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미츠 개발 이후 틈만나면 "내 손안에 세상을 담겠다"고 호언했다. 이미 단순히 휴대폰에 PC용운영체제를 이식하는 수준이 아닌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애플리케이션들을 하나의 장터에서 내려 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 개념의 마켓까지 구상해 놓았다.
이 부회장은 스마트폰 세계화를 위해 지난 2004년 PC용 OS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MS 빌 게이츠 회장을 찾아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스마트폰 개발을 추진했다. 빌 게이츠 역시 스마트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견, 공생의 악수를 했다. 하지만 삼성과 MS의 악수는 소스코드 개방 문제와 모바일OS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획기적인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삼성이 MS 출신 H전무를 영입한 것도 협력모드의 일환이었다.
이 부회장은 MS와의 협력이 지지부진하자 2006년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 등을 직접 만나 리눅스 OS기반의 혁신적인 스마트폰 제안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1년 전의 일이다. 이 부회장은 "당시 회사차원에서 리눅스 기반의 스마트폰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구글과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사업을 꾀했지만 구글이 이듬해 안드로이드 OS를 개방 복수의 사업자와 계약을 하면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고 말했다.
삼성의 스마트폰 전략은 이동통신사들로부터도 환영을 받기 힘들었다. 당시 데이터 전용 네트워크가 무르익지 않았을 뿐더러, 멜론, 도시락 등 음악 포털산업에 이통사들이 막 진출하던 시기로 삼성의 앱스토어 개념이던 애니콜몰 역시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SK텔레콤의 삼성 애니콜에 대한 시각은 곱지않았다. 왜 제조업체가 서비스사업자들의 밥그릇까지 넘보느냐며 불만이었다. 애니콜몰에서 SW를 하나 내려받는 데도 어려움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이런 와중에 삼성의 구조개편은 스마트혁명 좌절에 결정타가 됐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물러나면서 애니콜신화를 이끌었던 이 부회장도 일선에서 비켜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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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애플은 극비리에 스마트폰 개발작업에 착수했다. 삼성의 스마트폰 아이디어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애플은 절치부심 끝에 2007년 6월 `아이폰'이라는 걸작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스마트혁명을 이끌기 시작했다.
삼성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구글 역시 스마트 혁명을 준비해왔음은 물론이다. M&A를 통해 안드로이드 OS를 확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드로이드를 세계 각국의 제조사들에게 무료로 제공, 애플에 대적할 수 있는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구글은 한발 더나가 휴대폰 제조사의 원조격인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SW의 강자만 살아남는 시대에 국내제조업체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