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지도자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의 승인을 얻었고 1950년 6월25일 조선인민군은 남쪽으로 공격을 시작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길상 교수는 러시아 교과서의 이런 변화는 국가 통제 하에 있던 옛 소련시대의 교과서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교과서 시장을 자유롭게 풀어 준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6.25 전쟁 원인을 남침으로 기술하는 흐름이 대세가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대표적인 교과서, 최근에 나온 교과서 몇 권을 분석해 본 결과 대체적으로 북침설은 교과서 내용에서 다 없어지고 한국전쟁은 북한에 의해서 특히 스탈린의 후원, 마오쩌둥의 후원에 의해서 북한의 김일성이 어느 날 갑자기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의 전쟁이다, 이런 표현으로 통일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길상 교수는 “체코와 폴란드 등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 등 옛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던 나라들 대부분도 6.25 전쟁을 북한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길상 교수는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모든 나라가 6.25 전쟁을 북한의 남침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중국만은 아직도 6.25 전쟁을 내전으로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은 중국이 참전을 했었던 전쟁이기 때문에 만일 내전도 아니고 북한이 남침을 했는데 그 전쟁에 북한을 지원했다라고 하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사회주의 국가로서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게 되기 때문에 그런 관점을 바꾸기는 어렵겠죠.”
이길상 교수는 “이번 연구가 러시아의 모든 출판사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주요 교과서가 한국전쟁과 관련한 오류를 시정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https://www.voakorea.com/a/a-35-2009-06-23-voa6-91396129/1326741.html
내전이라는 표현은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친북 역사관임.
6.25 전쟁범죄와 비극이 북의 일방적 침략에 의해서 발생한게 아니라
남북 대립중 발생한 통일전쟁 혹은 민족해방전쟁이었고
이념에 따른 "서로"간의 충돌이었을뿐이라는 시각
북한교과서, 중국교과서, 그리고 주사파 및 친북주의자들이 우기는거임.
http://www.allinkorea.net/sub_read.html?uid=38111§ion=section11
6·25를 내전으로 왜곡한 대통령들 망언
6.25를 내전이라 표현한 인물들 의 평소 언행과 성향을 보면
주로 보안법 위반 전과자 혹은 친북 운동권, 주사파출신들이 많음.
물론 앞장서서 공개석상에서 망언한 대통령도 주로 그런 성향들....
▲김영승(미전향장기수, 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주인공)=6.25는 위대한 민족해방전쟁, 김일성은 ‘수령님’, 김정일은 ‘장군님’(자신의 블로그(http://blog.voiceofpeople.org/kimys3587)를 통해 각각 쓴‘피로 물든 불갑산은 말한다’(2006년 1월 16일), ‘남조선 혁명열사 박영발 동지 52주기를 맞이하여’(2006년 3월 5일), ‘역사기행과 열사묘소 참배’(2006년 4월 30일)라는 제목의 글에서 빨치산을 미화하며)
▲이수호(전 민주노총위원장-전교조위원장 이수호)=세계평화를 위해 미국은 한반도에서 떠나라.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에서 미국은 떠나라...우리는 알고 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선교사를 앞세워 침략의 발톱을 숨기고 들어온 그 가증스러움은 그렇다 치자. 단 한 방으로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핵폭탄을 사용해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이 되어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고 독도를 일본에 선물했다. 민족 간의 분쟁과 이웃나라와의 다툼을 알고도 너는 그 악의 씨를 뿌렸다. 그래서 6.25전쟁은 네가 기획했고 결국은 네가 주역까지 하며 한반도를 철저히 파괴했다(2008년8월 5일 부시 미대통령 방한 반대 집회 연설문》
▲강정구 동국대 교수=우리는 광복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달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피해는 1만명 이하였을 것이다(2005년 9월 30일 한반도정세토론회)
▲강희남 목사(전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6.25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않고 살 수 있었다( 2005년 5월 19일 ‘통일뉴스’ 인터뷰)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미국이야말로 악의 제국이며 부시행정부의 집권세력이야말로 악의 축이다(2003년 4월 7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김일성 주석은 비록 이북의 역사가들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삼대 쓸 듯 물리치며 군사적 해방을 쟁취한 짜릿한 순간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 세계사에서 이 수준의 혁명을 달성한 지도자는 몇 안 된다 - 분명히 혁명의 창건자로서 위치를 누릴 수 있었다. 혁명의 창건자, 이는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한 나라에서 오직 한명의 혁명가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김일성은 1992년 자신의 80살 생일을 맞이하여 <세기와 더불어>라는 이름의 회고록을 펴냈다...<세기와 더불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김일성은 20세기의 인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덩샤오핑은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떻냐는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유명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이 그보다 25년 전에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었지 왼손으로 먹건 오른 손으로 먹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2004년 7월 8일 ‘한겨레21’에 기고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