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4-02-02 22:44
정도전에서 왜구들 갑옷 고증 안된거죠?
 글쓴이 : 북창
조회 : 1,521  

임진왜란 때...갑옷 입고 있네요;;;
말그대로 왜구라...갑옷도 변변치 않았을거 같은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게이츠 14-02-02 22:47
   
왜구 랑  일본 본토 왜구랑 다르죠 ㅎㅎ;;

저때 왜구는 동남아 랑 중국 남쪽에 살고 있던 원주민 일본 본토에서 쫒겨난 범죄자들 모인 해적 집단이죠

즉 정규 군인이 아님... 여러 지역에서 모인 해적 집단이라 보시면 됨...
     
북창 14-02-02 22:51
   
그건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 아닌가요? 어떻게 해적 집단이 2만 명이나 되겠어요?
당시 일본이 전국시대 시작할 즈음이라...정치 상황이 안 좋아져서...지방 세력들이...왜구짓 한거죠.
          
응답하세요 14-02-02 23:30
   
황산대첩때의 해적은 일본내에서 거대한 세력을 가졋던 무장집단이엇고 일본내에서의 전쟁에서 살길을 잃어버리자 한반도로 대거 몰려온 무력집단으로 보는게 맞을겁니다.

가마쿠라막부가 몰락하고 일본은 각지의 영주들이 패권을 다투는 남북조시대의 혼란으로 접어들게되는데요.
혼란을 틈타서 큐슈와 세또나이카이해를 중심으로 해적집단들이 성행하게 됩니다.

이들의 무력을 이용하여 전국시대 패권을 확대하려던 영주들 가세하면서
큐슈일대와 세또나이카이해는 해적의 천국으로 변하죠.

막부소속이나 영주의 군선도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해적에게 통행세를 내어야할 형편이였다고 하니깐 뭐...
 
14세기 15세기에 접어들면서 막부에서 대대적으로 해적을 소탕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막부와 전쟁으로 세력이 약화되서 거점을 벗어나게 된 해적집단들이 근거지를 큐슈북부바다와 쓰시마로 옮기면서 고려와 중국연안까지 활동반경이 확대된거죠..
아마 고려인, 중국인 막 섞여 있었을 겁니다...
     
옥토29 14-02-02 23:32
   
그건 일본주장이고, 당시에는 다이묘들이 직접 나서서 해적질을 장려했습니다.
mymiky 14-02-02 22:50
   
고증미스  맞아요
걍 불멸의 이순신  소품  가져다쓴듯...ㅡㅡ
저도 보더가  엥?!했음
저  갑옷은  일본사에서 몇백년  후의 복장임
하늘2 14-02-02 22:51
   
고려 말기의 왜구들은 단순한 해적떼가 아니라 본토 영주 휘하의 정규군이 조직적으로 몰려와서 약탈을 한 것이라서 갑주의 상태는 당연히 정규군의 무장입니다. (다만 1380년의 갑주와 1592년의 갑주는 사소하겐 다르겠지만 드라마에서 고증이 다르다고 지적당할 정도는 아님. 일본 갑옷의 특징은 이미 헤이안 시대 말기에 나올 건 다 나왔고 알록달록한 장식성도 가마쿠라 시대에 이미 성행한 것임.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 오히려 실전적인 갑옷이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가마쿠라 스타일의 알록달록 갑옷은 전혀 안 입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혼재되어 있었으므로, 고증 자체는 별 문제가 없음)

소규모 왜구들이 해안가를 털다가 고려 정규군이 출동하면 도주하는 게 아니라 이때 왜구들은 몇백 척씩 몰려다니면서 내륙까지 들어와 몇천 단위의 고려군이랑 전투를 서슴치 않았는데 이걸 무슨 카리브해의 해적 같은 오합지졸로 생각하면 안되죠.

왜구들 규모가 가장 컸던 이성계의 황산대첩 때는 노획한 군마의 숫자만 해도 1만필이 넘어가는데 기병을 만 단위로 운용하는 무력집단은 두말할 나위없이 정규군 중에서도 최정예 정규군입니다.

기병 1만을 근거로 전체 규모를 추정하면 일반적인 기병과 보병의 통상적인 비율만 적용해도 보병 2만에 기병 1만이고, 거기에 전투병이 아니라 병참이나 보급을 담당하는 노무자나 잡부 따위를 합하면 5만 정도 되는 겁니다.

이 당시 왜 선단의 규모는 500척이 넘었는데, 척당 100명만 잡아도 5만은 쉽게 넘어섭니다. 배에서 노 젓는 인력을 육지에서 약탈할 때는 노무자로 썼다면 대충 숫자도 맞아떨어지고.
     
응답하세요 14-02-02 23:15
   
기록에 의하면 포획한 말은 1,600여필정도이고
당시 일본의 해적배는 30~40여명이 타는걸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배가 발견되어서 인원수 추정이 가능했죠)
고로 500척이면 적게는 1만에서 많게는 1만 5천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500척의 기록은 황산대첩이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1378년 최무선의 진포대첩에서의 해적선 숫자입니다)
ringbearer 14-02-02 22:55
   
무로마치 막부는 말이 막부지 지방통제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당시 노략질은 지방 영주들의 주된 비즈니스였습니다. 노획물 일부는 교토의 중앙귀족에게 뇌물로 갖다바치고 그 댓가로 지방 무사 영주들은 자치권을 유지했죠.
모래곰 14-02-02 23:27
   
요즘에는 당시 왜구가 해적이 아니라 일본 남조의 군대였다는 말이 있더군요.
일본이 그때 남북조로 나뉘어서 서로 싸우던 시절이였죠.
그리고 당시는 무로막치 막부가 아니고 이걸 통합한게 무로마치 막부라고 압니다.
'아지발도'도 본명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불렀던 겁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누구인지 확인이 안되는데 주변에서 대하는 태도로 봤을 때
굉장히 높은 고위층 인사였을 확율이 높다고 하더군요.
이건 지나가다 들은건데 본인은 고려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부하들이 하도 성화여서
왔다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궁그레이 14-02-02 23:30
   
사극드라마 역사드라마..역사드라마에 가깝네요 그나마 픽션위주는 아니니깐..그래도 개판입죠..

이성계 예기자체를 드라마 쓰는거 자체가 이해두 안가고 ㅋㅋ

몽고사람인데 이성계..몽고사람이 고려먹고서 조선 차린셈인디..
     
모래곰 14-02-02 23:42
   
이성계가 무슨 몽고인입니까?
근거도 없으면서 인터넷에서 자꾸 이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지금 한국에 조선 태조의 후손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당신은 지금 그 사람들을 모욕하고 있는겁니다.
그러다 언제 된통 당하니 적당히 하시죠.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이 고려로 망명한 이유가 원나라가
고려인 출신 관료들을 차별하면서 고려로 귀순한겁니다.
이성계 집안이 무신정변을 일으킨 집안의 후손인데
그것도 숨기지 않고 당당히 기록했는데 무슨 몽고타령인지...
보면 이런 글을 남기는 사람들 정체가 정말 궁금합니다.
그리고 '정도전' 정도면 잘 만들었죠.
기록도 상세히 남아있고 한국인이면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를
당연히 알테고 타국인이면 모를 수도 있겠죠.
이성계가 없었으면 지금쯤 한국은 중국인, 일본인 둘 중 하나가 됐겠죠.
적어도 한글로 헛소리를 다는 댓글도 없었겠고.
한자나 히라가나를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원통한 일이겠군요.
          
광택아 14-02-02 23:55
   
이성계가 여진이나 몽골인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
신분세탁으로 고려인으로 위조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성계를 이세민이었던가??  암튼 정확하진 않지만 그 후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성계 부하도 이민족이 많았고..  암튼...  제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주장을 펴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근거까지 내새우면서요.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죠.
그리고 무슨 이성계가 없었다고 한국이 중국인, 일본인이 됩니까?  어이없음요..
짱깨 처부수라고 군사 줬더니 도리어 고려에 역적질해서 왕위찬탈하고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우왕을 신돈의 아들이라고 떠벌였지요.  그리고는 한국을 중국사대주의에 쩔게 만든 장본인 아닙니까?
전 이성계 별로 좋아하지 않음.  전두환이랑 별로 다를게 없다고 봅니다.
               
모래곰 14-02-03 00:15
   
그건 제가 알기로는 태조 왕건을 말하는 겁니다.
태조 왕건이 조상계보를 조작했는데 조상을 당나라 황실로 썼죠.
그걸 요즘 중국에서 떠드는 겁니다.
중국에서는 부여를 중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삼국 모두를 중국계통이라고 주장한다더군요.
그리고 조선시대에서는 무신정권에 평가가 박한데 하필 이 집안으로 조작을 했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바보 중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이성계의 영향권이 함경남도입니다.
함경북도는 이지란의 영역이였고 의형제를 맺으면서 함경도가 이성계의 수중에 들어오죠.
국경지대에 있는 세력가의 휘하에 타국인이 있다고 그 장본인까지 타국인이 된다는 말은
근거가 없겠죠.

그리고 이성계의 전공이나 보시고 말하시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기 전까지 구국의 영웅이였습니다.
전씨 따위와 비교를 하다니 좀 그렇군요.
왜구, 홍건적, 나하추, 여진족, 몽골 격파한 것을 보면 대단합니다.
이성계가 없었어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고 봅니까?
괜히 최영이 이성계를 좋아한게 아니죠.
정벌군에 괜히 이성계를 보냈겠습니까.
요동성을 정벌하고도 제대로 된 지원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던 이성계죠.
그리고 위화도 회군에서 돌아온 속도를 보면 전광석화입니다.
군사들도 휘하 장수들도 싸우는걸 싫어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시 북원, 나하추 모두 명나라에 박살난 상황입니다.
그 전하고는 상황이 다르죠.
개막장이였던 고려말의 상황에서 조선이 개국이 안됐을 때
명나라와 잘도 싸웠겠군요.
개혁으로 부강해진 조선도 힘든 상대였는데 말이죠.
왜구한테도 휘둘리던 고려입니다.
전국토가 노략질을 당했죠.
그걸 격파한 것도 이성계...

그리고 한글은 조선왕조의 업적입니다.
당연히 이성계가 없었으면 한자, 히라가나 둘 중 하나를 쓰고 있겠죠.
                    
광택아 14-02-03 00:21
   
당연히 한글은 인정합니다.  그거 하나로 그나마 조선왕조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한거고요.  하지만 조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대주의에 쩔어있는 나라도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국가가 개막장이었더라도 나라에서 적과 싸우라고 보낸 군대가 오히려 자기나라를 박살낸게 잘한짓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나마 딴나라에 안팔아먹고 자기가 왕위에 올랐으니 다행인거죠.  암튼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습니다.
                         
모래곰 14-02-03 00:28
   
사대주의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사대주의를 안했던 나라를 한번 말씀하시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안한 나라가 있었나요?
그리고 그랬다고 이들이 비굴한 것도 아니죠.
사대주의는 그냥 외교관계입니다.
조공도 실제로는 준 것보다 받은 물건이 몇곱절 많았고요.
그 예외가 원나라입니다.
이건 약탈이였죠.
그리고 조선시대의 명나라는 모든 무역을 금지했습니다.
조공무역만 허용했죠.
요즘도 미국에게 밉보이면 알잖습니까.
그런거죠.
여기에 못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일본입니다.(하고 싶은데 못한겁니다)

그리고 싸울 상황이 아닌데도 소중한 군사들을
개죽음이 뻔한 장소로 몰아가는 멍청한 임금보다는
훗날을 기약해서 물러나는 장수가 훨씬 좋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mymiky 14-02-03 00:32
   
사대주의가 왜 이성계탓이죠ㅡㅡ? 교조화된 유학은 조선중기 이후에나 등장하는데 말입니다
그걸 탓하려면 막장화된 사림을 욕하시던가..
신돈아들 우왕설은 당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심쩍어했어요
고려 마지막 충신이라는 정몽주도 그랬고 하물며 조모이자 공민왕 생모인 명덕태후도 손자의
즉위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모한 전쟁에 메달릴게 아니라 내실을 다져야 하는 상황이였기에
위화도 회군을 지지하는 장군들이 많았습니다
맹자엔 왕이 부덕하고 능력없음 쫒겨나는게 당연하단 사상이 깔려있구요
                         
광택아 14-02-03 00:36
   
잘못했어요.  함만 봐주세요.
               
mymiky 14-02-03 00:18
   
아주 없는 소리 맞습니다 주로 혐한들이 그런소릴하죠
그리고 거기애 낚인 조선까들이 그런 소릴합니다
이성계는  가계도 조사와 연구가 풍부해서 그럴 껀걱지 없어요ㅡㅡ
음모론자들이야  뭘해도  못믿는가하겠지만..
중국에선  이세민이 아니라 이인임의 아들이 이성계라고 잘못 기록했죠
그걸 종계변무 사건이라고 하구요
                    
모래곰 14-02-03 00:20
   
그걸 홍순언이라는 역관이 고쳐서
역관이면서도 광국공신에 올랐죠.
명나라에서 일부로 오류로 남겨놨는데
당시 명나라 예부의 고위인사의 부인이
홍순언에게 은혜를 입어서 그 남편이
고쳐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