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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02 15:23
봉건체제가 문명발전의 초석인건 분명합니다
 글쓴이 : 민코프스키
조회 : 585  

제글.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일빠 아닙니다.
일본 누구보다 혐오하구요. 빨리 망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개괄할때는 개인감정을 접고 객관적으로
봐야합니다. 다들 아시는 책이 있죠?
총.균.쇠라고. 서울대생들이 제일많이
읽는책으로도 선정될정도로 유명한데
그 책내용에 전부 동의 하는건 아니지만
이부분은 동의하는편입니다. 봉건체제가 문명발전의 초석이었다는 부분.
오랜기간 유럽보다 문명적으로 발전되어있었던 중국이
결국 유럽에 밀리게된것도 결국 중국의
중앙집권체제가 내부경쟁과 발전동인을
잡아먹었기 때문인것으로 해석하는데
저는 그 부분에 동의합니다.
중국이 오랜기간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할때
같은기간 유럽은 수백개의 소국이 흥망을 거듭하며
경쟁과 발전적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과학.학문등의 문명적 자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독일같은경우도 작은 소국의 봉건적연합체였던 시절
나폴레옹에게 심각하게 털린 이후로 공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류최초의 현대적 종합대학과 공과대학이
독일 이곳저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독일과학의 발전을 촉진하죠. 그 흐름이
놀랍게도 정확히 1800년에 시작된 일입니다
한국이 전하 성은이 망극~할때였죠
많은 분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그렇게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성공할수 있게된것을 메이지유신 이후의
중앙집권체제에서 찾기도 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봉건체제에서 비롯된 번사이의 경쟁과
반목때문이었죠.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된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 200여년전부터
여러번들의 내부애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일본의 에도막부는 기본적으로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는
쇄국정책이었지만 봉건체제라 그 정책이
지방의 번들에게까지 말빨이 먹히지 않는 구조였죠.
그냥 각 지역번들의 필요에따라 외국문물의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복잡다단한 형국이었습니다.
나가사키같은경우는 큰 항구와 지리적 위치때문에
오래전부터 중국은물론이고 유럽의 대선단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무역을 하던곳이고
에도막부는 나가사키에게만 특별히
항구앞 섬에서의 교역을 허락할정도엿죠
그래서 서구문물을 전문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난학도 이지역에서 굉장히 활발했었고
그것이 벌써 16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메이지유신보다 수백년 전이었죠
그렇다고 모든 번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건 아닙니다
지금의 야마구치현에 있던 토사번은 외국문물접하는게
발각되면 엄벌을 내리기도 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에도막부가 있던 지금의
도쿄는 쇄국정책을 실시한 막부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난학이나 서구문물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한 곳이었죠
그러다 1850년대 미국 함대가 일본에 진입하여 교역과함께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자 일본의 정세가 요동칩니다.
각 번들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일본의 미래를 어떻게 재정립할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게 되죠
아주 강력한 쇄국정책을 하고 미국과 싸우자는
번도 있었던 반면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열강들과
교역하며 이익을 보자고 주장하는 번도 있었고
일왕중심으로 뭉쳐야한다는 번과 새로운 정부를
세우자는 번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혼란을 거듭한 나머지 급기야는 번끼리 전쟁을 벌이며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번끼리의 경쟁이 극심해진거죠. 그러면서
각 번들은 일본에 분점을 내고 있던 유럽열강상인들에게서
각종 포나 총. 선박등 여러 무기를 사들이고
기술을 습득하면서 발전하고 또 번주가 직접
똘똘한 인재를 선발해서 번차원에서 해외유학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번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구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토히로부미죠.
비록 일본의 정세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봉건체제라는 일본의 지방분권적 특징이
결국은 일본의 근대화를 강력하게 촉진시켰던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별로 축적되고 배양되었던 근대화의 역량이
메이지유신이라는 일왕중심 개화파의 승리를 기화로 공식화 하고 본격화 된것이죠
사실상 메이지유신은 일본 근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일본근대화의 공식화라는 의미일뿐입니다.
수백년에 걸친 각 번들의 서양문물 연구와 경쟁. 전쟁들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폭발적이며 급진적인
근대화의 성공을 만들어 준겁니다.
반면 당시 조선도 에도막부와같은 쇄국정책을
펼쳤으나 중앙정부의 권한이 너무나 막강하여 말빨이 잘먹히는 바람에
일본과달리 근대화에 필요한 내부역량
축적에 실패하게 되죠.
몇몇 사람들은 당시 조선이 일본 메이지유신보다
조금만 더 개항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마치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 할수있었을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제가 위에서 언급드렸듯이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근대화에 필요한
내부역량을 축적해오고 있었기때문에
빠른 근대화에 성공한것이므로
당시 조선이 아무리 메이지유신보다 더 빨리
개화했다손 차더라도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하는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이 중앙집권체제와 봉건체제의 차이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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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 14-02-02 15:33
   
그러니까 가생이에도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이 나올줄 알았다니까요

 뭔가 님은 단순한 착각 아니 심하면 망상에 사로잡혀 계시는군요

 뭐랄까 하나의 나라가 지역으로 갈갈이 쪼개진 전국시대가 도래하면
 각각의 영주들은 최대한 국력을 신장시키기위해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기술과 경제 군사력을 급속히 발전시켜 태평한 시대보다 훨씬 더 발전할수
있으리라 보리라는 대 망 상!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사상이 출현하고 군사적인 시스템이 발전했던것은 사실이나
이걸 단순히 역사가 발전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봉건사회는 귀족 지배계급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농민들은 노예 반노예나 다름없는
농노로서 엄청난 착취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국시대때 왜인 농민들이 영주들에게 갖다 받쳤던 쌀의 비율이 생산량에서 얼마나
높았는지나 아십니까?

 전국시대는 진보의 시대가 아니라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역사가 발전했다고 보려면 제도 사상 특히 현대에 들어서 인본주의적인 척도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죠.

 왜놈들이 오랫동안 영주들이 할거하면서 지들끼리 소소한 싸움을 벌이고
 뭔가 군사력도 일취월장해이니까 뽀대난다 멋지다 우리나라도 저런 상무적인
분위기여야했는데 기타등등 망상질을 해대는 ㄷ ㅅ들이 참 많쵸
     
민코프스키 14-02-02 15:36
   
지금 나한테 등신이라고 했나요??
Misu 14-02-02 15:39
   
중앙집권체제가 더 우월한거아닌가요? 독일도 수없이 쪼개졌을때보다 통합되면서 신흥강국으로 부상했었는데
     
민코프스키 14-02-02 15:50
   
본문에 언급드렸듯이 독일의 소국체제시절부터 경쟁을 통한
내부역량 축적이 있었기에 강국으로
부상할수 있었던거죠. 단지 통솔체제를
중앙집권체제로 바꾼다해서 아무런 기반이나 역량도 없는데 갑자기 부국강병해지는것이 아닙니다
나와나 14-02-02 15:39
   
봉건체제가 문명발전의 초석이라고요?봉건체제는 국가의 체제가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일 뿐입니다 작은 소국들이 경쟁하는 뭐 그렇게 아니라요 오히려 봉건사회는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고립과 단절이죠
유럽도 봉건체제로 살아오던 중세는 암흑기였어요 이 때까지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발달한 동양이 압도적이였죠
나중에 장원이 붕괴되고 절대왕정으로 들어가면서 과학혁명,산업혁명 등이 일어나서 급속도록 발전하면서 발전이 늦어지던 동양을 따라잡은 거죠
일본의 경우는 단순 운이 좋아서죠
     
민코프스키 14-02-02 15:45
   
봉건체제는 제국주의 시대 이전까지
지속되던 체제였습니다.
중세가 아니구요.
          
ninetail2 14-02-02 16:28
   
아...네...그랬군요....^^
버들강가지 14-02-02 15:41
   
이거 식민사관 아니였나요?

정체성론은 한국이 여러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능동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당시의 조선사회가 10세기 말 고대 일본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는 주장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봉건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여 사회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논리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침략미화론으로 이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식민사관 [植民史觀] (두산백과, 두산백과)
     
민코프스키 14-02-02 15:47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구문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데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할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빠른 근대화 성공의 원인을 개괄해드린것 뿐이죠
한울타리 14-02-02 16:47
   
본인 글에도 있는데 부정하시네요!

봉건체제하에서 어떤 곳이 발전할수는 있겠지만,나라 전체가 발전하지는 못하죠.

메이지 유신으로 중앙집권화에 성공하고 일본이 발전할수 있게 된 기틀이 됩니다.

교육제도,관리제도가 자리잡고 내부분쟁으로 소모되는 국력을 모아서 나라를 발전시킬 기틀을 다지게 되는거죠!

봉건제 하에서는 몇군데지역이 발전할수는 있어도 그걸로 끝이에요.

제도적인 기틀이 마련되어 안정된 상태에서 농업,상업,공업이 발전하게 되는겁니다.

내전중인 나라나 정치적으로 혼란한 나라들이 못사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일본에 부분적인 지역에서 발전했을지 몰라도 근대화가 되려면 중앙집권이 필수였기 때문에 지사라는 사람들이 메이지 유신을 한겁니다.

메이지유신이 없었다면 근대화가 한참은 늦어졌겠죠!
옥토29 14-02-02 17:04
   
르네상스나 산업혁명, 노예해방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과 경제의 발전이 시대의 진화를 이끈경우는 있어도, 발전된 정치제도의 도입으로 시대가 진화한 사례는 없습니다. 필리핀같은 국가가 민주주의의 도입이 우리보다 일렀고 더 잘살았으며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유리했음에도 여전히 빈국에 머물러있는것도 하나의 사례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