두부가 처음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크다.콩을 주식으로 사용하여온 동이족이 두부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한대(漢代) 이전의 일로 생각 되며 한대에 그 기술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추론은 1980년대에 알려진 한대의 무덤 마왕퇴(馬王堆, 호남성에 있는 기원전 168년의 고분)에 있는 벽화에서 두부제조 공정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됨으로서 한대 초기에 두부 제조 기술이 중국에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에 근거한다. 그림 7은 마왕퇴 벽화 사본과 그 중 두부 만드는 공정을 확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팔공산 두부 전설은 아마도 회남왕 유안이 북방민족으로부터 이 기술을 배워온 사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
백성에게 전하지 못하고 주로 불도가(佛道家)의 소식(素食) 재료로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마도 콩을 북방 오랑캐들이 먹는 열등한 음식재료로 보았던 중국인들의 의식 때문이라고 본다.
상식적으로 두부를 만들려면 바닷물 간수가 필요합니다. 간수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에서 소금을 쌓아두면 흘러나오는 침전물로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두부는 바닷가에 살던 민족만이 만들 수 있던 음식입니다. 중국의 동해안이나 한반도가 두부의 발상지일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추론가능합니다.
중국의 한족들은 황허강에 살던 민족이라 바닷물을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그러니 두부가 원래 중국음식이 아니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중국의 동해안에 살던 사람이 바로 동이족이니 두부는 동이족-한민족 기원의 음식일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