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6주는 거란이 '할양'했다고 하여서 큰 인심을 쓴 것처럼 보이고 서희가 말 한 마디로 대군을 물리치고 땅까지 얻은 외교의 신처럼 묘사되지만
사실은
그 강동6주는 <요사>에 적혀있기로는 "여진국 압록강 동쪽의 땅"
ㅡ 즉 당시 거란 땅이 아니며
ㅡ 986년 거란이 정벌한 여진국(실제로는 발해유민)의 세력이 그 후에도 잔존, 할거하며 설치니까 거란이 인심 쓰는 척하면서 고려에게 떠넘긴 것
ㅡ 고려 성종은 서희를 보내서 그 지역의 여진족을 정리하고 성을 세워서 애초에 거란이 강화협상에서 약속한 여진국 압록강 동쪽을 따라 280 리 지역이 아니라 더 넓은 지역을 고려가 개척해버린 것
993년 거란 침략에서 거란과 싸운 것은 고려만이 아니라 여진족도 함께 싸웠다고 <금사>, <만주원류고> 등이 적고 있음
거란의 이후 2차, 3차 등의 침입은 고려의 강동6주를 빼앗기 위함이었음
이 지역은 현 혼하 상류, 동요하 상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 지역을 고려가 차지하자 고려에 예속되거나 거란과 고려에 양속돼 있던 여진족들이 이 지역을 건널목 삼아서 거란을 괴롭혔고
거란은 현 목단강시에서 남연해주에 이르는 동북여진(동여진)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서 고려에게 길을 열어줄 것을 부탁하나 고려가 허락하지 않았음
993 침략의 목적은 거란이 북송을 본격 공략하기에 앞서서 후방에서 고려와 여진 세력의 공격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차원으로 정벌 목적보다는 군사시위의 성격이 강한 침략이었음