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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4 05:46
구약의 인물들..
 글쓴이 : 침벹는언니
조회 : 1,682  

아브라함

성경 연대를 추론해볼때 기원전 2100년경에 우르의 칼데아에서 가나안으로 이주
 - 그러나 칼데아는 기원전 10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팔레스타인 왕인 아브멜렉에게 도움을 청함
-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12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닸다.

아브라함과 다른 족장들 사이에서 낙타이야기가 많이 나옴
- 낙타는 기원전 1000년 전에는 사육하지 않음


모세

이집트에서 장정 60만명과 딸린 식솔들을 데리고 탈출함
- 역사를 상세히 기록하는 이집트의 역사에 60만명 이상의 대 이주 기록은 없음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이주.
- 출애굽 시기(기원전 14~12세기)에 가나안은 이집트의 식민지였음. 출애굽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

모세의 탄생설화
- 사르곤 대황, 아카드 왕의 탄생설화와 동일함
  ex) 풀로만든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짐
        세력있는 여성에게 구출됨 등등


다윗

성경속에 광대하고 정교한 문명을 가진 나라의 왕으로 설명됨
 - 고고학적 분석에 의하면 20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마을 12개 정도의 족장에 지나지 않음


솔로몬

300명의 후궁와 700명의 아내들이 있었음. 그 중 이집트 파라오의 딸도 있었음
- 이집트에 솔로몬 왕조와의 동맹 기록이 전혀 없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등과 동등한 지위로 교역하는 선단을 가지고 있음
- 그의 이름은 중동 그 어느 나라의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음

예루살렘은 광대한 도시였다.
- 기원전 1000년 경의 고지도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에는
  공공건축물, 궁전, 사원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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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7 15-04-04 06:40
   
기적이야 당연히 뻥이라고 쳐도 역사적 사건 들은 과장인줄 알았는데 창작에 덧붙인 과장이네.
그럼 성경 무오류설은 뭐야? 유대교, 기독교에 유리한 것은 오류가 아니다?
sba7336 15-04-04 08:00
   
유대교 10계명의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를 어기고도 추앙받는 모범 개독..
결혼 하지 않은 여자와 간음하고.. 그 여자를 버려서 간음하게 만든 자...

주중에 온갖 죄를 다 지어도.. 주말에 교회에 가서 사죄함을 받아 천국간다는 개독들의 표상...
몽당연필 15-04-04 09:57
   
출애굽은 대규모의 이주가 아니라 오랜기간을 둔 소규모의 지속적인 탈출이라 보는 시각도 존재하더군요.

성경에서의 기록은 장정, 즉 젊은 남성만 60만명이라고 나오는데,

그럼 젊은 여성들과 아이와 노인 인구까지 합하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200만명은 넘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 최소한도 현대의 핵가족 개념으로 봤을때 200만 정도지,

고대시대에는 기본적으로 대가족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저 시대에 인구 200만명 이상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네요.
     
쿨맨 15-04-04 10:07
   
기원전 20세기에서 기원전 10세기까지, 나일강 양쪽 강변과 나일강 삼각주라는 거대한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던 이집트의 인구는 300~350만명 이었습니다. 이 인구는 이집트 정부가 농경지를 구획하고 세금을 걷었던 이집트정부의 공식문서에 의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의 숫자가 200만명? 그리고, 변변한 수자원 하나 없는 가나안에서 200만명이 살아갈 수 있다구요?

녹색혁명, 그러니까 질소비료와 농약이 개발되어 인류가 식량위기로 부터 벗어난건 20세기 중반으로, 이제 겨우 70년도 안지났습니다.
          
몽당연필 15-04-04 10:08
   
성경에 나와있는 장정만 60만명이라는 수치로 계산해 봤을때의 숫자입니다.

실제 인구수가 어느 정도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은 인구수가 아니라, 출애굽이 실제로 있었다면

소규모의 지속적인 탈출이었을 확률이 높다는게 핵심입니다.
sky하늘 15-04-04 10:36
   
나도 3년내내 지독한 세뇌를 한 미션계 고딩을 다녔었는데
기독경 목사가 3년내내 수업시간에 휘두른 무기는 "절대로 의심하지도 묻지도 말고 무조건 믿어라!!!!"
목사 혼자서 떠들고 다들 자는 시간...그 금쪽같은 시간을 쓰레기 설교듣느라 허비했으니...
지금까지도 기독교 설교중 단 하나라도 사실인게 없더란 사실....무조건 믿어라 뿐~
기독경은 성령에 의해 기록된거니 무조건 믿어라. 성령이 도대체 뭐요 라고 물을수 없었으니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무조건 믿어라는건 사이비 아닌가....
타스 15-04-04 13:17
   
성경이라 부르기도 우스운 기독경..
나그네1111 15-04-08 13:17
   
일단 낙타..


창세기의 낙타는 성경의 오류인가?
 (Genesis Camels : Biblical Error?) 
Jake Hebert
 

    최근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요르단 국경을 따라 나있는 아라바 계곡(Aravah Valley)에 있는 고대 구리 제련 캠프에서 낙타 뼈(camel bones)들을 발굴했고, 이들에 대한 방사성탄소(radiocarbon) 연대측정을 실시했다. 저자들은 실시된 방사성탄소 분석에 주로 기초하여, 남부 레반트(southern Levant,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남부를 포함하는 중동지역) 지역에서 가축화된 낙타의 최초 출현은 BC 900년 경이었다고 결론지었다.[1, 2] 그러나 성경 기록에 의하면, 길들여진 낙타는 아브라함의 시대인 BC 2100년 경에도 있었음을 가리킨다.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창세기 12:16). (또한 창세기 24장을 보라). 그렇다면 성경은 잘못됐는가?

언론 매체들은 레반트의 역사에서 가축화된 낙타를 너무 일찍 언급한 성경은 시대착오적이었다고 서둘러 주장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2014. 2. 10)의 기사는 창세기에 낙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창세기가 오랜 세월 후에 구전되던 이야기가 편집되어 쓰여졌음을 가리키는 증거이며, 성경은 항상 신뢰할 수 없으며, 입증된 역사가 아니다”라는 대담한 주장까지 하고 있었다.[3] 
 
이들 낙타 뼈들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이 정확했다 할지라도, 연구자들의 주장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들은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아브라함 시대에 남부 레반트에서 가축화된 낙타의 고고학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시대에 그 지역에 낙타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했다고 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경 비판가들이 늘상 사용하는 잘못된 주장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들은 한때 성경이 히타이트족(Hittite people)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했었다. 왜냐하면 히타이트족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비판가들이 틀렸음이 확인되었다.[4]   

낙타가 족장들의 시대 동안에 이스라엘 땅에 극히 드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낙타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 시대 이전인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에 길들여진 낙타가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있다.[5] 더군다나 가축화된 낙타가 그려져 있는 (세속적 고고학자들도 아브라함 시대 이전으로 연대를 평가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이 발견됐었다. 거기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낙타의 머리, 테라코타 태블릿(terra cotta tablet), 낙타 모델, 암각화, 낙타털로 만든 밧줄...등이 포함된다.[5] 창세기에서 낙타는 아브람이 이집트에 있는 동안 바로가 선물로 주었을 때,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창 12:16) 그래서, 가축화된 낙타가 아브라함 시대 이전부터 이집트에 있었다면, 그리고 이집트의 왕이 선물로 아브라함에게 주었다면, 아브라함의 낙타가 이삭과 야곱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어떻게 이것이 명백한 시대착오가 될 수 있는가?
 
100여 년 이상 동안, 성경 비판가들은 많은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철저하게 믿고 있던 주장들을 사용하여, 성경에는 시대착오적인 낙타가 등장한다고 비판해왔다.[5, 6] 그러나 성경의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 최근의 비난자들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면서, 다른 고고학적 데이터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매체들의 과대 선전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기록된 낙타는 성경의 오류가 아니다.


References

1. Sapir-Hen, L. and E. Ben-Yosef. 2013. The Introduction of Domestic Camels to the Southern Levant: Evidence from the Aravah Valley. Friend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of Tel Aviv University. 40: 277-285.
2. Finding Israel’s First Camels. American Friends of Tel Aviv University. Posted on aftau.org February 3, 2014, accessed February 13, 2014.
3. Wilford, J. N. Camels Had No Business in Genesis. The New York Times. Posted on nytimes.com February 10, 2014, accessed February 13, 2014.
4. Wilson, C. A. 1977. Rocks, Relics and Biblical Reliability. Grand Rapids, MI: Zondervan, 41.
5. Lyons, E. Camels and the Composition of Genesis. Apologetics Press. Posted on apologeticspress.org 2002, accessed February 14, 2014.
6. Caesar, S. 2006. The Wealth and Power of the Biblical Patriarchs. Bible and Spade. 19 (4).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출처 : ICR News, 2014. 2. 24.
 URL : http://www.icr.org/article/8008/
번역자 : 미디어위원회
나그네1111 15-04-08 13:23
   
갈대아 건..





창세기 11:27. . . .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Nahor)과 하란(Haran)을 낳았고 하란은 롯(Lot)을 낳았다.

창세기 11:28. 하란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idees)에서 자기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따라서 우르(Ur)가 아브람 가족의 고향이며 아브람 자신의 출생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르는 최소한 기원전 3500년 전, 어쩌면 그보다도 더 일찍 세워진 수메르 도시였다. 그것은 바빌론에서 남동쪽으로 약 140 마일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의 오른쪽 강변에 위치해 있었으며, 당시의 페르시아 만 해안이 바로 부근이었다. 그곳은 수메르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으며, 달의 신, 씬(Sin)3) 숭배의 중심지, 장엄한 지구라트의 소재지였고, 해안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아마도 중요한 원양 교역으로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기원전 2500년 무렵, 우르는 “1 왕조(first dynasty)” 치하에서 상당한 권력의 기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 세기 반 만에 끝이 나는데, 그 때 우르는 루갈자게씨, 나중에는 아가드의 사르곤의 개선군에게 함락 당했다.

우르의 거주자들과 역사가들은 이 정복자들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것이다. 만일 니므롯이,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루갈자게씨와 사르곤의 흐릿한 기억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유태인의 전설에서 니므롯이 아브람이 출생할 때의 바빌로니아의 왕을 나타내고, 실패하기는 했지만, 아브람을 죽이려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흥미 있는 일이다.

아카드 제국의 몰락 이후, 우르는 “3 왕조(third dynasty)” 치하에서 또 한번의 위대하고 상업적으로 윤택한 시기에 들어서게 된다. 수메르 정권의 이 마지막 시기는 기원전 2050년과 기원전 1950년 사이에 해당하며, 그 시기 동안이 아브람이 태어난 시기이다.

우르는 구약의 시대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존재하였으며 기원전 324년이나 되는 최근에도 문서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창세기가 쓰여지던 시기에, 우르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쇠퇴해버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게 된 마을에 불과했다. 아브람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덕분에 독자들에게 엄청난 흥미를 끌게 된 마을을 언급하게 된 창세기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그곳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카스디인들의 우르(Ur kasdim)”, 즉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 혹은 그보다 낫게는, 현대어역판에서처럼 “갈대아인의 우르(Ur of the Chaldeans)”라고 불렀다.4)

갈대아인들는 기원전 약 1150년 무렵, 아람인들의 뒤를 바로 이어(54쪽 참조), 남쪽으로부터 바빌로니아로 압박해 들어온 아라비아인 부족이었다. 따라서 우르가 실제로 갈대아 영토의 일부가 된 것은,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거의 천 년이나 지나서였다. 갈대아인들이 도시 바빌론에 침입한 것은 기원전 9세기(900년-800년)였고, 잠시나마 패권을 다투었던 것은 기원전 700년 무렵이었다. 당시 바빌로니아를 지배했던 앗시리아왕 샬만에쎄르 5세가 죽자, 722년 갈대아 족장이었던 메로다흐 발라단(Merodach-Baladan)이 바빌론에 입성해 바빌로니아 왕임을 선포했다(열왕기하 20:12-19 참조). 여기에 나오는 ‘갈대아의 우르’는 이 때를 반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시리아의 시기 동안, 갈대아인들은 바빌로니아 인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족이었으며, 따라서 “갈대아의 우르”는, 그 시대착오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마을을 알게 해 주는 가장 경제적인 말이었다.
나그네1111 15-04-08 13:31
   
팔레스타인 관련

아비멜렉은 블레셋 사람들의  왕 이라고 표현 되어 있고, 그랄 지방 왕임.
팔레스타인과 블레셋은 다르니, 역사 공부를 다시 하는게 나을듯..
 

팔레스타인인(아랍어: الشعب الفلسطيني, ash-sha`b al-filasTīni)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과 이 지역 출신의 아랍인 이주민과 그 후손을 별개의 민족으로서 부르는 명칭이다. 팔레스타인인은 다수가 이슬람교 신자이지만, 기독교 신자도 꽤 있다.

팔레스타인의 어원은 '필리시테인(Philistine, 블레셋 사람)'으로, 로마 제국 지배 이후에 이 지역을 가리키는 지역명이 되었다. 필리시테인은 미케네 문명 당시 남부 그리스에서 이주한 종족으로, 현대의 팔레스타인인과는 혈통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아랍인'으로만 부르지만, 민족적으로 아랍인과 같더라도 유대교도라면 유대인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