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닙니까?
'종의 기원' 초판이 나온 게 1859년입니다. 그럼 그 이전엔?
물론 라마르크라든가 진화론을 주장한 학자나 논문은 있었죠.
하지만 다윈만큼 방대한 증거를 들어 치밀하게 논지를 전개한 학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해를 Sibal점(금지어라고 'ㅅㅂ점'이라고 바꿨더니 더 욕같아서...^^;;)으로 삼아 봅시다.
바로 이 해부터 진화론은 폭발적으로 학계, 그리고 얼마 뒤부터는 대중 일반에 퍼져나갔습니다.
그 전에는 창조론 일색이었는데도, '그저 하나의 이론'이 인류를 뒤흔들게 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19세기 빅토리아조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진화론이라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당대로서는) 이론이
그 강고한 창조론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