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글.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일빠 아닙니다.
일본 누구보다 혐오하구요. 빨리 망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개괄할때는 개인감정을 접고 객관적으로
봐야합니다. 다들 아시는 책이 있죠?
총.균.쇠라고. 서울대생들이 제일많이
읽는책으로도 선정될정도로 유명한데
그 책내용에 전부 동의 하는건 아니지만
이부분은 동의하는편입니다. 봉건체제가 문명발전의 초석이었다는 부분.
오랜기간 유럽보다 문명적으로 발전되어있었던 중국이
결국 유럽에 밀리게된것도 결국 중국의
중앙집권체제가 내부경쟁과 발전동인을
잡아먹었기 때문인것으로 해석하는데
저는 그 부분에 동의합니다.
중국이 오랜기간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할때
같은기간 유럽은 수백개의 소국이 흥망을 거듭하며
경쟁과 발전적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과학.학문등의 문명적 자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독일같은경우도 작은 소국의 봉건적연합체였던 시절
나폴레옹에게 심각하게 털린 이후로 공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류최초의 현대적 종합대학과 공과대학이
독일 이곳저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독일과학의 발전을 촉진하죠. 그 흐름이
놀랍게도 정확히 1800년에 시작된 일입니다
한국이 전하 성은이 망극~할때였죠
많은 분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그렇게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성공할수 있게된것을 메이지유신 이후의
중앙집권체제에서 찾기도 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봉건체제에서 비롯된 번사이의 경쟁과
반목때문이었죠.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된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 200여년전부터
여러번들의 내부애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일본의 에도막부는 기본적으로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는
쇄국정책이었지만 봉건체제라 그 정책이
지방의 번들에게까지 말빨이 먹히지 않는 구조였죠.
그냥 각 지역번들의 필요에따라 외국문물의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복잡다단한 형국이었습니다.
나가사키같은경우는 큰 항구와 지리적 위치때문에
오래전부터 중국은물론이고 유럽의 대선단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무역을 하던곳이고
에도막부는 나가사키에게만 특별히
항구앞 섬에서의 교역을 허락할정도엿죠
그래서 서구문물을 전문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난학도 이지역에서 굉장히 활발했었고
그것이 벌써 16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메이지유신보다 수백년 전이었죠
그렇다고 모든 번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건 아닙니다
지금의 야마구치현에 있던 토사번은 외국문물접하는게
발각되면 엄벌을 내리기도 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에도막부가 있던 지금의
도쿄는 쇄국정책을 실시한 막부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난학이나 서구문물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한 곳이었죠
그러다 1850년대 미국 함대가 일본에 진입하여 교역과함께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자 일본의 정세가 요동칩니다.
각 번들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일본의 미래를 어떻게 재정립할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게 되죠
아주 강력한 쇄국정책을 하고 미국과 싸우자는
번도 있었던 반면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열강들과
교역하며 이익을 보자고 주장하는 번도 있었고
일왕중심으로 뭉쳐야한다는 번과 새로운 정부를
세우자는 번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혼란을 거듭한 나머지 급기야는 번끼리 전쟁을 벌이며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번끼리의 경쟁이 극심해진거죠. 그러면서
각 번들은 일본에 분점을 내고 있던 유럽열강상인들에게서
각종 포나 총. 선박등 여러 무기를 사들이고
기술을 습득하면서 발전하고 또 번주가 직접
똘똘한 인재를 선발해서 번차원에서 해외유학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번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구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토히로부미죠.
비록 일본의 정세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봉건체제라는 일본의 지방분권적 특징이
결국은 일본의 근대화를 강력하게 촉진시켰던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별로 축적되고 배양되었던 근대화의 역량이
메이지유신이라는 일왕중심 개화파의 승리를 기화로 공식화 하고 본격화 된것이죠
사실상 메이지유신은 일본 근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일본근대화의 공식화라는 의미일뿐입니다.
수백년에 걸친 각 번들의 서양문물 연구와 경쟁. 전쟁들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폭발적이며 급진적인
근대화의 성공을 만들어 준겁니다.
반면 당시 조선도 에도막부와같은 쇄국정책을
펼쳤으나 중앙정부의 권한이 너무나 막강하여 말빨이 잘먹히는 바람에
일본과달리 근대화에 필요한 내부역량
축적에 실패하게 되죠.
몇몇 사람들은 당시 조선이 일본 메이지유신보다
조금만 더 개항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마치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 할수있었을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제가 위에서 언급드렸듯이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근대화에 필요한
내부역량을 축적해오고 있었기때문에
빠른 근대화에 성공한것이므로
당시 조선이 아무리 메이지유신보다 더 빨리
개화했다손 차더라도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하는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이 중앙집권체제와 봉건체제의 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